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5. 20 – 5. 26 경인미술관 2관 (T.02-733-4448(9), 인사동)
새로 보다-아픔 그리고 희망
선우 현 개인전
글 : 연문희 (미술학 박사)
예술작품은 현실적인 세계를 기반으로 일상에서 전개되는 상황이 작가의 감정에 이입되어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부여된 현재의 세상에서 주체자에 따라 모두 다른 것을 경험하기 때문에 예술작품들은 각기 다른 고유의 개성을 지닌다. 이렇듯 현재 작가의 심경이 어떠한지 그래서 무엇에 주목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표현하려 하는지는 작품의 알레고리로 해석된다.
선우 현 작가가 30년의 직장 생활을 마치면서 뒤늦게 그림을 시작한 동기는 그 앞에 놓인 우울한 현실과 전부터 갖고 있던 그림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그는 갈대 더미, 풀잎 등을 작품의 소재로 작업을 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무심코 지나쳤을 더미나 물에 투영된 풀잎과 같은 작품의 소재는 실제로 존재하나 그 존재의 의미가 미약하여 버려진 혹은 감춰져 있던 장면이다. 그는 이런 것들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 <더미 속에서>는 겨울 내내 온갖 풍파를 겪으며 쓰러진 갈대 더미가 그대로 쌓여있다. 더미는 그가 처했던 어려운 시기에 시야에 들어온 대상으로, 수없이 쌓아올린 메마른 풀잎은 작가의 고통스러운 시기의 흔적을 보여준다. 거기엔 추상적이거나 상상적인 요소는 찾을 수 없고 사물을 그대로 묘사한 현실의 구체적인 대상만이 묘사되었다. 하지만 그의 정성 어린 붓질에서 능란하고 기교적인 효과보다 더 큰 심미적인 순수함을 엿볼 수 있다. 하나하나의 줄기에 몰입하며 시간을 담은 작가의 성실한 붓질이 수없이 메마른 갈대의 수만큼 고스란히 쌓여 더미를 이뤘다. 그는 더미만을 그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조금씩 움트는 새로운 생명을 묘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소멸과 생성의 뫼비우스 띠와 같은 세상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이렇게 자신의 내적 심경을 그림으로 치유해 나가는 작가의 태도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작가가 평상시 눈여겨보지 않았던 그래서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사물에 관심을 가지고 자아성찰과 치유의 의미로 그린 그림을 관조하길 바란다.
“초봄의 이른 아침 양재천 변. 지난해 무성했던 수많은 갈대가 그 생명을 다하고 쌓이고 쌓여 수북하게 메마른 더미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 더미 사이로 봄을 알리는 여린 잎들이 새로운 생명을 힘차게 이어갑니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도 끊어질 수 없는 삶의 본질과 아픔을 이겨내는 희망을 봅니다.“ - 선우 현 작가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