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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혼자가 좋지만 혼자라서 불안한
사람들을 위한 사교 권장 에세이
제시카 팬은 가족 중 유일하게 내향적인 성격을 타고 태어났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과 다른 나를 꿈꿨다. 변화하기 위해서는 더 큰 세계에서 백지상태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국, 오스트레일리아를 거쳐 남편의 나라 영국에 정착했다. 하지만 내향적인 성향은 ‘피부에 생긴 습진처럼’ 좀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사우나에서 문득 자신의 삶이 바닥을 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직업을 잃었고, 친구들은 떠났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 책은 지독한 내향인의 1년 만기 외향인 체험기다. 밖에 나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오롯이 친교를 목적으로 모임에 참석하고, 스마트폰 앱으로 동네 친구를 만들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성공 여부를 떠나,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에도 세 번이나 도전한다. 외향인이 되어 보자고 결심한 그날부터 예전의 자신이었다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들만 찾아서 실행에 옮겼다. 이 도전이 꽤 흥미롭고 유쾌하다. 펜데믹으로 무수한 강제 집콕러들이 양산된 지금, 잊고 있던 외출 욕구와 사교 본능을 자극할 책이다.
👩🏫 저자 소개
제시카 팬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려 모인 친구들을 보며 감동의 눈물이 아닌 두려움의 눈물을 흘릴 정도로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 복도에서 혼자 어슬렁거리기, 구석 자리로 사라지기, 모임에서 일찍 도망가기,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자는 척하기가 특기다. 어느 날 문득, 직장도 친구도 없이 매일같이 소파에 구겨져 지내는 자신이 사실은 지독한 외톨이에다 우울증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조금만 더 열린 마음이었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지 궁금해졌고, 변화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딱 1년만 외향적인 사람이 되어 보기로 했다. 브라운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으며, 로열멜버른공과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디언Guardian] [데일리텔레그래프The Daily Telegraph] [스타일리스트Stylist] [컷The Cut] [레니 레터Lenny Letter] [제저벨Jezebel] [엘르Elle] [리파이너리29Refinery29] [토스트The Toast] [헤어핀The Hairpin]의 특별기고가로 활동 중이며 [바이스Vice]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있다. 현재 남편과 함께 런던에 거주 중이다.
📜 목차
추천의 말
작가의 말
들어가며
1 사우나에서 인생 2회차를 계획하다
2 기분이 좋아지는 가장 저렴하고 쉬운 방법
3 무대 공포증을 가진 TV 리포터
4 엄마의 수다는 출입 금지 구역이 없다
5 스물아홉 번의 거절 뒤에 알게 된 것들
6 약속을 취소할 그럴싸한 이유를 찾는 당신에게
7 내향인이 결혼식에 대처하는 자세
8 내 안의 고삐 풀린 망아지
9 무대 위, 조명 아래, 유체 이탈
10 내향인은 외롭지 않을 거라는 착각
11 썩은 달걀 냄새가 나는 온천의 교훈
12 내가 무대 위에서 사망한 그날 밤
13 마법의 버섯을 먹고 해리 포터가 되다
14 나는 1년에 한 번 한밤중에 피는 꽃
15 서로 모르는 10명의 사람을 모아 할 수 있는 최고의 일
16 나의 파란만장했던 1년
내향성에 관하여
감사의 말
주
📖 책 속으로
나는 내향적이라서 구덩이에 빠진 게 아니다. 어쩌다 보니 구덩이에 빠진 내향적인 사람일 뿐이었다. 내향적이라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세상에 많았고, 그들은 최선을 다해 자기 삶을 살고 있었다. 나도 구덩이에서 나오고 싶었다. 현재 내가 꾸리는 것보다 더 큰 삶이 나를 본질적으로 더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하려면? 뭔가 달라져야 했다.
일단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봤다. 수줍음 많은 내향적인 사람이 1년 동안 남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처럼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평소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려고 했던 위험한 사교 장소에 일부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면?
