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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마가복음5:22-43
요즘 아이들이 알 수 없는 폰병, 게임병, 음란병, 동성애병에 걸려서 무기력해지고 시름시름 앓으며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을 써도 잘 낫지 않고 갈수록 폰병은 더 심해집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계를 느끼고 좌절해야 합니까? 오늘날 교회는 이런 악한 병을 고치는 병원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밖에는 달리 치료 병원이 없습니다. 누가 이 악한 죄로 병들어 죽어가는 이 시대 아이들을 살려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성도님들은 어떻게 자녀의 문제를 해결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녀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아와 해결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받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에는 자녀 문제와 질병문제를 잘 해결 받은 두 인물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한사람은 오직 믿기만 함으로서 약함을 이기고 승리하였습니다. 오늘 말씀 통하여 우리성도님들도 승리하는 비결을 잘 배우셔서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오직 믿기만 함으로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좌절을 이긴 비결은 절대긍정의 생각이였습니다.(27)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예수님은 배를 타시고 호수 건너편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러자 큰 무리가 다시 예수님께 몰려들었습니다. 이때 야이로라 하는 회당장이 초조한 모습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그 발 아래 엎드려 애원했습니다. “제 어린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으셔서 고쳐주시고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당시 회당장은 그 동네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였습니다. 회당에는 10명의 관리인이 있었는데 그 중에 세 명이 회당장이였습니다. 이들은 회당의 예배순서를 감독하며 설교자들을 선택하는 권한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버나움 회당장이였습니다. 그래서 이미 예수님의 말씀도 들었고 직접 대면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야이로는 12살 된 외동딸과 함께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 딸은 야이로의 집에 피어난 한송이 꽃이요 기쁨이요 희망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랑스런 딸이 병들어 죽게 되었으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큰 슬픔과 고통으로 울며 딸이 살아나기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야이로는 슬퍼하던 중 예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예수님이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단 걸음에 예수님께로 달려나갔습니다. 그는 체면도 자존심도 다 버리고 예수님발아래 무릎을 꿇고 거듭거듭 간청했습니다. “제발 오셔서 내 딸을 살려주소서 제발”
요즘도 12살쯤 되면 많은 아이들이 죽어갑니다. 얼굴에 표정이 없고 폰병이 들어서 부모도 싫고 말이라곤 안듣고 대들기만 합니다. 가족도 싫고 오직 게임이나 트위터같은 것만 좋아합니다. 이런 때에 야이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야이로는 예수님께 매달리며 애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간청을 들어주셨습니다. 그와 함께 그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러자 큰 무리가 예수님을 에워싸 밀면서 따르고 있었습니다. 야이로에게는 일분일초가 급했습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습니까? 25절을 보면 열 두해를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한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혈루증이란 여자들에게만 있는 병으로 피를 계속 쏟는 병입니다. 구약 레위기에 보면 이 병이 있는 사람은 부정합니다. 그래서 이런 여자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이나 물건이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병에 걸리게 되면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갈 수 없고 시집도 못가고 결혼한 여자는 버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여자는 원치않는 질병으로 고통스런 인생의 날을 보내야 했습니다. 26절을 보면 이 여자는 이 병을 고쳐보려고 좋다는 의사는 다 찾아다녔지만 병은 차도가 없고 오히려 더 중해갔습니다. 가진 돈도 이 병 때문에 탕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낫기는커녕 오히려 많은 괴로움만 받았습니다. 당시 의술로는 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여자는 슬픔과 깊은 좌절감에 빠져 절망하게 되었습니다. 의술도 돈도 그 어떤 것도 이 여자의 괴로운 인생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는 27절에 보면 어느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은 예수님은 문둥병자도 깨끗하게 치료해주시고 중풍병도 낫게 해주신다는 소문이였습니다. 절망감으로 가득했던 이 여자의 가슴에는 희망이 생기고 신앙의 소원이 불타오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낫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정한 병이다보 니 야이로처럼 공개적으로 고쳐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리저리 궁리끝에 무리들 속에 들어가서 아무도 모르게 가만히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라도 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병약한 여자의 몸으로/ 많은 무리들에게 싸여 급히 걸음을 옮기는 예수님께로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만원버스를 타보면 사람들을 헤치고 다른 자리로 가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여자는 12년을 혈루증을 앓으며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파고 들어갔습니다. 온몸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긴장되었지만 혼신을 다하여 예수님께로 나아갔습니다. 여자는 필사적으로 예수님께 접근했고 마침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순간 그의 혈루병의 근원이 곧 말랐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자기의 병이 나은 줄을 깨달았습니다. 12년을 그렇게 애쓰며 돈을 다 써도 낫지 않던 고질적인 병이 옷자락을 만지는 순간 근본적으로 치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여자가 나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34절 말씀을 보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바로 예수님의 능력이 아니라 여인의 믿음 때문 이였습니다. 그러면 여인은 예수님을 어떻게 이런 믿음이 가능했을까요? (1) 그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27절을 보면 이 여자는 예수님께 나오기 전에 먼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 여자는 예수님께 나오기 전에 계속 긍정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나가서 예수님 옷자락만 만져도 내 병은 낫는다 하며 생각을 한 것입니다. (2) 반복해서 자기 마음에다 말을 했습니다. 마태복음9:21절에는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함이라는 원어로는 엘레겐인데 이것은 미완료형으로 생각으로 그치지않고 반복해서 마음에다 말을 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여자는 먼저 긍정의 생각을 했고 그리고 자기 마음에다 반복해서 말해 주었던 것입니다. 