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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고독과 고요, 그리고 용기.
이 책이 나에게 숨처럼 불어넣어준 것은 그것들이었다.
1. 이 책의 끝에 붙일 ‘작가의 말’을 쓰겠느냐고 편집자가 물었던 2016년 사월에, 나는 그러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이 책 전체가 작가의 말이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 이 년이 지나 개정판을 준비하며, 비로소 어떤 말을 조용히 덧붙여 쓰고 싶다는-쓸 수 있겠다는-생각이 든다.
-‘작가의 말’에서
2. 2018년 봄, 한강 작가의 소설 『흰』을 새롭게 선보입니다. 이 년 전 오월에 세상에 나와 빛의 겹겹 오라기로 둘러싸인 적 있던 그 『흰』에 새 옷을 입히게 된 건 소설 발간에 즈음해 행했던 작가의 퍼포먼스가 글과 함께 배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습니다. 작가의 고요하고 느린 퍼포먼스들은 최진혁 작가가 제작한 영상 속에서 그녀의 언니-아기를 위한 행위들을 ‘언어 없는 언어’로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다시 만나게 된 한강 작가의 소설 『흰』은 수를 놓듯 땀을 세어가며 지은 책, 그런 땀방울로 얼룩진 책입니다. 이참이 아니라면 ‘흰’이라는 한 글자에 매달려 그가 파생시킨 세상 모든 ‘흰 것’들의 안팎을 헤집어볼 수가 있었을까요. ‘흰’이라는 한 글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노라니 ‘흰’이라는 한 글자의 생김과 발음에서 끓어 넘친 숭늉처럼 찐득찐득한 슬픔 같은 게 밀려듭니다. ‘흰’, 익숙한 듯 편안했다가 낯선 듯 생경스러워지는 이 느낌의 근원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안다고 말할 수도, 또 모른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이 기묘하고 미묘한 ‘흰’의 세계 속에서 한강이 끌어올린 서사는 놀라우리만치 넓고 깊습니다. 예민하면서도 섬세한 특유의 감각으로 예리하게 건져올린 사유는 얼음처럼 차갑고 막 빻아져 나온 뼛가루처럼 뜨겁습니다. 우리는 모두 ‘흰’에서 와서 ‘흰’으로 돌아가지 않던가요. 한강이 백지 위에 힘껏 눌러 쓴 소설 『흰』. 그 밖의 모든 흰 것을 말하는 소설 『흰』. 『흰』은 결코 더럽혀지지 않는, 절대로 더럽혀질 수가 없는 어떤 흰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3.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에 내가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든 것이었다.”
그렇게 작가로부터 불려나온 흰 것의 목록은 총 65개의 이야기로 파생되어 ‘나’와 ‘그녀’와 ‘모든 흰’이라는 세 개의 장 아래 스미어 있습니다. 한 권의 소설이지만 때론 65편의 시가 실린 한 권의 시집으로 읽힘에 손색이 없는 것이 각 소제목 아래 각각의 이야기들이 그 자체로 밀도 있는 완성도를 자랑하기 때문입니다. 비교적 얇은 볼륨감을 가진 이 한 권의 소설은 쉽게 읽혀버리지 않습니다. 천천히 아주 느릿느릿 읽게 하다가, 흐린 연필 한 자루를 들어 문장에 혹은 단어에 실금을 긋게 하다가, 다시금 앞서 읽은 페이지로 돌아가 그 앞선 데서부터 다시금 읽기 시작하게 만듭니다. 내 마음의 멍울 같은 게 책장에 스미면서 점점 묵직해져가는 소설 『흰』의 무게감을 받치기 위해 불려나온 흰 것들. 예컨대 강보, 배내옷, 달떡, 안개, 흰 도시, 젖, 초, 성에, 서리, 각설탕, 흰 돌, 흰 뼈, 백발, 구름, 백열전구, 백야,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흰나비, 쌀과 밥, 수의, 소복, 연기, 아랫니, 눈, 눈송이들, 만년설, 파도, 진눈깨비, 흰 개, 눈보라, 재, 소금, 달, 레이스 커튼, 입김, 흰 새들, 손수건, 은하수, 백목련, 당의정…… 등등 온통 무참히도 흰 것들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발음해봅니다. 이 소설은 이렇듯 눈으로 읽고 입으로 읽는 두 가지 과정 속에 불현듯 진정한 제 속내를 들켜주기도 한다지요. 흰 것을 떠올리고 불러내고 불러주고 글로 쓰는 일련의 과정이 결국은 흰 것을 보고 흰 것을 읽는 우리를 치유시켜주는 일이 아닐까요.
