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강론>
(2024. 11. 21. 목)(마태 12,46-50)
복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6-50)”
1)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가족’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구원’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당신의 가족들과 친척들이 찾아온 일을 계기로 삼아서,
하늘나라에서 ‘당신의 참 가족’이 되는 방법을 말씀하신
것인데, 그 나라에서 예수님의 ‘참 가족’이 된다는 것은 곧
구원을 받아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는 것입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라는 말씀은,
‘어떤 사람’이, 또는 ‘어떻게 사는 사람’이
나의 참 가족이 될 수 있겠느냐? 라는 질문입니다.
(‘그들은 내 가족이 아니다.’ 라는 뜻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라는 말씀은, 산상 설교에 있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2)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신앙인들’ 가운데에서
첫 자리에 계시는 분이고, 신앙인들의 모범이신 분입니다.
성모님께서는 “믿을 수 없는 일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서 한 말은 모두 인간의 머리로는,
또는 상식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들에 관한 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성모님께서는 그 말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으셨고, 하느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셨습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37).” 라는 천사의
말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의 과학을 초월하고,
인간의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성모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믿으셨습니다.
동정녀가 남자의 도움 없이 아기를 잉태하는 것,
그 아기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고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라는 것, 메시아의 나라가 영원하다는 것 등은
인간의 과학과 상식을 초월하는 일입니다.
사실 믿을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이 죄는 아닌데,
믿지 못하면 하느님의 일에 참여하지 못하게 됩니다.
바로 그 점에서 성모님은 위대한 신앙인이십니다.
3) 성모님께서는 “내가 원하지 않아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직 결혼을 하기 전이고 동정녀인 자신이 갑자기 아기를
잉태하게 된다는 것은, 성모님의 입장에서는 원했던 일도
아니고, 그런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던 일이었는데도,
하느님의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기꺼이 순종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라는 응답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니
저도 그 일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각자 원하는 일들이 있고,
원했던 일들이 원하던 대로 이루어지면 은총을 받았다고
좋아하고 기뻐하다가, 원하는 일은 안 이루어지고, 원하지
않는 쪽으로만 가게 되면 하느님을 의심하거나 원망합니다.
<좋은 예가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의 인사 발령인데,
만일에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이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만
가겠다고 고집 부린다면, 교회는 그대로 병들어 버릴 것이고,
하느님의 뜻이 그들을 통해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더라도 기꺼이
순종하는 것, 그것이 성모님을 본받는 믿음의 자세입니다.
신자들이 본당에서 어떤 직책에 임명될 때 받아들이는 일,
또는 반대로 그 직책에서 물러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4) 성모님께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서 이집트로 피신해야만
했을 때에도 많이 고통스러우셨을 텐데, 그래도 하느님을
믿으셨기 때문에 절망하지 않고 고통을 참고 견디셨습니다.
성모님의 생애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때에, 사도들은 모두 달아나거나 숨어버리고, 다른 여자들은
극심한 슬픔과 고통 속에서 울고 있었지만, 성모님께서는
전혀 흔들림이 없으셨다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아마도 성모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예고한 일들이
십자가로 가로막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으셨을 것입니다.
5) 성모님께서는 “믿음과 순종이란 전적인 헌신”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루카 1,38).” 라는 응답의 말씀이
바로 그것을 나타냅니다.
이 말씀은, “종이 주인에게 복종하듯이 주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겠습니다.” 라는 뜻이고, 전적인 헌신을, 즉 당신의
전 생애를 모두 바치겠다는 결심을 나타내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 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은
성모님의 믿음과 순종에 그대로(첫 번째로) 적용됩니다.
[출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