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아람 기자의 新그림이 그녀에게]
화가 박수근, 소설가 박완서 만나 한국 최고가 145억원 그림을 남기다
한국 미술품 중 고미술·현대미술을 통틀어 가장 비싸게 거래된 작품은 어떤 작품일요? 해외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 조선 백자도, 점 하나 찍어 수억 원을 호가하는 이우환(78) 작품도 아닙니다. 한국미술품 중 최고가 작품은 박수근의 ‘나무와 두 여인’ 145억원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국민화가’ 박수근(朴壽根·1914~1965)의 대표작 ‘나무와 두 여인’(1962)입니다. 화가들은 대개 한 주제를 정하면 그 주제로 여러 장을 그립니다. 그렇게 그려가면서 완성도를 넓혀가지요. 2012년 경매에서 1억1992만2500달러(약 1355억7200만원)에 팔리면서 당시 역대 미술품 경매가 최고가에 올라 화제가 된 뭉크의 ‘절규’가 유화 두 점, 파스텔 한 점, 크레용 한 점으로 네 점이나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박수근 역시 1950년대 초부터 ‘나무와 두 여인’이란 주제로 10여 점 이상을 그렸습니다만,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그림이 바로 이 1962년작입니다.
박수근의 1962년작 '나무와 두 여인' |
이 그림은 원래 대상그룹 소유였어요. 그런데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2010년 115억원을 주고 사들여 서울의 한 화랑에 145억원에 팔았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또 다른 소장자의 소유입니다. 화랑에서 현 소장자에게 얼마에 팔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만, 어쨌든 현재까지 알려진 이 그림의 가격은 최소 ‘145억원’인 셈입니다. 이는 1996년 뉴욕 크리스티에서 841만 7500달러(64억원)에 팔린 17세기 ‘철화백자운용문 항아리’의 두 배가 넘고, 2007년 45억2000만원에 팔리며 한국작가 경매가 최고기록을 세운 박수근의 ‘빨래터’(1950년대 말)의 세 배가 넘는 값입니다. 대상그룹→서미갤러리 홍송원→서울의 한 화랑으로 소유자 바뀌어 ‘나무와 두 여인’이 박수근 작품 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아마도 ‘이야기의 힘’ 덕이 아닌가 합니다. 소설가 박완서(1931~2011)의 대표작 ‘나목(裸木)’이 이 그림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거든요. 박완서는 미8군 PX에서 일했던 시절의 체험, 그리고 당시 거기서 일했던 박수근과의 만남을 토대로 소설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 소설로 마흔의 나이에 등단합니다. 영화로도 만들어진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 덕에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가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게 된 것처럼, 문학이 그림의 가치를 빛나게 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지요. ‘나목’의 주인공 경아는 6·25가 터지는 바람에 대학을 휴학합니다. 미8군 PX 초상화부에서 미군들에게 그림 주문 받는 일을 하며 식구들을 먹여살리죠. 그 초상화부에서 ‘옥희도씨’라는 화가를 만나게 됩니다. 대학생이랍시고 ‘환쟁이’를 업신여겼던 경아는, 이상하게도 옥희도씨에게 자꾸만 끌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예술과, 그라는 인간에게 호감을 느끼면서 우물 안 개구리같았던 철없는 여대생에서 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지요. 박완서, 박수근 그림 모티브로 미8군 PX에서 일했던 시절의 체험, 당시 박수근과의 만남 토대로 ‘나목’출간 소설 속 ‘경아’는 ‘옥희도씨’에게 점차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우연히 그의 단칸방을 방문했다가 말라비틀어진 고목(枯木) 그림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아주 나중에, 결혼하고, PX도 그만두고, 아이가 생긴 후에, 옥희도씨의 유작전에서 ‘나무와 두 여인’을 만납니다. 헐벗은 겨울나무, 즉 ‘나목’을 가운데 둔 두 여자가 있습니다. 한 여자는 포대기로 아이를 업은 채 서 있고, 또 다른 여자는 머리에 임을 인 채 종종걸음 치며 지나갑니다. 소설의 맥락상, 아이를 업고 고목 옆을 지키고 선 여자는 경아가 약간의 질투심을 느꼈던 옥희도씨의 아내, 그리고 임을 이고 지나쳐가는 여인은 ‘스쳐가는 여자’였던 경아겠지요. 소설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S회관 화랑은 삼층이었다. 숨차게 계단을 오르자마자 화랑 입구였고 나는 미처 화랑을 들어서기도 전에 입구를 통해 한 그루의 커다란 나목을 보았다. 나는 좌우에 걸린 그림들을 제쳐놓고 빨려들 듯이 곧장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이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한 여인은 촌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 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枝)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 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나목은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 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 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나무와 여인'… 그 그림은 벌써 한 외국인의 소장으로 돼 있었다. -박완서, '나목', 열화당, 460~461쪽-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송운 사랑방'
Song Woon Art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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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지기님.. 고맙습니다.. 작품 즐감하옵고 모셔가서 학우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좋은자료 감사합니다.
기차와 자동차가 없는 시대로 다녀온 느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