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의 무이구곡가
지난번 여행 때 누군가 중국의 무이산이 그렇게 아름답다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주자학의 창시자 주자가 그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그곳에 무이정사라는 집을 짓고 살았다고도 하였습니다. 지난
11월 30일 토요일 아침 7시 마침 아무런 약속이 없기에 불연 듯 무이산에 대한 호기심에 생겨 무이산을 웹서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몇 차례 클릭을 하다가 주자가 쓴 시 ‘무이구곡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이산에는 아홉개의 계곡이 있는데 주자가 뱃사공이 모는 배를 타고 그 구곡을 돌면서 한 계곡마다 한 줄에 7자인 넉 줄짜리 시를 씁니다. 이것을 예전 국어시간에 칠언절구라 하였던가. 배를 타는 도입부의 시 하나에 구곡마다 한 개의 시가 있으니 무이구곡가는 총 10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한글로 번역된 시를 읽어보니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으나 한자 하나하나와 비교하니 번역이 그리 정확하지 않은 듯 하였습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서로 다른 번역이 댓 개는 나왔습니다. 이렇게 인터넷에서 노는 사이에 벌써 1시간 흘렀습니다. 이때 저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내가 이 시 하나 마스터 해 보리라. 학창 시절에도 한문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제가 한자와 등을 쌓고 지낸 지 십수 년만에 한시 풀이에 도전해 보기로 한 것입니다.
먼저 첫 7자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武夷山上 有仙靈 무이산상 유선령
금방 해석이 되십니까? 이런 정도는 고교시절 다 배우지 않았을까요. ‘무이산 위에는 신선의 영혼이 있다.’가 가장 정확한 표현이지만 ‘무이산에는 신선이 노닐고’가 더 멋들어진 번역 같았습니다. ‘이거 별거 아니네. 금방 끝날 것 같은데.’ 머리 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다행히 10개의 시중 첫 번째 시에서는 모르는 한자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세번째 시로 이어지자 모르는 한자가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하였고 아는 한자도 그 뜻을 정확하게 새기기 위해서는 인터넷 한자 사전을 일일이 찾아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1곡을 다룬 두번 째 시에서 ‘홍교’(虹橋)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그 시 구절은 이렀습니다.
虹橋一斷 無消息 홍교일단 무소식
(한번 끊어진 무지개 다리는 소식이 없네)
홍교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 졌습니다. 한자 사전에는 무지개 다리라고 해석되어 있는데, 무지개가 가끔 생긴다는 뜻인가? 인터넷을 좀 더 뒤졌더니 무이산에 대한 이런 이야기를 있었습니다.
‘1곡에 등장하는 만정봉은 해발 500미터 정도의 산인데, 신선 무이군(武夷君)이 연회를 베풀던 곳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진시황 2년 가을에 무이군이 허공에 무지개 다리를 놓고 여러 신선들을 초대하여 잔치를 베풀었다고 한다.’
이번에는 ‘무이군’이 누구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일게 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하늘에 계신 신선이 지상으로 내려와서 산천을 두루 살펴보고 다녔는데 무이산에 이르러 기암기석으로 된 절경에 반하여 하늘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이 산에 묻혀 살았다. 이 때 신선이 “이 산은 무사들이 창칼을 들고 무리를 지어 있는 모습과 같구나” 하는 말을 남겨 무이산의 무이군(武夷君)되었다.’
실제로 무이산은 36개 봉우리, 72개 동굴, 99개 기암기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1곡에 대한 시를 해석하는데 무려 1시간이 소요 되었습니다. 이런 속도면 오늘 하루에 이 시를 다 해석할지 걱정이 됩니다. 그래도 기왕에 시작한 일이니 끝장을 보기로 하였습니다.
2곡에는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二曲停停 玉女蜂 이곡정정 옥녀봉
(두번째 골짜기에 들어서니 옥녀봉이 우뚝 솟아 있는데)
揷花臨水 爲誰容 삽화임수 위수용
(꽃을 단장하고 물가에 서 있으니 누구를 위해 꾸몄는가)
주자가 옥녀봉이라는 큰 바위를 보고 이리 읊었다 하니 필시 무슨 곡절이 있는 듯하여 인터넷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랬더니 옥녀봉에 대한 이런 사연이 있었습니다.
