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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나이지리아는 선거민주주의 도입으로부터 정확히 100주년을 맞는 2023년에 2월 25일부터 3월 18일까지 일정으로 총선을 진행했다. 나이지리아는 영국 식민 당국이 의회에 참석할 라고스(Lagos) 및 칼라바르(Calabar) 현지 대표 4인의 선출을 규정한 1922년 클리포드 헌법(Clifford Constitution)을 도입한 직후인 1923년에 사상 첫 선거를 치른 바 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의 선거민주주의는 그 긴 역사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문제를 드러난 사례가 많은데, 현지 선거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바로 투표 및 선거운동을 둘러싼 폭력의 빈발이다(Adebanjo, 2022). 이처럼 선거기간에 발생한 폭력사태는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나이지리아는 선거 폭력사태를 통제 및 근절하기 위해 군부대를 배치하는 등 여러 안정화 전략을 동원해 왔다. 이러한 조치의 필요성이 가장 크게 드러난 사태는 바로 2011년 대선 결과가 발표된 직후 발생한 대규모 폭력사태로, 당시 소요로 인한 사망자 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장성 출신의 압둘살라미 아부바카르(Abdulsalami Abubakar) 전 대통령을 위시한 주요 정계 지도자들은 평화위원회(NPC, National Peace Committee) 수립이라는 대응책을 내놓았다. 본 위원회는 주요 정당과 후보를 대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평화선거 합의문에 서명하도록 하고, 지지자들이 선거 과정에서 평화적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통제할 것을 주문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2015년부터 작동에 들어간 이 제도가 지금까지도 이어져 선거철마다 주요 후보들이 모여 평화선거 합의문에 서명하고 서로 악수하며 단체사진을 찍는 행사가 개최되지만, 선거 폭력은 여전히 근절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다(Adebanjo, 2022).
그렇다면 나이지리아의 선거에서는 왜 폭력이 빈발하며, 공안 당국은 어째서 이러한 사태를 막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나이지리아 선거관리위원회(Independent National Electoral Commission, 이하 ‘선관위’)는 광범위한 폭력사태 발생에도 불구하고 왜 기존의 선거 진행방식을 고수하고 있는가?
나이지리아 선거 폭력의 역사
독립 이후 나이지리아의 선거사는 폭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기록에 따르면 독립 직후 1964~1965년에 열린 최초의 선거에서도 폭력사태로 2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특히 역사책에서 웨티 작전(Operation Wetie)이라 칭하는 사태가 일어난 남서부 지역의 인명피해가 극심했다(Omipidan, 2018). 이러한 폭력사태와 대규모 선거 결과 조작 사태가 불거지자 군부가 이를 명분 삼아 1966년에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나이지리아의 민주질서는 단절 사태를 맞게 되었다.
또한 1979년에 군부로부터 정권을 이양받은 문민정부 아래 시행된 1983년 총선 직후에도 대규모 폭력사태가 발생한 역사가 있다. 당시 선거운동 기간에는 주요 정당 지지자들 사이의 충돌이 비일비재했고, 나이지리아 선관위의 전신인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DECO, Federal Electoral Commission)가 개표 결과를 발표한 이후에도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폭력으로 다수의 시민이 목숨을 잃고 재산피해도 발생했다(GBJ, 2023).
이후 이브라힘 바빙기다(Ibrahim Babangida) 장군 휘하 군부정권이 문민통치로의 복귀를 느린 속도로 진행하던 시기에는 대체로 심각한 폭력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1993년 6월 12일에 치러진 선거 결과가 무효 처리된 사태는 결국 대중적 공분과 시위사태로 이어졌다. 당시 나이지리아 경찰 당국이 무력을 통해 시위를 진압하면서 발생한 평화적 시위대와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의 수는 약 100명 이상인 것으로 집계된다(Adebanjo, 2022).
한편 나이지리아의 민주주의가 회복된 1999년 이후로도 문제는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일례로 올루세군 오바산조(Olusegun Obasanjo) 전 대통령이 집권했던 1999년 대선이 부정선거라는 의혹이 촉발한 대규모 폭력사태는 약 80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2003년의 연방·주정부 선거 직후에도 1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로부터 4년 후인 2007년에도 유사한 사태로 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개표 결과가 발표되기도 전에 이미 7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것으로 추산된다(ICG, 2023).
