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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인되어야할 성구>
1)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 과 예루살렘에서 피할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2:32)
<주일 설교>
오늘도 행복한 주일 아침입니다. 새 아침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우리 함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아멘, 아멘!!!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요엘서입니다. 요엘서는 포로기 이전의 예언을 회고하고, 포로 이후의 예언을 전망하는 이중 구조 때문에 오랫동안 수수께끼 같은 책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엘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받을 하나님의 은총만큼이나 백성들이 지켜야할 책임성을 지적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안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얻게 하는 도덕적, 영적, 자질에 대해서 역설하고 있습니다. 즉 국토의 황폐화를 초래하는 메뚜기 재앙과 가뭄에 대하여, 단식과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서의 성격을 단순하게 종교적 배타주의라고 말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요엘서의 중요한 사상이자 요엘서 전체를 통일시켜주는 모티브가 '여호와의 날'(참조, 욜1:15; 2:1,11,29; 3:1,14,18)인데, 이는 요엘서의 성격이 '종말론적'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요엘서는, 베드로가 자신의 오순절 설교에서 요엘서를 인용(행2:14-21)함으로써, 그 가치를 한층 인정받게 되었고, 성도들로 하여금, 거룩한 영이 만인에게 부어질 것에 대한 소망을 갖게 했습니다. 따라서 본서는 기독교 사상에 기여한바, 성령에 대한 소망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시작된 은총의 새 시대에 대한 이상을 함축하고 있는 예언서라고 할수 있는 것입니다.
요엘은 메뚜기 떼로 인한 극심한 재난을 보고, 이 재난을 단순한 자연 재해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재난을 하나님의 진노라고 이해했으며, 이 재난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뿐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처럼 재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 이해한 요엘은 메뚜기의 재난으로부터 시작되는 주의 날의 도래에 대해 선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급기야는 여호와와 이교도(사단)와의 최후 전쟁으로까지 주제를 확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요엘은 제사장직에 대해서 능동적인 제사 참여를 호소하는데, 이는 그가 성전 예언자임을 가리켜 주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유일한 민족이 마땅히 행해야할 책임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이루어질 거룩한 주의 날에 대한 강조적 표현이라는 할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요엘은 백성들에게 주의 날의 본질과 영역을 제시해 주고, 백성들로 하여금 주의 날에 대한 소망을 갖게하며, 또 택한 백성으로서 갖추어야할 도덕적, 영적 자질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본서를 기록하였다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엘서를 통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여호와의 날"입니다
이는 요엘서의 주요 주제입니다. “여호와의 날”이라는 정확한 표현은 요엘서에서는 다섯 번(1:15, 2:1,11,31,3:14)‘ 다른 일곱 권의 선지서에서는 열세 번(사13:6,9; 렘46:10; 겔13.5,303,암5:18~20; 옵15절; 습1:7,14; 말4:5) 발견됩니다. 선지서 전체에 걸쳐 발견되는 그 “날”을 언급하는 다른 방식(예컨대 “한 날”,“그 날들”,“그 날")은 요엘서에서도 사용되어집니다(욜 2:2,3:1, 18). 요엘서 안에서 그 “날”은 열방에 임할 마지막 심판의 날(3:2) 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막론한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지속적인 심판(1:15. 2:2.11) 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열방 사이에 개입하시는 사례들 (3:1~2 ,12,14,16) 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호와의 날”은 여호와의 임재가 상황에 따라 심판이나 구원과 복을 가져다주는 때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 “날”은 열방에는 파멸을 알리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의 때의 역할도 합니다. 여호와는 심판의 흔돈 속에서도 여전히 피난처이십니다(3:15~16).
두번째, "회개" 입니다
공동체 전체가 여호외께 부르짖고(1:13~20) 여호와를 바라본다면, 단지 외적인 행동으로가 아니라 진실하게 전 인격을 다해 (2:12~ 13) 심판을 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동체의 행동에 구속을 받지 않으십니다(2:14). 하나님의 군대의 명령권이 하나님께 속한 것처럼(2:11), 메뚜기에 의한 파괴를 허락 하시거나 보류하는 것은 하나님의 특권이시기 때문입이다(1:15).