그런 경험이 인생을 달라지게 하진 않을까?
아니면 결국 다 포기하고 숲으로 들어가 풀이나 뜯어먹고 늑대 무리와 사이좋게 지내다가 영양실조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는 건 아닐까? 다시는 다른 사람과 관심도 없는 비트코인에 대해 논할 필요가 없어져, 혼자긴 해도 나름 행복한 상태로?
밑져야 본전이었다.
--- p.20 「들어가며」 중에서
“왜 옷을 입으셨어요? 미쳤어요? 옷은 벗으셔야죠!” 직원이 유리창을 통해 외쳤다. 그즈음 내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아뇨. 이렇게 할 거예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팔짱을 꼈다. 직원이 세 번째 찾아왔을 때, 결국 나는 이렇게 소리 질렀다. “빌어먹을! 그냥 좀 내버려 두세요!” 직원이 어이없어하며 가 버리자, 그제야 평화가 찾아왔다.
--- p.32 「1. 사우나에서 인생 2회차를 계획하다」 중에서
내 옆으로 지나가려고 할 때 그의 얼굴 앞으로 손을 흔들었다. 남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봤다. 놀란 표정이었다.
“실례지만, 제가 까먹어서…….” 나는 말끝을 흐렸다.
남자가 어서 말하라는 듯 나를 보았다.
“어, 그러니까 영국 여왕이 있던가요? 그리고, 있다면, 이름이 뭐죠?” 나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영국 여왕이요?” 못 믿겠다는 듯 그는 눈썹을 추켜세우며 내 질문을 반복했다.
“네, 있나요? 이름…… 이름이 뭐죠?” 내가 물었다.
“빅토리아 여왕이요.”
실현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상상해 봤지만, 이건 완전히 예상을 벗어난 대답이었다.
--- p.47 「2. 기분이 좋아지는 가장 저렴하고 쉬운 방법」 중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포기했던 어떤 일에 마침내 도전했을 때, 모든 건 다르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춤을 추고 싶었고, 달리고 싶었다. 행복과 안도감에 취한 나머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난 이제 진짜 토끼야! 진짜가 됐다고요!’라고 소리치고 싶은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평생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던 일을 내가 해냈다.
집에 도착해서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엄청난 모험을 시도했다는 데 대한 흥분과 성공했다는 기쁨에 들떠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무대 위에서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바짝 긴장해 자꾸만 말이 빨라졌는데, 이야기를 할수록 이상하게 자신감이 생겼다. 두려움을 감싸고 있던 껍데기가 드디어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 p.123 「3. 무대 공포증을 가진 TV 리포터」 중에서
엄마와 나는 복도로 나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침 먹자. 배고프다.” 엄마가 말했다. 가장 극적인 순간에도 일상을 꾸려 나간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로비를 지나 식당으로 갔다.
“저를 어떻게 위층으로 부르신 거예요? 보호자 한 사람만 병실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었잖아요?” 내가 물었다.
“지난번 사전 검사하러 왔을 때, 여기서 정말 친절한 남자 간호사를 만났었거든. 그 사람 우간다에서 왔다고 하더라. 그리고 가족에 관해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어. 그런데 조금 전에 그 간호사가 내 웃는 얼굴을 보고 바로 알아봤다면서 딱 나타난 거야. 그래서 나 지금 너무 무섭다고, 그리고 딸이 대기실에 혼자 있는데, 지금 꼭 좀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랬지. 그 간호사가 웃으면서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그러더라고.”
