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세의 탄식들과 주님 재림의 소망
로마서 8:18~30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로마서 8:21,22)
복음성가 189장(날마다 어려운 순간마다), 234장(나 주의 믿음 갖고)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남에 대한 성도들의 소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러한 장래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나타날 그리스도의 왕국의 영광에 참여할 소망으로 인하여 현재의 고난과 괴로움을 이겨나갈 수 있음을 사도는 여기서 선포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삶에는 많은 고난이 있습니다. 아담 이래로 온 세상에 드리워진 죄와 저주와 죽음과 영벌의 그림자로 인하여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이 신음하며 고통을 겪습니다. 신자들 역시 이 땅에 사는 동안 신앙적 박해와 아담 이래로 세상에 임한 저주로 인하여 다가오는 각종 고난들 때문에 신음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고난을 견뎌나가려면 소망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 재림의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습니다. 이 소망을 굳건히 붙들어서 이 험한 세상을 이겨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이 세상에서 말세가 깊어질수록 탄식이 깊어지는 것을 말해줍니다. 세 종류의 탄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피조물의 탄식이 있습니다. 21,22절에 이르기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들이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영광의 자유의 그 날에 이르기까지 다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피조물들은 본래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전에는 참으로 모든 것이 조화롭고 생명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 후에 피조물들은 죄로 말미암아 부패와 무질서와 저주가 들어왔습니다. 그리하여 식물들 가운데도 독이 든 것들이 생겨나고 동물들 사이에도 약육강식의 법칙이 작동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환경도 파괴되고 무질서하게 변화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이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 세상을 보면 세상 각처에 기근으로 인하여 땅이 거칠어지고 말라가고 있습니다. 저 아프리카 북부와 남부 지역에서 기근으로 동물과 식물들이 말라 죽고 있습니다. 거대한 산불이 매년 북 아프리카 미국과 캐나다와 호주과 지중해 각처 나라에 생기고 있습니다. 각처에서 홍수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땅꺼짐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지하수 개발로 인하여 그 면적 절반이 바다 수면보다 그 높이가 낮아졌습니다. 세상의 동물들 중에 많은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바다 거북과 고래들이 고기잡이용 그물에 걸려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물범들이나 갈매기들이 유출된 기름으로 범벅이 되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바다 수온이 이상 고열현상을 보이며 산소가 없는 죽은 바다 면적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숲은 점점 파괴되고 숲에서 쫓겨난 동물들은 마을로 내려와 행패를 부리다가 총에 맞아 죽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피조물들이 지금 고통을 느끼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러함으로써 만유를 회복하실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이 함께 강림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탄식이 있습니다. 2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들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신앙적 박해가 있습니다. 저 북한의 형제들은 날마다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라크 등지에서 박해를 받고 도망쳐 요르단에 피난처를 구하여 살고 있는 성도들은 고단함 속에 탄식합니다. 삶의 고난이 있습니다. 아담 이래로 모든 인간에게 짐지워진 육신의 고난과 환경적 저주가 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소년 시절부터 엄청난 삶의 시련을 당합니다. 날마다 그를 잡아 죽이려는 사울의 추격을 피하여 하루 하루가 피가 마르는 도망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시편 55편 17절 말씀에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오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의 시편의 상당 비율이 바로 이러한 탄식의 기도입니다. 시편 31:10 말씀에서 이르기를
“내 일생을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연수를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 때문에 약하여지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당하고 슬픔 중에 탄식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곤 하였습니다. 또 다윗은 질병을 인하여 침상에 누워 탄식하며 눈물로 기도하곤 했습니다.
이렇듯 성도들 역시 탄식이 많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5:2 말씀에서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우리 육신의 몸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기 저기 아픕니다. 병이 듭니다. 그래서 몸 자체가 버거운 짐입니다. 이는 마치 낡아버린 천막이 여기 저기 찢어지고 변색되고 비가 샌 것처럼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해진 몸으로 날마다 탄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장막 곧 주님 오실 때 덧 입을 새로운 장막 옷을 입기를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탄식은 세상 사람들처럼 슬픈 탄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탄식은 장차 다가올 주님의 영광의 재림 때에 환희와 찬양과 감사로 바뀌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탄식 중에라도 우리 성도들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탄식이 오늘 본문 말씀에 소개됩니다. 그것은 성령의 탄식입니다. 로마서 8:26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니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이 성령의 탄식은 하나님 백성들과 세상의 불신앙을 인한 하나님의 영의 탄식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이 겪는 고통을 보면서 가슴 아파서 내뱉는 탄식입니다. 예수님께서 귀가 들리지 않고 혀가 묶여 어눌한 사람을 보시자 동네 밖으로 데리고 나가 하늘을 우러러 보시고 탄식하시면서 “에바다”하고 외치십니다. 그리하여 그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하게 하였습니다. 그 때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 것은 그 사람의 영혼과 삶의 문제를 인하여 슬픔과 긍휼이 전이되어서 그렇게 탄식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는 우리를 보시고 불쌍하여 탄식하십니다. 또한 우리의 완고함과 무지함과 게으름 때문에 탄식하십니다. 우리를 세상으로 이끌어가려는 마귀와 육신의 정욕에 맞서 싸우기 위하여 애쓰시면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며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길을 계속 걸어가서 마침내 천성 문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우리를 위하여 탄식하며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세상은 탄식이 가득차 있습니다. 피조물들도 세상에 가득찬 저주와 사망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온갖 고난과 시련을 겪기 때문에 탄식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을 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 역시 박해와 세상의 갖가지 시련 속에서 탄식합니다. 질병과 늙음과 죽음 앞에서 탄식합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질병도 없고 늙음도 없고 죽음도 없고 슬픔도 없고 눈물도 없는 그 나라를 기대하며 소망을 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돕기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우리 안에서 탄식하며 기도해주는 성령님도 계십니다. 장차 이러한 모든 탄식들이 그칠 날이 올 것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온 세상의 모든 피조물들은 다시는 저주가 없고 썩어짐도 없고 온전한 영광과 생명의 자유에 동참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우리는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는 죄가 없고 저주와 사망과 눈물이 없고 전쟁도 없는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탄식은 완전히 사라지고 기쁨의 찬가만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지금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탄식 중에라도 날마다 이 소망을 붙들고 기도하며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