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화요일 (22일째)
블라디보스토크 돌아보기
어젯밤은 정말 끔찍했다.
밤새 더워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등에 땀이 흥건하게 젖어 밤새도록 몸을 뒤척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새벽에 선선해져 잠시 자려니 승무원이 일어나라고 승객들을 깨운다.
밖은 아직 어둠이다.
지금까지의 도시에서는 새벽 네시만 되도 환했는데 아직 어두운걸 보니 블라디보스토크가 우리나라와 경도가 비슷해서인듯하다.
새벽 안개와 함께 바다가 펼쳐진다.
여섯시 반쯤 도착예정이라 숙소 로비에서 씻기로 하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러시아가 중국으로부터 얼지 않은 바다를 확보한 곳이 태평양으로의 관문 블라디보스토크이다.
여섯시 사십분쯤 역에 도착.
걸어서 얼마 안가니 숙소다.
체크인은 두시라 수속을 밟고 로비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은 후 데스크 아가씨에게 지도를 펼쳐 호텔의 위치와 버스 번호 등을 알아내고는 짐을 맡기고 나왔다.
건축미를 뽐내는 블라디보스토크 역으로 가서 멋진 외부와 내부를 구경한 후 걸어서 혁명중앙광장까지 갔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와 눈에 띄게 아름다운 건물들을 감상하다 보니 비가 약간씩 뿌린다.
혁명중앙광장은 영화 ‘태풍’에서 수많은 비둘기가 지나간 후 장동건이 나타난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도 장동권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놀았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잠시 비를 피해 있다가 빗줄기가 약해지자 31번 버스를 타고 독수리 전망대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운전기사도, 사람들도 영어를 전혀 못해 비송샘이 호텔에서 가지고 온 관광안내책자에 있는 케이블카 그림을 보여주니 그제야 알았다며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두정거장 정도 가니 운전기사도, 승객들도 우리보고 내리라고 난리다.
사람들에게 또 사진을 보여주니 어떤 아주머니가 자기를 따라오란다.
한참을 가니 계단이 나왔고 그 옆에는 케이블카 선로가 있는데 수지타산이 안 맞았는지 영업 중지 상태다.
그래서 우리는 등산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계단을 밟고 올라가보니 어느새 전망대가 보인다.
수많은 관광차에서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내리는데 멀리서 봐도 중국관광객들이다.
처음엔 우린 여기가 독수리 전망대일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왜냐하면 호텔 데스크 아가씨가 지도에 나타나지 않은 아주 먼 곳에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니 블라디보스토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로 앞에 금각교가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항구와 도시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오면 이곳은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중국 관광객들의 떠드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가끔 일본인과 한국인들도 보인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은 장소가 이곳일 것이다.
기념품 가게에서 러시아를 대표하는 인형 마트료시카 한쌍을 샀다.
다시 걸어 내려가려니 무릎이 안 좋은 언니들이 걱정이다.
버스 타는 데가 보여 봉고버스를 세워 아르바트 거리로 향했다.
오늘 돌아다닐 코스 연구한다고 아침을 대충 먹었더니 허기가 져서 눈앞이 잘 안 보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급한대로 케밥을 사먹고 나니 광명세상이다.
심봉사가 눈을 뜬 기분이랄까.
다시 원기를 회복한 우리는 멋진 아르바트 거리를 활보했다.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 벤치, 분수, 꽃, 그리고 바다.
우리는 여기서 충분히 즐거웠고 그래서 참 많이 웃었다.
해양공원으로 가기 위해 길을 걷다 작지만 멋진 외관의 러시아정교회를 만났다.
여기엔 예수님이 전사자를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다소 충격적인 조각상을 볼 수 있는데 주변에 요새 박물관이 있다는 걸 감안해 보면 왜 이런 조각상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해양공원에서 캐시미어를 찾은 턱으로 말순샘이 쏜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는 예쁜 화분이 달린 벽에 붙어서 각자의 포즈로 사진 찍기 놀이도 하였다.
아쿠아리움 옆에 있는 요새박물관을 찾아 나섰는데 사람들이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
결국 요새박물관 사진을 보여 주니 바로 찾아준다.
200루블을 주고 들어간 요새 박물관은 관리가 너무 허술해 솔직히 좀 실망스럽다.
한쪽 담에는 입장료를 아껴보려는 이곳 청소년들이 줄줄이 담을 넘어 오고 있는데, 나는 행여 철조망 가시에 아이들이 찔릴까봐 오금이 다 저린다.
여긴 대포를 직접 작동할 수 있어 꼬마들이 좋아하는데 우리도 대포에 앉아 아이들처럼 신나게 작동해보았다.
그리고 박물관 내부로 들어가 보니 블라디보스토크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지도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러시아어를 잘 못 읽는 관계로 대충 훑어보다가 조선인들의 사진을 보고 마음이 울컥해 한참을 서 있었다.
