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5부 - 인생의 재미는 레고블럭과도 같다
인생의 재미는 무엇일까?
우리 막내가 어렸을때 매달 한두번 신제품이 나올때마다 사달라고 조르는 장난감이 있었다.
한 세트에 10만원이나 되는 레고블럭이다. 말이 한 두번이지 10만원이나 하는 레고블럭은 내 수입에 큰 부담일수 밖에 없었다. 레고는 완성품을 파는 다른 장난감과는 달리 반제품을 파는 것이 특징이다. 6개의 2×4 블록으로 9억 1,500만 가지 이상의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완성품으로 조립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지만 전세계 어린이들이 1년에 50억시간을 함께 보낸다고 한다. 심지어 레고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우리 막내는 이 레고 블럭을 매우 좋아했다.
막내와 같이 나도 직접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나의 취미는 목공이다. 안방에 놓을 TV장 하나를 만드는데 2달이나 걸렸다. 그렇다고 가격이 싼 것도 아니다. 집사람은 그 시간과 돈을 들이느니 하나 사는 것이 더 났겠다고 이야기 하지만 목공의 재미는 결과보다는 과정이고 내가 직접만든 것이라는 경험이다.
이러한 경험을 이용하여 세계적인 기업이 된 회사가 있는데 바로 스웨덴의 가구업체 이케아(IKEA)이다. 이케아는 전 세계 35개국에 300여개의 매장에서 연 매출 40조원을 버는 세계 1위의 가구 업체이다.
이케아가 2014년에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왔을때 많은 한국의 가구회사들이 망할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이케아가 한국가구시장에서 일종의 메기효과를 일으켜 국내 가구시장 전체의 매출이 증가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케아 제품은 다른 가구들과 달리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여 집으로 가져와서 직접 조립를 해야 한다. 레고와 같이 완제품이 아닌 반제품을 파는 것이다. 이렇게 불편함을 감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국에도 이러한 불편함을 재미로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국은 불과 50년전과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경제발전을 이룩한 나라이다. 못먹고 굶는 것이 다반사였던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이 윤택해졌지만 부끄럽게도 한국은 OECD국가중 자살율 1위이다. 50년전에도 이렇게 높지는 않았다. 생활형편은 그때보다 나아졌지만 인생의 재미는 그때보다는 못한 것일까.
인생의 재미는 자신이 직접 조립해야 하는 레고블럭과 이케아가구와도 같다. 우리의 인생이 재미없는 이유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내가 아닌 남들의 인생인 가짜 인생을 산다. 그렇게 사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내 인생을 직접 사는 것이 아니냐고 묻겠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못하다고 깨닫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내가 만들지 않는 옷을 입고, 내가 만들지 않은 자동차를 타며, 내가 만들지 않는 집에 산다. 그것을 살수 있는 돈도 내가 애써서 일해 번 돈이 아닌 경우도 많다. 우리가 갈망하는 욕망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내가 아닌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내가 되고 싶은 것보다 부모가 원하는 것, 내 주변의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나의 고등학교 친구 중 하나는 자신은 원하지 않는, 아버지의 못다 이룬 꿈인 사법고시에 합격하고자 너무 많은 인생의 시간을 소모했지만 결국 이루지도 못했다.
가짜의 삶은 편안하고 안락하다. 인생을 쉽고, 편안하고, 안락하게 보내고 싶다면 군중속에 뒤섞여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리고 살면 된다. 자유에는 고독과 고립이 뒤따르지만 군중과 함께 있으면 고독과 고립을 느낄 필요도 없다. 굳이 생각하느라 에너지를 소모해버릴 염려도 없고 그저 남이 하는대로 쫓아가기만 하면 중간은 간다.
하지만 이러한 습성으로 인해 인류에게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히틀러를 앞세워 유태인 600만명을 죽이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저지른 독일인들이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들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고 복종의 삶을 자처했다. 1차대전의 패전으로 인한 고통, 군주제 폐지로 인한 사회제도의 붕괴, 생존을 위협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 전통적인 가족제도의 붕괴와 세대와의 갈등이 그들로 하여금 자유를 버리고 말도 안되는 권력에 복종케 했다. 나찌당에 반대해 스스로 외톨이가 되기를 자처하기 보다 군중에 편승하며 스스로를 복종과 억압의 굴레속에 자신을 내던져버렸다. 그들의 선조가 자유를 위해 싸운 것만큼, 열정적으로 자유를 포기한 것이다. 히틀러는 그러한 군중의 불안심리를 이용하여 인류의 역사에 돌이킬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거부한 가짜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가짜의 삶으로 부터 진짜의 삶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자신의 의견을 가지는 것이 성가시다고 돈을 지불하고 남들의 의견을 산다. 그렇게 돈을 주고 산 의견을 가지고 자신의 신념으로 삼는다. 정작 내 것은 아무것도 없이 껍데기로 나를 치장할 뿐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고립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무리를 아늑해하지 않는 법이다. 인생의 참 재미는 여기에 있다.
인생이 재미 있으려면 풍부한 삶을 살줄 알아야 한다. 군중속에서의 삶이란 나 자신의 존재를 그들이 원하고 선호하는 대로 바꾸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에 나 자신만의 풍부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군중으로 부터 멀어져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에게 처한 환경이나 다가올 새로운 세상을 받아들일줄 아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의 현대인들은 안락한 생존과 쾌락에만 연연하는 유약한 인간이 되어버렸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의 꿈은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안락한 가정을 이뤄서 편하게 사는 것이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공무원 열풍에 빠진 대한민국이 그 반증이다.
우리 대부분은 고통과 고난이 없는 안락한 인생을 추구하지만 인생이라는 파도속에서 고난과 고통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행복한 인간이란 고난과 고통이 없기를 바라는 인간이 아니다. 그런 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평안과 충일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니체는 행복이란 고난과 고통을 초극하여 힘의 고양과 충만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 행복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고통도 알지 못했을 것이고, 이 세상에 고통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행복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고통을 통해서만 쟁취할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고통은 없고 안락하기만한 세상일 것이고 이 세상에 천국이 있다면 수많은 고통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행복일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한 것이다.
초등학교때 레고블럭을 좋아하던 우리 막내는 이제 중학생이 되었는데 지금은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있다. 밤새 게임을 하느라 일어나지 못해 학교도 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뭐라하지 않는다. 요즘은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많다보니 학교에 가는 일도 별로 없다. 그러니 밤새 게임을 하고 아침에 잠깐 출석체크를 하고 온종일 자기 일쑤다. 그래도 나는 이러한 막내를 사랑한다. 그래서 공부하라고 다그치지도 않는다. 공부하라고 한다고 해서 공부할 아이가 아닌데 굳이 스트레스를 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제는 공부 잘해서 행복한 인생을 살 수있는 세상도 아니다. 인간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
어느날 아이가 내게 물었다.
"아빠 내가 왜 공부 안하는지 알아?"
"왜?"
"공부가 재미없기 때문이야.."
하지만 나는 안다. 너도 언젠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공부라는 걸 깨닫는 때가 온다는 것을...
출처 :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