--- p.133 「4. 엄마의 수다는 출입 금지 구역이 없다」 중에서
평생에 걸쳐 한 사람에게 친구가 가장 많은 시기가 29세일 때라는 통계 결과를 본 적이 있다. 한편 다른 사람과 교류하는 횟수는 25세에 정점을 찍고 이후부터는 줄기 시작했다는 또 다른 연구 결과도 있었다. 그러니까 대체로 사람들은 30대 무렵부터 인간관계의 폭이 줄어들기 시작해 남은 평생 계속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된다는 것이다. 예전에 이런 기사를 읽을 때만 해도 내가 30대가 되어 그 통계 자료의 포스터 모델, 즉 통계치의 전형이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었다. (포스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주의: 이 여자는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 p.181 「5. 스물아홉 번의 거절 뒤에 알게 된 것들」 중에서
아무리 똑똑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성공 여부는 그가 누구를 아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는 우리 주위의 아는 사람, 다시 말해 ‘느슨한 연대weak ties’로부터 시작된다고 밝힌 연구 자료가 있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을 포함하는 ‘강한 연대strong ties’는 유사한 인맥에 중복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동호회나 인터넷 등을 통해 느슨한 관계로 엮인 사람들은 우리에게 다양한 정보와 조언을 제공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직업을 얻기도 하고, 뜻하지 않게 영감을 얻거나 제작 의뢰를 받기도 하고, 공동 연구자를 찾기도 한다. 가까운 사람에게서는 얻기 힘든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약하게 연결된 사람들, 느슨한 연대가 실제로는 우리 삶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연구는 주장한다.
--- p.187 「6. 약속을 취소할 그럴싸한 이유를 찾는 당신에게」 중에서
그때는 앨리스도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 나는 알고 있었다. 자기 생각을 크게 말하는 행위가 어떤 순간에 무게를 더해 주고, 스스로 내 말과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떨리기야 하겠지만, 어찌 됐든 나는 그걸 해냈을 것이다.
자기 결혼식에서 스피치를 하는 안야의 모습은 정말 대단하고 멋져 보였다. 특히 가죽바지를 입은 남자들의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누군가는 당연히 나서서 말해 주는 게 옳기도 했고.
--- p.230 「7. 내향인이 결혼식에 대처하는 자세」 중에서
다음 수업 시간, 교실 반대편에 있던 리엄이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은 두 명의 과학자들입니다! 시작하세요!” 나는 또 클로버와 짝이 되었다.
그는 실험용 고글을 쓰는 척했다. 그리고 손바닥에 놓인 작은 뭔가를 들여다보며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아아아!” 그가 말했다.
“아아아아!” 뭔지는 몰라도 나도 따라 당황한 척했다. 클로버는 계속 자기 손바닥을 가리켰다.
“이게 뭐지? 우리가 대체 뭘 발견한 거지?” 그가 얘기를 좀 더 끌어내도록 내가 물었다.
“글쎄, 나도 모르겠어. 내 눈에는 보이지가 않아!” 손에 놓인, 보이지 않는 뭔가를 향해 과장되게 손짓하며 그가 말했다. 클로버는 이 교실에서 가장 열정적인 즉흥 연기자였다.
“아…….” 내가 말했다.
“하지만 ‘넌’ 볼 수 있잖아! 그게 뭔지 나한테 설명해 줘!”
나는 아무것도 없는 그의 손바닥 위를 응시했다.
“음…… 흰색이고, 작아. 그리고 물컹물컹해 보여. 그리고…… 그리고…… 살아 있어!”
--- p.247 「8. 내 안의 고삐 풀린 망아지」 중에서
그날 밤 마침내 집에 돌아왔을 때, 샘이 내 공연을 휴대폰 동영상으로 찍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보고 싶지 않았다. 정말이었다. 하지만 보았다.
눈을 반쯤 감고 한 손으로는 볼이 미어터져라 라멘을 퍼 넣으며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오, 맙소사, 내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잖아. ‘내가 정말 저랬나?’ 싶게 두 손을 움직이고 몸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파도가 넘실거리는 배 위에서 바다에 빠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며 걷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그러고 있었던 것이다.
