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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아 11장 1절 ~ 8절
말씀이 주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1)
The word that came to Jeremiah from the LORD, saying, 1)
주께로부터 말씀이 예레미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전달이 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서는 구약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예레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에게 직접 전달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우리가 만날수 없으므로 성경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는 방식이 이러한데 주일성수과 성실한 교회출석으로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논리는 근거가 없습니다.
근거를 아시는 분이 있다면 저에게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런데, 보라,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둘로 찢어지고 땅이 흔들리며, 바위들이 갈라지고
마태복음 27장 51절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둘로 찢어지는 것의 의미는 지금까지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순번이 된 제사장뿐이었던 것이 모든 사람에게 열림을 의미합니다. 위에서 아래로 찢어짐의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짐을 의미합니다.
그때 그가 자기 계열의 순번이 되어 하나님 앞에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누가복음 1장 8절
침례인 요한의 아버지인 사카랴가 순번이 되어 지성소에 들어가 기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지성소는 제사장의 기도의 장소이며, 예수님이 오시기 전까지 제사장은 속죄제와 기도의 대리자 역할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도 선지자를 통하여 성경으로 주셨고, 이제는 우리가 모두 지성소에 들어가 기도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골방이 곧 지성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교회출석의 순번을 부여하고, 교회출석이 말씀의 뜻을 아는 것의 방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교회출석과 목사 설교로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그러한 길에 대해서 설명이 없습니다.
목사와 성경이 다를 때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실 것입니까? 저는 성경을 선택하겠습니다. 목사와 교회를 선택하실 분은 그렇게 하십시요.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들을 듣고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고하라. 2)
Hear ye the words of this covenant, and speak unto the men of Judah, and to the inhabitants of Jerusalem; 2)
위의 언약들의 말씀을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거민에게 고해야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이 말씀을 읽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는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의 거민은 우리의 분량이 아닙니다. 우리의 분량은 구원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언약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을 듣는 방법은 각자 성경의 말씀을 읽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들에게 고해야 하는 것은 언약의 말씀을 읽으라라고 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말씀을 직접 읽는 것외에 성실한 교회출석으로 언약의 말씀을 접하는 사람들의 말씀에 대한 열매가 좋지 못합니다. 50년을 성실하게 다녀도 성경을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설교로 듣는 것은 부분이고 자신이 직접 성경을 읽지 않으면 그 깊은 의미를 접하기 어렵습니다.
마치 수험생이 강의만 듣고 자신이 따로 공부하지 않는데 시험성적이 좋을 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공부도 자기가 한 공부가 실력이 되듯이 말씀도 자기가 직접 받아들여야 그 뜻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현상의 가장 큰 문제는 교회의 목사들이 설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성도들이 성경을 직접 읽고 깨닫는 것을 꺼려한다는 점입니다. 마치 선생이 매우 뛰어난 학생을 만나면 불편하게 느끼는 것과 같음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적당히 성경에 무지하고 자신이 그 부분을 가르쳐주는 입장이 되어야 자신의 존재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욕심이며, 목사가 계급이 아니라는 것을 잊은 커다란 잘못입니다. 그들이 스스로 말하는대로 성도를 섬기는 것을 하면 됩니다. 말은 섬긴다고 하면서 군림하려는 마음은 악이며, 그것을 고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돌이킬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의 코로나사태가 일어난 것은 사탄의 종들의 공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국교회의 악이 드러나도록 하심입니다.
지금의 이러한 모순된 그들의 모습이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교회숭배와 목사섬김의 행위를 깨닫지 못한 다면 은혜로 더 큰 고난이 나타날 것입니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백신을 맞았습니다. 이들은 면역이 매우 약한 상태로 진전이 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5G는 자연면역을 헤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결핵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코로나 다음의 공격방식은 결핵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핵은 백신으로 약해지고 5G로 망가진 몸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타를 주게 될 것입니다. 감기 바이러스와 결핵균은 차원이 다릅니다. 결핵균은 장기에 구멍을 낼 정도로 강하며, 다제내성 결핵은 현재 듣는 항생제가 없는 상황입니다.
작년 결핵 신규환자 1만8335명…인구 10만명당 36명 ::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 (newsis.com)
그러므로 백신을 맞으신 분들은 꾸준히 해독을 실행하시고, 건강관리를 하셔야 하며, 접종을 피한 분들도 자연 면역에 대해서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위 기사는 결핵환자수가 적어졌다는 기사입니다. 독감이 완전히 사라졌듯이 결핵도 코로나로 넘어간 숫자가 많은 것입니다. 늘어도 언급이 하지 않던 결핵에 대한 언론의 조명은 그들이 준비하는 것이 있다는 사인으로 보여집니다.
너희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이 언약의 말씀들을 복종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니 3)
And say thou unto them, Thus saith the LORD God of Israel; Cursed be the man that obeyeth not the words of this covenant. 3)
cursed ① 저주받은 ② 벌 받은 ③ 저주받을 만한
하나님께서 주신 이 언약의 말씀들을 복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들을 알고나 있습니까? 설교에서 들은 내용으로 알고 있습니까? 수십년간 들은 설교내용을 기억들을 잘하고 있는지요?
