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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참고말씀: 출15:26; 왕하15:19; 왕하17:3-6; 호6:4,5; 말4:2
읽을말씀: 호7:1-16
주제말씀: 호7:1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 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
첫째, 이스라엘을 치료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1-7절)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 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 내가 모든 악을 기억하였음을 그들이 마음에 생각하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에워싸고 내 얼굴 앞에 있도다.”(호7:1,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의 삶 가운데 인애가 없음을 슬퍼하시고 그들의 죄악을 치료하기 위해 선지자들을 보내어 경고하셨습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호6:4,5) /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1절 상)
그러나 치료하시고자 그들의 환부(患部)를 살펴보니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극도의 타락으로,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중증환자와도 같았습니다. 그들의 만연한 죄악들이 드러나되, 거짓된 삶으로 일관했으며, 도둑질과 노략질이 난무했습니다.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그들은 거짓을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둑질 하고 밖으로 떼 지어 노략질하며.”(1절 하)
이처럼 그 환부가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찌 했습니까? 전혀 개의치 않았으며, “내가 모든 악을 기억하였음을 그들이 마음에 생각하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에워싸고 내 얼굴 앞에 있도다.”(2절) 오히려 노골적으로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특히 왕과 방백들은 음란한 행위와 불법 및 정권 탈취에 광분하였으며, 백성들 역시 그들의 비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악과 거짓으로 아첨했습니다. “그들이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지도자들을 기쁘게 하도다.”(3절)
하나님은 그들, 곧 불타는 정욕과 추악한 탐욕이 가득한 사람들의 마음을 무엇을 실감나게 비유하고 계십니까? 달궈진 화덕입니다. “그들은 다 간음하는 자라 과자 만드는 자에 의해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4절 상)
어째서입니까? 과자를 만드는 자가 화덕을 달궈놓고 반죽이 발효되기까지 잠시 멈추다가 더욱 뜨겁게 달궈 빵을 굽는 것처럼, “...그가 반죽을 뭉침으로 발효되기까지만 불 일으키기를 그칠 뿐이니라.”(4절 하) 백성들의 마음이 악의로 이미 가득 차 있어 조용한 것 같은 때에도 더 큰 악행을 모의를 했다가 이내 그들의 왕과 재판장들을 엎드러지게 한 것입니다.
“그들이 가까이 올 때에 그들의 마음은 간교하여 화덕 같으니 그들의 분노는 밤새도록 자고 아침에 피우는 불꽃 같도다 그들이 다 화덕까지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들의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6,7절)
그런데도 그들의 왕이나 지도자들은 어떠했습니까? 왕은 신하들과 술에 취해 갖은 추태를 부릴 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오만한 자들과 결탁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왕의 날에 지도자들은 술의 뜨거움으로 병이 나며 왕은 오만한 자들과 더불어 악수하는도다.”(5절)
이러다보니 그들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가 다 상처투성이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부터 막막할 정도였던 것입니다. 실제로 선지자 호세아의 사역기간인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B.C. 753) 이후 마지막 왕 호세아(B.C. 723)에 이르는 30년간 네 번의 쿠데타가 있었고, 통치했던 여섯 왕 중에 므나헴을 제외한 모두가 살해당하고 포로로 잡혀갈 정도로 정국은 극도로 혼란스러웠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들 중에 어떤 이가 하나도 없다고 탄식하셨습니까?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입니다. “...그들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7절 하) 즉 그들을 치료해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신데, 누구하나도 하나님께 나아와서 부르짖는 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그들은 모두 버리셨습니까? 아닙니다. 영혼의 의사이신 하나님께서는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면서 그들의 회복에 착수하셨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4:2)
다만 어떤 과정을 통해 그리하셨습니까? 수술을 메스를 들고 직접 환부들을 도려내고 썩어서 도무지 가망이 없는 지체들은 과감하게 절단함으로써 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과 포로기간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께서(출15:26) 그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우리와 가정, 자녀들, 공동체를 치료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점을 깨닫고, 이제라도 우리의 상처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기를 원합니다.
