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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괴질
맑은 샘
시가 환기성이 있어 좋다 말하지 마라
어화둥둥 우리 푸른 아그들
봄바람, 서늘한 바람, 바람들 모두
표절 메르스 걸릴라
누가 환기성이 있어 좋다냐?
메르스 표절, 표절 메르스 걸려
죽는다냐? 죽는다냐?
허이구 념(捻)놈들아
이놈보소, 저년보소
푸른 아그들 죽는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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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단 기본도 안되는 표절 버리고 문학적 역량 쌓아야
맑은샘
신경숙 표절의혹 사태로 문단이 떠들썩 하다. 이땅의 시인, 작가, 문인이라면 정말로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이를 계기로 기사를 쓰며 작품을 쓰는 사람으로써 몇몇 기사와 평론에 공감하여 독자들께 소개하며 한국신춘문예 독자들과 이를 되짚어 보고자 한다.
모방과 표절의 차이는?
표절이란? 시나 글을 짓는데 있어서 남의 작품 내용의 일부나 어구(語句), 또는 학설을 허락 없이 몰래 끌어다 쓰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남의 작품을 자기의 작품이라고 속이어 발표하는 경우에는 도작(盜作)이라고 한다. 이 표절, 도작행위는 오늘날만 있던 것은 아니고 한국문단이 있어온 이래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문제다. 1923년에 발표된 한정동(韓晶東)의 동요 「소금쟁이」가 일본 동요를 표절 또는 도작하였다고 하여 홍난파(洪蘭坡) 등의 공격을 받았고 방정환(方定煥)의 동요 「허잽이」는 울산에 사는 서덕요(徐德謠)의 투고 작품을 도작한 것이라고 하여 당시 《동아일보》(1926년 10월 2일)에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문학작품 등에서 지적 도둑행위인 표절은 모방(模倣)과는 상이하게 부정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에서처럼 모방이란? 사물을 본 따고 그것을 보고 기쁨을 느끼는 창조로 향하는 인간본능으로서 긍정적인 요소이다. 모방은 창조의 전(前) 단계이지만 표절은 창조의 적인 것이다. 오늘날 표절행위는 대중매체와 인쇄문화의 발달로 인하여 문학작품뿐만 아니라 방송드라마, 광고, 대중가요 등 광범위하게 행해져 종종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독창성과 고유성에 반하는 이러한 행위는 작가의 윤리의식에 관계되는 문제이기도 하다.(이명재)
한국 문단사에서의 부끄러운 표절과 도작
문단 풍토를 정화하고 문인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현상문예는 오히려 응모자들의 명예심을 돋우며, 표절 내지 도작(盜作)의 문학에 부채질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자주 시비가 되는 신춘문예의 당선작 표절시비 문제는 어쩌면 운명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최초의 여류 작가인 김명순이 최초의 현상문예 당선작가이자 또한 최초의 표절작가란 영욕을 함께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청춘』의 특별 현상 모집에 3등으로 입상한 김명순의 첫 단편 「의심의 소녀」는 고선을 맡은 춘원 이광수로부터 “조선 문단에서 교훈적이라는 구투를 완전히 탈각한 소설로는 외람하나마 내 『무정』과 진순성(秦瞬星)의 「부르짖음」과 그 다음에는 이 「의심의 소녀」뿐인가 합니다”라는 격찬을 받았다. 사실 60여세의 노인과 그의 외손녀를 중심으로 한 이 단편은 동인의 지적처럼 “상당히 세련되었으며 신비적 분위기도 있는,” 당시의 18세 소녀의 작품으로는 지나치게 깜찍한 성공작이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심사를 맡았던 춘원이 25년 후 “김명순씨······ 나중에 창작이 아닌 것이 드러났지만”이라고 밝혀 「의심의 소녀」를 표절작으로 단정하기에 이른다.
김명순의 처녀작이 어떤 작품을 표절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김동인의 「배따라기」, 춘원의 「소년의 비애」, 전영택의 「천치? 천재?」가 일본 작가 구니키다(國木田獨步)의 「여난(女難)」 「소녀의 비애」 「춘(春)의 조(鳥)」로부터 각각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분석되는 점으로 미루어, 그도 일본의 소설을 표절했으리라는 추측은 쉽사리 가능해진다.
그리고, 모방과 번안이 뚜렷이 구별되지 않고 창작의 발상도 상당수가 당시의 유일한 독서 대상이었던 일본 문학 내지 일역된 서구 문학에 뿌리를 둔 만큼, 김명순에게만 책임을 묻기에는 가혹한 점이 있었으며, 또 그만큼 표절과 모작이 창작계에 만연해 있었다. 가령 20년대 초에 화려한 시인으로 이름난 춘성 노자영(春城蘆子泳)은 도작가(盜作家)로도 악평이 나 있었다. 그는 동아일보에 「잠!」이란 시를 발표한 일이 있는데, 염상섭이 『폐허이후』에서 표절시라고 ‘필주(筆誅)’를 가하고 나온 것이다.
상섭은 『오뇌의 무도』에 수록된 베를렌의 「검고 끗업는 잠은」의 김안서 역문(譯文)과 춘성의 「잠!」을 비교하면서 “가튼 시상을 가튼 용어로 표현”했다고 통박, “자기의 창작에 대하야 책임감과 자존심을” 강조했다. 춘성은 또한 하평(河平)이 번역한 아르치바셰프의 소설 『사닌』을 “읽어보고 출판하겠다”고 원고를 가져간 후 「병든 청춘」으로 개제,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이런 부정 행위에 대한 반감이 폭발한 것이 유명한 「소금쟁이」 논쟁―1926년 9월부터 11월까지 동아일보 ‘문단 시비’란을 통해 열한 차례나 공방전이 전개된 창작설과 번역설 간의 싸움이었다. 한정동(韓晶東)의 「소금쟁이」는 동아일보가 처음 실시한 신춘문예의 동요 부문 당선작, 1925년 3월 9일자에 3등 입선한 같은 작가의 「달」 「갈닢배」와 함께 발표되었다.
