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곡, 아이들, 가족, 밥, 꿈 그리고 사랑의밥집
민욱이네(가명)
내년이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민욱이는 아빠와 단둘입니다.
아빠는 일용직 일을 하시지만
일이 없으시면 리어커에 과일을 조금 가지고 노점을 하시기도 합니다.
열심히는 사시지만 항상 생활이 어렵습니다.
하루 한 끼를 민욱이와 아빠는 밥집에서 해결을 하지만
가끔씩 떨어지는 쌀 때문에 걱정을 합니다.
밥집에 오시면 밥은 넉넉하게 주셔서 감사하다며
미안한 얼굴로 반찬을 조금 더 달라하십니다.
어쩌다 밥집에 초장이나 쌈장 만들어 놓은 것을 보시고
혹 남은 거면 저 싸주시면 안되냐고 묻기도 하시지요.
싸드리면서 나도 좀 넉넉하게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보임이네(가명)
보임인 디자인 고등학교 1학년입니다
엄마는 자활근로 동네 청소를 하십니다.
보임이가 디자인 공부를 하기 때문에
아마도 물감이나 붓 재료들 값이 만만한건 아니라는 엄마의 걱정입니다
밥집을 이용하시며 항상 고맙다 말씀하시며
내가 아이 밥을 해주고 해야 하는데
한 끼 밥이라도 반찬 걱정 없이 골고루 먹이고 싶은 마음에
밥집 문턱을 넘는다 하고,
또 하나는 한 끼 식사라도 아껴
아이 공부에 필요한 재료라도 사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랍니다
동인이네(가명)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 갑니다.
집은 여기저기가 곰팡이요 물이 스며든 자리입니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어려서 할머니 댁에서 자랐습니다.
할머니 말씀은 가끔 엄마 이야기 한다고 하면서 마음에 상처가 깊은데
풀어 줄 수가 없어 답답하다고 하소연 하십니다.
요 하소연에 맞장구 치다 보면
할머니는 은근 슬쩍 당신에 몫 보다 많은 반찬을 집어 가십니다.
번번이 그러 하시지만 척추 수술을 하시고힘들어 하시는 할머니께서
오죽하면 하는 생각에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할머니 그러시면 안돼요"라고 못하고
항상 다음에는 꼭 해야지 하고 말아버립니다.
이렇듯 누구에겐 아무것도 아닌듯한 한 끼 밥과 반찬이 어떤 이에겐 꼭 필요한 것이 됩니다.
지금 누가 배고픈 아이들이 있냐 묻습니다.
배고픔에 대한 생각은 절대적 빈곤이 아닌 지금 우리시대에선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기에 밥집을 이용하는 우리 아이들, 우리들의 할머니들께 어찌 어찌 한 끼를 해결하기 보다는 이 시대에 맞는 어느 정도 걸 맞는 맞춤형 식사를 제공 하여야 한다 생각 합니다.
○ 사랑의밥집이 걸어온 길
외환위기로 인해서 국가 전체가 어려움을 겪던 1998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 어려움이 배가 되어 더욱 삶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달동네였던 난곡에도 이 폭풍은 비켜가지 않았습니다. 직장을 잃고 하루하루의 삶을 걱정하던 주민들, 그리고 연달은 가정의 불화, 방치되는 아이들..... 달동네의 삶은 점차 폐허가 돼가고 있었습니다.
