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은 선물입니다.
거저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주고 사는 것이 아니고,
일의 대가로 받는 것도 아니며,
공로의 상급으로 받는 것도 아니고,
애써 얻는 게 아니라 거저 받는 것이며,
그러기에 능동태가 아니라 완전한 수동태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본래 이런 것인데
오늘 성모 자헌 축일의 봉헌기도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성자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구를 들으시어,
봉헌하여 은총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하시고,
청원하여 응답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없게 하소서.”
그러니까 봉헌하여 은총을 받는 측면도 있다는 말이고,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성모님처럼 자신을 봉헌하여
우리도 은총이 가득한 사람이 되라는 기도입니다.
성모님처럼 아버지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완전한 순종의 수동태가 되는 것도 은총의 길이지만
성모님처럼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림으로써
능동적 사랑의 수동태가 되는 것도 은총의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능동적으로 수동태가 되게 하고,
사랑은 능동적으로 자신을 봉헌하게 하며,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갈망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랑의 갈망이 은총을 받기 위한 능동적인 자세입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라는 순종보다 더 적극적인 은총의 자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종보다 동정녀가 더 은총에 어울리겠지요?
이렇게 비유하면 어떻겠습니까?
종의 순종이 계곡 저 아래에서 은총이 물처럼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라면
동정녀의 사랑은 원천을 향하여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사랑과 은총의 원천을 향해 열정적으로 산을 치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갈망하며
자신을 봉헌한 마리아에게 은총을 거절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가 마리아처럼 자신을 봉헌하며 은총을 청하면 우리에게도
거절하지 않고 은총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은총을 갈망하고 청하는 우리가 되기로 결심하며 그 결심을 봉헌하는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