창포밧 못가운데 소금쟁이는
1 2 3 4 5 6 7 쓰며 노누나
쓰기는 쓰지만두···
의 이 작품이 이미 ‘조선의 명작 동화’로 유행하고 있던 이듬해 9월 홍파(虹波)란 사람이 동아일보에 「소금쟁이는 번역인가」를 투고, 이 동요가 일본의 “소학교 6학년 하기 휴학 학습장에 수록된 일문 동요를 번역한 것”이라고 들고 나왔다. 15세 소년의 제보로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홍파는 두 동요 전문을 비교한 후 “15세 소년에게 욕먹어도 응당한” 그 작가를 공격하면서 선자의 잘못에 대해서도 비난했다.
이에 맞서 문병찬(文秉讚)은 「소금쟁이」가 결코 번역일 수 없으며, 오히려 방정환의 「허잽이」가 도작이라고 나섰고, 심사를 맡았던 김안서는 “실제 한군의 창작이라고 인정할 수 없게끔 되었다”고 잘못을 시인하면서도, 한정동의 다른 작품도 우수하며, 설령 「소금쟁이」가 번역이라 하더라도 “어린 동무에게 해를 주지 아니하고 많은 이익을 준 이상 가혹하게 힐책할 것은 아니라”고 두둔했으며, 진남포에 있던 한정동도 창작 경위를 밝히면서 결코 일본 동요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방정환이 「허잽이」는 자신의 창작이란 사실을 밝힌 뒤 최호동(崔湖東)·한병도(韓秉道)·김원섭(金元燮)·홍파 등이 잇달아 「소금쟁이」의 창작설을 공격하며 ‘예술가의 양심’으로 표절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일련의 논쟁이 있은 뒤 동아일보 ‘편집자’는 「소금쟁이 논전(論戰)을 보고」(11월 8일)에서 ① 소파 방정환에 대한 사실무근한 명예 훼손을 그대로 실은 것에 사과하며, ② 「소금쟁이」는 번역이라 아니할 수 없게 되었다. ③ 그러나 결코 완벽을 기할 수 없는 선자에 대해 지나치게 나무라지 말 것이며, ④ 표절은 문단에 용납치 못할 악덕임을 선전하는 데 이 논쟁의 성과가 있고, 앞으로 논쟁은 사실을 정확히 조사해서 전개되어야 한다는 등으로 결론, 이 시비를 마무리했다. 한정동은 이후 많은 우수한 창작 동화를 발표함으로써 전날의 시비가 남긴 꺼림칙한 인상을 말끔히 씻어냈다.
근래의 표절작들
문학평론가 반경환씨는 2004년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고발한다’는 책을 내고 1987년 나온 이 중편소설이 앞서 1972년 발표된 소설가 황석영씨의 단편소설 ‘아우를 위하여’를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반씨는 두 작품은 주제와 등장인물의 성격, 이야기의 구조와 전개방식이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아우를 위하여’에서 주인공은 부산의 초등학교에서 서울 영등포의 초등학교로 전학한다. 전학 온 학급에서는 한 악동이 담임이 묵인하는 가운데 학급 친구들을 억압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도 초등학생인 주인공이 전학해 들어간 학급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진다.
한 작가는 최근 신경숙 표절 논란 소식을 듣고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다며 페이스북에 2003년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삼미 슈퍼스타스의 마지막 팬클럽’을 들었다. 그는 “한 때 하드코어 야구팬이었던 나로서는 그 소설을 사 보고 나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며 “한 두 문장 정도 베낀 게 아니라 그 소설은 조금씩 살만 붙였다 뿐이지 아예 5분의 4 정도가 통으로 베낀 내용이었다”고 지적했다 원본은 PC통신 천리안에 올라온 ‘거꾸로 보는 한국야구사’였다. 인터넷 정보공유 사이트인 나무위키는 이 사건에 대해 "박민규는 은근슬쩍 얼버무리는 정도로 넘어가서 엄청난 성토를 받았고 결국 표절임을 완전히 인정하지는 않고 소재 차용이라는 식으로 마무리됐다“고 전했다.
기성 작가가 문학상을 심사하면서 입수한 원고를 자신의 작품에 활용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경란씨의 장편소설 ‘혀’와 이승우씨의 ‘지상의 노래’가 그런 공방의 대상이 됐다. 주이란씨는 자신이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단편 ‘혀’를 당시 심사위원 조씨가 본 뒤 표절했다며 저작권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했다. 주씨는 조씨의 작품이 제목뿐 아니라 결말 등이 자신의 작품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그러나 저작권위원회의 저작권분쟁조정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이 사건은 흐지부지됐다.
작가 김주욱씨는 2013년 동인문학상을 받은 이승우씨의 ‘지상의 노래’가 자신의 신춘문예 응모작 ‘허물’과 인물 캐릭터, 모티프, 디테일이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이 씨는 그해 해당 신문의 심사위원이었다. 이씨는 표절 주장에 대해 “참고, 참조한 적도 없다”며 “무의식적으로 표절했을 소지조차 없다”고 반박했다. 두 작가는 2013년 각각 이 사건과 관련한 소설을 써내기도 했다. 이씨는 ‘하지 않은 일’이라는 제목으로, 김씨는 ‘표절’이라는 제목으로 냈다.