<그림 1> 나이지리아 2023년 선거 당시 정치깡패들이 투표지를 훼손하는 장면
자료: Vanguardngr.com(2022년 3월 30일 기사), van Zeijl (2003)
하지만 선거 폭력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해는 2011년으로, 동년 선거 직후 나이지리아 북부 12개 주에서 3일간 계속된 소요사태로 인해 최소 800명의 시민이 참변을 당했다(HRW, 2011). 국제위기감시기구(ICG, International Crisis Group) 측 자료에 따르면 뒤이은 2015년 총선에서도 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고(ICG, 2023), 유럽연합(EU) 선거감시단은 2019년 총선 폭력사태의 희생자 수를 약 150명으로 추산한다(Sanni, 2019).
NPC의 수립이 선거 폭력에 미친 영향
나이지리아에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선거를 정착시킨다는 취지로 주요 인사들이 기획한 민간 차원의 구상인 NPC는 2015년 총선을 앞두고 이전 위기의 재림을 막기 위해 탄생한 것이다. 폭력사태의 희생자 규모가 엄청났던 2011년 선거 때와 동일한 후보들이 2015년 선거에도 재차 출마하자 당시 나이지리아에는 4년 전과 유사한 참사의 재현에 대한 우려감이 팽배했다. 따라서 NPC는 2015년 선거가 전·후 기간의 법과 질서 붕괴 없이 순조롭고 평화롭게 이루어지도록 대안적 분쟁 해결수단을 모색했고, 그 결과 양대 주요 후보였던 굿럭 조너선(Goodluck Jonathan) 대통령과 그의 경쟁자 모하마두 부하리(Muhammadu Buhari) 장군이 평화선거합의문에 서명하는 소정의 성과를 거두었다. 여기에 더해 조너선 대통령이 의외로 공식 개표 결과가 공개되기도 이전에 패배를 순순히 승복한 점도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높아지던 긴장을 완화하는 데 일조했다(IGC, 2023). 이 선거 이후 NPC는 나이지리아가 예상보다 평화로운 선거를 치러내는 데 수행한 공적을 인정받아 중앙·지방정부 선거 절차의 정례화된 요소로 자리잡았다.
<그림 2> 나이지리아 2019년 선거 당시 지역별 선거 폭력 사상자 규모
자료: Osiwa, 2019(집계기간 : 2018.11.16 ~ 2019.3.10)
하지만 주요 후보 및 정당이 평화선거 합의문에 함께 서명하도록 독려하는 NPC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이지리아의 선거 폭력 문제는 여전히 근절되지 못한 상태이다. 특히 후보·정당 간 중재를 바탕으로 각 지지층이 폭력에 가담하지 않도록 통제한다는 NPC의 구상은 지금까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며, 폭력사태 피해자 구제 노력도 큰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비록 나이지리아 경찰 당국이 선거범죄 주모자 일부를 체포하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으나 이들을 기소하는 절차는 난관에 부딪친 상황이고(Punch, 2023), 유관 문제 해결을 진두지휘하기 위한 선거범죄위원회 신설안을 담은 법안도 상원에서는 통과되었으나 하원에서 계류하며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Punch,2022).
2023년 선거 폭력 동향
카타르 매체 알자지라(Al Jazeera)의 펨커 반지즐(Femke Van Zeijl)은 나이지리아의 2023년도 선거 또한 심각한 폭력 문제를 겪고 있음을 세계에 생생한 사진으로 알렸다. 그녀가 촬영한 사진에 등장하는 10명의 정치깡패들은 라고스에 소재한 투표소를 돌아다니며 총을 쏘고 투표 절차에 훼방을 놓았는데, 정작 유권자 보호를 위해 배치된 보안인력은 이들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다(Van Zeijl, 2023). 또한 미국 정치인 출신으로 라고스의 선거 현황을 관찰하고 돌아온 스테이시 에이브럼스(Stacey Abrams)도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선거 당일에 발생한 폭력의 정도와 유권자들이 느끼는 공포감이 심각한 수준이었음을 증언했다(Akinwotu, Chang & Abrams, 2023).
나이지리아의 일간지 뱅가드(Vanguard)에 따르면 비단 라고스뿐만이 아니라 전국의 모든 주에서 선거 당일 폭력사태가 보고되었다(Vanguard, 2023). 많은 외부인들은 나이지리아 전국 17만 6,846개 투표소에 배치된 대규모 보안 인력이 정치깡패들의 횡포를 전혀 제지하지 못하고 있는 데 놀라움을 표하지만(Suleman, 2023), 나이지리아 선거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이들은 폭력행위의 주모자들이 사실상 법의 제재를 전혀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하는 현상을 이미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인다(Ajayi, 2023; Operobi 2023). 나이지리아 선관위가 집계하는 무효표의 개수나 선거 유보 판정 빈도는 폭력사태가 선거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나이지리아에서는 1·2위 후보 간 표차가 무효표 수에 미치지 못할 때 해당 선거에 유보 판정이 내려지는데, 2023년 선거에서는 케비(Kebbi)주와 아다마와(Adamawa)주의 주지사 선거, 그리고 24개 주 2,000개 투표소에서 치러진 94개의 연방주의회 의원 선거가 유보 판정을 받았다. 이에 따라 4월 15일의 추가선거에서는 유보 상태에 있는 선거 결과와 당선인을 확정하기 위한 투표가 진행되었다(Suleiman, 2023).
