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와 허리웃 영화
이 시기에 문화적으로 주류를 이룬 것은 라디오와 영화와 광고주들이다. 모두가 대중적 취향을 가진 업종이고, 사람이다. 수요자를 최대로 확대하여 이익을 최고로 올리는 것이 목적이다. 이처럼 영화 산업은 수요에 의하여 운명이 결정됨으로 영화도 문화의 고급 장르가 될 수 없었다. 대표적인 대중문화였다
리디오와 영화는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법칙에 의하여 ‘수요-공급 이론’을 철저히 따랐다. 성장을 거듭한 미국의 대중문화는 1920년 대가 되면 해외로 진출한다. 미국 영화는 해외로 나가서 엄청난 위력을 과시한다.
영화는 예술성과는 무관하게 스타의 세련된 복장을 하고, 뛰어난 매너를 과시한다. 호화스런 자동차가 배경에 나타난다. 대중문화로서 미국 영화가 유럽의 영화 시장을 휩쓸었다. 미국의 대중문화가 훨씬 더 위대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미국 영화가 1925년의 해외 극장가를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영국-카나다 극장의 95%를 점령했다. 프랑스는 70%, 남미는 80%를 차지했다. 대중문화에서는 미국이 우위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통계이다. 미국 영화는 유럽에서 ‘스타숭배’라는 풍조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대중문화의 우위성을 통계가 보여주면서 대중문화 = 미국문화라는 등식이 성립하였다. 미국 영화는 유럽에서 미국의 꿈(american dream)을 파는 역할을 하였다. 케이블 망, 전화, 뉴스통신사 등 소통의 하위 구조가 발달한다. 이로서 미국의 대중문화는 전 세계로 확산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시기가 바로 1920년대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이 될만 한 시대상을 보면 대중 소비층(노동자)이 확대되었다. 자본주의는 기업의 이익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노동자의 임금을 높히고, 노동 시간을 축소하여 더 많은 여가 시간을 가지도록 하였다. 미국의 매스컴 기업들이 사유화되면서, 신문사 등은 개인의 소유물로서 기업은 이익을 최대로 뽑아먹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다.
유럽의 정치인들은 미국 문화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 발벗고 나셨다. 미국 문화가 유럽으로 들어오면 유럽의 전통 문화를 해친다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유럽에서 전통문화가 도전받았다. 그러나 막아내기에는 힘이 모자랐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미국의 문화제국주의는 노골적으로 계속되었다. 전통문화와 (미국) 대중문화와 공격과 수비라는 문제로 갈등을 일으켰다. 힘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수비를 할 엄두를 못낸다. 힘이 없의니 속수무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