상상력이 남다른 작가들이지만 ‘기초 원고’를 참고하면 집필의 부담이 덜어지게 마련이다. 작가 이병주(1921~1992)는 대하소설 ‘지리산’을 이태씨의 수기 ‘남부군’의 원고를 참고해 썼다. 원저자 이씨는 1975년 자신의 수기 원고를 한 주간지에 연재하려 했으나 주간지측은 유신 체제에서는 불가하다고 답변한 뒤 원고를 이씨에게 돌려주지 않고 당시 ‘지리산’을 쓰던 이씨에게 건넸다. 원저자 이씨는 “1985년 작가 이씨가 주간지측을 통해 수기를 참고하겠다고 요청해 응했지만 이는 상식적인 참고만 하는 줄 알고 그랬던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병주씨는 원고를 입수했을 때 원저자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에는 포스트모더니즘 사조에 따라 대두된 모방을 거리끼지 않는 ‘혼성모방’ 기법을 둘러싸고 공방이 치열했다. 이인화씨는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로 1992년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평론가 이성욱씨는 이 소설이 국내외 작품을 짜깁기한 명백한 표절이라고 비판했다. 이 소설은 곳곳이 공지영.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작품에서 따온 도용 작품이라고 지적했다. 이인화씨는 “내 작품은 어떤 기존작품을 변형시키되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혼성모방 기법을 택한 것으로 도용ㆍ표절 운운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같은 해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한 박일문씨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작가 장정일씨가 이 주장을 한 문학잡지에 발표했고 그러자 박씨는 장씨 등을 대구지검에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아울러 영남일보에 반론을 게재해 자신의 소설은 외국 작품과 전혀 무관하다며 자신을 무뇌아ㆍ정신적 미숙아라고 표현한 장씨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장씨는 이를 받아 같은 매체에 ‘박일문씨에겐 뇌가 있습니다’라는 반박문을 싣고 하루키의 작품과 박씨의 작품에 나오는 구절을 적시했다. 고소사건으로 이어진 표절시비는 박씨가 고소를 취하하면서 끝났다.
김지하건은 모방인가? 표절인가?
신경숙 표절의혹 사태를 계기로 서울경제는 한국아이닷컴을 통해 김지하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폴 엘리에르의 시 ‘자유’를 표절했다며 평론가 황현산의 주장을 보도했다. 평론가 황현산 씨는 지난 7일 자기 트위터에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가 발표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게 (폴) 엘뤼아르의 표절인 걸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민주화의 대의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잘한 일이었는지 묻게 된다. '타는 목마름으로'를 온전하게 살린 것은 이성현의 작곡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와 문학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으로 유명한 황현산은 현재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유명 평론가다. 그가 트윗에서 언급한 엘뤼아르 작품은 ‘자유’. 황현산의 지적대로 ‘타는 목마름으로’와 ‘자유’는 주제는 물론이고 어투 등에서도 빼다 박을 정도로 닮았다.
<‘내 학생 때 공책 위에/ 내 책상이며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도 눈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읽어본 모든 책상 위에/ 공백인 모든 책상 위에/ 돌, 피, 종이나 재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숯칠한 조상들 위에/ 전사들의 무기들 위에/ 왕들의 왕관 위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밀림에도 사막에도/ 새 둥지에도 금송화에도/ 내 어린 날의 메아리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밤과 밤의 기적 위에/ 날마다의 흰 빵 위에/ 약혼의 계절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내 하늘색 누더기 옷들에/ 곰팡 난 해가 비친 못 위에/ 달빛 생생한 호수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들 위에 지평선 위에/ 새들의 날개 위에/ 그림자들의 방앗간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새벽이 내뿜은 입김 위에/ 바다 위에 또 배들 위에/ 넋을 잃은 멧부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구름들의 거품 위에/ 소낙비의 땀방울들 위에/ 굵은 또 김빠진 빗방울에도/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반짝이는 형상들 위에/ 온갖 빛깔의 종들 위에/ 물리적인 진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잠깨어난 오솔길들 위에/ 뻗어나가는 길들 위에/ 사람 넘쳐나는 광장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켜지는 램프 불 위에/ 꺼지는 램프 불 위에/ 모여 앉은 내 집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겨울의 또 내 방의/ 둘로 쪼개진 과실 위에/ 속 빈 조가비인 내 침대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주접떠나 귀여운 내 개 위에/ 그 쫑긋 세운 양쪽 귀 위에/ 그 서투른 다리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내 문턱의 발판 위에/ 정든 가구들 위에/ 축복 받은 넘실대는 불길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사이 좋은 모든 육체 위에/ 내 친구들의 이마 위에/ 내미는 손과 손마디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놀란 얼굴들의 유리창 위에/ 침묵보다도 훨씬 더/ 조심성 있는 입술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파괴된 내 은신처들 위에/ 허물어진 내 등대들 위에/ 내 권태의 벽들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나는// 욕망도 없는 부재 위에/ 벌거숭이인 고독 위에/ 죽음의 걸음과 걸음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다시 돌아온 건강 위에/ 사라져 간 위험 위에/ 회상도 없는 희망 위에/ 나는 네 이름을 쓴다// 그리고 한 마디 말에 힘입어/ 내 삶을 다시 시작하니/ 너를 알기 위해 나는 태어났다/ 네 이름지어 부르기 위해// 오 자유여’(폴 엘뤼아르의 ‘자유’ 전문)>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욱소리 호르락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전문)>
20세기 프랑스의 대표 시인인 엘뤼아르는 초현실주의 작품을 쓰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을 계기로 정치색을 강하게 품은 작품을 쓴다.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독일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 활동에 적극 참여했을 정도다. 평화와 자유, 정의를 관통하는 엘뤼아르 작품 중에서도 대표적인 게 ‘자유’다. 1942년 영국 공군은 엘뤼아르의 시집 ‘시와 진실’을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에 뿌리기도 했다. 이 시집의 맨 앞에 실린 작품이 ‘자유’다.
