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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참고말씀: 신6:5; 수21:21,38; 왕하10:28,29; 욥14:12; 사26:14,19; 미6:6-8; 요일4:20,21
읽을말씀: 호6:1-11
주제말씀: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첫째,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6:1)
본문은 무엇이라고 간곡히 외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1절 상) 어째서입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만이 그들의 유일한 정답이요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실로 인생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에만 해결될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회복시켜주실 것입니까? 찢으신 자리를 도로 낫게 해주시고, 치신 자리를 싸매어 주시며,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1절 하) 다 죽게 된 우리를 다시 곧 살리시며 엎드러진 우리를 신속하게 일으켜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2절)
참고로, 2절의 ‘이틀’과 ‘사흘’은 대귀적인 표현으로써 하나님께서 곧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신다는 뜻이며, ‘일으키시리니’라는 단어는 육체적 부활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때, “사람이 누우면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욥14:12 상) /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사26:14 상) / “주의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누운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들을 내놓으리로다.”(사26:19)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표 한 것이 분명합니다.
이 둘을 종합해보면, 2절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택한 자들을 신속히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는 것과 동시에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대망하였던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다른 말로 어떤 말이기도 합니까? 하나님을 힘써 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3절 상) 어째서입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하나님인 누구신지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나타내십니까? 새벽 빛 같이 어김없이 나타내십니다. 즉 밤이 지나면 반드시 아침이 오듯 하나님께서도 우리 가운데 자신을 어김없이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3절 중)
또한 어떻게 임하십니까? 이른 비와 늦은 비처럼 임하십니다. 즉 때를 따라 적절한 순간에 우리에게 임하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것입니다.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3절 하)
그러므로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늦었다고 하는 순간이 가장 빠르다는 말처럼, 지금이라도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유일한 정답임을 깨닫고, 신속하게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힘써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에 저질렀던 지난날의 과오들을 철저히 회개하려면, 하나님이 누구시며 어떤 일들을 해 오셨는지 부터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인애를 행하고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본문은 에브라임(북이스라엘)과 유다의 무엇을 질타하셨습니까? 그들의 인애 없음, 곧 그들의 쉬 없어지는 그들의 인애를 질타하셨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4절)
무슨 말입니까? 그들은 형식적인 제사행위만을 지속할 뿐,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절)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웃도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있는 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그 증거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으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20,21)
그러므로 하나님은 무엇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요청하셨습니까? 지금이라도 형식적인 제사를 그치고 너희의 진실한 인애와 하나님 알아가는 열심을 보이라고 말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절)
누구를 통해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신 바 있습니까? 선지자 미가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무수한 제물이 아니라 오직 정의와 인자를 사랑하는 것, 겸손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로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숫양이나 만만의 강물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6:6-8)
그런데도 에브라임과 유다는 어떠했습니까? 버젓이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께 반역을 일삼으며,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7절) 특별히 어느 곳들이 더욱 심각했습니까? 살인자의 도피성로 지정되었던 두 성읍, 곧 제사장들의 마을 길르앗과 세겜입니다.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8,9절) / “곧 살인자의 도피성 에브라임 산지 세겜과...”(수21:21 상) / “갓 지파 중에서 준 것은 살인자의 도피성 길르앗 라못과 그 목초지요...”(수21:38 상)
어디 그 뿐입니까? 종교의 중심지였던 벧엘에서도 하나님께 망령된 일, 곧 금송아지 숭배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10절) /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니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10:28,29)
세 성읍이 그 정도였으면 다른 성읍들을 보나마나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어찌 한다고 하셨습니까? 선지자들을 통해 미리 경고하신 말씀대로 그들을 죽이시며, 어두움 속에 숨은 모든 죄를 밝혀내는 하나님의 심판으로써 그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5절) 또한 그들에 대해 추수할 일을 정하시고 반드시 실행으로 옮기실 것입니다. “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11절)
지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혹 우리의 인애도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지는 않습니까? 이제라도 인애를 회복하되 하나님 알아가기를 힘쓰되, 형식적인 예배를 그치고 진실한 예배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자로 우뚝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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