--- p.295 「9. 무대 위, 조명 아래, 유체 이탈」 중에서
에드워드에게 직장 동료들과는 주로 어떤 얘기를 하는지 묻자, 그는 ‘축구’ 얘기를 한다고 대답했다.
“축구 얘기만 한단 말이야?” 내가 물었다.
“넵.”
“하지만 같이 펍 같은 곳에 갈 때도 있을 거 아냐? 그래도 여전히 축구 얘기만 한다고?”
에드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 p.307 「10. 내향인은 외롭지 않을 거라는 착각」 중에서
물은 따뜻하고 탁했으며, 계란 썩은 냄새가 났다. 그마저도 좋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뭘 배웠지, 제스?
‘온천의 방귀 냄새를 맡으면서 때로는 미지의 세계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배웠지.’
냄새를 씻어 내기 위해 야외 풀장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머리카락이 젖은 채로 옷을 갈아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시간이 됐을 때 택시를 잡아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 p.349 「11. 썩은 달걀 냄새가 나는 온천의 교훈」 중에서
영국에 사는 미국인으로서의 내 얘기를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기세가 꺾일 수는 없다 싶어 내 열정을 최대한 끌어올리려고 애썼다. 케이트도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한 건 터트려 보자. 이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전 원래 이 나라 사람이 아니에요. 그렇지만 이곳을 정말 좋아해요. 저는 잉글랜드를 정말 사랑해요!”
스코틀랜드에서 코미디 공연을 하려는 누군가에게 내가 조언 하나만 하자면(딱 한 가지! 아주 작은 정보 한 가지!), 스코틀랜드에서는 진심 어린 말투로 잉글랜드를 열렬히 사랑한다는 말 따위는 절대 하지 말길 바란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잉글랜드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로.
--- p.360 「12. 내가 무대 위에서 사망한 그날 밤」 중에서
다시 차에 타자마자 재닛은 잠이 들었다. 평화로웠다. 재닛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매우 차분해 보였고, 정신 나간 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어쩌면 좋아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배경 음악으로 플리트우드 맥Fleetwood Mac의 노래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때맞춰 재닛이 눈을 번쩍 뜨더니 고개를 들었다.
“나 똥 마려워!” 그녀는 내 귀에 대고 소리쳤다.
나는 재닛에게서 몸을 돌려 차 유리창에 머리를 기대고 주위 나무들을 조용히 응시했다.
‘엑스펙토 패트로눔.’
--- p.384 「13. 마법의 버섯을 먹고 해리 포터가 되다」 중에서
아무래도 나는 매번 대성공을 거두는 그런 코미디언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원래 웃기게 타고난 사람도 아닐뿐더러 매일 저녁 공연장을 찾아가 신인 코미디언들의 5분짜리 엉터리 개그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어떤 날 밤에는 나도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건 영적이고 우아한 변신과는 거리가 멀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나는 혹독하고도 공격적인 훈련 과정을 겪어야 할 테고, 거울을 보며 끊임없이 스스로 용기를 북돋워 주어야 하며, 몇 시간씩 연습도 해야 할 터였다. 아침에 일어나 베개에 대고 소리도 질러야 할 것이고, 남편을 향해 드롭킥을 날리고 싶은 욕구도 꾹 눌러 참아야 할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핀 꽃도 꽃은 꽃이었다.
--- p.395 「14. 나는 1년에 한 번 한밤 중에 피는 꽃」 중에서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접시에 치즈를 담으며 혼자 부엌에 서 있었다. 그리고 바깥에서는 파티가, 그것도 내가 연 파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건 꿈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었지만, 여전히 혼자인 시간도 존재했다. 파티 중이기도 했고, 파티 중이 아니기도 했다. 나는 슈뢰딩거의 여주인이었다. 나는 암호를 풀었고, 평소 즐겨 듣던 음악, 좋아하는 음식, 그리고 직접 정한 손님들, 이 모든 걸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원하면 언제든 그 장소를 벗어날 수도 있었다.
