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소위 리니지에서 방귀좀 뀌었다는 사람들끼리의 대화는 검으로 시작해 검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이야 워낙 +9검, +10검이 흔하기 때문에 '몇 검 쓰냐?'라는 질문이 이상하게 들릴수도 있지만, 무기 마법 주문서 한장 구하기도 힘들었던 당시엔 누구나 부모님의 안부보다 검의 안부가 중요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당시 나름 잘나간다고 하는 혈맹들에서 혈맹원의 가입 조건으로 'x검 이상' 을 내건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상하게 들린다고? 군주가 혈맹원을 받는데 신용 보증 보험 증서를 떼어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직접 1:1로 싸워보고 '나를 눕힐 정도로 강하니 혈맹원으로 받겠소.' 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어쨌든, 리니지의 역사 중심에는 항상 '검'이 있었다. 인챈트야 둘째로 치더라도 패션 만큼이나 유행에 민감하고, 잘 나가는 가수의 신곡 만큼 민감한 리니지 세계에서의 검에 대해 떠올려 보려 한다.
■ 1세대. 일본도, 붉은 기사의 검
1세대 검이 대 유행을 했던 시대를 잠시 되짚어 보자면 경험치도 좋고, 카오틱 수치도 높고, 드랍 아이템도 좋은 '버그베어'가 최고의 몬스터 취급을 받던 때였다. 버그베어는 속성상 큰 몬스터로 분류되는데, 대중적으로 보급되어 있던 '양손검'은 큰 몬스터를 잡는데 적합하지 않았다.(당시 양손검은 작은 몬스터 12, 큰 몬스터 6의 타격치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20,000아데나만 있으면 작은 몬스터 10, 큰 몬스터 12의 균형잡힌 타격치에 명중치 +1 옵션까지 붙은 일본도를 구입할 수 있었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지만 많은 유저들은 20,000아데나 모으기 프로젝트라는 명목하에 열심히 '노가다'를 자행했고, 또 많은 이들이 중도에 포기했다.
심지어 일본도를 구입하겠다고 캐릭터 생성시 주는 양초를 1만번 팔아 아데나를 모으는 유저도 있을 정도니(캐릭터 생성시 2개의 양초가 주어지는데 상점에 팔면 각각 1아데나씩을 얻을 수 있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버그베어가 불러온 일본도 열풍은 마치 윤복희씨가 몰고 왔던 미니스커트 열풍에 비견되며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상대적으로 고가에 속하는 일본도를 구할 수 없는 유저는 대체품으로 '붉은 기사의 검'을 사용하기도 했다. 붉은 기사의 검은 기사의 퀘스트 보상으로 얻을 수 있었는데, 작은 몬스터 8, 큰 몬스터 12의 타격치에 힘+1이라는 옵션이 붙어 일본도에 비해 성능이 많이 떨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큰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일본도보다 나은 성능을 발휘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비싼 가격이지만 최고의 성능을 지녔던 일본도와, 성능은 일본도에 약간 뒤쳐지지만 구하기 쉬웠던 붉은 기사의 검. 두 가지 이외의 무기를 사용하는 유저는 없었다. 약 2년 정도는 말이다.
■ 2세대. 레이피어
검의 세대 교체는 2000년이 되어 등장한 용의 계곡과 용의 던전의 영향이 컸다. 그 곳에는 해골 근위병, 해골 돌격병, 해골 저격병. 묶어서 정예 해골이라고 불리는 몬스터들이 주로 출현하는데, 높은 경험치와 아데나를 드랍했다.
그러다 보니 그것들을 잡는데 좀 더 효율이 좋은 검을 찾게 되었고, 이름부터 아름다운 레이피어를 발견했다. 레이피어는 작은 몬스터 11에 큰 몬스터 6이라는 다소 언밸런스한 타격치를 갖고 있지만, 언데드 추가 타격이라는 훌륭한 옵션을 갖고 있다. 언데드 추가 타격에 대한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많은 유저들이 +5 정도의 추가 타격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데드 추가 타격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분석해 보기로 하고, 어쨋든 레이피어는 작은 몬스터와 언데드 몬스터에게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며 상아탑이 나오기 전까지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일부 유저들은 레이피어를 귀족의 검이라 자부하며, 일본도를 사용하는 유저들을 깔보는 일도 발생하게 되었다. 결국, 일본도 사용자들이 집단 봉기하여 레이피어 사용자들과 소규모 싸움을 벌이는 헤프닝도 있었다.
레이피어가 불러온 유행이 한 가지 더 있었는데, '요정 클래스 대 인기' 되겠다. 레이피어는 제작으로만 얻을 수 있는데, 관련 NPC들이 전부 요정 전용 지역에 살고 있다. 당연히 요정 이외의 클래스를 보면 창을 높이 치켜들고 돌격해 오는 녀석들이었기 때문에, 레이피어를 갖고 싶은 기사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캐릭터 생성->요정을 클릭할 수 밖에 없었다. 일부에서는 요정의 인기를 올리기 위한 게임사의 계략이라는 농담까지 나오기도 했다.
