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주집 문집 제9권 / 묘갈명(墓碣銘)
종부시 정 전공 묘갈명 병서〔宗簿寺正全公墓碣銘 幷序〕
내가 젊어서 조정에 나와 성지(性之) 전이성(全以性) 공과 교유하였다. 전공은 나보다 6년 앞서 병오년(1606, 선조39)에 명경과(明經科)에 합격하였는데, 나와 함께 조정에 출입하며 제조(諸曹)의 낭관(郞官)을 지냈다. 그 뒤에 두 번 변방 막부(幕府)의 종사관이 되고, 다섯 번 군수와 현감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때마다 나와 헤어질 때면 매우 아쉬워하며 한참 뒤에야 떠나곤 하였다. 도성에서 벼슬할 때는 날마다 만나 두터운 정의로 매우 즐겁게 지냈다. 그러나 동년배들 가운데 조급하게 다투며 서둘러 높은 벼슬에 나가려고 하는 사람들과는 결코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다. 대개 처음 벼슬에 나왔을 때 권력 있는 신하와 서로 연줄이 있어서 그의 문하에 들어오도록 요구하였으나, 공은 맹세코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지 않았으니, 평소 세운 거취(去就)의 기준이 이와 같았다.
관직을 맡아서는 자신을 청렴하게 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데 최선을 다하였으므로, 백성들이 모두 사랑하고 존모해 마지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고성(固城)과 합천(陜川)에 세워진 거사비(去思碑)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의(時議)가 서둘러 공을 좋은 벼슬에 오르게 하려고 하였으나, 공은 욕심 없이 담담한 자세를 스스로 견지하여 일찍이 권세가를 찾아다니며 명성을 추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끝내 내직과 외직에서 부침을 겪다가 종부시 정(宗簿寺正)으로 삶을 마쳤다.
지난 갑자년(1624, 인조2)에 내가 원수 장만(張晩)을 따라 역적들을 뒤쫓아 황해도에 갔다가 동양산성(東陽山城)에서 공을 만났는데, 모습이 평소와 변함없는 것을 보고 더욱 전아한 풍도에 감탄하였다. 순찰사(巡察使)가 공에게 격문을 보내 안서(安西 황해도 해주)로 달려가 군량을 감독하여 넉넉하게 하라고 하였는데, 공의 노력 덕분에 군량이 떨어지지 않았다. 난이 평정된 뒤에 그 공로가 가장 높게 평가되었지만, 공로는 사실상 다른 사람 차지가 되었다. 내가 옆에서 그 장면을 보면서 웃었는데 공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나 끝내 원종훈(原從勳)을 인정받아 승정원 도승지(承政院都承旨)에 추증되었다.
용궁 전씨(龍宮全氏)는 고려 시대 축성군(竺城君) 원발(元發)이 널리 알려진 선조(先祖)이다. 그 뒤로 관직에 나간 인물이 계속 이어져 처사공 휘(諱) 행(緈)에 이르렀는데, 이분이 공을 낳았다. 그때가 만력(萬曆) 무인년(1578, 선조11)이니, 별세한 병술년(1646, 인조24)과는 69년의 차이가 있다. 부인은 창원 황씨(昌原黃氏)이다. 네 아들은 상구(尙耇), 후구(厚耇), 익구(翼耇), 유구(裕耇)이고, 두 딸은 정시열(丁時說)과 이기광(李基廣)에게 출가하였다.
아아, 세월이 덧없이 흘러 벗들이 모두 고인이 되었는데, 나만 덩그러니 살아남아 죽은 사람을 위해 그 묘도(墓道)에 명(銘)을 쓰고 있으니, 무엇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만나면 어울리고 헤어지면 그리웠으며 / 合相處睽相思
젊어서는 즐거웠는데 늙어서는 서글퍼라 / 少相驩老相悲
어느덧 늙고 또 죽어서 / 旣老旣死
그 무덤도 황량하니 / 旣荒其埌
빗돌에 글 새겨 / 載詞在石
서글픈 마음 부치노라 / 以寓愴悢
[주-D001] 갑자년에 …… 갔다가 :
1624년(인조2)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민구는 도원수 장만(張晩, 1566~1629)의 종사관이 되어 종군하였으며, 당시 지은 한시를 모은 것이 《동주집(東州集)》 전집(前集) 권2의 〈종군록(從軍錄)〉이다. 장만의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호고(好古), 호는 낙서(洛西)이다. 이괄의 난 때 관군과 의병을 모집해 이를 진압하여 진무 공신(振武功臣) 1등에 책록되었고,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올라 옥성부원군(玉城府院君)에 봉해졌다. 《遲川集 卷19 贈大匡輔國崇祿大夫……玉城府院君贈諡忠定公張公行狀》
[주-D002] 전원발(全元發) :
본관은 용궁(龍宮), 호는 국파(菊坡)이다. 고려 말기에 원나라에 가서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병부 상서 집현전 태학사에 오르고 영록대부(榮祿大夫)에 가자되었다. 뒤에 귀국하여 축산부원군(竺山府院君)에 봉해졌다.
ⓒ 충남대학교 한자문화연구소 | 강원모 오승준 김문갑 정만호 (공역) |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