4. “익숙하고도 지독한 친구 같은 편두통”에 시달리는 ‘나’가 있습니다. 나에게는 죽은 제 어머니가 스물세 살에 낳았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죽었다는 ‘언니’의 사연이 있습니다. 지난봄 누군가 나에게 물었지요. “당신이 어릴 때, 슬픔과 가까워지는 어떤 경험을 했느냐고.” 그 순간 나는 그 죽음을 떠올립니다. “어린 짐승들 중에서도 가장 무력한 짐승. 달떡처럼 희고 어여뻤던 아기. 그이가 죽은 자리에 내가 태어나 자랐다는 이야기.”
나는 지구 반대편의 오래된 한 도시로 옮겨온 뒤에도 자꾸만 떠오르는 오래된 기억들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다 우연히 1945년 봄 미군 항공기가 촬영한 이 도시의 영상을 보게 되지요. “유럽에서 유일하게 나치에 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던 이 도시를 (…)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깨끗이, 본보기로서 쓸어버리라”는 히틀러의 명령 아래 완벽하게 무너지고 부서졌던 도시, 그후 칠십 년이 지나 재건된 도시 곳곳을 걸으면서 나는 처음 “그 사람-이 도시와 비슷한 어떤 사람-의 얼굴을 곰곰이 생각”하기에 이르지요.
오직 목소리만을 들었을 것이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알아들을 수 없었을 그 말이 그이가 들은 유일한 음성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확언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다. 그이가 나에게 때로 찾아왔었는지. 잠시 내 이마와 눈언저리에 머물렀었는지. 어린 시절 내가 느낀 어떤 감각과 막연한 감정 가운데, 모르는 사이 그이로부터 건너온 것들이 있었는지. 어둑한 방에 누워 추위를 느끼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니까.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32~33쪽)
나에서 비롯된 이야기는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아가기에 이릅니다.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그 말이 그녀의 몸속에 부적처럼 새겨져 있으므로” 나는 “그녀가 나 대신 이곳으로 왔다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통해 세상의 흰 것들을 다시금 만나기에 이릅니다. 희게 얼어 있는 바다여, 태양의 빛이 조금 더 창백해지기 시작하는 서리가 내릴 무렵이여, 죽은 나비의 투명해져가는 날개여, 움켜쥘수록 차가워지는 창백한 두 주먹이여, 검은 코트 소매에 내려앉았다 녹아 사라질 때까지 일,이초를 살다 가는 눈이여,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여, 어느 추워진 아침 우리가 살아 있다는 증거, 우리 몸이 따뜻하다는 증거로 입술에서 처음으로 새어나오는 흰 입김이여,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 흰 새여, 날개를 반쯤 접은 새처럼, 머뭇머뭇 내려앉을 데를 살피는 혼처럼 떨어지는 손수건이여, 얇은 종이의 하얀 뒷면 같은 죽음이여.
이 도시의 사람들이 그 벽 앞에 초를 밝히고 꽃을 바치는 것이 넋들을 위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안다. 살육당했던 것은 수치가 아니라고 믿는 것이다. 가능한 한 오래 애도를 연장하려 하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두고 온 고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했고, 죽은 자들이 온전히 받지 못한 애도에 대해 생각했다. 그 넋들이 이곳에서처럼 거리 한복판에서 기려질 가능성에 대해 생각했고, 자신의 고국이 단 한 번도 그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보다 사소하게, 그녀는 자신의 재건에 빠진 과정이 무엇이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물론 그녀의 몸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녀의 넋은 아직 육체에 깃들어 있다. (…)
그러니 몇 가지 일이 그녀에게 남아 있다;
거짓말을 그만둘 것.