둘째, 뒤집지 않은 전병과 어리석은 비둘기, 속이는 활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호7:8,9)
이스라엘 백성들을 또 무엇으로 비유하셨습니까? 뒤집지 않은 전병입니다.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8절)
어째서입니까? 전병이란 고운 가루로 반죽하여 잘 구운 소제의 예물인데, “네가 화덕에 구운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만든 무교병이나 기름을 바른 무교전병을 드릴 것이요 철판에 부친 것으로 소제의 예물을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지 말고 기름을 섞어 조각으로 나누고 그 위에 기름을 부을지니 이는 소제니라 네가 냄비의 것으로 소제를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와 기름을 섞어 만들지니라.”(레2:4-6)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마치 한쪽은 불에 타고 다른 쪽은 설익은 뒤집지 않은 전병처럼, 종교적 위선과 세속화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즉 선민(選民)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여러 가지 면에서 이방 민족과 혼합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에브라임이 여러 민족 가운데에 혼합되니 그는 곧 뒤집지 않은 전병이로다.”(8절) 그러니 하나님께 합당한 예물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의 머리에까지 미쳤어도 그들은 어떠했습니까?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방인들이 그들을 야금야금 삼키고 있는 와중에도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고 안타깝습니까? “이방인들이 그의 힘을 삼켰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무성할지라도 알지 못하는도다.”(9절)
왜 깨닫지 못한 것입니까?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10절 상) 만일 그들이 겸손했다면 이 모든 일을 당한 후에라도 그들의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며, 돌아와서 하나님께 구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들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구하지 아니하도다.”(10절 하)
하나님은 또 그들을 무엇에 비유하셨습니까? 어리석은 비둘기입니다. 어째서입니까? 그들은 지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은 어리석은 비둘기 같이 지혜가 없어서...”(11절 상) 즉 어리석은 비둘기가 사냥꾼이 설치해 놓은 그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뛰어드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신들의 원수들을 구원자로 착각하면서 그들을 의지하려는 어리석음을 범했던 것입니다. “...애굽으로 향하여 부르짖으며 앗수르로 가는도다.”(11절 하)
실제로 이스라엘 왕의 므나헴은 앗수르 왕 불에게 은 일천 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치면서 앗수르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키려고 했지만 오히려 앗수르의 꼭두각시가 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 왕 불이 와서 그 땅을 치려 하매 므나헴이 은 천 달란트를 불에게 주어서 그로 자기를 도와 주게 함으로 나라를 자기 손에 굳게 세우고자 하여 그 은을 이스라엘 모든 큰 부자에게서 강탈하여 각 사람에게 은 오십 세겔씩 내게 하여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니 이에 앗수르 왕이 되돌아가 그 땅에 머물지 아니하였더라.”(왕하15:19)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 호세아도 애굽과 동맹을 맺고 앗수르를 배반했지만, 애굽은 이스라엘을 도울 힘이 없었으므로 마침내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올라오니 호세아가 그에게 종이 되어 조공을 드리더니 그가 애굽의 왕 소에게 사자들을 보내고 해마다 하던 대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드리지 아니하매 앗수르 왕이 호세아가 배반함을 보고 그를 옥에 감금하여 두고 앗수르 왕이 올라와 그 온 땅에 두루 다니고 사마리아로 올라와 그 곳을 삼 년간 에워쌌더라 호세아 제 구년에 앗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끌어다가 고산 강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와 메대 사람의 여러 고을에 두었더라.”(왕하17:3-6)
그들은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고 만 것입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그릇된 길로 갔기 때문이요 하나님께 범죄 했기 때문입니다. “화 있을진저 그들이 나를 떠나 그릇 갔음이니라 패망할진저 그들이 내게 범죄하였음이니라...”(13절 상) 또 하나님께서 그들을 건져주시려고 해도 그들이 하나님을 거슬러 거짓을 말하고, “...내가 그들을 건져 주려 하나 그들이 나를 거슬러 거짓을 말하고.”(13절 하)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을 뿐더러, “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14절 상) 불신앙적인 낙망으로 울부짖을 뿐,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곡식과 새 포도주로 말미암아 모이며...”(14절 중)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께 악을 꾀하였던 것입니다. “...나를 거역하는도다 내가 그들 팔을 연습시켜 힘 있게 하였으나 그들은 내게 대하여 악을 꾀하는도다.”(14,15절)
끝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무엇으로 비유하셨습니까? 속이는 활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휘어진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지 않고 엉뚱한 데로 날아가는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도 높으신 하나님께로는 돌아오지 않은 채 세상을 향해 엉뚱하게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돌아오나 높으신 자에게 돌아오지 아니하니 속이는 활과 같으며...”(16절 상)
참고로, 성경에서 ‘죄’의 원뜻은 ‘과녁에서 빗나가다’인데, 본문에서 이스라엘의 모습을 ‘속이는 화살’로 비유한 것으로 참으로 탁월한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결국 어떻게 되고 말았습니까? 그들의 지도자들은 모두 칼에 엎드러졌으며, 이스라엘 역시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그 혀의 거친 말로 말미암아 칼에 엎드러지리니 이것이 애굽 땅에서 조롱거리가 되리라.”(16절 하)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혹 우리의 모습이 ‘뒤집지 않은 전병’처럼 종교적 위선이나 세속화에 깊이 젖혀있지 않습니까? 혹 우리의 모습이 ‘어리석은 비둘기’처럼 지혜 없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혹 우리의 모습이 ‘속이는 화살’처럼 자꾸만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라도 높으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기를 원하고, 이제라도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곳으로만 날아가기를 원하며, 이제라도 겉과 속이 한 결 같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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