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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의 새 순. 곡우 전에 딴다 하여 ‘우전’, 찻잎이 마치 참새의 혀를 닮았다 하여 ‘작설차’, 가늘다 하여 ‘세작’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 | 차 주산지를 가다-푸릇한 향기 마시며 …
봄에 새로 나는 것치고 예쁘지 않은 것이 없다. 봄꽃과 연록의 새 순이 그렇다. 특히 이때 새로 나는 차 잎만큼 값진 것도 드물다. 경남 하동, 전남 광양·보성에서 차나무들은 봄비를 머금고 연한 녹색 찻잎을 뾰족이 내밀기 시작했다. 차는 일년에 3~4회 수확하는데 가장 품질 좋은 차는 곡우(4월20일)~입하(5월6일)께 따는 첫물차로 흔히 ‘참새의 혀를 닯았다’는 작설차. 특히 ‘우전’이라 하여 곡우 이전에 따는 차는 ‘일창일기’로 만든 최고급 차다. 일창일기란 새로 나오는 뾰족한 싹이 말려 있는 창과, 창보다 먼저 나와 펄럭이는 깃발같은 여린 찻잎을 가리킨다. 차의 향기를 따라 주산지를 가본다.
〈차 처음으로 재배한 하동 화개〉
경남 하동군 화개(花開)면, 지리산을 등지고 섬진강을 앞세운 데다 이름도 ‘꽃피는 동네’라니 이처럼 아름다운 고을이 또 있을까. 하동에서 화개로 가는 섬진강변에는 벚꽃에 이어 배꽃이 피고 있다. 화개면 경계에 들어서자마자 눈 앞에 펼쳐지는 차밭과 차를 만드는 제다공장들이 ‘차의 고장’임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지리산 쌍계사 십리길 벚꽃이 지자, 산허리의 야생차밭에서는 벌써 차 수확이 시작됐다. 일흔한살, 나이로 치면 할머니지만, 정정하기론 ‘아주머니’로 불러도 허물없을 송맹순씨(71)는 두 손이 벌써 차나무 진액으로 까맣다. 젊을 적부터 찻잎을 따왔는데 “이 일 해서 새끼들 대학 보내고 다했지, 참 우리한테는 귀한 나무지라”라며 자랑이다.
화개는 우리나라에서 녹차를 처음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곳이다. 신라 흥덕왕(서기 828년)때 대렴공이 차의 씨앗을 얻어와 키운 것으로 1,2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차를 재배하는 농가들도 많다. 김종석 화개농협 조합장은 “1,250명의 조합원 가운데 1,100명이 차 농사를 짓는다”며 “화개면 녹차 소득이 연간 200억원에 이르는데 지난해 농협 가공사업소를 통해 50억원어치를 판매했다”고 소개한다.
특히 최근에는 벼농사보다 소득이 낫다는 점 때문에 재배면적이 증가하는 추세로, 차별화를 위해 친환경인증을 받는 다원도 점차 늘고 있다. 유기인증을 받은 곡천다원 이호복씨(45)는 지리산 등반길에 차에 홀딱 반해 이곳 하동에 눌러앉아 1만5,000평의 차농사를 지으며 체험관도 운영하고 있는 차 전문가이자 애호가. 이씨는 “섬진강과 화개동천, 지리산이 차 재배 적지를 만들었다. 또 화개차는 집집마다 차의 맛과 향이 모두 달라 수제차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하동에서는 올해 12회째 야생차축제(홈페이지 festival.hadong.go.kr)가 5월17~20일 열리는데 차 시배지에서의 다례식 및 마을별 녹차 체험 행사, 화개장터에서 풍물놀이 등이 펼쳐진다.
〈광양의 고급차 ‘백운산 작설차’〉
전남 광양군 다압면은 하동 화개와 섬진강을 두고 마주보는 고장이다. 다압면 역시 1,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차 자생지다. 도선국사가 백운산 옥룡사에 칩거하면서 차나무를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근거해 다압농협(조합장 손홍용)은 〈백운산 작설차〉라는 이름으로 고급차를 생산하고 있는데 올해는 10일부터 햇차 수매를 시작했다.
