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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이 위험한 이유
마태복음 13장 24절 / 이규현 목사
"13 ¶ 그러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사람들에게 하늘의 왕국을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아니하며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자들도 허락하지 아니하는도다. 1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과부들의 집을 삼키고 겉치레로 길게 기도하나니 그런즉 너희가 더 큰 정죄를 받으리라. 15.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개종자 하나를 만들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만들면 그를 너희보다 두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16. 너희 눈먼 안내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이르되,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거니와 누구든지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하면 그는 빚진 자라! 하도다. 17. 너희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크냐, 금이냐 금을 거룩히 구별하는 성전이냐? 18. 또, 누구든지 제단을 두고 맹세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거니와 누구든지 그 위에 있는 예물을 두고 맹세하면 그는 책임이 있다, 하는도다. 19. 너희 어리석고 눈먼 자들아, 어느 것이 더 크냐, 예물이냐 예물을 거룩히 구별하는 제단이냐? 20. 그런즉 누구든지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을 두고 맹세하며 21. 또 누구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거하시는 분을 두고 맹세하고 22. 또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왕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두고 맹세하느니라. 2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바치되 율법의 더 중대한 문제인 판단의 공의와 긍휼과 믿음은 무시하였도다.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24. 너희 눈먼 안내자들아, 너희가 모기에는 긴장하고 낙타는 삼키도다."(KJV)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갑니다. 세상에서는 열심을 강조합니다. 특히 한국인들은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합니다. 오늘날을 가리켜 과도한 활동 주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사람들의 활동이 많아졌습니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많은 일을 해냅니다. 오늘날은 성과 사회입니다.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사람들은 많이 활동하고 열심을 강조합니다.
한국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열심도 대단합니다. 열정이 넘칩니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열심은 주목할 만합니다. 물론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나 과잉 열심과 잘못된 열심은 위험합니다. 과도한 열심은 오히려 해가 됩니다. 열심의 방향이 잘못된 것 또한 위험합니다. 열심의 방향이 잘못된 경우,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인해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힘들어질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잘못된 열심을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열심은 잘못된 열심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으로 열심이 탁월했습니다.
바리새인들보다 열심인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열심은 잘못된 열심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열심히 할수록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을 뿐 아니라, 그들은 폭력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처럼 잘못된 열심은 무섭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의로워지기 위해 열심을 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낸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열심을 냈습니다. 이것은 불경건한 열심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불경건한 열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열심은 매우 불순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불순한 열심으로 인해 교만해졌습니다. 사람의 열심을 포기하고 십자가를 붙들 때, 구원 받습니다. 사람의 열심을 부정할 때, 십자가를 붙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세상 종교의 다른 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열심을 내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신다면, 열심은 의미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심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열심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잘 점검해야 합니다. 열심히 했지만, 하나님께서 관심이 없을 수 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사람의 열심이 잘못된 열심일 때가 많았습니다. 그 중 하나가 바벨탑을 쌓은 것입니다. 사람은 기술과 자원, 에너지를 동원하여 바벨탑을 쌓아올렸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잘못된 열심으로 쌓아올린 바벨탑이 많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대단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잘못된 열심에서 비롯된 것은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전도서 2장 11절에 보면,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27펀 1절에 보면, “창조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강하고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깊이 새겨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많은 일을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헛될 수 있다고 솔로몬은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집을 세우시고 성을 지키십니다.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미 있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헛된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시고 일을 완성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알파와 오메가 되십니다. 처음과 마지막이 되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고, 하나님으로 끝납니다.
창세기에서의 하나님은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창조 사역을 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 창조 사역을 시작하셔서 여섯째 날에 창조 사역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질서정연하게 행하십니다. 사람은 집을 짓다가도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사람은 성을 지킨다 한들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한계입니다. 수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런데 한순간에 허망하게 무너지는 경우가 무수히 많습니다. 최선을 다했는데,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집니다.
시편 127편 2절에 보면,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는 것은 우리의 일상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집을 세우는 것과 성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일상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세웁니다. 그리고 자신이 세운 것, 가진 것을 지킵니다.
그런데 세운 것, 가진 것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어렵게 세운 것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본문 시편 127편 1절에 보면, “창조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우는 것도 어렵지만, 세운 것을 지키는 것도 어렵습니다. 솔로몬은 집을 세우기 위해 사람이 열심을 내는 것보다 하나님의 열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시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어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하셔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6~7절에 보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물을 줍니다. 그러나 씨를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많은 일을 했습니다.
