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형 기아자동차 K5 소유주 박정훈(가명) 씨는 최근 아찔한 경험을 했다. 자신의 K5를 운전하고 서울 여의도 부근 왕복 8차선 도로를 지나던 중 스티어링 휠이 갑자기 움직이지 않았던 것. 박씨는 “핸들을 있는 힘껏 돌렸는데도 5도 정도 움직이더니 더 이상 꼼짝하지 않았다”며 “핸들이 틀어진 채로 주행할 수 없어서 도로 한복판이었지만 차량을 급하게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박 씨처럼 K5 소유주들 중 일부는 계기판에 EPS 경고등이 켜진 뒤 스티어링 휠이 갑자기 무뎌지거나 이상소음 발생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K5 초기모델을 중심으로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지난 2010년 4월 처음 출시된 K5는 그 해 총 6만1876대가 팔리며 단숨에 국산차 베스트셀링 5위에 오르는 등 인기를 누렸다.
박 씨의 K5도 2010년 8월에 출고된 것으로 3년을 조금 넘긴 뒤부터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서비스센터 점검 결과 전동식 조향장치(MotorDriven Power Steering·이하 MDPS) 결함이 확인됐다”며 “해당 부품은 수리가 안 돼 교환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하필 보증기간 3년을 넘긴 시점에서 결함이 발견돼 60만 원이 넘는 부품 값을 지불하고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K5 인터넷동호회에서는 박 씨와 비슷한 사례가 자주 발생했다. 몇몇 회원들은 “최근 들어 K5 초기모델들에서 MDPS 결함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며 “기아차 서비스센터 측도 MDPS 결함을 인정했지만 보증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무상 수리를 해주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현대·기아차 MDPS 결함은 이전에도 문제가 불거져 무상 수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지난 2009~2010년 한국소비자원은 현대·기아차 뉴 베르나·모닝·포르테·쏘울 등의 MDPS 결함으로 무상수리를 권고했다.
당시 조사를 맡았던 한국자동차품질연합 김종훈 대표(전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1국장)는 “이들 차량은 시동을 걸기 바로 직전에 MDPS 자체 시스템 점검을 거친다”며 “점검 중 외부 요인에 의한 시스템 오류로 핸들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는 결함이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지난 2010년 9월 YF쏘나타 13만9500대가 미국에서 리콜됐다.
MDPS 장치는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움직일 때 전동식 모터가 힘으로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MDPS는 기존 유압식 조향장치보다 무게뿐만 아니라 원가도 줄일 수 있고, 조향 시에만 작동해 연비향상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제작사들이 선호한다. 그러나 힘이 달리는 단점 때문에 초기엔 소형차 위주로 장착됐지만, 개선된 MDPS가 나오면서 그 적용 범위가 중형차급까지 넓어졌다. 현대·기아차의 중형차급 이하 차량들에는 모두 MDPS 장치가 탑재됐다.
이에 대해 기아차는 보증수리기간 3년 이내 차량에 한해 MDPS 무상 교체 또는 프로그램 업그레이드를 해주고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품질 담당 부서 확인결과 K5 조향장치 결함과 관련해 보고 된 사례가 1건도 없다”며 “문제의 차량이 확인되면 서비스센터에 차량을 입고 시켜 원인을 파악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