(눈을 뜨고) 장막을 걷을 것.
기억할 모든 죽음과 넋들에게-자신의 것을 포함해-초를 밝힐 것. (108~109쪽)
결혼을 앞둔 동생의 신부가 죽은 어머니의 몫으로 마련해온 흰 무명 치마저고리를 태우면서 나는 생각합니다. “당신, 올 수 있다면 지금 오기를. 연기로 지은 저 옷을 날개옷처럼 걸쳐주기를.” 그리고 나는 말합니다.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라고. ‘모든 흰’의 이름으로 알게 되고 앓게 된 통증, 이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견뎌낸 뒤에 나누는 작별의 인사라니 최선이라 할 수 있겠지요. 이것이 진정한 만남의 인사라 할 수 있겠지요. “이승과 저승 사이를 소리 없이 일렁이는 저 거대한 물의 움직임”이 그렇게 섞이는 거라지요.
죽지 마. 죽지 마라 제발.
말을 모르던 당신이 검은 눈을 뜨고 들은 말을 내가 입술을 열어 중얼거린다. 백지에 힘껏 눌러쓴다. 그것만이 최선의 작별의 말이라고 믿는다. 죽지 말아요. 살아가요. (133쪽)
『흰』은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를 무력하게 만드는 소설입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벽을 모래로 허물고, 삶과 죽음이라는 단단함을 무르게 만들고, 삶과 죽음이라는 당연함을 낯설게 하고, 삶과 죽음이라는 평면을 입체로 분산시키고, 삶과 죽음이라는 유한을 우주라는 무한으로 확장시킵니다. 넘나든다는 일은 몸에 유연성을 기르는 일이지요. 유연한 사고가 빚어내는 끌어안음은 연대를 이루기에 충분하지요. 산 자와 죽은 자의 연대, 어차피 모든 산 자는 모두 죽은 자가 될 것이 아닌가요. “아기의 배내옷이 수의가 되고 강보가 관이 되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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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소설 "흰"은 소설이라기보다 산문에 가까운 형태의 독특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흰색'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삶과 죽음, 상실과 재생을 성찰하는 한강의 깊은 내면적 글쓰기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한강은 단순히 색으로서의 '흰색'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흰색이 상징하는 삶의 다양한 양면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이 책은 한강의 개인적인 경험, 특히 언니의 죽음을 포함한 가족사에서 출발하며, 동시에 그것이 더 넓은 보편적인 인간 경험으로 확장된다.
소설의 구조는 크게 세 가지의 부분으로 나뉘며 각각의 장은 흰색과 관련된 사물이나 상징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눈, 소금, 흰 천, 흰 꽃,우유 등과 같은 흰색의 사물들이 각 장마다 등장하며, 그것들이 지닌 상징적 의미와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이 한강의 섬세한 문체로 서술된다. 각 장은 독립된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전체적으로는 한 인간이 삶과 죽음, 상실과 재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되는지에 대한 일종의 연대기라고 할 수 있다.
작품에서 가장 중심적인 감정은 상실과 그로 인한 슬픔이다. 특히, 언니의 죽음은 한강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이 작품은 그 상실을 표현하는 도구 로서 '흰색'을 사용한다. 흰색은 순수함, 무결함, 그 리고 삶의 시작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음 과 사라짐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강은 흰색의 양면 성을 통해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인간 경 험을 탐구한다. 언니의 죽음 이후에도 남겨진 가족 들은 그 상실을 안고 살아가야 하며, 그 과정에서 흰색은 상처를 치유하거나 이를 받아들이는 하나 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한강은 특히 언니가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난 사실을 깊이 묵상하며, 그 짧은 생이 흰색이라는 주제와 연결된다. 언니는 세상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흰천에 싸여 떠났고, 한강은 이 죽음을 받아 들이면서도 그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언니의 존재는 한강의 마음속에서 계속 흰색으로 자리잡으며, 그녀에게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이 책에서 중요한 또 다른 요소는 '기억'이다. 한강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으며,그 기억들이 어떻게 흰색과 연결되는지를 탐구한다. 예를 들어, 눈 속에서의 기억, 어린 시절의 순수함,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 흰색이라는 매개를 통해 하나로 엮인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한강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조금씩 깨닫게 된다. 삶의 순수함과 끝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모두 흰색 안에서 서로 맞물린다
독후감 감상문
한강의 "흰"은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서사적인 플롯이나 사건의 전개가 중심이 되기보다는, 철학적이고 감정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한다. 흰색이라는 주제를 통해 한강은 죽음과 상실 그리고 그것이 주는 고통을 예리하게 분석한다. 그러나 이 고통은 단순히 절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다시 시작하는 재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 흰색은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시작을 상징하기도 하며, 이 상반된 개념들이 작품 안에서 섬세하게 교차한다.
