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어머니들
양 승복
그래 내가 다 알고 있다. 괜찮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란다 라고, 애잔함이 가득한 염려스런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 눈길이 나를 붙든다.
부처의 모습이 이렇게 고뇌 적이었던가. 예수님이 이렇게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 보셨던가. 어디서 보았더라 저 복합적인 표정을, 기억을 더듬으니 사진 위로 겹쳐지는 얼굴은 내 어머니였다. 인자한 미소로 바라보며, 대견하면서 조금은 서글픈 마음도 담아 내 눈을 가만히 바라보던 어머니의 표정이. 신행 갔을 때, 엿 바구니를 들려주며 시댁으로 가는 딸을 바라보는 눈빛이 이러했다. 부모의 품을 떠나 고난의 길로 접어드는 딸이 안쓰러웠을 내 어머니. 골목길을 걸어 나오다 뒤돌아보니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그 표정으로 우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계셨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칠십년 가까이 살아보니 어머니의 그 복잡했던 표정이 더 깊게 가슴으로 스며든다. 대문 앞에 서서 내가 사라질 때 까지 바라보던 어머니의 염려스러운 눈길을 잊고 살았는데, 지금 박경리 선생님 표정에 어머니가 있다.
만만하지 않는 삶을 살아오며, 딸이 살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님이 마음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어머니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살면서, 내가 겪는 고난이 마치 어머니 탓인 양 앙탈을 부린 적도 있었다. 어머니가 가여워지고, 그 삶이 서글픔으로 다가 올 때는, 내가 어른이 되어 아들이 장가갈 무렵 인 것 같다. 삶이라는 것은 살아봐야 맛을 안다. 공감을 하며, 마음 열어 놓고 이해하는 폭을 넓힌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멍들어 가며 다져진 다음에야 생기는 것 같다. 선생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수많은 아픔으로 가슴앓이를 하게 만들었다. 그래야만이 인생인 것처럼 말이다.
수많은 언어는 선생님의 가슴속에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마치 태양 보다 몇 십 배 무거운 불랙홀이 되어 모든 언어는 인간이 안고가야 하는 삶으로 선생님의 가슴에서 녹아 내렸다. 수년 전, 그해 여름은 무지하게 더워 어떻게 하면 이 여름을 잘 보낼 것인가 생각하다, 토지를 16부 까지 다 읽기로 했다. 훅훅 거리는 방안 구석에 앉아 숙제를 잘 했던 그 해 여름에, 나는 서희가 되어 질곡의 삶을 살았다. 그 후로 26권까지 나왔으나 읽지 못했다. 다만 드라마로 보며 강국이 형제와 양현의 안타까운 인연을 가슴 아파 했다. 어떻게 끝까지 고단한 삶을 각자 다른 색으로 살게 했는지. 마지막 한번쯤은 말끔한 하늘처럼 경쾌한 인연을 만들어 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토지의 인물 중에 선생님은 월선이를 사랑했다고 생각한다. 불우한 삶을 산 불쌍한 여인이지만, 그 대신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주고받도록 했다. 무당집 딸로 태어나서 한 남자만을 그리며, 가슴 저리도록 아프게 사랑을 안고 살았다. 용이가 부모님의 성화를 거스르지 못하고 강청댁과 결혼하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고, 친구 마누라인 임이네에게 홍이를 낳게 했으니, 그것은 용이의 우유부단한 선택이었음에도 원망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용이를 사랑하는 강청댁과 임이네의 화풀이를 감당하며, 그 사랑하나 믿어 의심치 않았던 월선이는 결국에는 몸이 썩는 암에 걸려 죽는다. 그 삶이 여한이 없다고, 사랑하는 용이 품에서 숨을 거두는 여인을 만들었다. 지고지순하다면 그보다 더 한 순애보가 있겠느냐만. 강청댁은 할미꽃 순정을 저버리고 질투에 자아를 잃어버린 악다구니 악녀로 만들고, 임이네는 사악한 여인으로 만들어, 평생을 사랑에 미쳐가는 인생을 살게 했다.
생각해 보면 월선이는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모두의 어머니였다. 지치면 찾아드는 고향에서 국밥 한 그릇 말아주며 쉬어갈 수 있게 하는 그녀는 항상 마음을 열고 그 자리에 있었다. 모든 것을 수용하고 삭이며, 사랑하는 용이의 아들인 홍이 어머니로 살았다. 월선이 삶의 기쁨이고, 살아가는 희망이었던 홍이는 용이가 주는 마음의 선물이다. 임이네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홍이는 없었을 테니. 인연은 이렇게 강물처럼 흐른다는 것을 선생님은 시사하고 있다.
며칠 전이다. 티비에서 윤여정배우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는 일정을 다큐멘타리로 만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멤버들과 친구들이 며칠 동안 생활하는 모습을 찍었다. 순수하면서 당당하게 주워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으로 멋있었다. 의료인인 나도 손을 그렇게 정성껏 씻지 않는다. 그녀는 외출하고 들어오면 손 씻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배운 대로 차곡차곡 순서를 밟아 씻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가 살아 온 삶을 보는 듯 했다. 아주 작은 일 부터 소홀함이 없는 그녀가 말하는 최선은 대단한 것이었다.
인터뷰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살기 위해서 연기를 했다. 그 원동력은 내 두 아들이다. 그들이 나를 지탱했고, 그들을 지탱하기 위해서 나는 견딜 수 있었다. 계획을 세워 일하지 않았다. 그냥 그때그때 나는 따지지 않고 삶에 충실했다.' 라고 말하는 그녀는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작품도 해야만 했던 지난날을 말했다. 그녀는 이렇게 차곡차곡 살았다. 살아가기 바빠서 누구도 바라보지 않고,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고민하지 않았고 슬프지 않았으며 고단하지 않았다. 격식에 맞춘 행동도 말도 하지 않으면서, 그는 그 만이 가지고 있는 철학으로 늘 당당하게 말하고, 주장을 강하게 어필하지만 경우에 벗어나지 않았다.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뿐이라는 그녀는 아이들에게 떳떳하다고 말했다. 어머니로 살아온 그녀의 세월이 아카데미 시상식에 보낸 것 이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고 믿는다. 내 어머니도, 홍이 어머니 월선이도, 최고의 배우인 윤여정님도 모두 어머니로 살아가는 우리들의 토지다. 이 땅에 어머니가 있어 삶은 이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