바울은 제자를 많이 양성했습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고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수고해서 복음이 전해지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믿게 하셔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지 않으시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7절에 보면,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심는 것, 물 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심고 물 주고 돌보지만,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지 않으시면, 사람이 수고한 것은 모두 헛됩니다.
씨앗을 뿌린다고 다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셔야 자랍니다. 모든 일에는 사람의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역과 사람의 영역을 정확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사람이 열심히 해야 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의사가 수술합니다. 그러나 병이 낫는 것은 의사의 영역이 아닙니다. 의사가 병을 낫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의사가 수술했어도, 사는 사람이 있고,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의사도 긴장한다고 합니다. 수술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심장을 만드셨습니다. 심장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심장을 뛰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사업을 하는 경우, 사람의 손을 떠나서 일어나는 일이 많습니다. 경기(景氣)는 사람이 조절할 수 없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의 실력이 좋아 사업이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흐름을 잘 타야 사업이 잘 됩니다. 그런데 흐름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설교를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설교를 듣고 사람이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마음이 초조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평안합니다. 오늘날 일 중독자가 많습니다. 일 중독자는 쉬지 못합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불안에서 비롯된 열심입니다. 자신이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쉬지 않고 일합니다. 일하지 않으면 불안합니다. 일의 중압감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일하실 공간이 없습니다. 일 중독자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그러므로 일 중독은 불신앙입니다. 일이 잘 될 때에는 자신감이 넘칩니다. 자기보다 잘 하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일이 잘 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모든 에너지를 일에 쏟아붓습니다. 몰두합니다. 열심을 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일을 망가뜨리는 것임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믿는 사람은 마음이 평안합니다. 초조해하지 않습니다. 생각한 대로 되지 않아도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립니다.
현대인들은 분주합니다.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합니다. 이것은 바람을 잡으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한계를 느끼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술을 마십니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자신을 위로하려고 합니다.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사람은 창조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계를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고 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분명하게 지키고 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지십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을 분명하게 분별해야 합니다. 열심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내가 할 일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분별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28. 그때에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들을 하리이까? 하매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를 너희가 믿는 것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라."
내가 할 일과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분별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식으로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데까지만 해야 합니다.
출애굽기 26장에 보면, 성막이 세워지는 과정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하나 세세하게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매뉴얼(manual)이 있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움직였습니다. 모세가 자기 마음대로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매뉴얼대로 되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우리의 생각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방식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를 자신의 소유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시편 127편 3절에 보면, “보라 자식들은 창조주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입니다. 태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합니다. 자녀를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와 늘 함께할 수 없습니다. 자녀가 어느 정도 크면 부모가 자녀를 따라다닐 수 없습니다. 부모의 시야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셔야 합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키려 한다고 해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돈을 열심히 벌지만, 돈이 모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금 모으면 또 사라져버립니다. 마치 돈이 새는 듯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집은 헛되지 않습니다. 왜 헛되다고 느낍니까?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될 때,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는 것은 모두 의미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것은 모두 의미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의미 없는 일이 매우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의미 없는 집을 지으며 삽니다. 의미 없는 집은 쉽게 무너집니다. 마치 모래성과 같습니다.
젊은 나이에 자신이 목적한 것을 이루어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젊은 나이에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그것을 성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성공했다고 해도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성공한 것이 아무 소용없습니다.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냈습니다.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노력해서 이루어낸 것이 헛된 것이 되어버립니다.