특히 이 작품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한강의 문체와 서술 방식 때문이다. 그의 글은 매우 간결하고 직설적이면서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은 강렬하다. 독자는 그의 글을 통해 흰색이 지닌 다양한 상징성 을 경험하게 되며, 한강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체험할 수 있다. 또한 한강은 이 책에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든다
흰은 단순한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독자에게 철학적이고 감정적인 깊이를 제공하는 하나의 묵상문이자, 예술 작품에 가깝다. 삶과 죽음이라는 주제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이며, 이 주제를 다루는 방식 에서 한강은 매우 깊은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결국 모두 죽음으로 향 하는 존재임을 인정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 한다.
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큰 감정은 상실감이지만, 동시에 그 안에는 희망도 존재한다. 삶의 순간순간 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주며,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을 흰색이라는 상징을 통해 이해하게 만든다. 한강은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경 험을 대변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흰"은 그 자체로 강렬한 감정의 기록이며,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과 상실을 다룬 깊이 있는 성찰이다
https://naver.me/FmfMXqf0
"이것을 쓰는 과정이 무엇인가를 변화시켜 줄 것 같다고 느꼈다. 횐부에 바를 흰 연고, 거기 덮을 흰 거즈 같은
무엇인가가 필요했다고."
흰. 작가의 말
<흰>은 한강 작가의 단편소설 모음집입니다.
이렇게 흰색과 관련된 주제들과 이미지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두통 때문에 물 한 컵을 데워 알약들을 삼키다가 (담담하게) 깨달았다. 어딘가로 숨는다는 건 어차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시간의 감각이 날카로울 때가 있다. 몸이아플 때 특히 그렇다. 열 네 살 무럽 시작된 편두통은 예고 없이 위경련과 함께 찾아와 일상을 정지시킨다. 해오던 일을 모두 멈추고 통증을 견디는 동안,한 방울씩 떨어져내리는 시간은 면도날을 뭉쳐 만든 구슬들 같다. 손끝이 스치면 피가 흐를 것 같다. 숨을 들이쉬며 한순간씩 더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느껴진다. 일상으로 돌아온 뒤까지도 그 감각은 여전히 그자리에 숨죽여 서서 나를 기다린다. 그렇게 날카로운 시간의 모서리 -시시각각 갱신되는 투명한 벼랑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간다. 살아온 만큼의 시간 끝에 아슬아슬하게 한 발을 디디고, 의지가 개입할 겨를 없이, 서슴 없이 남은 한 발을 허공으로 내딛는다. 특별히 우리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그것밖엔 방법이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그 위태로움을 나는 느낀다. 아직 살아보지 않은 시간 속으로, 쓰지 않은 책 속 으로 무모하게 걸어들어간다. "
면도날은 뭉쳐 만든 구슬, 방법이 하나밖에 없기에 시
간의 벼랑 끝에 발을 내딛는 우리
안개
"이 낯선 도시에서 왜 자꾸만 오래된 기억들이 떠오르는 걸까) 거리를 걸을 때내 어깨를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하는 거의 모든 말, 스쳐지나가는 표지판들에 적힌 거의 모든 단어를 나는 이해 하지 못한다. 움직이는 단단한 섬처럼 행인들 사이를 통과해 나아 갈 때, 때로 나의 육체가 어떤 감옥처럼 느껴진다. 내가 겪어온 삶의 모든 기억들이, 그 기억들과 분리해낼 수 없는 내 모국어와 합계 고립되고 봉인된 것처럼 느껴진다. 고립이 완고해질수록 뜻밖의 기억들이 생생해진다. 압도하듯 무거워진다. 지난 여름 내가 도망치듯 찾아든 곳이 지구반대편의 어떤 도시가 아니라, 결국 나의 내부한 가운데였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지금 이 도시는 새벽안개에 잠겨 있다. "
파도
"멀리서 수면이 솟아오른다. 거기서부터 겨울 바다가 다가온다. 힘차게, 더 가까이 밀려온다. 파고가 가장 높아진 순간 하얗게 부서진다. 부서진 바다가 모래펄을 미끄러져 뒤로 물러난다. 물과 물이 만니는 경계에 서서 마치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파도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동안(그러나 실은 영원하지 않다 -지구도 태양계도 언젠가 사라지니까), 우리 삶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또렷하게 만져진다. 부서지는 순간마다 파도는 눈부시게 희다. 먼 바다의 잔잔한 물 살은 무수한 물고기들의 비늘 같다. 수천수만의 반짝임이 거기 있 다. 수천수만의 뒤척임이 있다(그러나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 "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파도도 영원하지 않다
우리 삶은 찰나에 불과하다.
