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의상을 제작하도록 한 원동력에서 재미와 현실적인 필요성이 각각 얼마 만큼 비중을 차지하든 간에, 티리언 퍼플의 발명은 근본적인 전환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실용과 필요성이 아니라, 유희와 경이로움을 목적으로 한 발명으로 말이다. 옷의 기능에서 옷의 유행으로 초점이 전환된 셈이다. 자줏빛 염료가 반드시 필요한 사람은 없다. 자줏빛 염료는 말라리아를 예방하지도 않고 몸에 필요한 단백질을 공급하지도 않으며, 신생아 사망률을 낮추지도 않는다. 그저 멋져 보일 뿐이다. 특히 자줏빛 의상이 아주 귀한 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걸칠수록 말이다. (예병일의 경제노트) 무엇이 미래를 만들까. 그 미래를 창조하는 혁신은 어디에 깃들어 있을까. 혁신은 말랑말랑함, 부드러움에서 나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 존슨도 비슷한 말을 했더군요. 재미와 즐거움이 혁신을 만든다고 말입니다. 새로운 체험과 놀이, 놀라움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능이 진보를 가져다 주었다는 얘깁니다. 티리언 퍼플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4천여 년 전 에게해에서 발생한 미노아 문명. 그들은 뮤렉스 달팽이의 분비물로 아주 희귀한 색깔을 내는 염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자주색(purple)입니다. 그 염료는 페니키아 남부의 티르라는 마을에서 생산되기 시작했고, 이 마을 이름을 따 '티리언 퍼플'로 불리게 됐습니다. 멋진 느낌을 주는 티리언 퍼플은 이후 오랫동안 지위와 부의 상징으로 여겨지게 됐지요. 그런데 그 염료 1그램을 생산하려면 달팽이가 1만 마리 이상 필요했습니다. 선원들은 지중해 연안을 따라 뮤렉스 달팽이 서식지를 찾아나섰고, 한걸음 더 나아가 대서양의 거친 파도를 무릅쓰고 모험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북아프리카 해안에서 바다달팽이의 대량 서식지를 발견했습니다. 멋진, 그래서 지위와 부의 상징이 되었던 자주색 염료. 그 염료의 원료였던 뮤렉스 달팽이를 찾아 4000년 전 페니카아인들은 지중해를 벗어났고 그것이 대서양 항로 개척으로 이어졌습니다. 뮤렉스 달팽이가 선원들을 망망대해로 나오도록 유혹했고, 이것이 인류를 탐험으로, 종교의 자유나 군사적 정복을 찾아 나서게 만들었다는 얘깁니다. 놀이는 규칙을 깨고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는 행위입니다. 그런, 통상적인 규율의 적용이 유보되는 공간에서 미래가 탄생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게 하나 더 있지요. 그건 출발이라는 것. 그 출발을 완성하려면 규율이 더해져야합니다. 말랑말랑한 머리와 생각에서 시작된 혁신의 새싹을 의미있는 결실로 완성하는 것은 지루할수도 있는 꾸준함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