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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과 계절 핑계를 앞세웠지만, 실은 매 순간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일정량 이상 껴안고 지낸다. 본격적으로 관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때는 아마도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넘어가던 겨울이 아니었나 싶다. 수능 끝난 수험생이었던 우리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학교 운동장에 있는 동산을 산책 삼아 오르내리며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주로 미지의 영역인 대학 생활에 대한 상상이었다. “대학 가면 진짜 친구 사귀기가 어렵대. 거의 다 겉 친구래.” “고등학교 때 사귄 친구가 오래간다더라” 같은 소리를 하며 이상한 의리를 쌓았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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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관계의 지속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거. 급하게 가까워진 친구는 여름날의 반찬처럼 쉽게 상했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이십 대 초반에는 일상의 중심이 자주 바뀌는 법이니까. 일정표를 채운 단어가 ‘동아리’에서 ‘아르바이트’로 바뀌었다는 이유로, 서로를 소울 메이트라고 불렀던 친구와 별일 없이 멀어졌을 때. 봉사 활동을 하며 한 달 동안 동고동락했던 이들이 하나둘 인사도 없이 메신저 단체방을 나갔을 때. 나는 놀이터에 홀로 남은 아이처럼 처량한 기분을 맛봐야 했다. 그때 손에 꼭 쥐고 있었던 주인 없는 마음은 미처 식지 못해 아직 따뜻한 상태였는데….
비슷한 일을 몇 번 겪고는 매사에 계산적으로 굴고 싶어졌다. 스쳐 지나가는 관계에 연연하는 촌스러운 애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에 마음을 두어야 상처받지 않을 것인가’하고 머리를 굴리는 일이 늘었다. 언젠가는 모두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채로 지내기도 했다. 누군가 좋아진다 싶으면 혼자 지레 겁을 먹고 뾰족한 말로 선을 그었다. 그렇게 애를 써도 역시나 마음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좋아하는 사람과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일은 어려운 수학 문제 푸는 것처럼 매번 어려웠다. 어쩌다 한 번 정답을 맞춘 뒤에도 비슷한 유형의 다른 문제에서는 또 헤매야 했다.
그 방황을 끝내준 사람은 뜻밖에도 스물셋 겨울 함께 토익 공부를 하던 언니 오빠들이었다. 보통 토익 스터디에서 만난 이들과는 지극히 사무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마련인데, 그때 만난 사람들과는 예외적으로 합이 좋았다. 수업 전후 짧은 대화를 나눌 때마다 다정한 기운이 깃들어서, 머리로는 ‘어차피 곧 다시 못 볼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그들을 좋아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던 날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회식은 육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날 나는 언제라도 다시 만날 것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어쩐지 야속해서 내내 꽁해 있었다. 그리고 비뚤어진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어차피 오늘 지나면 만나지도 않을 거잖아요.”
흥이 깨질 것을 각오하고 뱉은 말이었으나, 과연 좋은 사람이었던 언니 오빠들은 어른스럽게 나를 달랬다. “꼭 자주 봐야만 인연인가? 길 가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사이가 된 것만으로도 엄청난 인연이지!”그건 찰나의 대화였지만 이제껏 관계가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상처받았던 느린 마음을 위로하기에 충분한 온기였다. 아,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던 마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는 것이구나. 그동안 오늘 손에 쥔 관계까지만 유효하다고 생각해서 마음이 가난했던 거구나.
예상했던 대로 우리의 관계는 그날로 끝났다. 대신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의 술자리는 기억 속에 잠겨 있다가, 내가 관계에 회의감을 느낄 때면 슬그머니 떠오른다. 그리고 다정했던 언니 오빠들처럼 내가 너무 인색해지지 않게 다독여준다. ‘지속되지 않아도 설령 끝이 나쁘더라도 한때 좋았던 관계를 깎아내리진 말자.’
다시 유월에 했던 두 사람과의 이별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우리는 분명 매일 사무실에서 얼굴을 부딪칠 때보다는 멀어질 것이다. 곧 무언가 일상의 가운데를 차지할 테고 지나간 이는 자리를 내주어야겠지. 그래도 우리가 주고받은 다정한 쪽지나 사진 같은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으니까. 괜찮다. 마음을 쏟길 잘했다.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주는 주문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던 마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첫댓글 그러네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인연도 소중한건데
맞아맞아 그리고 저러다가 연락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고.. 꼭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순간을 줄기는것도 좋은듯
여시야 좋은 글 고마워ㅠㅠ!
진짜 정말 좋은글이다,, 이렇게는 생각 못해봤어
따뜻한 인간관계관한 글이야
너무 좋다..8ㅅ8
진짜 ㅠㅠ 이게 제일 어려워
장거리 막학기라 요새 이런 생각 진짜 많이했는데ㅠㅠ고마워ㅜㅜ
와 헐 진짜 나 맨날 저 화자처럼 생각해왓는데.. 좋은 글이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글이야
나 저거 다 이해해도 그래도 슬퍼ㅜㅠ 나이 먹으니 조금 둔해지지만..
난 모르겠당 ㅜ 어떤 관계에서 상처를 받으니까 다시는 관계를 못맺겠어 부질없는거같아서 아무것도 아닌게 되는게 무서워서
괜찮다. 마음을 쏟길 잘했다.
마음을 홀가분하게 해주는 주문
현재진행형이 아니라고 해서 좋아했던 마음까지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ㅜㅜ 위로되는글
뭔가모르게 위로받는 느낌이다ㅠㅠ
와 진짜 위로 된다..나는 인간관계를 좀 무겁게 생각해서 고민 많았었는데 이거보고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 사람들 대하는 것도 전보단 덜 무거울 것만같아 고마워
삭제된 댓글 입니다.
222 나도 이게 더 스트레스 안받아ㅋㅋㅋ
아이고 정말 좋다ㅠㅠ 물론 이 글의 말을 모든 관계에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저런 고민을 갖고 23살을 났던 나에게는 이전에 없던 위로라 넘 좋아.. 한 번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 없었던 것 같아 난 아직까지 매달리거든 아 진짜 좋다 고마워
진짜공감되고 위로된다...나도 이런생각을 많이했었고 지금도 하고있어..
고마워ㅠㅠ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볼래
너무 좋은 글이다..ㅜㅜ
진짜 멋진 글이야..
좋다
관계가 변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거라는게 마음에 와닿네 나는 그냥 내가 유별난거라고 생각했어ㅋㅋㅋㅋ교사여시인데 매년 애들이랑 헤어지는게 너무 걱정되는데 많은 생각을 해보게됐어 고마워
맞아
좋은 글이야
나도 저러는데 다르게 생각하게 되네...
와 지금 내 상황이랑 똑같아. 좋은 글 고마워 !̆̈
띵언
누가 내 얘기 썼네ㅠㅠ위로 받는 기분이야 고마워!!
좋은글이다ㅠㅠ
요새 내고민이였는데.. 딱이다ㅠㅠ
좋다 진짜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