‘타는 목마름으로’는 대표적인 저항시인이었던 김지하가 엄혹한 유신시대의 억압 속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한 작품. 숨이 막힐 듯한 시대적 상황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절규하는 문체로 풀어낸 한국문단의 대표적인 사회참여시다. 사실 ‘타는 목마름으로’가 ‘자유’의 표절작이라는 주장은 진작 제기됐다. 시인 노태맹은 올 초 한 지방지에서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라는 시는 엘뤼아르의 ‘자유’라는 시를 대 놓고 베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두 시가 워낙 유명한 만큼 시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타는 목마름으로’가 ‘자유’의 표절작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일반인은 왜 이 같은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일까. 전태흥 미래티앤씨 대표가 2013년 1월 한 지방지에 기고한 글에서 그 이유를 유추할 수 있다.
“며칠 전 페이스 북에서 친구가 쓴 글을 읽었다. 그 글은 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시인인 폴 엘뤼아르의 시 '자유'와 한국에서 오랫동안 저항시인(무엇에 저항했는지는 모르지만)으로 불린 김지하의 대표 시 '타는 목마름으로'를 비교한 것이었다. 그 글의 내용은 한마디로 김지하의 시가 폴 엘뤼아르의 시를 베낀 것인데 이미 오래전에 '자유'라는 시가 한국에 소개되었고 그 시를 읽은 사람들이 김지하가 그 시를 표절한 것을 알면서 침묵한 것은 표절의 명백한 공범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이어 친구는 우리가 그동안 김지하라는 이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주저해 왔던 것은 젊은 날 자신이 지켜왔던 것들을 잃지 않으려는 일종의 보상심리와 같다고 썼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민주화의 대의가 중요했기 때문”에 모두들 표절인 걸 알고서도 침묵했다는 황현산의 글과 일맥상통하는 주장이다. 한 문인은 “표절에 대한 ‘침묵의 카르텔’이 있다는 이응준의 지적은 김지하의 사례에도 유효하다”고 말했다. 표절에 관한 다수 문인들의 견해의 시사점은 “나쁜 도둑질이다‘라는데 주안점이 있지만 과연 이 김지하와 엘리에르 작품을 표절로 볼 수 있는지 혹, 문체의 모방이 아닌지도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분명히 ’민주주의‘ 와 ’자유‘라는 모티브, 주제는 표절일 수도 있지만 문체가 비슷해도 김지하만의 문장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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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우 필자 맑은샘은 젊은 시절의 지하를 생각해볼 때 습작생의 흠모하는 대가 작품에 대한 일상적인 ’모방‘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고 본다. 이것은 필자가 김지하 시인을 존경하거나 흠모해서가 절대 아니라(그럴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창작경험상의 노정과 경험을 비추어 볼 때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젊고 어린시절, 비슷하거나 동감을 느끼는 창작 모티브나 정서,감정이 형성될 때 우연이건 의식적이건 그 대상작품과 문체도 흠모하거나 비슷해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운 옛날이면 몰라도 요즈음의 기준으로는 "어림없는 일"이다. 이런 경우는 원작을 바탕으로한 제2의 창작인 ’패러디 시‘ 창작으로 해소될 수 있고 원작자는 밝혀 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장치도 없이 문장이나 문구가 같다는 것은 이런 경우와 천지차이다. 그런 경우는 제2의 창작자가 원작자를 밝혀주지 않으면 인용이 아니라 표절이 맞다. 다른 이의 경우는 김지하건과는 좀 달랐다.
예이츠와 김소월 '진달래꽃'의 경우는 모방인가? 표절인가?
D. william Butler Yeats 와 김소월
He Wishes for The Cloths of Heaven
William Butler Yeats
Had I the heavens' embroidered cloths,(진달래)
Enwrought with golden and silver light,
The blue and the dim and the dark cloths
Of night and light and the half-light,
I would spread the cloths under your feet:(깔아드리오리다)
But I, being poor, have only my dreams;
I have spread my dreams under your feet;
Tread softly because you tread on my dreams.(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그는 하늘 나라의 옷감을 원한다
예이츠
내가 만일 금빛, 은빛으로 곱게 짜인,
하늘나라의 수놓인 옷감을 가지고 있다면,
밤과 낮과 연한 빛의
푸르고, 어슴프레한, 짙은 빛의 옷감을 가지고 있다면,
그 옷감 당신의 발아래 깔아드리오리다.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라곤 꿈밖에 없소.
그 꿈, 당신의 발아래 깔아 드리오리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당신이 밟는 것은 나의 꿈이기 때문이려오.
<김신표 역>
진달래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Azalea Soweol Kim/trans. by Shinpyo, Kim
When you would leave me
feeling weary of me,
I will willingly allow you to leave me
without saying anything.
I will scatter the armful of azaleas instead,
gathering them from Yakson Yeongbyon.
Tread the azaleas softly spread under your feet leaving me.
When you would leave me
feeling weary of me,
I will never shed tears for anything.