--- p.423 「15. 서로 모르는 10명의 사람을 모아 할 수 있는 최고의 일」 중에서
🖋 출판사 서평
내향인이 딱 1년만 외향인으로 살려는 이유
이 책의 저자 제시카 팬은 내향인이다. 모르는 사람을 만나거나 사람들의 이목을 받는 걸 두려워한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고, 그런 자리에 다녀온 후에는 충전할 시간이 꼭 필요하다. 한마디로 팬은 사회생활에 서툰데 동시에 내향적이기까지 한 사람이다.(15쪽) 그러던 그녀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었다. 딱 1년만 외향인으로 살아 보겠다고 나선 것이다.
내향인으로서 나름 행복한 삶을 살아 왔던 팬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인생이 바닥을 쳤다는 사실을 깨달았다.(34쪽) 남편을 따라 런던이라는 낯선 도시에 정착했고,(21쪽) 스스로 회사를 박차고 나와 실업자가 되었으며,(25쪽) 몇 안 되는 가까운 친구들이 먼 곳으로 이사 갔고,(145쪽) 차근차근 이력을 쌓기는커녕 앞으로 살면서 무얼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17쪽) 그런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의욕을 상실했고, 우울했으며, 무엇보다 외로웠다.
내향적인 사람은 외로움을 덜 탄다는 생각은 편견이다.(304쪽) 비록 혼자 있을 때 에너지가 생기고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과 자극을 견뎌 내지 못하는 그녀였지만,(14쪽)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의 만남에 대한 욕구가 큰 내향인으로서 가슴 한구석엔 남들보다 더 큰 고독이 자리하고 있었다.(306쪽) 변화가 필요했다. 평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려고 했던 위험한 사교 현장에 일부러, 제 발로 걸어 들어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졌다. 그런 경험이 인생을 달라지게 할 거라고 생각했다. 밑져야 본전이었다.(20쪽)
기분이 좋아지는 가장 저렴하고 쉬운 방법
바깥 세상으로 나간 팬이 마주한 첫 번째 장애물은 낯선 사람과 대화하기였다. 내향인인 팬에게 낯선 이에게 말을 건다는 것은 모르는 동네에서 길을 잃었는데, 핸드폰은 먹통이고, 다리는 부러지고, 태풍이 몰려오는 일이 한꺼번에 벌어졌을 때나 취할 최후의 행동이었다.(40쪽)
심리학자 스테판 G. 호프만에 따르면 우리가 이러한 사회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어떤 집단으로부터 거부를 당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해결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노출 치료다. 노출 치료란, 거절당할 게 분명한 ‘최악의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됨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찾는 요법이다.(44쪽) 호프만 교수의 조언 아래 팬은 밖으로 나가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보기로 했다. 런던 거리로 나가 아무나 붙잡고 영국 여왕의 이름이 뭔지 물어보는 것이다.(46쪽)
결과는 의외로 만족스러웠다. 처음 몇 번은 ‘빅토리아’라는 예상외의 대답이 돌아오긴 했지만,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혹독한 시련을 통과하고 나니 아찔할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48쪽) 그렇게 실험은 계속됐다. 커피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동안 옆 사람에게 말을 걸고,(50쪽) 초밥집에서 처음 본 프랑스인과 브렉시트에 관해 이야기했고,(49쪽) 버스에서 스무고개를 하는 손녀와 할머니 사이에 불쑥 끼어들기도 했다.(50쪽)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낯선 이에게 말을 거는 건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도 있다. 무기력하고 존재감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 자기만의 세계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기분도 좋아지고 행복감도 느낄 수 있는 가장 저렴하고 쉬운 방법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낯선 이에게 말 걸기’라는 사실이다.(80쪽)
행동과학자 니컬러스 에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고립된 삶을 사는 요즘 같은 시대에 만약 서로 쉽게 말을 걸고 대화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사람들 사이에 작은 연결고리들이 늘어나며 우리 사회는 더 행복해질 거라고 말한다.(79쪽) 그가 직접 실험을 통해 밝혔듯, 사람들은 웬만해선 먼저 말을 걸어 오지 않는다. 하지만 말을 걸었을 때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의 비율은 거의 100퍼센트에 가깝다.(52쪽) 우리는 사실 타인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단지 모두들 나 말고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51쪽)
