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은 우리의 구심점 하나된 英 만든 대관식”
[찰스 3세 대관식 르포]
영국인들 폭우 뚫고 런던 도심 모여
6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린 대관식을 마친 찰스 3세 영국 국왕이 버킹엄궁으로 돌아와 군중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런던=AP 뉴시스
“왕실은 항상 우리의 구심점이에요. 존경할 만한 어른이 있어 참 다행입니다.”
6일(현지 시간)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이 열린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처에서 만난 영국인 마거릿 포셔 씨가 이같이 말했다. 비옷을 입고 국기인 유니언잭을 등에 두른 그는 “왕관이 왕의 머리에 닿는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버킹엄궁, 웨스트민스터 사원 인근을 비롯해 런던 도심은 폭우에도 70년 만에 치러지는 ‘역사적 순간’을 함께하러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이들로 빼곡했다. 오전 6시부터 거리에서 대관식과 ‘왕의 행렬’을 지켜볼 수 있는 구역에 관람객들이 입장했다. 구역 밖에도 행렬을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며칠 전부터 자리를 잡은 노숙 텐트가 즐비했다.
이번 대관식은 처음으로 소셜미디어로 생중계됐다. 그럼에도 영국인들은 궂은 날씨를 뚫고 모인 이유에 대해 ‘하나 됨을 느끼기 위해서’라고 입을 모았다. 팬데믹 이후 고물가와 경기 침체로 힘든 현실에서 대관식을 계기로 새 시대를 염원해 보겠다는 취지다. 변호사인 수전 마텔 씨는 “그간 왕실에 무심했는데 오늘 대관의 순간 ‘신이여 왕을 지켜주소서(God save the king)’라고 다 같이 외치니 하나가 된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찰스 3세 “섬김받지 않고 섬길것”… 女사제-흑인 참석 ‘포용 대관식’
[英 찰스 3세 국왕 대관식]
70년만의 英국왕 대관식
찰스 3세 “모든 신앙과 믿음에 축복”… 다양한 인종-종교 혼합된 현재 존중
왕비 前남편-차남 해리왕자도 참석… 총비용 1700억원, 경제효과는 10배
“신이여, 국왕을 지켜주소서!” “폐하, 만수무강하소서!”
6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치른 찰스 3세 국왕(가운데)이 양옆에 성공회 사제들을 대동한 채 ‘성 에드워드 왕관’을 쓰고 앉아 있다. 런던=AP 뉴시스
6일(현지 시간) 찰스 3세 영국 국왕(75)의 대관식이 열린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가 보석 444개가 박힌 무게 2.23kg의 성 에드워드 왕관을 찰스 3세 머리 위에 씌운 순간, 하이드파크에서 이 장면을 대형 전광판으로 지켜보던 군중은 이같이 외치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폭우에도 우비와 유니언잭 무늬의 가발을 쓴 채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폴 올리버 씨는 “우리 대부분에겐 아마 다시 못 볼 순간”이라며 “팬데믹 이후 힘든 시절을 지낸 우리가 단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찰스 3세(왼쪽)가 6일(현지 시간) 자신의 대관식 후 같은 장소에서 커밀라 왕비와 손을 흔들고 있다. 런던=AP 뉴시스
1066년 윌리엄 1세부터 시작된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관식이 1953년 찰스 3세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 여왕(1926∼2022) 대관식 이후 70년 만에 열렸다. 이번 대관식은 1000년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인종과 여성을 참여시키고 커밀라 왕비의 전남편과 가족들을 초청하는 등 포용성을 부각시켰다.
● “모든 믿음에 축복이 되기를”
“내가 모든 신앙과 믿음을 가진 당신의 모든 자녀에게 축복이 되어 우리가 함께 온유의 길을 발견하고 평화의 길로 인도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왕위 계승 1순위인 윌리엄 왕세자(가운데)는 이날 대관식에서 아버지의 볼에 입맞춤하며 경의를 표했다. 런던=AP 뉴시스
찰스 3세는 역대 국왕들이 대관식 때 전통적으로 입은 ‘국가 예복’ 차림으로 제단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영국 국교 성공회의 수장인 국왕이 대관식에서 ‘모든 신앙과 믿음에 축복’이라고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000년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인종과 종교가 혼합된 영국의 현재를 존중한 부분으로 풀이된다. 그는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섬기라고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당신의 진리를 깨닫게 해달라”고 말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힌두교도이지만 총리로서 성경 골로새서 1장 9절에서 17절을 낭독했다. 대관식 사상 처음으로 찬송가가 공식어인 영어 외에 웨일스어, 스코틀랜드어 등 지역 언어로도 불렸다.
