요한복음 21:4-6 이미 동 틀 때가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들어서셨지만 제자들은 알지 못했고 예수께서 그물을 오른쪽에 던지라 했을 때 그 말씀에 순종하니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이전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영광으로 디베랴 바다 위에 나타나셨지만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이나 만나고도 깨닫지 못하고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이어지는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물을 오른쪽에 던지라 하여 고기가 많이 잡혀 끌어 올릴 수 없게 되는 내용이다.
4절은 원어에서 “그러나” 라는 뜻의 말로 시작한다. 아무것도 잡지 못했으나 이미 동틀 무렵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 것도 잡지 못했는데도 이미 해 뜰 때가 가까웠다는 것은 밤 새도록 헛그물질 만 했다는 뜻이다. 그러한 순간에 “예수께서 바닷가를 향하여 계셨다” 라고 말한다. 여기에 쓰인 eis 라는 전치사가 장소를 나타내는 목적어와 함께 쓰일 때는 안을 향하여 들어가는 동작을 나타내는 것이다. 1절에서는 “바다 위” 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바닷가를 향하여” 라고 분명히 구별해서 말한다. 이는 1절의 바다 위라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말이다. 이 말로 보아도 1절은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이 디베랴 바다에 나타났다는 뜻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가 예수이신 줄을 아직도 알지 못하였다” 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물론 동이 틀 때가 되었다고 했기에 아직은 어두운 시각이다. 다수는 거리나 빛이 부족했기에 바닷가에 있는 인물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두운데다가 물안개까지 끼어있어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부분의 문맥은 실제적으로도 새로운 아침이 도래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요한의 신학적 상징으로서의 아침이 도래한 것이기도 하다며 제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아침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알리는 것이다.
이미 동이 틀 무렵이라는 말은 해는 뜨지 않았지만 밝아오고 있었다는 뜻이다. 거리도 약 90m 정도 밖에 안 떨어져 있기에 멀어서 알아보지 못했다는 말도 말이 안된다. 알지 못했다는 말은 전혀 알지 못했다는 과거완료형이지만 예수님이시라는 말은 현재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과거 육신의 몸을 입으셨던 예수님이 아닌 현재 하나님의 영광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을 전혀 알아보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요한은 이를 통해 제자들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상태였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디베랴 바다 위에 가득히 나타났는데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고 알리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영의 눈이 가려져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보아도 제자들이 예수님을 찾은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찾으셨다는 것이 분명하다.
5절은 원어에서 “그러므로” 라는 말로 시작한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했으므로 라는 뜻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아이들아!” 라고 부르시며 무얼 좀 잡았느냐?” 라고 물으신 것이다. 아이들이란 호칭은 마치 자녀들을 부르듯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이다. 낯선 사람이 이렇게 부른다면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들을 부를 때 쓰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배반한 제자들을 다정한 말로 부르는 것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세번 나오는데 모두 다정한 호칭의 의미로만 쓰였다.
자신을 배반한 제자들이고 자신을 보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제자들을 다정하게 부르시며 예수님께서 먼저 말을 거신 것이다. 여기서 고기를 잡았냐는 말에서 ‘고기’ 라는 말은 빵과 함께 먹는 물고기를 뜻하는 말이다. 아침에 빵과 함께 먹을 고기가 있느냐는 질문이다. 제자들은 없다고 대답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먹을 것이라도 장만하려고 밤새도록 애를 썼는데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다.
6절은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의 오른쪽에 던져라. 그리하면 발견할 것이라고 하셨다. 오른쪽이 좋은 쪽이라 행운이 있을 것이니 던지라는 뜻이 아니다. 지금 던지는 곳과 다른 쪽에 던지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천지만물들을 창조하신 분이고 지금도 천지만물들을 운행하시는 분이라는 뜻이기에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리하면 잡을 것이라는 말은 그러면 발견할 것이라는 뜻이다. 요한이 잡을 것이라는 말을 발견할 것이라는 말로 쓴 것은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디베랴 바다 위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란 뜻일 수 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그물을 던졌다. 누구인지도 모르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고기 잡는 일이라면 자신들이 최고의 전문가들인데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그물을 오른쪽에 던진 것이다. 예수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그 말씀에 순종한 것은 예수께서 그렇게 하도록 주도하신 것이다. 제자들 생각대로라면 거부하고 자기들의 상식대로 했어야 옳다. 그렇게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순종하여 그물을 던지자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서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이는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신 것을 제자들에게 드러내신 것이다. 1절에서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 위에 임재하셨다는 말과 연결해서 읽어야 한다. 요한은 예수님이 디베랴 바다 위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이신데도 자신들은 깨닫지 못했다는 것을 증거한 것이다.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셔서 말씀하셨는데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노력으로는 아무 것도 잡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니 엄청난 양을 잡은 것이다.
요한은 이 부분에서 분명히 영광의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 위에 임하셨는데 그 분은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앞으로 제자들의 사역을 암시한 것이다. 예수님 없이 자기들 경험과 지식에 따라 사역하면 아무 결실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이신 부활의 주님을 발견하고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면 놀라운 결실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