나이지리아의 2023년 선거에서 폭력사태를 부추긴 요인으로는 민족·종교적 갈등을 바탕으로 집단 간 대립을 조장했던 주요 정당들의 선거운동을 들 수 있다. 일례로 라고스에서는 나이지리아 현 집권당 인사 중 일부가 소수민족인 이그보(Igbo)족 유권자들이 야당을 지지할 것을 우려해 이들이 투표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공개적으로 위협한 사례가 발생했다. 나이지리아 경찰 당국은 SNS상에서 급속히 퍼져나가던 이 위협에 미지근한 대응으로 일관했고, 선거 당일에 폭력사태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에도 배치된 보안인력은 이를 막는 데 아무런 손을 쓰지 못했다(TonyRazor, 2023).
<그림 3> 정치깡패들의 폭력행위로 엉망이 된 라고스의 투표지 취합소
자료: Vanguardngr.com(2023년 3월25일 기사)
나이지리아 정부 측 공식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선거일 직전 1개월간 전체 36개 중 22개 주에서 총 50개 이상의 폭력사태 발생이 보고되었으며(Kwen, 2022), 이 중 일부는 인명피해로 이어져 이모(Imo)주, 에누구(Enugu)주, 카두나(Kaduna)주 등지에서는 선거에 출마한 후보나 정당 지도자가 목숨을 잃는 사태가 벌어졌다(Ayodele, 2022; Sahara Reporters, 2023). 시민단체 민주주의·개발센터(Center for Democracy and Development)는 선거 전후 약 3개월간 발생한 109건의 사망사건이 선거 폭력과 연관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Olugbode, 2023), 선거 당일 하루간 발생한 사망자 수도 39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난다(Opejobi, 2023). 하지만 나이지리아 선거폭력 범죄가 항상 그렇듯이 이러한 사망사건의 범인이 체포되어 기소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나이지리아 경찰은 2023년 선거철에 200명 이상의 선거범죄자가 체포되어 이 중 50건을 나이지리아 선관위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홍보하지만, 정작 선관위는 범죄인 기소권을 보유하지 못한 기관이라는 점에서 이는 큰 의미가 없는 조치이다.
한편 법제화를 통해 기존 선관위에서 일부 기능을 분리해 선거범죄 관련 특수기관을 창설한다는 구상 또한 여전히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Punch, 2022). 광범위한 폭력사태와 각종 선거부정 사례가 속출하는 나이지리아에서는 선거의 정당성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면서 많은 낙선인들이 개표 결과에 불복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다. 지금까지 2023년 선거와 관련해 각 정당 및 후보가 제기한 소송건은 400건 이상이며, 이 중 5건은 범진보회의(APC, All Progressives Congress) 소속 볼라 티누부(Bola Tinubu) 후보의 당선인 확정에 이의를 제기한다(Toromade, 2023). 게다가 이번 선거가 치러지기 이전에 이미 접수되었던 600건 이상의 소송 또한 선거가 끝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마무리되지 못한 상황이다(Oyeyemi, 2022).
결론
인구 규모에서 아프리카 최대의 민주국가인 나이지리아에서는 안타깝게도 투표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의 폭력이 주요 선거 수단으로 자리잡았으며, 특히 반대 세력 지지율이 높은 지역을 폭력행위의 대상으로 삼는 사례가 다발한다. 2023년에 치러진 선거 또한 각종 폭력과 개표결과 조작이라는 오명으로 점철된 이전의 선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기술 분야의 혁신에 고무되어 기존에 비해 선거에 더욱 열성적으로 참여했던 나이지리아의 일반 민중 입장에서 이번 선거의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으며, 이에 따라 대선일이었던 2월25일 이후에 실시된 여타 선거에서는 유권자층의 좌절과 무관심이라는 새로운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이미 나이지리아 선거 전반에 걸쳐 깊이 뿌리내린 선거 폭력과 결과 조작이라는 행태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선거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이 불가피한 것으로 진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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