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8각10층으로 조성되는 조계사 부처님 진신 사리탑 정면도.
위의 탑은 조계사 대웅전 앞마당에 있는 7층탑으로 탑안에 봉안한 사리는 태국왕실에 모시고 있던 부처님진신사리 중 1과이다. 스리랑카의 달마파라(達磨婆羅)스님이 모시고 있던것을 1913년 8월20일 한국을 순방하였을 때, 한국이 불연(佛緣)이 깊고 아름다운 나라라면서 당시 불교청년대표인 김금담(金錦潭)에게 전해준 것을 1914년 각황사(覺皇寺)를 마련하여 봉안하였다. 수년 동안 사리탑을 세워 봉안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긴 경호(瓊湖)스님이태고사(太古寺-지금의 조계사)의 앞마당에 7층탑을 세우고 봉안해 왔다.
그런데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건립된 이 7층탑이 일본 양식이어서 8.15광복 이후 우리나라 건축 양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비판이 줄곧 강하게 제기되어 새탑을 세우게 된것이다.
각황사(覺皇寺)란 서울 종로구 수송동에 있던 절로서 1910년에 전국 승려들이 모금을 하여 세운절이다. 각황사(覺皇寺)의 이름은 만해 한용운이 지었다.
조선왕조시대가 마감됨에 따라 그동안 승려들의 서울 도성출입 금지가 해제되어 출입이 허용되자 동대문밖에 있던 한국불교의 중앙기관인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 을 이곳 수송동으로 옮긴 것이다.
지금의 견지동에 있는 조계사 전 이름이며 조계사를 지을때까지 그자리에 있었다
지금의 조계사(曹溪寺) 이름은 1954년에 지은 것이다.
경내에 있는 천연기념물 9호인 백송(白松)은 수송동에 있던 백송이다.
조계사(曹溪寺) “조계(曹溪)”의 뜻
석가 탄신일이 가까워짐에 따라 거리에 연등이 걸리기 시작한다
4월이 기독교의 부활(復活)달에 이어 5월에 석존 탄신일이 이어지니 온나라가 마치 종교축제에 분위기다.
차제에 한국불교의 상징인 조계사(曹溪寺) “조계(曹溪)”의 의미를 상고(詳考)하여 본다.
인도 불교를 석가모니가 불교 교단을 창시한 때부터 불멸(佛滅-돌아가심) 후 교단의 근본분열이 일어나기 이전까지의 불교를 원시불교 또는 초기불교라 한다.
그후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100년경에 원시불교가 분열을 거듭하여 20여 개의 교단(敎團)으로 갈라진 시대의 불교를 부파불교(部派佛敎)라 한다.
초기불교에서 부파불교에 이르는 시대는 교학불교(敎學佛敎) 시대라고도 하는데 이때에 각 교단은 저마다 석가의 교리와 계율을 연구 정리하여 방대한 논서(論書)를 작성하면서 서로 자기들의 주장을 펼치는 논쟁을 그치지 않았다.
논(論)이라는 말이 이때에부터 사용되었는데 원어가 아비다르마(abhidharma)이고 이를 중국어로 번역한 한역(漢譯)이 아비달마(阿毘達磨)이므로, 부파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도 한다.
아비달마(阿毘達磨)의 뜻은 불교의 경전을 경(經)·율(律)·논(論)의 3장(三藏)으로 나눌 때에 논(論)으로 조직적인 설명을 말한다.
부파불교때 수도인들이 지향한 이상적 인간상을 아라한(阿羅漢 줄여서 나한)이라고 하였다. 절에 가면 나한상 500나한 등을 말한다.
아라한이라는 말은 원래 초기불교집단에서 인간 싣달타(석가모니)를 존경하여 부르던 열개의 존칭(호-號) 중의 하나였다
아라한을 응공(應供-응당 공양을 받을 사람)이라고도 한다.
이 아라한의 이름이, 부파불교시대에는 완전히 불타에서 분리되어 하나의 우상화(偶像化)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즉 아라한이 부처님을 대신 한다는 의미가 되어 버렸다.
즉 소승불교는 아라한을 중심으로 팔정도(八正道)를 행한 불교이다.
이에 반대하는 깃발을 들고 나온 것이 대승불교의 보살운동인 것이다.
보살(菩薩)은 "깨달음을 바라는 모든 자"라는 뜻이다.
즉 대승운동은 보살(菩薩)을 중심으로 육바라밀(六坡羅密)을 행한 불교이다
부처가 곧 보살이고(본생담-本生譚),이 보살은 곧 붓다 즉 각자(覺者)가 된다는 것이다. 보살은 곧 아라한의 정면부정(正面否定)인 것이다.