SK대 이00 교수, DK대 이00 교수 등은 김소월의 ‘진달래’가 예이츠의 ‘하늘의 천’이란 시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하생 김00 선생(안양대 영문과)는 그들의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믿고 있고 그 근거로, 김소월은 오산 중학교(평양)에 다녔고, 그의 스승 영문학자 김억(1893-1950)은 영시 번역시집에서 예이츠의 위의 시를 “꿈”이란 이름으로 번역하여 수록했고 학생들에게 소개했다는 것인데 그의 제자 김소월은 그 시를 읽었으리라 믿는 것이다. 당연히 생성되는 합리적 유추다. 이에츠 (1865~1939,) 김소월 (1902~1934) 저
시는 이에츠가 1899년에 쓴것이다. 이경우 필자는 표절이긴한데 '습작생의 모방'이라고 본다. 당시의 어린 김소월이 시를 출판하여 영리를 취할 목적도 아니었으리라 유추되고 이에츠의 시를 스승 김억으로부터 익혀 시를 쓰고픈 마음을 가졌으리라 생각도 드는데 요즈음처럼 영악한 시대도 아닌데 뭐그리 폼을 잡으려 했을까? 좋은 대상에 대한 모방이란? 좋은 창작의 동인이기도 하다.
자신의 작품이 소중하고 생각있으며 책임감있는 작가는 당연히 남의 작품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도 안다. 창작의 땀은 아이 낳아 본 경험이 있는 과부맘을 홀아비가 안다는 뜻이다. 표절작가가 양산되는 것은 작가의 역량부족을 스스로 모르고 작품으로 꼭 "폼"을 잡으려는 욕심이 꿈틀되는 어린 미혼모적 무책임의 유치한 순간에 발생한다. 요근래 일어났던 재미교포 모 여고생의 하버드, 스탠포드 동시합격같은 '리플리 증후군' 이 만들어내는 사기장난의 천박하고 비뚤어진 문학적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습작기의 습작생 문제가 아니라 등단한 작가가 그렇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분명한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필자도 습작시기 돌아가신 시스승으로부터 "창작의 습작이란?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 표현의지를 가다듬는 수련의 과정이라서 기본적으로 그런 의지없이 그저 남의 작품이 좋아보여서 나도 저렇게 쓰고 싶더라도 그냥 읽고 생각해보며 지나갈 일이지 그것을 필사는 죽어도 하지마라!"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문단에 기존작가의 작품을 모방한답시고 필사하는 웃지못할 일들이 있었다. 스승 자신도 나의 습작낙서를 들고가면 이 조사는 이렇게 저 문법적 요소는 저렇게 문구와 행 연을 다듬고 깍는 퇴고의 연마와 기술로 다듬어주셨는데 그 과정은 문장을 다듬는 과정에서의 깊이 생각하는 묘미를 알려주신 것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내낙서를 "작품"으로 변모시켜주심을 몸소 보여주셨는데 그렇다고해서 철저히 내 표현의지나 생각, 사상을 "이래라 저래라" 하신 것은 절대 아니다.
창작은 그야말로 그 작가의 정서, 감정, 사상, 표현의지가 투영되는 작업이라 남의 글을 필사한다는 짓이 얼마나 창작의 근원적 본질에 위배되는 무식한 짓인가? 그런대도 당시 문단에서는 어디서 발생하고 생겨났는지 '필사'라는 이 희안한 도제적 습작교육이 돌아다니고 있었으니,,,,,웃음이 나지만 웃을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런 수준낮고 유치한 교육을 받은 작가가 '아차'하면 표절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발사와 미용사가 머리카락 다듬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지 타인의 헤어스타일의 모양을 배우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독창적 헤어스타일, 그것은 그 이발사, 미용사 자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표절,,,, 이런 수준낮은 짓거리들은 이제 좀 사라지는 문단을 만들자. 필자는 이응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한국문단이 이 더럽고 치사하며 유치한 짓을 버리지 않는한 절대 작품으로 사랑받고 존경받으며 돈도 제대로 버는 선진문화출판 시대를 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글로벌 문학계에서 어깨를 견줄수도 없다고 필자는 본다.
신경숙 표절의혹은 이응준 말고도 평론가 정문순 지적으로 2000년도 유수문예지통해 드러나
소설가 신경숙의 1994년 단편 '전설'을 둘러싸고 불거진 표절 의혹이 지난 2000년에도 유수 문예지를 통해 공식적으로 제기됐던 것으로 18일 드러났다. 이는 현재 표절 의혹 대상인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케(平岡公威))의 소설 '우국'(憂國)을 "알지 못한다"고 반박한 신 작가의 해명에 매우 강한 의문을 갖게하는 대목이다. 또 과거에도 제기된 표절 의혹이 아무런 반향없이 묻혔다는 점에서 문단의 자정기능에 대한 회의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부산 출신의 문학평론가 정문순(46)씨는 지난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은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 기고문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95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에 실린 단편 '전설'은 명백히 일본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 '우국'의 표절작"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6일 소설가 이응준이 표절의 증거로 한 문단의 유사성을 집중 거론한 반면, 정씨의 주장은 모티브는 물론, 내용과 구조 면에서도 유사하다는 전면 표절의 주장을 담고 있다.
정 평론가는 "일제 파시즘기 때 동료들의 친위쿠데타 모의에 빠진 한 장교가 대의를 위해 자결한다는 '우국'의 내용과, 한국전쟁 때 한 사내가 전쟁터에 자원입대하여 실종되는 '전설'은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남은 아내들의 선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점에서 주요 모티브부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신 작가는 이응준의 주장에 대해 17일 출판사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을 통해 "'우국'을 알지 못하고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고, 창비 또한 "두 작품이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라며 표절 의혹을 공식 부인했다. 그러나 정씨의 주장은 이를 전면적으로 뒤집는 내용이다.