연해주는 옛날 발해영토였으며 그 후 중국 땅이었는데, 영국과의 아편전쟁 패배로 인한 배상문제를 러시아가 중재한 대가로 얻어 1860년부터 러시아에 귀속되었고 그때부터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들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다음은 신문기사에서 본 내용인데 연해주에는 그 당시 조선인들이 50만 명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만 명은 1938년에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고, 그곳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척박한 땅에 농사를 지어 그들의 삶을 다시 개척했다. 5000여명은 자유시에서 소련의 공산당 볼셰비키 군대에 의해 잔인하게 학살당해 죽었다 한다. 그럼 나머지는 어디로 갔을까? 1918년, 일본군대가 러시아 백군을 도우기 위해 시베리아로 출병(1918~1923)하였던 때, 연해주지역 한인들을 마구잡이로 학살을 하였는데 아마 이때 이곳에 그들을 끌고 와 죽였을 것이다. 그리고 스탈린 시대에 한인들을 일본군의 스파이로 몰아 감옥에 잡아가둔 후 학살해 매장시켰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고 나니 정말 슬프다.
예전 한인들이 살던 한인촌은 비석만 하나 달랑 남아있고 그들이 살던 흔적도 없다하여 아예 찾아 나설 의욕이 생기지 않아 포기해 버렸는데, 김동권샘은 잘 찾아가셨는지 모르겠다.
연해주는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나홋카 등의 도시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도가 블라디보스토크인데, 우수리스크에는 이상설 선생 추모비와 한인회관이 있으나 짧은 일정 상 가보지 못했다.
다시 아르바트거리를 지나 숙소로 돌아오는데 17T 버스를 타며 기사에게 기차역 가냐고 물으니 난감해하더니 타라고 한다.
타니 한국인 젊은 학생들이 한정거장만 가면 된다고 해서 운전기사에세 내려 달라니 말을 못 알아들어 결국 한 정거장만에 내리게 되었다.
기사님에게 타서 바로 내리니 버스비 안내면 안 되겠냐고 하니 한국말도 모르면서 대충 눈치 채고는 난감해 하는 표정이다.ㅎㅎ
그래도 우리는 의식 있고 돈 되는 여자들.
당당하게 버스비를 계산하고 내렸다.
지도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은 거리가 실상은 아주 가깝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내일은 걸어서 시내 구경을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씻고 빨래하고 잠시 쉬다가 혼자 나가 호텔 근처에 있는 주류 판매점에서 보드카 두병을 샀다.
일곱시에 로비에서 만나 저녁은 해양공원에 있는 수산시장에 가서 킹크랩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이날 걸어가려다 피곤해 31번 버스를 타고 간 것이 예상치 못한 일을 경험하게 했다.
착각해서 내릴 곳을 놓친 것인데 이때부터 31번은 시티투어버스가 되어 버렸다.
끝까지 돌아서 출발지점인 블라디보스토크역으로 돌아오는 버스라 그냥 타서 도시 구경하기로 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영어를 좀 알아듣는 순애샘 옆자리 남자에게 얼마 정도 걸리느냐고 물으니 손가락 열개를 몇번이나 펼쳤다 오무렸다 한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 다시 비송샘이 물으니 손가락 열개를 세 번 정도 펼쳤다 오무렸다 한다.
비송샘은 세번이니 삼십분 정도라고 해석했는데, 이날 거의 한 시간 삼십분 정도 버스를 탔으니 그 남자의 손가락 언어는 결국 엄청 걸린다는 뜻이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번화가를 지나 한참을 가니 버스 순환점이다.
순애샘 기사님에게 한국말로 “아저씨 우짤까예?”라고 물으니 아저씨 알아들었다는 듯 손짓으로 그냥 앉아있으란다.
순간 일동 포복절도.
망망대해가 펼쳐진 멋진 풍경.
잿빛하늘과 검푸른 바다.
버스를 타고 오다 보니 사람들이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랑 끝까지 버스에 타 있던 할머니와 손자가 내려서 사진을 찍길래 우리도 내려 보고 싶다고 손짓하니 기사님은 그러라고 손짓.
모두 손짓 랭귀지 ㅋ
아름다운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기사님과 할머니와도 한컷.
멍 때려서 내릴 곳을 놓쳤는데 오히려 횡재했다.
근데 배가 무지 고프다.
아홉시 넘으면 밥 주는데 있나?
아! 무지 걱정된다.
배차 시간 때문인지 차는 계속 정차 해 있다.
그러다 차가 출발하니 우리 모두 박수를 치며 운전사를 격려했다.
여기는 운전석이 버스는 왼쪽인데 자가용은 오른쪽에 주로 있다.
아르바트 거리로 가니 조명이 다 꺼져 우리가 기대했던 예쁜 밤거리는 물 건너 간대다가 밥 주는 데가 있을지도 걱정이다.
지나가는 한국아가씨들에게 물어보니 여덞시 사십분 쯤 되면 식당 문을 닫는다고 한다.
순애샘 따님이 추천한 샤오로마를 물으니 저기 저 길거리 가게라며 다행히 아직 문이 열렸다며 가르쳐 준다.
벤치에 앉아 샤오로마를 먹고 걸어서 숙소로 돌아오는데 어둑한 계단에 불량스러운 청소년들이 건들대며 서 있다.
순간 좀 긴장은 했지만 내 뒤에 다섯명의 대한민국 아줌마가 있다고 생각하니 당당하게 그 아이들 옆을 지나갈 수 있었다.
우리가 누구인가?
북한이 중2와 더불어 남침을 못하는 이유인 무서운 대한민국의 아줌마가 아닌가.
오늘은 러시아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첫댓글 ㅎㅎ 역시나 선생님들은 재치쟁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