위의 말씀은 사실 언약의 말씀들을 전하고 듣고 읽어서 확인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저주의 조건은 말씀들을 알고도 실행하지 않음이기도 하지만 듣지 못하는 경우는 제외입니다. 그러나 전하였는데 듣지 않은 것은 저주의 조건에 이르게 됩니다.
설교로 언약의 말씀들을 들었습니까? 그렇다면 그 언약의 말씀들을 실행하십시요. 예레미야는 기록된 성경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듣는 방법은 설교도 있고, 직접 기록된 말씀을 읽는 것도 포함됩니다. 복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 언약의 말씀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설교로 들었다고 해도 자신이 직접 그 계약과도 같은 언약의 말씀을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당신의 일대 일입니다. 목사도 동료도 가족도 원수도 은인도 당신을 전도한 사람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이러한 언약의 말씀의 언약은 계약당사자가 하나님과 당신 딱 두사람간의 계약이 됩니다. 그런데 제 3자인 목사가 계약서를 읽어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실행하려 한다면 그 불완전성은 온전히 계약당사자인 당신에게 피해로 오게됩니다.
교회를 떠나라는 의미가 아니라 말씀을 읽고 계약당사자로서 살아가면서 교회도 출석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암에 걸렸는데, 다른 사람 감기를 걱정해주는 것과 같음입니다. 일의 순서처럼 구원에도 우선순위가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계약당사자가 자신의 계약서는 내 팽게치고 다른 사람들의 계약서에 참견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것은 내가 이집트 땅에서 철 용광로로부터 너희를 인도하였던 날에 너희 조상에게 명령하였던 것으로 내 음성에 복종하고 내가 명령한 모든 것대로 행하면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는 것이니라. 4)
Which I commanded your fathers in the day that I brought them forth out of the land of Egypt, from the iron furnance, saying, Obey my voice, and do them, according to all which I command you: so shall ye be my people, and I will be your God: 4)
furnace 1.용광로 2.난방로 3.화장로
언약의 말씀을 바로 설명해주시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애매하게 선문답처럼 공격하시지 않습니다. 이단과 사탄의 영을 가진 사람들의 공격방식은 애매하게 공격한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질문을 하나님을 믿는 것이 맞냐? 하나님을 만난적이 있나? 이렇듯 광범위하고 애매한 질문을 합니다. 이러한 질문에 단답으로 하기 어렵고 설명하기 위하여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이런것을 답을 못하는 연약한 믿음이라며, 공격을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에게 주신 언약을 물어보시고 그 예를 바로 설명하시는 것과 대조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언약의 말씀들을 실행하는가 하고 물어보시는 것에서 그치셨다면 혼란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언약의 말씀이 모든 사람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담에게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이 언약의 말씀이며, 아브라함에게는 갈데아우르를 떠나라는 것이 언약이었습니다. 위 말씀에 나타난 이스라엘에게는 이집트에서 탈출하면서 주신 십계명을 지키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이것은 적용이 됩니다. 왜냐면 우리도 언약된 구원을 받는 조건을 가졌고 그 소망으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그 언약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공통점은 순종이라는 점입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순종의 요구가 있을 것입니다. 각자가 그것을 알고 있으며, 아주 작은 일이라도 순종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느 미래에 순종하려 하지 말고 당장 오늘의 순종을 하십시요. 우리의 삶은 오늘의 삶이 반복되어 끝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사는 날도 결국 오늘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겠다고 맹세한 그 맹세를 오늘날도 그와 마찬가지로 행하기 위해서라. 그때 내가 대답하여 말씀드리기를 "오 주여, 그렇게 되옵소서." 하니 5)
That I may perform the oath which I have sworn unto you fathers, to give them a land flowing with milk and honey, as it is this day. Then answered I, and said, So be it, O LORD. 5)
oath 1.선서 2.맹세
sworn ① 맹세한 ② 선서한 ③ swear의 과거 분사형
flowing ① 흐르는 ② 유창한 ③ 솟아나는
언약의 말씀의 계약조건중에서 우리의 계약조건은 말씀에 순종하여 실행함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쪽에서의 실행조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위 말씀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생각으로 해석하기에는 쉬운 부분이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가나안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가나안은 전쟁이 많이 일어나는 땅입니다.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가 연결되는 요충지입니다. 다른 경로는 산과 사막으로 막혀있어서 지중해의 끝의 서안의 해변땅은 삼대륙의 연결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지역에 있는 민족은 각각의 대륙이 강해질 때마다 전쟁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가나안땅은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좋은 땅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땅은 구원의 사명의 민족에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땅입니다. 그러므로 젖과 꿀은 이 세상에서의 고난일 수 있습니다.
