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아다.
그나마 한두살때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오늘도 이성을 붙잡는다.
잠시나마 내게 보여주었던 그 사랑의 기억, 그것마저 없었더라면
내가 과연 지금의 모습을 보고 사람이란 말 한마디를 꺼내기가 쉬웠을까?
인간, 고독하고 또 고독한 존재. 끝없는 탐욕과 욕망속에 괴로워하고
고통의 늪을 건너다 결국 만족을 이루지 못하고
생의 마지막을 지난다.
나는 그들의 해결사가 되어주려 했다.
인간 내부의 심연속의 고통, 고뇌, 고독, 탐욕.....그리고 끝없이
만족하지 못하는 갈망과 갈증...
그들가운데 편안한 안식을 선사하려 나는 오늘도 requiem(진혼곡)을
작곡한다.
내가 피를 처음쥐었던것이 언제였던가?
아직은 풋내가 가시지 않은 여린날의 16세였을 시...
세상에 대한 알수없는 분노와 고통, 그리고 추잡하고 추악한
그들의 모습에 내 스스로 마음의 칼을 품게 했다.
인간의 싸늘히 식은 심장을 손에 쥐어짜며 희열을 처음 느끼던 때가
언제였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매 순간순간 우매하고 고뇌하는 신의 장난으로 이루어진
고통의 피조물들을 안식의 원으로 인도하였을때,
그 순간순간마다 희열과 함께 사명감을 다짐하고 느껴왔기에
그 시초가 언제였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억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 마음의 칼을........
마음속의 악귀를 처음으로 자라게 한 계기는 아마 14살때였을 것이다.
고아원에서 유년기를 보내던 나는 부모가 없다는 사실에 고뇌했고
부모가 나를 버렸던것은 아닐까?
내가 왜 이 세상에 홀로 버려져야만 하는걸까?
추악한 인간들....저들은 나와 다르다. 나는 결코 저들과 같지 않아!!
라며 고뇌하며 동시에 스스로를 달래던
힘든 나날들이 계속되어가던 때였다.
그때 내곁에 유일하게 남아 주었던 것은 나보다 두살위의 연희누나..
마음의 빗장을 굳게 걸어잠궈야만 했던.....생존을 위함이다...
이것은 홀로됨이 아니다.
그래, 저 추악한 자들과 구분되기 위함이다..
라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위안하던 나에게 한줄기 빗방울을 촉촉히
내려주었던 그녀. 그녀의 이름은 연희였다.
마음을 열지 않으려 하던 나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었고 적대하는 나에게
끝끝내 포기하지 않고 감싸주고 안아주었던 그녀.
그녀의 품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녀가 떠나는 날이었다.
어느 가정집으로 입양되어간 그녀는 새아버지에게 매일같이 강간당하며
또한 슬픔속에서도 차마죽지 못하고 어리석게도
견디다 장기까지 강제로 떼어져 팔리고는 결국에는 내버려졌다.
그것이 그녀가 고아원을 떠난지 일년여 되고 나서의 일이었다.
원장실에서 들려오는 그소식을 몰래 듣고는
모든 인간들에 대한 마음의 문을 조금은 열렸다 싶었던 내 심연의 문을
또다시 빗장과 함께 굳게 걸어잠궜다.
그러고는 그녀는 고아원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그때 이미 그녀는 이지를
상실한 이후였다.
한달이 지나고, 그녀가 자신의 숙소화장실에서 손목에 검붉은 선혈을
흘리며 영원한 잠에 빠져있음이 그녀가 죽은후 이틀만에 한 아이에 의해
발견되고, 그 뒤부터는 마음에 날카로운 칼을 닦고 또 닦게 되었다.
16이 되고 사춘기가 시작되었는지 마음의 견고함이 더 거세어진 나는
결국 주위의 모든 존재를 명부첩에서 지웠다.
아니, 명부첩의 이름위에 기나긴 종결의 붉은 선을 그었다.
신음하다 죽어가는 원장과 아이들의 아직 뜨겁게 뛰고 있는 심장을 파내어
손에 힘껏 쥐었다.
터져 나가는 그 얇은 피막안에 뜨거운 생명의 박동이 끝나자,
끝이 보이지 않게 붉은 진혼곡이 허공이라는 오선지위에
깊게 깊게 새기어졌다.
얼굴위로 튀어오르는 선혈의 장송곡을 혀로 핥으며
어느새 희열을 느끼며 인성이라는 작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살귀의 모습을 나는 분명히 목도할 수 있었다.
그 후로는 세상의 뒷자리로 어둠과 그늘로 나는 영원히 나를 가뒀고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나의 일에 자부를 느낀다.
살아있는 모든 이의 고통을 멈춰주는 고뇌와 고독에서 해방되는
그 영원한 안식의 기쁨을 추악한 존재들에게 나누며 나눔의 미덕을
느낄 수있는 지금의 나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오늘도 허공에 붉게 수놓아지는 선혈의 진혼곡과
서서히 꺼져가는 생명의 박동,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대지의 여신에게로의 귀향이라는 예술을 장식하며
망자를 위한 기도를 올린다.
부디...........
고뇌와 탐욕의 어두운 늪에서
영원하고 찬란한
안식의 길을 찾을 수 있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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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quiescat- 망자를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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