셋째, "그들 가운데 계신 여호와 하나님" 이십니다
백성들이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지고 회개하는 것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심판에서 복으로 돌아서시는 이유는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것입니다(2: 13,18~26, 3:18).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요엘서뿐만 아니라 (2:27, 3:17, 21) 구약 전체에 걸쳐서도 두드러지기 때문입니다(민 35:34; 신 615, 731; 사 12:6; 호 11:9; 습 335, 17; 학 2:5; 속 2: 1O~11, 8:3). 메뚜기가 피괴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회복(올 2:27) 과 우주가 산산이 부서질 때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 (3:16~17) 는 모두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지식이라는 같은 목표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주제는 책을 마무리하는 역할을 하면서(3:21) 요엘서에서 그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넷째, "미래에 있을 성령의 부어짐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러한 주제들 즉, 여호와의 날, 회개, 자기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은 미래에 있을 성령의 부어짐에 대한 약속(2:28~32)으로 수렴됩니다. 이러한 부어짐은 그 심판적인 현상(2:30~31. 2:10, 3:15)과 구원적인 현상(2:32) 모두에 있어서 여호와의 날(2:31) 과 관련이 됩니다. 또한 이는 구원받는 자들이 곧 “여호와의 이름을부르는” 자들(2:32) 이라는 점에서 회개와 관련되어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별, 세대, 사회 계층, 국적 등의 모든 경계를 넘나드는 성령의 선물은,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거하신다는 궁극적인 증거인 것입니다(사 63:11; 학2:5).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요엘서를 주신 뜻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해 금식과 회개의 날을 선포하라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것 중 가장 끔찍한 재난과 재앙은 무엇일까요? 질병? 가난, 아니면 자연 재해, 이처럼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한 재앙은 인간의 최후 때 맞게될 심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음 이후에 인간이 맞이할 하나님의 심판, 그리스도의 재림때 이루어질 인류 최후의 날은 전대미문의 끔찍한 날이 될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녕 앞으로 도래할 엄청난 재앙을 피할 길은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있습니다. 요엘서에 그 해답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요엘은 유다를 황폐화시킨 메뚜기 재앙(1:2~14)과 모든 피조물에 미친 피해 상황(1:15~20)을 종말에 있을 더 크고 무서운 여호와의 날(2:1~11)에 당할 일의 전조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직 살 길은 전국적인 금식일을 선포하고, 전 국민이 회개하는 것(2:12~17)이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럴때 메뚜기 재앙의 피해는 보상될 것이고(2:18~27), 유다의 모든 국민이 성령의 부으심을 경험할 것이며(2:28~32), 이방 나라는 심판받고, 이스라엘은 구원 받게 될것3:1~21)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엘서는 회개(2:12~17)만이 심판으로부터 벗어날 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그건, 회개를 통해 심판이 구원으로 전환되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죄 때문에 여호와의 날, 즉 인류의 최후의 심판 날을 겪어야만 합니다. 이 두렵고 무서운 날을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해, 오순절에 베드로는 성령의 부으심이 요엘 예언(2:28~32)의 성취임을 강조하며, 누구든지 회개하고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게 되리라고 선포했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은 하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부으심을 경험하며 구원을 얻는 길은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회개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주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요엘은 회개한 사람, 회개한 공동체에 임할 영적인 축복을 그림처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 론
따라서 이제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들을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여호와의 날이 무서운 심판의 날이라 하더라도, 여호와의 진정한 백성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고통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느낄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요엘은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2:28-29) 고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결국 성령은 여호와의 날에 앞서, 하나님이 새 공동체에게 주신 종말론적 선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요엘의 예언은 보다 큰 진전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임재에 대한 보증으로 교회에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종말론적 선물이셨던 겁니다. 그렇기에 이제 새 공동체는 남자나 여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젊은이나 늙은이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피조물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앞으로 다가올 무서운 여호와의 진노의 날로부터 보호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함께 기도드리시겠습니다.
<참고 문헌>
"손에 잡히는 구약개론" IVP
"성경개관 구약편" 부흥과개혁사
"ESV스터디바이블" 부흥과개혁사
"위드바이블" 바이블넷
"옥스퍼드 원어 성경대전" 제자원 바이블네트
"구약개론"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구약총론" 생명의말씀사
"두란노How주석시리즈" 두란노아카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