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날이여! 가슴 아프다
김광균
조선독립만세 소리는
나를 키워준 자장가다
아버지를 여읜 나는
이 요람의 노래 속에 자라났다.
아 봄은 몇 해만에 다시 돌아와
오늘 이 노래를 들려주건만
3.1 날이여
가슴 아프다
싹트는 새 봄을 우리는 무엇으로 맞이했는가
겨레와 겨레의 싸움 속에
나는 이 시를 눈물로 쓴다
이십칠 년 전 오늘을 위해
누가 녹스른 나발을 들어 피나게 울랴
해방의 종소리는 허공에 사라진 채
영영 다시 오지 않는가
눈물에 어린 조국의 깃발은
다시 땅 속에 묻혀지는가
상장(喪章)을 달고 거리로 가자
우리 껴안고 목 놓아 울자
3.1 날이여
가슴 아프다
싹트는 새 봄을 우리는 무엇으로 맞이했는가
(시집 『3·1기념 시집』 1946.3)
[어휘풀이]
-나발 : 옛 관악기의 하나. 놋쇠로 긴 대롱같이 만드는데, 위는 가늘고 끝은 퍼진
모양이다. 군중(軍中)에서 호령하거나 신호하는 데 사용하였다.
-상장 : 거상(居喪)이나 조상(弔喪)의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옷깃이나 소매 따위에
다는 표. 보통 검은 헝겊이나 삼베 조각으로 만들어 붙인다.
[작품해설]
김광균은 해방 직후 ‘조선문학가동맹’ 조직부장을 맡으면서 과거 이미지즘 위주의 시를 쓰던 경향과는 완전하게 다른 시작(詩作)의 면모를 드러낸다. 이 시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시 분과에서 1946년 3월 1일을 기념하여 간행한 『3·1기념 시집』에 수록된 일종의 기념시의 성격을 지닌다. 대부분의 기념시가 시념의 대상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의 특징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면, 이 시는 오히려 기념하는 주체의 솔직한 자기비판의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914년생인 김관균은 1919년 3·1운동 당시 다섯 살의 나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을 ‘조선독립만세 소리는 / 나를 키워준 자장가’라고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시인의 목소리를 분명하게 대변해 주고 있다. 그 대 아버지를 여의였고 봄은 해마다 반복되어, 해방이 된 오늘날에도 다시 3·1날이여 / 가슴 아프다 / 싹트는 새 봄을 우리는 무엇으로 맞이했는가‘라고 반복하여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전체가 22행의 단연시로 구성되어 있지만, 위의 반복구를 기준으로 해서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럴 때 전반부는, 과거의 회강으로서의 3·1날을 노래하는 동시에, 1946년의 3·1날을 노래하는 후반부의 전제의 구실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시인의 관심은 당대의 현실에 놓이는 바, 그의 현실 인식은 ’겨레와 겨레의 싸움 속‘과 ’해방의 종소리는 허공에 사라진‘ ’눈물에 어린 조국‘으로 표상된다.해방된 지 1년도 채 못 되어 좌·우익의 투쟁은 날로 거세어 가고, 해방의 감격은 어느새 ’땅 속에 묻혀‘져 버린 현실 속에서 시인은 ’이 시를 눈물로‘쓰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김광균은 비록 ’조선문학가동맹‘에 가담은 하였지만, 맹목적인 이데오록 추구와 시의 정치적 편향을 경계하면서, 3·1날을 떳떳이 맞을 수 없는 후손으로서의 부끄러움을 솔직히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50년이 더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김광균의 가슴앓이가 여전히 치유되지 않고 있는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에 대해서는, 과연 그 어떤 지도자가 진실로 가슴 아파할 것인가. 아, 진실로 가슴 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작가소개]
김광균(金光均)
1914년 경기도 개성 출생
송도상업고등학교 졸업
1926년 『중앙일보』에 시 「가는 누님」 발표
1936년 『시인부락』 동인으로 참가
1937년 『자오선』 동인으로 참가
193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시 「설야」 당선
1950년 이후 실업계에 투신
1990년 제2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1993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