두 고장을 잇는 남도대교가 생기기 전에는 나룻배 타고 화개에 건너가 녹차를 팔았는데 사람들 얘기로는 ‘타지에서 왔다’고 가격 차를 많이 뒀단다. 화개에 비해 덜 알려진 이유는 가공에 관심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 현재 406농가가 118㏊에서 차를 재배한다. 조합원들이 재배하는 차나무도 점점 늘고 고급차 수요도 늘자 농협에서는 200평의 가공공장을 지어 지난해 3월 새롭게 준공했다. 연간 200t을 수매하는데 고급차로 70t쯤, 나머지 140t은 녹차용으로 수매한다. 광양시 223명의 차 농가 대표인 강현주 차생산자연합회 광양시분회장은 “화개가 남향으로 오후 볕이 길게 든다고 하면, 다압은 동남쪽으로 아침볕이 길다. 서리가 빨리 가셔서 화개보다 꽃도 일찍 피고, 새 찻잎도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일찍 난다”고 말한다. 4월3일 첫물차가 나왔고 꽃샘 추위로 잠시 중단되다가 9일 다시 시작했다.
3일 1㎏당 7만~8만원으로 시작한 햇차값이 하루가 다르게 낮아져 9일엔 3만원대까지 곤두박질쳤다. 서임종 다압농협 공장장은 “농협이 수매를 시작한다고 하니까 9일부터 당장 시중값이 4만원으로 오르니 보람을 느낀다”면서도 “도시 점포의 신토불이 창구가 고급차시장을 지탱해 줬는데 폐점하는 곳이 많아 반품을 받느라 정신이 없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그러나 녹차 신제품 개발에 열중이어서 희망을 갖고 있다. 지난해 8월 녹차의 진액만 뽑은 농축액 제품이 한 예로 녹차고형 함량이 4%여서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이 농축액을 술에 타면 곧바로 녹차술이 되고, 화장수로 만들어 여성들의 얼굴과 손에 발라도 좋다고.
〈지리적표시 1호 보성 녹차밭〉
굽이굽이 푸른 주단을 펼쳐 놓은 듯 너른 차밭을 볼 수 있는 곳이 전남 보성군이다. 마치 남해의 다랑이 논을 보는 듯해 녹차를 딸 무렵이면 사진 촬영지로도 인기다. 일찍부터 규모화와 기업화에 힘써 전국 녹차 생산량의 46%를 차지할 정도로 생산규모도 크고 지리적표시 1호로 등록돼 전국적인 인지도도 높다.
보성읍에서 율포해수욕장 방향으로 약 7㎞를 달리다 보면 활성산을 넘는 봇재란 고개가 나오는데 이곳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산등성이와 골짜기 눈닿는 곳이 모두 차밭이다. 대형 다원이 즐비한 가운데 길가에는 이들이 운영하는 차 시음장이 있어 녹차의 맛과 향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 녹차의 수도’란 별칭이 이곳 보성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성군 전체에선 300여농가가 차밭을 가꾸는데 자가소비를 빼고는 전부 보성농협(조합장 문병완)에서 수매해 가공한다. 최근 배나무 밭을 차밭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율포 쪽으로 집중됐던 차밭도 보성군 전체로 빠르게 늘고 있다. 농민들로부터 찻잎을 수매해 가공하기 위해 보성농협도 출자해 만든 보성차밭 영농조합법인 마채빈 대표(51)는 “녹찻잎 수매철을 맞아 속이 바짝바짝 탄다”며 국산 녹차 애용을 호소했다. 마대표는 “지난해 고급차는 전량 판매됐지만, 잎차는 100t을 수매했는데 재고가 80%”라고 말했다.
보성군에서는 녹차사업단을 운영할 뿐 아니라 특이하게도 율포 해수욕장에 해수 녹차탕도 직영한다. 보성의 차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시작한 보성다향제(dahyang.boseong.go.kr)는 올해 33회째로 5월4~7일 보성차밭 일원에서 열린다.
보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녹차사료를 먹여 키운 돼지인 녹돈. 보성농협에서 1997년 개발에 성공한 보성녹돈은 콜레스테롤과 지방 함량이 일반돼지에 비해 적고 누린내가 없으며 쫄깃담백한 맛 때문에 서울·광주 등지에서도 인기리에 판매 중이다.
하동·광양·보성=구영일 기자 young1@nongmin.com
[최종편집 : 2007/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