나는 낫는다 나는 낫는다, 된다, 된다 하며 말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긍정의 생각이 믿음이 생기는 토양이 됩니다. 안된다며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믿음이 생길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마음에다 부정의 생각과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안돼!, 될 리가 없어! 안낫는다, 나는 이러다 죽게 될 거야 우리의 마음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깊이 병들어 있습니다. 기도한다고 우리 아이가 바르게 되는가? 목사님께 기도받아 봤자다. 기도받을 때뿐이다, 또 나빠질꺼야! 하며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보니 기도를 못합니다. 이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이 여자는 달랐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 옷을 터치하면 나는 낫는다, 해결받는다, 잘된다, 할수 있다 하면 된다” 하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말하였습니다. 긍정의 생각은 의심을 몰아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말씀을 절대 긍정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절대 긍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절대 긍정해야 합니다. 이해가 되지않더라도 절대 긍정해야 합니다. 누가 맹신한다, 광신자라 비난해도 절대 긍정해야 합니다. 그 때 믿음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때 절망이 희망으로 바뀝니다. 그때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뀝니다.
우리성도님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미신처럼 여기지 마시고 성경을 절대 긍정하시고 자꾸 아멘아멘 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해야 합니다 (36)
35절을 보면 이 여자가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바람에 그만 예수님께서 시간을 많이 지연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자와 대화가 다 끝나갈 무렵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그만 외동딸이 죽었다고 전했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예수님이 빨리 끝내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야이로는 딸이 죽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충격을 받아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되었습니다. 이 혈루증 걸린 여인이 중간에 끼어드는 바람에 그의 딸이 죽게 되었습니다. 야이로는 순간 이 여인도, 예수님도 원망스러웠습니다. 이제 다 소용없다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이제 다 끝났다는 절망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야이로는 믿음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순간 야이로의 믿음을 도와주셨습니다. 야이로가 끝까지 믿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36절을 보면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여기서 믿기만 하라는 것은 영어로는“Only continue to believe!" 계속 오직 믿으라는 뜻입니다. 현재 딸의 상황이 어떻든지 믿기를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상황과 조건이 아무리 나빠도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라의 태가 말라 아기를 낳을 수 없는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이 믿음을 갖도록 도우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절망이 오면 야이로처럼 “이제 불가능하다, 이제 안된다, 저 사람은 안바뀐다, 저 문제는 해결안된다, 이 병만큼은 안된다”고 너무 쉽게 절망하고 포기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이때 차라리 포기하고 사는 것이 더 속이 편하다고 여깁니다. 포기할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두려움 때문에 판단기능이 약화되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우리 능력에 기초해서 생각하여서 그렇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시간 우리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이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여도 이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지고 암담한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아무리 애를 써도 변화되지 않는 문제앞에서 좌절되면서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때 “김집사 !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상황을 바라보고 절망하기보다는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는 말씀을 잡고 계속 믿기만 해야 합니다.
만약 야이로가 “이젠 틀렸어요 다 소용없어요”하고 믿음을 포기했다면 그는 영영 사랑하는 딸을 잃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도움을 받아서 <오직 믿기만> 하였을 때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 믿음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었습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습니다. 어둠을 빛으로 바꾸었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을 아시고 그 자리에서 무리들과 제자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 세사람만 데리고 가셨습니다. 야이로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집에는 장송곡이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이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죽으면 당일 내다 장사지내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들어가셔서 39절을 보시면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믿지 않고는 오히려 비웃었습니다. “무슨 소리여 죽었는디...지금 머리가 가 어떻게 된 것 아니여” 그들은 생각이 절대부정이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믿음도 절대 불신이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사람들은 모두 내어보내시고 야이로의 딸을 잡고 “달리다굼” 하셨습니다. “애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러자 이 야이로의 딸이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그리고 “아빠 나 배고파 밥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며 이 기적을 아무도 말하지 말라고 경계시키셨습니다.
우리성도님들은 자녀문제로 힘듭니까? 질병이 여러분을 슬프게 합니까? 변화되지 않는 문제로 절망하고 있습니까? 일이 안풀려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아이들을 데리고와서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시길 바랍니다. 모든 능력의 근원이시오 지금도 살아계시는 예수님이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이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긍정적이 되시고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시고 필사적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기만 하심으로 이미 죽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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