마치 유대교의 율법위주에 항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이 사랑으로 은혜를 베풀어 구원을 받는다는 마틴루터의 기독교 혁명과 꼭 같은 것이다.
이 대승불교의 보살이 우리나라의 선불교(禪佛敎)인 것이다.
선불교(禪佛敎)는 경전을 공부하는데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고 깨달음에 있는 것이다.
이 대승불교의 선불교(禪佛敎) 운동을 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달마대사(達磨大師)다.
달마대사(達磨大師)는 인도불교 법통의 28대로서 서기 527년에 중국으로 건너가서 선불교(禪佛敎-선종)를 시작하므로 서 선불교 제 일조(一祖)가 된 것이다.
일조(一祖) 달마(達磨)→이조(二祖) 혜가(慧可)→삼조(三祖) 승찬(僧璨)→사조(四祖) 도신(道信)→오조(五祖) 홍인(弘忍)→육조(六祖) 혜능(慧能)까지 엄격한 의발(衣鉢)전수의 계통을 밟아 내려간 것이라고 한다.
선종의 계통은 육조(六祖) 혜능(慧能)까지 의발(衣鉢)전수가 끝나고 다시 계통이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남악회양(南嶽懷讓)→마조도일(馬祖道一)→백장회해(百丈懷海)→황벽희운(黃檗希運)→임제의현(臨濟義玄)으로서 우리나라 불교 선종(禪宗)을 임제종(臨濟宗)이라 부르는 것이다.
중국 남종선(南宗禪)은 육조(六祖) 혜능(慧能)이후로 그 계통이 5가(家) 7종(宗)으로 분파하여 각자 특이한 종풍(宗風)을 이루었으나 임제종(臨濟宗)을 제외하고 전부 멸종(滅宗)되었다.
조계사(曹溪寺)의 조계(曹溪)뜻은 아래의 계송(偈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육조(六祖) 혜능(慧能)이하의 계보 중에 청원행사(靑原行思)의 줄기에 금강경으로 유명한 덕산(德山)이라는 유명한 고승이 있다.
이 덕산의 제자중 걸출한 설봉의존(雪峰義存)이라는 제자가 있다.
그 설봉(雪峰)스님의 게송(偈頌)중에 아래의 글이 있다.
牛頭沒(우두몰)-소대가리가 사라지니
馬頭回(마두회)-말대가리가 돌아오네.
曹溪鏡裏(조계경이)-조계의 거울 속엔
絶塵埃(절진애)-티끌 한점 없어라
打鼓看來(타고간래)-북치고 모두나와 찾으라 했건만
君不見(군불견)-그대 정녕 보지 못할꼬?
百花春至(백화춘지)-봄이 오네 온갖 아름다운 꽃
爲誰開(위수개)-누굴 위해 피려는고.
위의 게송에서
曹溪鏡裏(조계경이)-조계의 거울 속엔
絶塵埃(절진애)-티끌 한점 없어라
는 게송에서 조계(曹溪)란 육조 혜능(慧能)이 의발(衣鉢)을 전수(傳受) 받은 후에 주석(註釋)한 절이 조계산(曹溪山) 보림사(寶林寺)임으로 조계(曹溪)란 바로 혜능을 가리키는 말이며 선종(禪宗)을 뜻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말기부터 시작한 남종선풍(南宗禪風)이 고려에 들어오면서 그 기세가 크게 떨쳐 구산문(九山門)의 선종파(禪宗派)를 이루었으나 고려 말에 이르러 종파(宗派)의 의미가 크게 상실되어서 조계(曹溪)의 종(宗)이란 종파(宗派)가 아닌 하나의 개념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조계(曹溪)란 육조(六祖) 혜능(慧能)이 중국 광동성(廣東省)에 있는 조계산(曹溪山) 보림사(寶林寺)에서 선법(禪法)을 개창(開倉)한데서 연유된 말임은 위에서 설명하였다.
조계(曹溪)란 역사적인 의미에서 혜능(慧能)을 지칭하고 불교적인 의미에서는 선불교(禪佛敎)를 말한다.
이유는 실제적인 선종(禪宗)은 육조(六祖) 혜능(慧能)에서 연원(淵源)된 것이므로 중국의 오가칠종(五家七宗)중 어느계통이든간에 모두 조계(曹溪)의 종(宗)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려 때에 태고보우(太古普愚)스님을 개조(開祖)로 삼으면서 우리나라는 임제종(臨濟宗)의 계통 일색이 된 것이다.
그 임제종이 조계종 조계사인 것이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