"'우국'의 아내는 남편 따라 죽는 데 일호의 주저도 없으며, '전설'의 여자는 남편의 실종 통보를 받고도 평생을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보낸다. 또 10여 개의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구는 물론이고 남편의 죽음이나 참전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아내의 태도, 역순적 사건 구성, 서두에 역사적 배경을 언급한 전개 방식 등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나 영향 관계로 해석될 여지를 봉쇄해버린다."
정 씨 기고문의 존재는 과연 신 작가가 주요 문예지에 발표된 표절 의혹조차 15년 동안 몰랐겠느냐는 새로운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한 평론가는 "자신에 관한 평론은 꼼꼼히 찾아보는 소설가들의 속성상 그가 주요 문예지에 게재된 이 평론의 존재를 몰랐으리란 개연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표절의 문제를 한국 문단의 저급화를 초래하는 상업적 담합 구조와 연결짓고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신경숙이 견고한 작품 세계를 갖춘 작가라도 표절의 유혹을 피할 수 없었을까? 또 문단이 실력보다 무늬가 큰 작가를 자기네 취향과 상품성을 고려하여 띄워 준 점이 과연 표절을 낳은 요인과 무관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똑같은 표절의 문제가 논쟁의 수면 위로 올랐다. 적어도 정 씨는 그에 대한 결론을 이미 15년 전 내렸다. "신경숙은 개인 이름에 그치지 않고 90년대 문단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 작가가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데서 필자는 한국문단의 허위성을 보고 있다. 문단이, 실력이 달리는 소설가에게 지나친 기대로 압박을 가하는 일을 멈추지 않거나, 표절 시비에 수수방관하는 직무유기를 보인다면 글도둑들은 계속 양산될 것이다." 정 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15년 전 제가 제기한 게 새로운 것인양 논쟁으로 불거지는 모습을 보는 건 유쾌하지 않다"며 "하지만 이번에라도 확실하게 진상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표절환자 쓰레기들이 심사위원이라고 앉아있는 신춘문예?
조경란 ‘혀’ 표절 논란… ‘동인문학상 수상’도 비판
또다른 중견 작가의 표절 의혹은 소설가 조경란(39의 지난해 11월 펴낸 장편소설 ‘혀’가 논란이 된 것이다. 조경란은 표절 논란의 매듭이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소설집 ‘풍선을 샀어’(문학과지성사)로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2008년 동인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문단 안팎에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수상작이 표절 논란의 중심에 선 작품은 아니지만, 문학상이라는 것이 작품뿐 아니라 작품에 밴 작가의 정신에 주는 것이기 때문에 표절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는 작가를 수상자로 결정하려면 엄격한 검증을 선행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견해를 가진 이들은 적어도 수상자와 관련한 표절 공방이 진행 중인 상태에서는 조씨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것을 잠시 미뤘어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인작가 주이란씨 “내 작품 베껴”
조경란의 장편소설 ‘혀’를 둘러싼 표절 공방은 최근 소설집 ‘혀’(글의꿈)를 펴낸 신인 작가 주이란(32)씨의 제기로 시작됐다. 주씨는 조경란의 ‘혀’가 자신의 단편소설 ‘혀’를 베낀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씨는 “나는 단편소설 ‘혀’를 2005년 창작해 2006년 12월 ‘동아일보 2007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이때 조경란은 예심 심사위원이었다. 심사 후 2007년 11월 조경란은 동명의 장편소설 ‘혀’를 펴냈다. 따라서 조경란의 ‘혀’는 나의 단편소설 ‘혀’를 베낀 것이다.” 여기까지가 주씨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조경란과 문학동네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문학동네 측은 “이미 여러 해 전에 조경란에게서 직접 줄거리를 듣고 출판계약을 했기 때문에 표절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고 반박했다. 당사자인 조경란은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어이없다. 나는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심사를 본 일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경란은 이후 “당시 심사위원을 맡긴 했으나 그 작품을 읽은 기억은 없다”고 자신의 말을 번복했다. 실제로 조경란은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윤대녕, 우찬제, 김미현씨와 함께 단편소설 예심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것이 확인됐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경란이 주씨의 작품을 표절했는지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다. 주씨가 200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혀’로 응모했는지 밝히는 게 우선이지만, 동아일보 측에 당시의 자료가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 주씨가 ‘혀’로 응모했다고 해도 해당 작품을 조경란이 예심했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응모작이 많아 예심에 참여한 복수의 심사위원이 일차적으로 작품을 분담해 읽어 심사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씨의 ‘혀’와 조경란의 ‘혀’가 문장이 같은 부분이 없는 대신 핵심 소재나 아이디어 차원에서 비슷한 면이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이를 표절로 볼 수 있을 것이냐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조경란과 주씨의 작품을 비교하면 맛보고 사랑하고 거짓말하는 혀의 이미지, 구강성교, 사람의 혀를 요리로 사용하는 결말 부분 등이 유사하다.
현재 주씨는 조씨를 상대로 저작권위원회에 저작권 분쟁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하지만 양측이 지금까지의 주장과 다른 발언을 하지 않는 이상 진실을 가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저작권상담실 전문위원인 김기태 세명대 교수는 “저작권 분쟁 조정은 쌍방의 합의에 의해서만 효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 일방이 합의를 거부하면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조정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씨가 자기작품으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했고 당시 조경란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면 문제는 너무너무 심각하고 주씨는 안타깝기 이를데 없으며 조경란의 작품이 이를 표절한 것이 맞다면 조경란은 작가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양심도 파렴치범이다. 절필 정도가 아니라 목숨 내놓아야할 정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권위 뿐만 아니라 문단을 똥칠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을 것이다.