시편 127편 1절에 보면, “창조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창조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시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바벨탑을 무너뜨리셨습니까? 창세기 11장 4절에 보면,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하기보다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힘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힘을 드러내려고 하면, 자신의 힘 때문에 무너집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려고 합니다. 우상을 만드는 데 열심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의 열심은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용당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열심을 미워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열심을 흩어버리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는 사람의 열심은 스스로를 망하게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열심은 얼마 가지 않아 의미를 잃습니다. 목적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목적(目的)이 잘못된 열심은 열심히 할수록 허무해집니다. 그러므로 열심의 목적을 확인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 열심을 내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대가(代價)를 지불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걸작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대가로 지불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살아갈 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삶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왜 우울해합니까? 왜 행복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용될 때, 우리는 행복합니다.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힘이 납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목적과 수단이 바뀐 채 살아갑니다. 이것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찾아온 저주입니다. 돈은 수단입니다. 돈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갑니다. 돈을 버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 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이 번 돈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알 수 없습니다. 길을 잃은 것처럼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목적을 상실한 사람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땀을 흘리며 수고하여 돈을 벌었지만, 그 후에는 마치 길을 잃은 것처럼 방황하며 살아갑니다. 타락합니다. 본래의 목적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목적과 수단이 바뀐 삶은 미궁으로 빠집니다. 열심히 살아도 소용없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삽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우리의 삶도 그러했습니다. 수단을 목적으로 알고 살았습니다. 원하는 것을 이루어도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목적과 수단은 다릅니다. 수단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수단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이루지 못해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목적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목적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이룰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은 채 달리면 사고가 발생하는 것과 같습니다.
목적을 알지 못한 채 기계를 만지며 일하는 노동자는 마치 기계의 일부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이 힘듦으로 인해 육체가 피곤한 것보다 정신적으로 더 피곤합니다. 헛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목적을 분명히 붙들어야 합니다.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 하나님께서 왜 구원하셨는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 죽으실 만큼 나는 존귀한 존재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목적을 찾으면 열심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위해 돈을 사용하면, 하나님의 목적이 참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붙들면, 그때부터 활력이 생깁니다. 돈을 어디에 써야 할 것인가가 분명해집니다. 돈을 써야 할 곳에 돈을 쓰면 기쁨이 넘칩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만족도가 높아집니다. 갈등이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의미하게 일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시고 성을 지키시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면, 삶의 질서가 생깁니다. 평온해집니다. 삶의 압박감이 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자신을 위해 돈을 법니다. 자신을 위해 일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끊임없이 비교합니다. 그러다가 지치고 병듭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자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할 때,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 누구를 위한 일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 일하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가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피곤해도 이겨냅니다.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일이 힘들어 힘든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에 일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셔서 일하는 사람은 일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마음가짐이 다릅니다.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께 하듯 해야 마음을 다해 일할 수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전심으로 일할 수 없습니다. 돈이 대단한 것 같아도,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사람은 힘을 다하지 않습니다. 돈이 사람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는 것은 무엇을 하든 그 일이 예배가 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일상 속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하듯 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부지런히 일하십니다. 세상은 우리의 열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멈추면, 세상은 끝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자기 열심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열심을 믿습니다.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표와 계획을 세웁니다. 열정을 불태우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열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보조자로 여깁니다. 자신의 열심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힘과 재주로 살 수 없습니다. 살아갈수록 이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영역이 크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람의 열심은 지극히 작은 일부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노력과 열심은 허망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시면, 우리의 노력은 몸짓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노력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탁월한 사람이 빠지면, 일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의 자리는 사람이 메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리는 사람이 메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사람이 대체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지 않으면,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만 봅니다. 세상의 힘을 의지합니다. 노력하고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힘만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셔야 모든 것이 가능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합니다.
사방이 막힌 것 같습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힘과 열심, 열정을 쏟아부어도,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똑똑합니다. 자원이 풍부합니다. 돈도 많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습니다. 연약합니다. 부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실력이 있습니다. 설교를 잘 합니다. 똑똑합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가 전성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치지 않으십니다. 에너지가 넘칩니다. 완전하십니다. 실수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일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은 크게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목적을 가지고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위하여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어가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보조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동원하셔서 일하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이지, 우리의 실력과 재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 쌓아 올린 것은 쉽게 허물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은 누구도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재산, 자녀 등 자신에게 있는 것을 자신이 지키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사람의 힘으로는 어느 것 하나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열심히 하려고 하지 마세요. 오직 하나님의 열심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따라가세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지켜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경험할 때.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5장 7-10절에 보시면 "7. 그분께서는 친히 육체로 거하던 때에 자기를 사망으로부터 능히 구원하실 분에게 강렬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셨고 또 친히 두려워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들으셨느니라. 8. 그분께서 [아들]이실지라도 친히 고난 받으신 일들로 말미암아 순종하기를 배우사 9. 완전하게 되셨으므로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창시자가 되시고 10. [하나님]에 의해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대제사장이라 불리셨느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예배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 주께 하듯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사 그들을 살리시는 것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것은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일하셔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일하시도록 삶을 내어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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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