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신동 지봉로>

<창신동에서 혜화동 사이>

<한양성곽 - 창신동과 혜화동이 닿는 성곽길>

<창신동 내리막길 좁은 골목에 철거 위기의 ㅡ스레트 집>

<창신동 내리막길에 있는 봉제 거리 표식>
일상탈출 짧은 여행 41( 동대문구 - 창신동)
목필균
오늘은 친구 은숙과 내가 여중와 여고를 다녔던 창신동 일대를 돌아보기로 했다. 며칠 전에 TV에서 창신동 일대를 소개하는 것을 보니 풋풋했던 소녀시절이 떠올라서 친구와 약속한 것이다.
동묘역 9번 출구에서 만나 동덕여중고가 있었던 곳을 지나갔다.
역사 깊은 모교의 넓은 대지는 오래전에 거대한 아파트가 자리잡았고, 모교는 방배동으로 옮겨갔다. 6년은 다녔던 10대 소녀시절도 사라진 것 같아서 아쉬웠다.
창신초등학교를 지나니 산동네로 들어서는 지봉로 13길이 나왔다.
친구 은숙이는 이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며 산넘어 학교를 6년이나 다녔다고 한다.
그 시절에는 대중교통도 드물어서 대부분 1시간 정도 걸어다니며 통학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나도 중구 필동 산동네에서 이곳 창신동까지 대부분 걸어다녔으니 말이다.
창신동 일대가 재개발지역에서 벗어나 골목골목 정 많은 마을로 거듭나기에 주민들이 뭉쳤다는 이야기를 TV에서 들었다. 젊은 친구들이 주민들에게 봉제 기술을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 남아있는 몇 봉제공장에서 나오는 짜투리 천을 이용하여 친환경 가방이나 방석 등을 만들어서 이윤을 창출하는 일도 젊은이를 중심으로 퍼져가고 있다니 다행스러웠다.
젊은이들의 신선한 아이디어로 버려질 짜투리들이 활용된다는 것은 참으로 미래가 기대되는 일이다.
산길에 빼곡히 자리잡은 골목 집들을 따라가다보니 혜화동과 이어지는 성곽길을 만나고...마을버스가 산정수리 마을까지 드나들며 주민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었다. 예전에는 도보로 드나들던 산길에 도로가 생기고...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집들이 있어서 좋았다.
내려오는 길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스레트집이 있었는데... 아마도 주인이 떠난 듯 보여서 안타까웠다.
1960년대 후반까지 흔히 볼 수 있었던 서민들의 보금자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창신동은 인근에 있는 전국구 옷 도매상 평화시장이 있어서 연계 봉제공장들이 많았다.
지금은 인건비 싼 중국공장에 밀려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은 몇몇 봉제공장, 봉제 박물관이 있어서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보물 1호 동대문이 보이는 창신동 입구로 나오니 비좁은 골목 자체가 긴 시장골목이었다. 배달 오토바이들이 구불구불 휘젓고 다니고, 몇 십 년 전통 빵집이나 매운 족발집... 아. 1960년 시절 최고급 외식집이었던 <진고개>식당은 아직도 그 규모 그대로 남아있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30년 전통맛집에서 동태찌개로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동대문에서 종로 4가 까지 걸으며 텃밭에 뿌릴 작두통 씨앗과 상추 씨를 샀다.
오밀조밀한 추억들이 서려있는 곳을 찾는 이런 짧은여행이 백수생활을 재미있게 꾸며 준다.
첫댓글 저도 가끔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창신동하고 이화동이 성벽 하나로 나뉘어진 거, 재작년에 처음 알았어요. 오호~
자주샘도 가보세요
단종왕비 정순왕후 송씨가 고생하던 곳
사릉에 누우셨지만 남편은 멀리 영월에....
저는 찾아갔었습니다. 가슴이 아릿...
숭인동 살 때 동덕여중고 앞을 많이 걸었는데
직장 생활은 방베동 동덕여중고 옆에서 26년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