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飜譯書>閔妃暗殺」⑥-3
민비는 창덕궁 그녀의 거실에서 식탁에 앉아 있었다. 젊은 궁녀들이 연이어 작은요리 접시를 들여온다. 궁정요리는 그렇지 않아도 가지 수가 많지만, 민비는 특히 건강이나 미용에 좋다는 식품을 추가하므로, 식탁 위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치 접시가 줄지어 있었다. 왕비의 긴 은 젓가락이 접시로 뻗어 정말로 적은 양의 요리가 입으로 옮겨간다. 은수저에 독이 묻으면 변색된다고 믿어, 독살을 경계하는 왕가나 상류계급은 옛날부터 이것을 쓰는 습관이 있었다.
연배인 여관(女官)이 궁녀들의 출입이 뜸해지는 것을 보고, 민비의 귓전에 가만히 속삭였다. 민비의 젓가락 한 개가 접시 위에 떨어져, 메마른 소리를 냈다. 그녀는 왼손으로 조용히 그것을 주어 올려 오른 손으로 옮기면서, 떨리는 것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것은, 경사스럽다.”
한 순간 늦게, 희미한 미소가 그의 말에 곁들여졌다.
여관(女官)은, “어제 밤 이 상궁이 남자 아기씨를 안산”하고, 소곤거렸다. 민비에게 있어 그것은 왕비가 된 이래 최대의 충격이었다. 여관의 말은, 틀림없이 고종의 첫째아들 탄생을 알리는 것이었다. 무슨 소린가! 왕비인 자기를 제쳐놓고, 이 상궁이 먼저 왕자를 얻다니!
가슴을 부채질하는 격한 두근거림에, 일시 식욕이 줄어들었다. 먹을 것을 입에 넣을 때마다 목구멍을 누르는 것 같은 저항을 느꼈으나, 민비는 그것을 참고 전과 같이 조용히 식사를 계속했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젓가락을 떨어뜨리는 방심에, 입술을 깨물었다. <두 번 다시 동요를 밖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하고 민비는 엄하게 자기를 꾸짖으면서, 이 상궁이 양반계급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고, 한층 강한 굴욕감을 느꼈다.
측실로 왕궁에 들어오는 내명부(內命婦)에는 이름난 집 딸이 많았고, 정일품의 위계를 받는 빈(嬪)을 최상위로, 귀인(貴人), 소의(昭儀), 숙의(淑儀), 소용(昭容), 숙용(淑容), 숙원(淑媛)의 일곱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상궁(尙宮)은 내명부와 달라, 일반적으로 양반계급 밑에 있는 중인계급의 딸들이 내인(궁녀)으로 어릴 때 왕궁에 들어가, 왕이나 왕비의 신변 시중을 들고, 제봉, 세탁 같은 각각 맡은 책무에 35, 6년 근무한 후에, 임금으로부터 정5품의 상궁 봉첩(奉牒)을 받아, ‘상궁’으로 불리는 신분이다.
따라서 상궁은 전부 중년 이상의 연배이지만, 예외로 젊은 궁녀가 임금의 총애를 받으며, ‘특별상궁’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는다. 그 중에는 내명부가 되어 7계급의 어딘가의 지위를 받는 자도 있는데, 고종의 첫째 아들을 낳은 이 상궁은 특별상궁의 지위에 있었다. 이 첫 아들은 후의 완화군(完和君)이다.
그 후, 거울 앞에선 민비의 자문자답은 길었다. 임금은 자기 아들의 탄생을 나에게 이야기 할까---하고 자기에게 물었고, 민비는 즉석에서 부정했다.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축하의 말을 해야 한다> 치밀어 오르는 격정을 억누르고, 그녀는 강하게 자신에게 명했다. <임금의 기쁨은, 왕비의 기쁨이라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왕과 일체라는 나의 높은 지위를 새삼 인상 주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민비는, 이 상궁에게 축하의 하사품을 보내기로 하였다. 그것은 왕비의 우위를 보이는 매우 훌륭한 물건이어야 했다.
어떤 자료를 봐도, 이때의 민비는 조금도 질투를 보이지 않았고, 이 상궁에게 축하품을 보내는 것 같은 자상한 배려를 보였다---는 이상은 쓰여 있지 않다. 그 “멋진 행위”의 이면에, 민비가 겪은 마음의 갈등은 상상으로밖에 알 수가 없다.
이튿날, 의식의 짬에 대기실에서, 민비는 정숙한 태도로 왕에게 왕자의 탄생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왕은 좀 놀라는 표정을 떠올렸으나, 곧 수줍은 듯한 미소를 민비에게 보내고,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 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아직 소년다운 몽실몽실한 뺨에 부끄러움을 띤 미소가 남아 있었다.
민비는, 감정을 전하는 임금의 미소가 처음으로 자기를 향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는 위로라고는 할 수 없으며, 지금까지 보여준 적이 없는 가까운 정이 배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린 왕과 왕비는 말없이 정원을 바라보면서, 잣을 띄운 인삼차를 마셨다. 민비는 자기가 훌륭하게 시련을 극복한 것에 적이 안도를 느꼈다.
