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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멸망의 날 같다”… 수단 군벌 교전 3주 만에 난민 33만 명
외국인 이어 주민까지… 수단 엑소더스
정규군 vs 아랍계 민병대 ‘RSF’, 3주 넘게 교전… 사실상 내전 돌입
北이슬람 아랍계 vs 기독교계 흑인… 영국서 독립 후 70년간 고질적 갈등
1인당 GDP 98만원, 문맹률 40%… 수도, 전기, 통신망까지 끊겨 고통
“온 사방에 시체가 가득했다. ‘지구 멸망의 날(Doomsday)’ 같았다.”
북아프리카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 거주 중인 누르 쿨라브 씨가 1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전한 현지 상황이다. 최근 우리 교민의 탈출 작전 ‘프로미스(Promise·약속)’로 큰 주목을 받은 수단은 지난달 15일부터 압둘 팟타흐 알 부르한 총사령관(63)이 이끄는 정규군과 무함마드 함단 다갈로(48)가 수장인 아랍계 민병대 ‘RSF’ 간 유혈 충돌로 사실상 내전에 돌입했다.
이로 인해 수단을 떠나 현재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머물고 있는 쿨라브 씨는 “곳곳에 시체가 쌓였고 인근 산업지대는 불탔다”며 수십 년간 이스라엘이 사실상 봉쇄 중인 가자지구보다 수단이 더 참혹하고 열악한 상황에 처했다고 전했다. 3주 이상 이어진 양측의 교전으로 2일 기준 최소 550명이 숨지고 492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유엔에 따르면 난민 또한 최소 33만 명이 넘는다.
1956년 영국에서 독립한 수단은 이후 70여 년간 사실상 전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 북부의 부유한 아랍계와 기독교를 믿는 남부의 가난한 아프리카계 흑인 간 종교, 인종, 경제 갈등이 워낙 심각한 탓이다. 영국은 식민통치 내내 양측의 대립을 부추겼고 영국이 물러난 후에도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2011년 기독교계 흑인이 다수이며 유전을 대거 보유한 남부가 ‘남수단’으로 독립하자 가뜩이나 열악한 경제 상황이 더 나빠졌다.
부르한과 다갈로는 1989년부터 30년간 철권 통치를 펼친 독재자 오마르 알 바시르 전 대통령(79) 시절에는 같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2019년 반(反)바시르 공동 전선을 구축해 그를 몰아낸 후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대립을 계속했다. 이번 유혈 충돌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양측 갈등의 역사가 워낙 오래된 데다 러시아,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리비아 등 주변국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두 군벌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어 현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온다.
● 부르한-다갈로-바시르 ‘삼각관계’
바시르 전 대통령, 부르한, 다갈로는 모두 아랍계다. 바시르 전 대통령은 집권 내내 필요에 의해 부르한과 다갈로를 번갈아 중용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을 사용했다. 그는 군부와 RSF 어느 한쪽이 더 많은 힘을 지녀 자신의 장기 집권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이런 라이벌 구도를 직접 짰다.
두 라이벌은 출신 성분과 이력이 정반대다. 부르한은 하르툼 내 ‘리버나일’ 부족 출신으로 군 엘리트 코스를 밟아 총사령관에 올랐다. 반면 다갈로는 남부 다르푸르의 ‘리제이가트’ 부족 출신으로 고등학교 중퇴 후 낙타 상인으로 일하는 등 어려운 삶을 살았다. 2003년 RSF의 전신인 아랍계 민병대 ‘잔자위드’ 수장 자리에 올랐다.
바시르 정권은 잔자위드를 앞세워 흑인에 대한 대대적인 인종 청소를 자행했다. 다갈로는 2003년부터 10년 넘게 흑인에 대한 학살, 성폭행, 납치 등을 저질렀다. 이를 마음에 들어한 바시르 전 대통령은 2013년 잔자위드를 RSF로 확대 개편해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뒀다. RSF를 자신의 사병(私兵)처럼 부리며 반대파 탄압을 도맡겼다.