눈보라
"몇 년 전 대설주의보가 내렸을 때였다. 눈보라가 치는 서울의 언덕길을 그녀는 혼자서 걸어올라가고 있었다. 우산을 썼지만 소용없었다.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었다. 얼굴로, 몸으로 세차게 휘몰아 치는 눈송이들을 거슬러 그녀는 계속 걸었다.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임과 동시에 연약하고 사라지며 압도적인 것은.
한강 작가의 작품은 읽으면 읽을수록 색이 뚜렷하다해야 할까요 너무 뚜렷해서 좀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색이 너무 강렬하기에 오히려 흰 을 쓰며 정말 흰색 연고처럼 치유를 가질 수 있었을 것 같네요.
책을 읽어갈 때마다 흰 사물들로 위로를 받은 문구와
어떤 이들에 대한 애도 등을 통해 각별한 애정이 느껴
졌습니다.
누군가에겐 다양한 색의 혼합으로 어두워져버린 길에
서 한줄기 빛이 되어주는 책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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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은 한강이 죽음, 상실, 그리고 삶의 연약함을 중심으로 쓴 서정적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한강이 어머니가 잃은 두 아이, 즉 자신의 형제자매의 죽음을 기억하며, 그들과 관련된 ‘흰색’을 주제로 전개된다.
흰색은 이 작품에서 순수함, 죽음, 그리고 상실을 상징하며, 각 장은 흰색과 관련된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해 인간 존재의 상처와 치유를 그린다.
이 소설은 65개의 짧은 에세이와 시적인 서술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에피소드는 눈, 백지, 흰 옷 등의 이미지로 시작된다.
이러한 흰색 이미지는 한강이 과거의 상처와 죽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고 있다.
특히, 태어나자마자 죽은 형제들의 이야기는 한강의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그녀는 어머니가 잃은 자식들을 통해 상실의 감정을 탐구하고, 흰색을 통해 죽은 자식들의 영혼을 기린다.
첫 번째 부분은 잃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한강은 태어나자마자 세상을 떠난 형제자매의 죽음을 흰색과 연결시키며, 그들의 짧은 생을 기억한다.
흰색은 죽음을 상징하는 동시에 그들의 삶이 가졌던 순수함과 허무함을 상징하는 색이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흰색이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상징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눈이나 백지는 깨끗함과 정결함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끝없는 공허함과 결핍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강은 이를 통해 자신의 상실을 치유하고, 삶의 연약함을 수용하려 한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죽음 이후에도 남겨진 자들의 기억과 상처를 그리며, 흰색은 이들의 슬픔을 감싸는 치유의 색으로 변모한다.
한강은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며, 존재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는 과정을 그린다.
「흰」은 한강의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문체로, 죽음과 상실을 다룬 작품이다.
인간의 고통과 상실을 흰색이라는 상징을 통해 묘사하며, 독자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상실을 넘어서 존재의 의미를 새롭게 탐구하고, 그 속에서 치유의 가능성을 발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