표절 의혹으로 도마에 오른 소설가 조경란·신경숙·권지예씨.(왼쪽부터)
중견 작가의 표절 시비는 이뿐만 아니다. 소설가 권지예, 신경숙씨이 구설에 올랐고, 당시 중견은 아니었지만 소설가 이인화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신경숙이 다른 사람의 작품을 표절해 자신의 작품 소재로 활용했다는 의혹은 ‘작가세계’ 1999년 가을호에 처음 불거졌다. 문학평론가 박철화 중앙대 교수가 ‘여성성의 글쓰기, 대화와 성숙으로’라는 글에서 신씨의 ‘기차는 떠나네’와 ‘기억 찾기’가 마루야마 겐지와 패트릭 모디아노의 소설을 표절했다는 혐의를 제기하면서다. 직후인 같은 해 9월 21일 한겨레신문의 문학담당 최재봉 기자는 신씨가 문학동네 1999년 여름호에 발표한 소설 ‘딸기밭’이 재미 유학생 안승준의 유고집 ‘살아 있는 것이오’의 상당 부분을 베낀 것이라는 의혹을 구체적인 문장 비교를 통해 제기했다. 신경숙은 이에 대해 “승준씨의 어머니에게서 책을 받아 읽고 너무도 슬프고 감동적이어서 언젠가 소설로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유족에게 누가 될까 봐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고 변명했다. 또 박철화씨의 발언에 대해서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거나 “다른 작가에 대해 언급할 때는 세심한 배려와 치밀한 분석이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 지극히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핵심 소재·아이디어 차원서 비슷
권지예의 표절 시비는 2005년 불거졌다. 2005년 동인문학상 수상작으로 단편소설 9편을 묶은 권지예의 ‘꽃게무덤’ 중 마지막 수록작인 ‘봉인’이 시골의사로 유명한 외과의사 박경철씨의 수필집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에서 소재와 구성을 베꼈다는 의혹이다. 이에 대해 권지예씨는 “소설의 일부 소재를 인터넷에서 떠도는 글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표절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술 더 떠 표절 논란과 관련해 권씨의 ‘꽃게무덤’를 재심사한 동인문학상 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며 권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런 작자들이 무슨 문학적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집단인가? 애초 “법적인 문제를 제기할 의사는 없다. 다만 수상작이기 때문에 작가의 양식과 양심에 입각해서 스스로 처리하기 바란다”고 말했던 박씨는 이후 “권지예씨나 위원회의 반응은 다소 의외”라면서 “대단히 놀랍고 깊이 유감스럽다”라고 자신의 블로그에 밝혔다.
또 소설가 이인화는 자신의 작품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가 한국 또는 일본 작가들의 작품에서 여러 문장을 절취해 삽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혼성모방 기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혼성모방은 원작과 복제품의 구별이 사라진 포스트모던 사회에 걸맞은 기법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떤 작가도 자신의 표절 의혹에 대해 겸허히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인 일이 없었던 셈이다.
‘폼’이 아니라 문학적 역량이 필요하다
[문학비평] 중견작가, 그들의 현주소, 최강민 / 문학평론가
9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문학의 위기론은 더 이상 낯선 유령이 아닌 실체다. 거대담론의 위축, 영상매체의 확장, 인터넷 문화의 활성화, 후기자본주의의 확대는 문학의 영토를 급격하게 위축시켰다. 문제는 우리 문단이 이러한 문학의 위기를 극복할 문학적 대응력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이 중심에 한국문학의 허리를 담당하는 중견작가들의 침체가 자리한다. 이것은 개별 작가의 무능력과 불성실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한국문단의 부실한 시스템의 산물이기도 하다.
공지영
누가 더 많이 쓰냐는 ‘생산량’으로 작가의 문학적 명성을 확인하는 문학적 조급증, 신상품을 선호하는 상업적 스타시스템, 주례사비평이라는 거품과 자아성찰의 약화 등은 젊은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을 단기간에 탕진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오버페이스의 일상화 속에 한국문학의 대표적 고질병 중의 하나인 조로증은 만성병으로 자리한다. 이것은 곧 바로 중견작가군의 구조적 부실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조로증에 걸린 글쓰기
중견작가, 그들은 누구인가. 젊은 작가(신진, 신예)는 등단한지 10년 미만인 20~30대 작가를, 중견작가는 10년 이상인 40~50대 작가를, 원로작가(대가)는 30년이 넘은 60대 이상의 작가를 보통 지칭한다. 이때 중요한 분류 기준은 연령보다 창작 활동을 한 시기이다. 그렇다면 중견작가란 명칭은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획득하는 계급장에 불과한가. 물론 그것은 아니다.