‘옥황상제의 딸이었던 옥녀가 아버지 몰래 구름을 타고 인간 세상에 내려왔다가 무이구곡의 산수에 매료되어 돌아가지 못하고 우연히 대왕(大王)과 만나 인간세계에 살았다. 이를 본 철판도인이 옥황상제에게 고하자 옥황상제는 철판도인에게 옥녀를 잡아오게 하였다. 옥녀가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굽하지 않자 철판도인은 마법으로 옥녀와 대왕을 돌로 변하게 하여 계곡의 양쪽에서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옥녀봉과 대왕봉 사이에는 철판장이라는 병풍바위가 있는데 철판도인이 옥녀봉과 대왕봉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관세음보살이 대왕과 옥녀를 불쌍히 여겨 옥녀봉 맞은 편에 면경대를 두어 얼굴을 마주 보게 하였다.’
실제로 무이산에는 옥녀봉도 대왕봉도 철판장도 면경대로 모두 다 있습니다. 중국사람들의 이야기 꾸미는 솜씨가 대단하지요. 주자는 각 계곡마다 아름다운 내용의 시를 노래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노래는 뱃사공의 노젓는 소리와 어울어져 구곡에 퍼졌을 것입니다. 썼습니다.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무이구곡가에 빠져 하루 종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4시인데, 이제 6곡입니다. 주자는 이 여섯번째 계곡에 있는 향성암에 논어에 나오는 서자여사(逝者如斯)라는 네 글자를 새겨 놓았습니다. 논어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子在川上曰 逝者如斯夫 不舍晝夜
(공자께서 냇가에서 말씀하셨다. “가는 것이 이 물과 같구나. 밤낮으로 쉬지 않는도다.”)
주자는 54세 되던 1183년 무이산 5곡에 무이정사(武夷精舍)를 세우고 후학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왜 굳이 주자는 바위에 서자여사를 새겼을까요? 쉰이 넘은 노학자는 자신이 새긴 글자를 볼 때마다 세월이 물과 같이 빨리 흐르는데 자신이 학문은 잘 늘지 않는 것을 한탄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래서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합니다.
주자는 배를 타고 7곡 8곡을 돌아 드디어 9곡에 도착합니다. 주자는 9곡을 노래한 마지막 시 마지막 귀절을 이렇게 노래합니다.
除是人間 別有天 제시인간 별유천
(여기 아니면 별유천이 또 어디 있으리요)
별유천 어디서 많이 듣던 표현인데 정확한 뜻을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우리네 지식이라는 것이 물안개에 가려진 봉우리처럼 보일 듯 말 듯 합니다. 다시 인터넷을 두드립니다. 아하! 바로 이 것이었군요. 이백의 시에 나오는 한귀절이었습니다.
問余何事栖碧山 笑而不答心自閒 桃花流水杳然去 別有天地非人間 (문여하사서벽산 소이부답심자한 도화유수묘연거 별유천지비인간)
그대 왜 산 속에 사는가 하고 묻지만, 나 웃을 뿐 대답 않으나 내 마음 한가로워. 복사꽃 뜬 냇물 저쪽 아득히 흘러가나니, 이 곳은 도원경 桃源境이지 인간 세계가 아닐세.
주자는 인간세상에서 배를 타고 아홉 골짜기 하나하나를 구경하며 시를 노래하다 보니 마지막에는 인간세상이 아닌 선계에 도착한 것입니다.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도 지나 8시가 되었습니다. 아침 7시에 시작한 무이구곡가 해석이 13시간만에 끝이 났습니다. 워낙 한문에는 둔한 데다가 호기심이 많아 걸핏하면 옆길로 새는 바람에 엄청난 시간이 든 것입니다. 정말로 오랜만에 공부 좀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분은 이리 좋을 수 없습니다. 고시 공부할 때 느껴본 희열감을 30년 넘어 다시 맛보았습니다. 늘 주말이면 골프다 약속이다 정신없이 밖으로 쏘다녔는데 공부의 참 맛을 엉뚱한 기회에 알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수 친구들이 이 나이에 좁은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무이구곡가에 빠져 보니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듯도 합니다.
저는 공부가 골프보다 더 재미있고 마약처럼 중독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공부에 중독될 준비되셨나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3.12.9. 조근호 드림
(방송 안내)
4월15일부터 매주 월요일 10시부터 11시까지 방송되는 극동방송(AM 1188 또는 FM 106.9) ‘사랑의 뜰안’ 프로그램에 조근호 변호사의 월요편지 코너가 신설되었습니다. 그 동안 썼던 월요편지 중에서 일부를 골라 청취자 분들에게 제 육성으로 전달해 드리게 됩니다. 시간은 대략 10:20 경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나시면 들어 주세요. 새로운 감흥이 있으실 것입니다. 라디오 듣기가 불편하신 분은 스마트 폰에 극동방송 앱을 다운 받으시면 그 시간에 들으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