고난이 일어나면 우리의 믿음에 젖과 꿀과 같은 영양제로 단단한 믿음으로 성장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뜻으로 여겨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형통하고 잘되고 평안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순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고난은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로 죄의 댓가로 일어나는 심판과는 다른 것입니다. 사람의 대책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기고 쉬면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사형되기 위하여 감옥에 갇힌채 잠을 자는 것처럼 베드로에게는 자신의 대책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감옥에 갇혔으나 교회가 그를 위하여 하나님께 쉬지 않고 기도하더라.
사도행전 12장 5절
우리의 대책은 기도외에는 없으며, 베드로에게 일어났던 일처럼 우리에게도 우리를 죽이려는 일루미나티와 그의 종들인 문재인과 같은 사탄숭배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대응해야합니다. 이제는 윤석열도 어떻게 우리를 공격할지를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평안을 위하여 윤석열당선인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하지만 그도 공중권세의 사탄의 영에서 벗어나지는 못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최선은 살아있는 믿음으로 어떻게 잘 죽는 가를 준비해야하는 것입니다. 이땅의 정의와 공정의 세상이 도래하리라는 희망과 소망은 사람의 소망일 뿐이며, 이땅에 미련을 가진 롯의 아내와 같은 마음일 뿐입니다.
이땅은 점점 더 악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사람이 가진 선함과 양심이 사람의 의지로는 불가능하며, 환경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사탄의 종들은 환경을 계속 악하게 만들것입니다. 첫번째로는 텔레비전 등과 같은 세뇌장치로 사람들의 마음을 강팍하게 할 것이며, 두번째로는 백신으로 사람들의 몸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세번 째로는 경제붕괴와 기근을 일으켜 사람들의 마음의 여유가 없도록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도 인내하며 하나님을 닮은 선함과 양심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이땅의 승리를 예언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의 승리는 이땅의 승리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승리하는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우리가 자꾸 우리가 이기려고 마음을 먹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걸림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가 사탄이라고 불렸던 비참한 일을 우리도 반복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이 되는도다.
이는 네가 하나님의 일들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들을 생각함이라."고 하시더라.
마태복음 16장 23절
그 때 주께서 네게 말씀하시더라. 이 모든 말을 유다의 성읍들과 예루살렘의 거리들에서 일러 선포하라.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듣고 그것들을 행하라. 6)
Then the LORD said unto me, Proclaim all these words in the cities of Judah, and in the streets of Jerusalem, saying, Hear ye the words of this covenant, and do them. 6)
위 말씀의 선포의 의무는 위 말씀을 읽는 저나 당신의 의무가 되는 것이며, 이것은 동시에 우리가 실행할 언약의 실행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기회가 되든 되지 않든지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무는 목회자와 성도 모두에게 부여된 사명입니다.
내가 이집트 땅에서 너희를 인도하여 낸 그 날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너희 조상들에게 간절히 경고하였고 일찍 일어나 경고하여 말하기를 "내 음성에 복종하라." 하였으나 7)
For I earnestly protested unto your fathers in the day that I brought them up out of the land of Egypt, even unto this day, rising early and protesting, saying, Obey my voice. 7)
그들은 복종하지도 아니하였으며 그들의 귀도 기울이지 아니하고 각기 그들의 악한 마음의 상상대로 행했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행하도록 명령하였으나 그들이 행치 아니한 이 언약의 모든 말씀들을 그들 위에 응하게 하겠노라. 8)
Yet they obeyed not, nor inclined their ear, but walked every one in the imagination of their evil heart: therefore I will bring upon them all the words of this covenant, which I commanded them to do; but they did them not. 8)
위의 말씀에 나타난 하나님의 간절한 설득에도 말씀에 순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타나는 것은 그들이 많은 은혜를 경험하고도 금송아지를 숭배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보다 자신들의 대책에 의존하는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것은 자신의 뜻대로의 삶을 추구하였던 것이며, 이는 이스라엘에서도 나타나고 지금의 한국교회의 성도들의 모습에서도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형식으로는 잠시 교회를 나가고 말씀을 읽어도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계약이 파기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한국교회의 모습이 하나님의 언약을 실행하는 것으로 느껴집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의 언약의 실행여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을 아는 것이 필수적인 단계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행함이 진정한 계약의 실행이 되는 것입니다.
저도 조심해야 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이는 결국 다른 사람의 계약서입니다. 제 자신의 계약서의 실행을 더 신경써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과 목회지들의 문제는 결국 그들의 책임으로 그들이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 자신의 계약서에 한국교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선포하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저의 계약서를 지키기 위해서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 말씀을 읽고 그 언약을 실행하라고 외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듣고 안 듣고는 저의 권한밖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듣지 않고 거부하고 비난하고 도리어 공격한다고 해도 실망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저의 계약서에는 선포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언약의 말씀들이 실행됨은 구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저주이기도 합니다. 구원의 언약은 계약의 조건이 맞으면 구원이 되지만 계약이 파기되면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은 무조건 실행된다는 것입니다. 저와 당신이 말씀에 대하여 어떤 결과를 맺던지간에 말씀은 그대로 우리 위에 응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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