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ng Fanzhi 曾梵志 ( 1 9 6 4 ... )
가면 ... 연작 이후, 나는 한 손에 두 개의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린다 .
이 중 하나의 붓이 그림을 그리면 나머지 붓은 이 그림을 망친다 .
이로써 내가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것이 표현 될 수 있다 .
한 쪽에서는 창조를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파괴를 하니
모순된 상황이 연출된다 .
이러한 창작 과정과 사고는 새롭고 흥미로운 시도다 .
2 0 0 3 년 들어서 쩡판즈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작품 我 series를 선보였다 .
연속된 동그라미의 붓 터치가 미끄러진다.
덕분에 분명한 윤곽을 보였던 얼굴은 점차 사라지고,
그나마 알 수 있었던 개인의 정체성과 그 흔적은 동그라미 패턴 속으로 묻혀 버린다.
물감이 마르기 전 시작된 동그라미 붓질은 캔버스 구석구석을 점령해 나가며
화면 전체에 해체 , 파괴 , 부정의 느낌을 연출해낸다 .
이 같은 해체주의적 움직임이 반복될수록 추상성의 정도는 더욱 높아지고 ,
특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던 얼굴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몰개성의 익명성으로 변해버린다 .
가면 대신 추상화된 패턴 드로잉이 개인의 정체성을 지워가고 있는 셈이다 .
그러나 초점이 흔들린 카메라에 잡힌 얼굴처럼 , 왜곡된 홀로그램처럼
그것은 완벽하게 지울 수도 , 그렇다고 다시 재현할 수 도 없는 듯 하다 .
그림 이란 작가의 내적 충동과 주관적인 해석이 밖으로 표출되면서 얻어지는 것이지만 ,
이 과정 속에서도 보편적 법칙과 어느 정도의 객관적인 요소들을 반영해야만 설득력을 얻는다 .
쩡판즈는 이러한 이미지의 구축과 해체 과정을 통해
인위성과 자연스러움 , 구상과 추상 , 보편성과 주관 , 이성과 감성 , 의식과 무의식을
동시에 표현해 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찾아낸다 .
오른손에 두 개의 붓을 들고 동시에 움직이며
의식과 무의식의 만남을 조율하는 것이 바로 그 것이다 .
엄지와 검지 그리고 가운데 손가락으로 잡고 있는 첫 번째 붓이 훈련과 습관 ,
이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의 주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한다면 ,
그 옆 네 번째 손가락에 불안하게 자리하고 있는 붓은
보다 자연스러운 우연의 효과를 만들어 낸다 .
논리적 이성과 비논리적 감성 , 통제와 자유 , 객관과 주관 ,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 등
서로 상반된 개념으로 대변되는 이 두 반대 영역을
하나의 화면 속에서 균형있고 조화롭게 결합시키고 있는 것이다 .
이후 ... 쩡판즈는 마르크스, 마오쩌둥 등 역사적 인물 시리즈와
프란시스 베이컨 , 앤디워홀 , 루시안 프로이드 등 여러 초상 시리즈를 그렸는데
내면의 진실을 포착하려 했다 .
2 0 1 3 . 0 7 . 1 1 . 목 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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