동네가 점차 삭막해 지는 것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해 왔던 여러 단체들이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공부방, 야학, 교회, 도서관 등의 단체들이 이 문제를 함께 풀기 위해서 ‘난곡지역단체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게 되었고, 1998년 12월 가난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12월 ‘난곡지역 실업가정 겨울나기’ 사업을 시작하면서 결식아동 겨울나기 급식지원사업을 시작했고, 이듬해 2월 ‘사랑의밥집’을 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공부방과 연계해 100여명의 아이들의 저녁 도시락을 주는 형태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혹독한 겨울은 지나갔지만, 좀체 가난한 주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공부방과 연계한 도시락 지원사업은 끝났지만, 도시락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밥집’을 만들면서, 1999년에는 180여명 정도의 아이들이 도시락을 필요로 하게 되었습니다. 절반 정도는 외부의 지원금으로 충당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자발적 후원과 자원봉사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채 5평 정도 되는 공간 속에서 200여명에 가까운 도시락을 만들어 내는 일은 지금 생각해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사랑의밥집은 단지 도시락을 제공해주는 복지시설이 아닌, 아이들과 동네를 지켜주는 ‘지킴이’ 역할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독거노인들이나 생계 때문에 부모들이 며칠씩 집을 비우게 되는 가정은 밥집의 일꾼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밥은 잘 챙겨먹는지, 혹시나 안 좋은 길로 들어가지는 않는지, 아프지는 않는지.... 어떻게 보면 ‘엄마’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사랑의밥집의 꿈
가난한 사람들의 안식처였던 달동네 ‘난곡’은 도시재개발 계획에 의해서 2002년부터 철거가 되었습니다. 전세보증금 500여만원 정도로 살고 있던 주민들은 그 동네를 떠났지만, 멀리 갈 수는 없었습니다. 가까운 임대아파트(삼성동)로, 그나마 집값이 싼 아랫동네(난곡동)의 지하, 반지하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도시락을 받아가던 주민들도 여기저기로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 외부 관심도 받고, 그에 따른 후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흩어지고, 지하로 들어가게 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존재들’이 되었습니다. 사랑의밥집도 달동네의 철거와 함께 아랫동네로 내려왔지만 가난의 문제가, 결식아동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관악구청의 지원으로 인해 어느 정도 인원에게는 안정적인 도시락을 줄 수 있었지만, 그건 신림7동(난향동)의 아이들에게만, 그리고 행정적으로 기초생활보장법에서의 수급자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지원이었습니다.
여기저기로 흩어진 여전히 가난하고, 보이지 않는 아이들은 먼 길을 걸어서라도 도시락을 받으러 올 수 밖에 없었고, 구청지원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후원금과 자비를 들여서 도시락을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도 도시락을 줄 수 없나요?’라는 문의가 계속 오는 걸 보면 가난한 아이들의 밥, 건강, 영양의 문제는 여전해 보입니다.
현재, 사랑의밥집에는 구청지원대상 35명과 지원대상이 아닌 아동, 독거노인 35명 등 70여명이 도시락을 받아가고 있습니다. 주변에 밥을 더 주고 싶어도 재정이 모자라서 줄 수가 없습니다.
사랑의밥집은 밥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밥과 국, 좋은 반찬을 주고 싶습니다. 수급권자가 아니더라도, 부모님이 전혀 챙겨주지 못하는 아이들, 점심 한끼는 학교에서 무상으로 먹을 수 있지만, 저녁도 항상 걱정이고, 아침은 거르는 일이 다반사인 아이들에게도 밥을 주고 싶습니다.
밥집과 가까운 난향동에 살고 있지는 않더라도, 아이들이 오거나, 우리가 손뻗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아이들에게도 밥을 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최근 점차 늘어나고 있는 다문화가정이나 제대로 거동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시기에 맞는, 영양을 갖춘 음식을 이주민 엄마들이 아직 배우지를 못했다면, 음식을 제공해 주면서 직접 할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도 싶습니다.
○ 새로운 밥집을 꿈꾸며 - “온 동네가 행복한 밥집”
사랑의밥집이 시작된 지 12년이 되어 갑니다.
구청의 지원금이 줄어들고, 주변의 관심과 후원도 줄어들어 사랑의밥집도 운영을 하기 힘들 정도의 재정난을 겪고 있습니다. ‘문을 닫아야 하나’ 생각도 했었지만,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도시락을 받으러 오는 아이들과 할머니들이 눈에 밟혀 얼른 그 생각을 떨쳐 버렸습니다.
어렵더라도 다시, 우리 동네 아이들을 위한 밥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욱 적극적으로 알리고, 뜻있고 마음있는 후원자들과 함께 더 열심히 밥집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내년 4월경에는 장소를 이전해, 새로운 10년을 위한 밥집을 만들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동네의 더 많은 아이들, 가난한 가정들과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할 계획입니다. 부디 많은 관심과 후원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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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고마워요,마음 한켠이 따뜻해지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