다갈로가 잔자위드를 맡았을 때 그의 휘하에는 약 3000명의 병력만 있었다. 현재 RSF 조직원은 1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다갈로는 수단 주류 엘리트에게 멸시를 받아 정규군 지도자만큼의 위세를 누리지는 못했다.
부르한과 다갈로는 2019년 4월 쿠데타를 일으켜 바시르 전 대통령을 몰아냈다. 부르한이 국가원수 격인 군사과도위원회의 위원장을, 다갈로가 부위원장을 맡았다. 시민들은 양측이 다 싫다며 민간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두 사람은 못 이긴 척 2021년 민간정부에 권력을 이양하기로 하고 시위대를 진정시켰다.
그러나 두 사람은 2021년 10월 시위대를 총격으로 진압하며 과도정부를 강제 해산시켰다. 이후 권력의 중심을 누가 가질 것이냐를 두고 본격적으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2022년 8월 대규모 홍수로 최소 15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사후 대처, 민심 수습 방안 등을 놓고 양측 대립이 더 격화했다.
군부는 인종 학살 등 과거 다갈로의 행적을 비판하며 자신들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RSF는 자신들이 진정한 이슬람 세력이며 군부는 세속주의자들이라고 맞선다.
● 1인당 GDP 98만 원 등 열악한 경제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수단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752달러(약 97만7600만 원)에 불과하다. 2015년부터 내전 중인 예멘(702달러)과 비슷한 수준이다.
수단의 1인당 GDP는 2017년만 해도 3189달러에 달했지만 고질적인 내부 갈등, 홍수 같은 자연재해 등의 여파로 4분의 1 이하로 쪼그라들었다. 수단이 아프리카에서는 알제리, 콩고민주공화국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영토(약 189만 km2)를 보유했고, 약 50억 배럴로 추정되는 석유, 금 등 풍부한 광물 자원이 있으며, 나일강 및 홍해와 모두 맞닿은 지정학적 요충지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안타까움을 낳는다.
2011년 남수단의 독립 또한 가뜩이나 낙후된 경제와 사회 안정에 악영향을 미쳤다. 독립 전 수단 전체 석유 매장량의 약 75%가 남수단에 있었다. 바시르 정권은 중앙정부의 기능 약화로 각 지방에서 난립하던 군벌의 반란을 잠재우기 위해 이들에게 석유 판매대금의 일부를 지급하며 사회 안정을 꾀했다.
남수단의 독립으로 군벌에게 줄 돈이 없어지자 바시르 정권은 RSF를 통해 전국의 농장과 금광을 수탈하며 자금 확보에 나섰다. 이로 인해 물가가 치솟고 화폐 가치가 급락하는 등 민생경제가 사실상 무너졌다. 2018년 전국 곳곳에서는 ‘빵값 급등’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2021년 기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83%에 달한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수단의 문맹률은 약 40%에 이른다. 기대수명 역시 66세로 세계 평균(72세)보다 낮다. 인터넷 보급률도 28%에 불과하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평균(76%)에 크게 못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군부와 RSF의 충돌로 전국 곳곳의 수도, 전기, 통신망까지 끊겨 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 주변국 이해관계도 복잡
이런 상황에서 UAE, 이집트 등 수단의 주변국은 각각의 이해관계에 따라 군부와 RSF를 지원하며 양측 대결을 부추기고 있다.
UAE는 군부와 RSF를 모두 지원하며 양측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UAE 실권자인 만수르 빈자이드 알 나하얀 부총리는 다갈로의 오랜 후원자다. UAE는 동시에 정부군도 지원해 수단 내 영향력을 키웠다. UAE는 2020년 수단군이 통제하는 국영기업의 농업 사업에 2억2000만 달러(약 3000억 원)를 투자했다. 같은 해 부르한이 관여한 수단과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 정상화도 중재했다.