하지만 민비의 시련은,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수행원도 데리고 오지 않고 들어온 대원군이 임금에게 “야--- 경사에요, 경사.”하고 의기양양하게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몇 번이나 하고도 아직 모자란다는 듯이 기쁨은 공공연했고, 이마에 불그무레하게 땀이 번지고 있었다.
“지금도 다시 왕자의 얼굴을 보고 왔습니다만” 하고 대원군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임금을 향해 영아(嬰兒)의 체격이나 얼굴 생김세, 건강하게 우는 소리 같은 것을 끝없이 높이 칭찬했다.
숱이 많아 뚜렷한 눈썹, 형형한 빛을 띤 큰 눈, 둘레가 두꺼운 코, 의지적인 입매와 그 아래 짧게 깎아 손질한 턱수염---아무리 보아도 왕족답게 단정한 대원군의 용모는, 언제나 위엄에 차 있었으나, 이와는 달리 1개월 쯤 전, 남연군묘 도굴사건이 일어나고 부터는, 격한 분노가 그대로 깊게 얼굴에 새져진 듯한 표정으로,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얼게 하고 있었다.
<그것이,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바뀔까. 그렇게 까지는>---민비는 손자를 얻은 기쁨에 얼굴 가득히 웃음꽃이 퍼지는 대원군의 옆얼굴을 응시하고, 긴 소매 속에 감추어진 손끝을 꼭 쥐고, 그이 말을 듣고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고 계속 의자에 앉아 있는 민비는, 흉중에서 솟아오르는 대원군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소리를 내고 전신의 혈관을 뛰어 돌아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방을 떠나는 대원군의 뒷모습을 눈으로 따라가면서, 그가 자기에게 의례적인 인사를 하기는 했지만, 끝끝내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대원군은 왕비인 나를 완전히 무시했다.--- 증오가 더욱 격하게 끓어올랐다.
머지않아 민비와 대원군은 생애에 걸쳐 운명적인 다툼을 겨루는 구적이 되지만, 민비의 시아버지에 대한 증오는 이날 실마리다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밤에도 민비는, 오랫동안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대원군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떠올리고, 그것을 곱씹었다.
대원군은 “안도(安堵)”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그 의미는 안다. 왕가에서 다음 임금이 되는 아들을 얻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다. 선왕 철종에 세자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표를 찌르고 고종이 왕위에 올랐으며, 대원군이 권력을 잡는 큰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세자의 유무는, 정체(政體)에 까지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대원군은 왕비가 아들을 낳지 않아도, 서출왕자를 세자로 세우면, 왕가는 안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왕의 총애를 받아, 왕자를 낳는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왕비인 내가 낳은 아들은 당연히 세자에 책봉되기 때문에, 다른 서출의 왕자기 몇 사람이 있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해 왔으나, 과연 그럴까.....>
민비는, “왕자의 얼굴생김새가 부왕보다도 조부인 나를 닮았다”고 말할 때 대원군의, 넋을 잃은 듯이 웃는 얼굴을 떠올렸다. <만일 대원군이 이상궁이 낳은 왕자를 무턱대고 사랑한다면, 내가 낳는 왕자를 제쳐놓고, 다음 왕이 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대원군에게는 바라는 것을 실현시킬 힘이 있고, 왕은 거기에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세도정치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극도로 걱정하는 대원군은, 세자의 친모는 왕비보다도, 중인계급 출신인 측실(側室) 쪽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민비는 거울 속의 자기 눈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듯이 날카로운 시선을 마주쳤다.
<어제 태어난 왕자는, 나에게 있어서는 매우 위험한 존재다. 언젠가는......> 이때 민비의 가슴에 싹튼 살의는, 십여 년 후 실행에 옮겨진다.
이윽고 민비는 긴장을 풀고, 타이르듯이 자센에게 말했다. <어떤 일이든지 신중해야 한다. 섣부른 행동은 파멸을 부른다. 역사에도 물어봐야 되겠지만.....>
제19대 숙종왕 때, 인현황후는 측실 장희빈(張禧嬪)이 낳은 왕자(뒤에 제20대왕 경종(景宗)을 저주했다는 억울한 죄로, 감고당(感古堂)에 6년간 유폐되었다. 제9대왕 성종의 윤비(尹妃/제19대왕 연산군의 친모)도 질투 때문에 폐후가 되었고, ‘사약의 형’을 받았다. 이것은 치사량의 독약을 받아, 자기 손으로 마시는 형으로, 형태는 자살과 비슷하나, 심리적으로는 아주 잔혹한 것이다.
왕조의 역사에 밝은 민비는, 나와 비교하여, 이들 비운의 왕비들을 생각했다. 왕비라는 신분은, 세자문제나 정치적인 투쟁에도 말려들기 쉽고, 정말 강력한 친정이라도 따르지 않는 한, 안전하다고 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아무런 뒷받침도 없다. 그러나 스스로 파멸을 부르는 것 같은 우행은 결코 하지 않는다. 오늘 내 가슴에 솟아난 대원군에 대한 미움이, 언젠가는 그가 바라는 길을 끊고, 그가 바라지 않는 바를 실현해 나갈 것이다. 증오란 그렇게 활용함으로써만이 진정한 증오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