황석영
중견작가란 명칭은 한국문학의 질적·양적 성장을 위한 작가의 성실한 창작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20~30대의 젊은 작가들은 재기발랄한 감각, 전위적 실험성, 패기를 흔히 보여준다. 이에 비해 중견작가란 앞의 항목보다 삶과 세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예리한 문제의식을 갖고,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독자적 미학을 발견해 묵묵히 추구하는 존재이다. 한 나라의 문학적 깊이는 대개 자신의 문학적 세계를 꾸준하게 탐구하는 중견작가의 활동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그러나 한국의 중견작가를 둘러싼 내외적 요인은 중견작가의 건실한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실정이다. 중견작가들은 내부적으로 작가 정체성의 혼란, 문제의식의 약화, 독자적인 미학 창출의 실패, 고갈된 문학적 상상력, 경제적 어려움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외부적으로 보면 출판계의 물신적 상업주의, 신진작가 위주로 운영되는 스타시스템, 새것콤플렉스, 문예지의 집중 조명 미흡, 문예지 지면의 축소, 가벼운 읽기를 선호하는 독자들의 성향 변화 등이 존재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현재의 중견작가들은 젊은 작가 위주로 짜여진 문단 시스템의 희생물이지만, 과거의 젊은 시절에는 이 시스템의 수혜자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기존의 문단 시스템을 해체하여 재구성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은희경
70~80년대 작가들은 어디에 있나?
현재 한국문단에서 중견작가는 70년대 작가인 유신 세대, 80년대 작가인 5·18광주민주항쟁 세대, 90년대 작가인 포스트(모더니즘) 세대로 구성돼 있다. 유신 세대와 광주민주항쟁 세대가 거대담론과 문학적 엄숙주의를 매개로 동질적 성격으로 묶여진다면, 탈계몽과 자유로운 상상력을 강조하는 포스트 세대는 앞의 세대와 다른 이질적 성격을 드러낸다. 문제는 이러한 이질성이 아니라 전자와 후자 세대의 상호 불신과 소통 단절이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창조적 계승과 발전에 장애를 초래한다. 2000년대 문학계에서 그나마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중견작가의 막내격인 90년대 작가들이다. 유신 세대와 5·18 세대인 중견작가의 글쓰기는 안타깝게도 잘 보이지 않는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자리한다.
개인적 일상, 욕망, 내면에 집중하던 90년대 문학은 2000년대 들어 한계에 부딪친다. 90년대 문학을 주도했던 여성작가들의 상대적인 쇠퇴 속에 2000년대 문학은 잃어버린 서사성을 회복하고자 한다. 역사소설의 유행, 장편소설에 대한 관심, 남성작가의 부활은 달라진 문학의 지형도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2000년대 젊은 작가들인 박민규, 이기호, 김중혁, 김애란 등의 두드러진 활약에 비해, 대다수의 중견작가들은 새로운 시대적 패러다임을 생산하지 못한 채 여전히 암중모색의 단계에 머물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중견작가의 침체를 그나마 타개한 것은 공지영이다. 대학 교수와 사형수와의 애틋한 사랑을 신파적 통속성과 감상성으로 채색한 공지영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5)은 중견작가와 서사의 부활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현대물이었다면 이 시대의 많은 중견작가들이 애정을 쏟은 것은 역사소설이다. 많은 문학적 내공을 필요로 하는 역사소설은 그동안 중견작가들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역사소설의 창작 붐은 서사성에 대한 향수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당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작가들의 도피처일 수도 있다. 최근에 역사소설을 선보인 대표적인 중견작가는 김별아, 김영하, 신경숙, 김경욱, 김탁환 등이다.
이 중에서 중견작가 신경숙의 『리진』(2007)은 구한말 프랑스 공사 콜랭의 아내가 돼 프랑스로 떠난 궁중무희 리진의 비극적 삶을 그린다. 신경숙은 이 소설의 주제가 역사가 아닌 인간임을 여러번 강조한다. 이러한 작가의 진술은 개인적 삶의 강조를 통해 역사의식의 미흡함을 숨기려는 알리바이의 성격이 짙다. 실제 이 소설을 읽어보면 시대적 배경은 구한말 조선이지만 현대물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결합한 팩션(faction)이 허구에 지나치게 강조점을 둘 때 역사적 진실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김경욱의 『천년의 왕국』(2007)은 17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네덜란드인 벨테브레 혹은 박연(朴燕)이라는 사내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시 이 소설도 신경숙의 『리진』처럼 외부인의 시선을 통해 국내를 바라보는 이국취향의 엑조티시즘을 드러낸다. 이 소설도 『리진』처럼 역사에 대한 심층적 접근보다 흥미로운 소재에 의지한 가벼운 역사 읽기 정도에 머물고 있다.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소설 작업이 필요하다
이들과 달리 중견작가에서 대가의 반열에 오른 황석영은 역사물이 아닌 현대물인 장편 『바리데기』(2007)를 통해 우리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의 세계와 대면한다. 이 소설은 북한 소녀인 열두살의 바리가 고향인 북한을 떠나 중국, 영국 등에서 겪는 삶을 그린 탈국가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효녀담인 바리데기신화와 연결된 『바리데기』는 탈북자 문제, 후기자본의 신자유주의 체제, 아프간전쟁과 미국의 위선적 제국주의 등 폭넓은 시선을 통해 젊은 작가들이 보여주기 힘든 서사적 영역을 보여준다.
당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황석영의 소설 작업은 이 땅의 중견작가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렇다고 이것을 리얼리즘에 대한 강박으로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편식보다 고른 영양 섭취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중견작가 외에도 김영현, 방현석, 공선옥, 구효서, 정찬, 은희경, 한강 등이 2000년대에도 꾸준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활약은 적어도 아직까지 중견작가가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소중한 상징들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중견작가가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미 겉늙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뼈아픈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견작가들은 창조적 글쓰기를 통해 ‘새것=근대=발전=진보=젊음=젊은 작가’, ‘낡은 것=전근대=퇴보=보수=늙음=중견작가’라는 낡은 이분법적 도식을 깨부숴야 한다. 지금 중견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허장성세의 권위가 아닌 문학적 역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