이집트는 군부를 지원하고 있다. 이집트는 나일강 상류 수자원의 소유권을 놓고 에티오피아와 분쟁을 벌이고 있는데 에티오피아를 견제하기 위해 국경을 맞댄 수단과 손을 잡았다. 이집트군은 지난달 초에도 수단군과 연합 군사훈련을 했다. 이번 교전 후에도 정규군을 지원했다는 설이 제기됐다고 미 외교매체 포린어페어스(FA)가 1일 진단했다.
러시아, 리비아 등은 RSF 쪽에 가깝다. 특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사병 조직으로 불리는 민간 군사기업 바그너그룹은 금광 개발권, 홍해 연안 군사기지 사용권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바그너그룹이 금광 개발권을 대가로 RSF 조직원을 훈련시킨 정황도 포착됐다. 리비아 민병대 또한 최근 RSF에 무기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 서방의 미숙한 개입이 이번 충돌을 부추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과거 수단 특사 고문을 지낸 재클린 번스 미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NYT 기고를 통해 “수단 분쟁은 우리 잘못”이라고 자성했다. 시민사회가 어느 군벌도 신뢰하지 않으며, 어떤 군벌이 권력을 잡아도 진정으로 시민을 위하지 않을 것임을 잘 알면서도 손쉽고 빠른 해결을 위해 각 군벌 간 권력 분배를 통한 평화협정 체결에 초점을 맞춘 것이 실패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미국의 아프리카 전문가이며 지난해 수단 상황을 진단한 책 ‘미완의 수단 민주주의’를 공동 저술한 저스틴 린치 애널리스트 역시 또 다른 미 외교매체 포린폴리시(FP) 기고를 통해 미국과 유엔이 정규군과 RSF의 통합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평화협정을 추진한 것이 잘못이라며 “두 세력 간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순진한 정책이었다”라고 꼬집었다.
마리나 페터 독일·수단·남수단재단 이사장 또한 공영방송 도이체벨레(DW)에 “현 사태는 ‘내전’이 아니라 (군벌 간) ‘권력 다툼’”이라며 둘 중 누가 승리해도 시민사회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시민사회는 줄곧 군부 축출과 민주화를 원했다”고 강조했다.
● 사태 장기화 불가피 군벌 영향력 축소가 핵심
전문가들은 양측이 모두 인접국을 후원자로 두고 장기적으로 싸울 수 있는 자원과 지원을 확보한 만큼 현 사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양측의 군사력이 엇비슷하다는 점도 사태 장기화 전망에 힘을 더한다. 현재 정규군은 전투기, 중화기 등 최신식 무기를 동원해 RSF를 공격하고 있다. RSF는 공항, 철도 등 각종 기간 시설을 장악해 사회 불안을 고조시키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최근 RSF가 말라리아 등 각종 감염병 바이러스의 표본을 보관하고 있는 국립공중보건연구소를 장악했다는 설도 제기됐다. 과거 인종 학살을 자행한 RSF의 잔인한 행태를 감안할 때 현 사태가 생물학전으로 번질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김동석 국립외교원 아프리카중동연구부 교수는 “RSF는 정규군에 비해 병력 규모가 작지만 다르푸르, 예멘 전투 등에 용병으로 파견된 경험이 있어 일부 전문가는 RSF의 군사력을 우위로 본다”며 “양측 충돌이 어느 한쪽의 승리로 귀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양측이 모두 ‘저쪽이 없어져야 내가 산다’는 식의 극단적 행태로 일관해 충돌 강도가 심화하고 있다”며 국제사회 또한 각 군벌의 영향력을 축소할 방안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흑인들이 주축이며 아직 군부나 RSF 중 누구와도 확실히 손을 잡지 않은 서부 반군의 개입 여부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황규득 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학부 교수는 “서부 반군이 누구와 협력하는지에 따라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며 양측 모두 서부 반군을 포섭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 상황이 시리아 내전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난민 사태를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유엔은 최소 80만 명이 국경을 넘을 것이며 북아프리카 전역, 남유럽 등에도 인도주의 위기가 발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지윤 기자, 김수현 기자, 신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