■ 2.5세대. 다마스커스
상아탑과 얼음 동굴이 등장하며, 그 동안 소외받던 다마스커스가 잠깐 유행하기도 했다. 아이스골렘, 아이언골렘 등의 '검 손상' 몬스터와 큰 몬스터가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다마스커스는 작은 몬스터 10, 큰 몬스터 11이라는 어중간한 타격치를 갖고 있지만 '손상되지 않음' 속성을 갖고 있어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다마스커스를 3세대 검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대부분의 유저가 보조검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비 손상 몬스터를 잡을 때는 일본도나 레이피어를 사용하다가 손상 몬스터를 상대할 때만 다마스커스로 갈아 끼우는 것이 대세가 되었었다.
다마스커스가 남긴 업적은 '보조검' 이라는 개념을 리니지에 안착시켰다는 정도로 회자된다.
■ 3세대. 싸울아비 장검
지저성이 업데이트되며 최초의 '라인 전용 제작 아이템'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작은 몬스터 16, 큰 몬스터 10과 공격성공 +2라는 훌륭한 옵션을 가지고 있는 싸울아비 장검이 화제였다. 싸울아비 장검은 지저성 내부에 위치하고 있는 NPC를 통해서만 제작할 수 있는데다 당시 고가였던 '최고급 다이아몬드'가 재료로 들어가기 때문에 무척 구하기 어려운 무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저들은 싸울아비 장검을 구하기 위해 방어구를 처분할 정도였다. 어떤이는 적대 유저와 싸움을 하기 위해, 어떤이는 작은 몬스터 사냥의 효율 극대화를 위해, 또 어떤이는 자기만족을 위해.
싸울아비 장검이 유명해진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당시 리니지의 지존이었던 '포세이든'이 +10 싸울아비 장검으로 적대 혈맹원과 5:1로 싸워 이겼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는데,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싸울아비 장검의 압도적인 타격치는 '음...그럴수도 있겠군'이라는 반응과 더불어, 싸울아비 장검만 있으면 자신도 강해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합쳐져 더욱 프리미엄이 붙었다.
현재는 더 좋은 성능의 무기가 많이 나와 잘 쓰이지 않지만, 전주마트에서 판매하고 있는 싸울아비 장검을 볼 때면 컬렉션으로라도 구입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는 것은 본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 4세대. 파멸의 대검, 무관의 양손검, 오리하루콘 단검
현재는 검이 매우 다양해져 각자의 취향에 맞게 사용하는 양상을 보인다. 최근 기사는 양손검을 필수로 사용하거나 가지고 다니는데, 그 이유는 양손검의 효율 향상과 쇼크 스턴 스킬 때문이다. 쇼크 스턴은 양손검을 차고 있어야만 발동 되기 때문에,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양손검 한 자루씩은 가방에 넣고 다니게 되었다.
무관의 양손검은 작은 몬스터 19, 큰 몬스터 23의 타격치와 추가 타격치 +5, 공격 성공 +1까지 훌륭한 성능을 자랑한다. 현재 대인전에서 가장 효율이 좋다고 여겨지고 있는 무기다. 파멸의 대검은 무관의 양손검보다 약간 떨어지는 작은 몬스터 19, 큰 몬스터 18과 추가 타격치 +3의 옵션을 가지고 있지만 체력을 흡수하는 효과가 있어 사냥에 최적화 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양손검들의 독무대라고 생각하던 찰나, 오리하루콘 단검이 혜성처럼 등장한다. 오리하루콘 단검은 작은 몬스터7, 큰 몬스터7의 낮은 데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추가 타격치 +2와 언데드 추가타격이라는 훌륭한 옵션에다가 단검 특유의 빠른 공격속도 때문에 양손검들 못지 않은 우수한 성능을 낼 수 있다. 거기에 비손상 옵션까지 붙어 있기 때문에 아덴 월드 어느 곳이든지 갈 수 있는 폭 넓은 사냥 영역을 자랑한다.
파멸의 대검, 무관의 양손검, 오리하루콘 단검 모두 좋은 무기이기 때문에 선택하는데 고민이 많이 될 것이다. 뭐, 자금만 있다면 세 종류 모두 구입해 가지고 다니는 것이 가장 좋지만. 어쨋든 리니지의 현재 무기 유행을 춘추전국시대와 비견하곤 한다. 무기에 따라 즐길 수 있는 컨텐츠도 달라지고, 플레이 스타일도 달라지게 되기 때문에.
무기 유행의 히스토리를 보면 리니지의 역사가 보인다. 리니지는 역사가 긴 게임인 만큼 숨어 있는 재미 요소도 굉장히 많다. 고된 사냥을 잠시 멈추고 또다른 시각으로 리니지를 살펴보면, 혹은 되돌아 보면 재미있는 요소를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