진화적 본능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다
팬의 다음 도전은 한 명이 아닌 다수의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출연해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하는 공연 ‘더 모스(The Moth)’에 출연하기로 한 것이다.(88쪽) 자신의 무대 공포증을 고칠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중 앞에서 말하는 걸 두려워한다. 사회 생물학자들은 이 두려움의 근원을 우리 조상들에게서 찾는다. 과거에는 무리에서 튀는 행동을 하면 공격을 받거나 배척을 당할 가능성이 컸다는 것이다. 즉, 제시카 팬이 무대에 오른다는 것은 뿌리 깊은 진화적 본능과 싸워야 한다는 뜻이었다.(95쪽)
공연을 준비하며 알게 된 다른 참가자가 용기를 줬다. 전직 ‘오바마 대통령 연설비서관’인 그는 오바마도 무대에 서기 전엔 여러 번 리허설을 한다고 말했다. 비욘세도, 아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113쪽) 비록 목소리 코치이자 언어 치료사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그리고 공연에 대한 걱정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했지만, 팬은 결국 해냈다.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쳤다. 오랫동안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일에 도전했다는 사실에 대한 흥분과 성공의 기쁨에 온몸이 저릿할 정도였다.(123쪽) 제시카 팬의 32년 묵은 무대 공포증은 그렇게 사라졌다.
심리학자 브라이언 R. 리틀은 성격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단순히 천성이나 양육 방식 하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말한다. 성격은 행동의 결과로서,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당신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당신이라는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지금까지 인간의 성격에 관해 머릿속에 박혀 있던 이전까지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새로운 발견이 될 것이다.’(431쪽)
1년 만기 외향성 퀘스트를 통해 알게 된 것들
팬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데이팅 앱을 통해 친구를 만나며 함께 한 추억 없이도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180쪽) 모임에 나가 내 안의 외향성을 깨우는 방법을 알아냈고,(200쪽) 즉흥 연기를 통해 걱정 많고 소심했던 내 안에 숨은 역동성과 여유로움과 자유를 되찾았다.(234쪽) 소심한 내향인들이 지닌 모든 두려움과 공포를 하나의 행사로 응축시킨 것이라는 스탠드업 코미디에도 도전했다.(258쪽)
제시카 팬은 1년 전의 자신과 비교하면 ‘머리가 이상해진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399쪽) 따뜻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웃고 떠들었고, 모르는 사람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며 생각지도 못한 연대감을 느꼈으며, 무엇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435쪽) 가장 큰 수확은 자신의 안전지대를 벗어난다 해도 곧 아무 문제없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440쪽)
외향인으로 살기 도전을 끝낸 지금 팬은 여전히 내향인이다. 앞으로 나갔다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해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두려운 마음이 먼저 이는 건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젠 그게 꼭 장애물이 아니라는 걸 안다.(434쪽) 1년의 여정을 통해 제시카 팬은 행복해졌다.(435쪽) 정확히 말하면, 행복한 동시에 피곤했다. 이 모든 걸 일상적으로 해내는 외향인들이 아직 이해되지 않았다.(436쪽) 내향적인 성격을 굳이 바꿀 필요는 없다. 자신의 성격을 바꾸지 않고도 행복한 내향인은 많다.(433쪽) 하지만 한 번쯤 외향적으로 살아 보는 것 또한 꽤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제시카 팬처럼, 모두들 이제 나가서 사람 좀 만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