여성 사제가 대관식 역사상 처음 참석했고 흑인 여성인 플로엘라 벤저민 남작이 국왕의 비둘기 홀을 흔들어 여성의 역할이 부각됐다. 페니 모돈트 집권 보수당 하원 원내대표 겸 전 국방장관은 이날 대관식에서 군주의 위엄을 상징하는 ‘국가의 검’을 여성 최초로 들었다. 그는 약 1시간 동안 길이 121cm, 무게 8파운드(약 3.6kg)에 달하는 이 검을 흔들림 없이 들어 가디언 등으로부터 “쇼의 주인공”이란 평을 얻었다.
70년 뒤엔 아들이 발코니 인사 주인공 1953년 엘리자베스 2세 당시 영국 여왕의 대관식 후 버킹엄궁 발코니에 등장한 여왕의 장남 찰스 3세(점선 안). 런던=AP 뉴시스
‘재혼 왕비’인 커밀라 왕비의 전남편 앤드루 파커 볼스도 참석한 가운데 둘 사이의 손주들이 버킹엄궁 발코니 인사 때도 등장했다. 찰스 3세의 차남 해리 왕자도 부인 메건 마클 없이 대관식에 나타났다.
● ‘대관식 효과’ 노리는 英
팍팍한 경제 여건을 반영해 대관식 규모는 70년 전보다 비교적 간소화됐다. 하지만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이날 대관식 비용은 최소 1억 파운드(약 1700억 원)로 추정된다. 왕실은 사치를 막았다고 강조하지만 ‘세금 낭비’란 비판은 여전하다.
대관식 뒤 황금마차 타고 버킹엄궁 이동 대관식이 끝난 후 찰스 3세 국왕 부부가 ‘황금마차’를 타고 버킹엄궁으로 이동하고 있다. 런던=신화 뉴시스
이에 대해 버킹엄궁 대변인은 대관식의 경제적 효과가 약 10억 파운드(약 1조7000억 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런던 주요 호텔들은 일찍이 예약이 끝났고 한정판 대관식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엔 인파가 넘쳤다. 영국 소매연구센터는 대관식 행사 관련 수익을 종합하면 14억 파운드(약 2조34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영국계 네덜란드인인 매건 로이드 씨는 “팬데믹 이후 침체됐던 관광산업이 살아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대관식 당일 런던 도심에서는 군주제를 반대하는 시위도 일어났다. 경찰이 대관식 하루 52명을 체포하자 과잉 진압이란 비판도 나왔다.
런던=조은아 특파원
美 바이든 여사, 손녀와 우크라 국기 상징 색 맞춰입고 등장
[英 찰스 3세 국왕 대관식]
정상 100여명 등 203개국 대표 초청
바이든 트윗 축하, 시진핑은 축전 보내
코로나 진료 의료진 등 850명도 참석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부인 질 여사(오른쪽)와 손녀 피네건이 각각 우크라이나 국기를 연상시키는 파란색과 노란색 옷을 입고 6일(현지 시간)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이 열리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런던=AP 뉴시스
6일(현지 시간) 찰스 3세 영국 국왕의 대관식에 초청받은 각국 귀빈 또한 큰 관심을 받았다. 대관식에는 국가원수급 100여 명을 포함해 203개국 대표가 초청됐다.
남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대신해 미 대표단을 이끈 부인 질 여사는 손녀 피네건과 나란히 등장했다. 질 여사는 미국 디자이너 랠프 로런의 푸른색 스커트 정장, 피네건은 노란색 케이프 드레스를 입었다.
두 사람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두 색깔을 골라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 연대 의미를 강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질 여사는 식이 진행되는 동안 역시 남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그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의 바로 옆에 자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위터로 “미국과 영국의 지속적 우정은 양국 모두의 힘의 원천”이라고 축하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참석하지 않고 “중국과 영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평화와 협력을 장기적으로 추진하길 바란다”는 축전을 보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브리지트 여사, 영연방 국가인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부인 소피 여사, 역시 영연방 국가인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 등도 참석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를 포함해 영국 전현직 총리 8명도 참석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러시아를 돕고 있는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 등은 초청받지 못했다.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대신 대사급 고위 외교관이 초대받았지만 실제 참석자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참석한 ‘시민 영웅’도 주목받았다. 왕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기간 동안 활약한 소방관, 의료진, 자선단체 소속 청년 850명을 초대해 군주제 반대 여론을 누그러뜨리려 했다.
김수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