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의 서론 제1절에서 "존재의 물음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숨을 죽이고. 연구하게끔 하였지만, 그 후로는 (불행히도) 실제 탐구의 주제가 되는 물음으로서는 침묵 속에 빠져버리고 만다"
보편적 인간의 특성은 청소년 시기에 자기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한다. 이 시기에 "자기는 누구인가"질문한다.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자기 존재가치를 인식하게 되며, 어떻게 살지 고민한다. 인생을 열심히 살다가 시간이 흘러 노인이 된다. 많은 인간은 노인이 되고 죽음을 맞이할 때 치매에 의해 자기의 정체성을 잃고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죽음을 맞이 하는 순간에 유언을 하고 말씀을 전하는 자는 의식이 있고, 죽는 순간에 자기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자이다. 우리는 죽으면 자기 정체성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 하지만 답이 어려워 종교에 의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를 통해 자기의 정체성 즉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기도 쉽지 않다. 자기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과정을 핵심적인 단어로 요약해 본다. 알음,비움,사랑,나눔이라는 네 단어로 요약해 본다. 우리는 무지의 세계에 있다가 태어났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아는 것이 알음이다. 어두운 자궁의 동굴에 있다가 빛을 보는 순간이 생일날이다. 생일날 우리는 빛을 본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빛을 본 순간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식이다. 우리는 빛이 하나님인지 모르고 산다. 하나님은 내 마음 속에 존재하는 영원한 빛이다. 광주는 빛고을이다. 빛이 존재하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빛은 진리이다. 진리를 아는 것이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영원한 시간 속 즉 태어나기 전의 자기의 존재와 죽은 다음의 자기의 존재를 찾는 것이다. 사람은 삶의 수많은 과정을 통해 무아를 경험한다. 무아의 상태에 있는 순간은 모든 거짓 의식을 버린 상태이다. 즉 참선이며 묵상이라고 할 수 있다. 참선과 묵상을 통해 마음을 비우고자 한다. 순간 순간 마음을 비운 순간 영원한 시간 속에 자신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다. 영원한 시간세계에 들어가는 문이 불교에서는 무아라고 한다. 무아을 통해 진리의 세계에 들어간다. 진리의 세계는 천국이며 극락이다.삶에서 극락과 천국을 경험한다. 죽어서 천국과 극락을 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깨달음을 통해 영원한 시간 속 천국과 극락을 경험한다. 영원한 시간 속에 들어 가는 것은 의식을 비워야 하는 것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과거의 나쁜 기억를 버리고, 미래의 두려움과 불안을 떨쳐버린 상태이다. 순간 순간 인생의 좋은 기억과 환희의 미래를 생각하며 영원한 시간 속 극락과 천국을 경험할 수 있다. 적멸보궁이다. 깨달음은 고요한 숨 상태이며, 편안한 마음을 말한다. 젊은이들이 흔히 쓰는 "불멍"이라는 말도 같은 의미이다. 마음 비움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자신 존재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은 영원한 시간 속에 자신의 존재를 보는 것이다. 깨달음 순간 순간에 마음 속 깊이 말씀이 나온다. 말씀은 말숨에서 온 말이다.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숨이 末숨이다. 말숨 순간의 말은 진리의 말이다. 죽는 순간에 말은 진리의 말인 것이다. 하나님은 진리의 말씀이시다.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삶에서 구하고자 하는 진리의 말씀을 얻을 수 있다. 진리의 말씀을 통해 살음을 유지한다. 삶의 핵심은 먹고 사는 것이다. 올바르게 먹고 사는 것은 힘들다. 올바르게 먹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식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 행복이다. 행복의 길은 우리 인간 모두가 가야 하는 길이다. 하나님은 빛이시고 말씀이시고 사랑이시다. 인류 모두는 하나님의 자식임을 알아야 한다. 빛 속에서 우리는 태어났다. 비움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천국과 극락을 경험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말씀이시다. 말씀을 통해 사랑을 나눌 수 있다. 사랑을 나누고 인류가 서로 화해하고 공영하고 세계평화에 힘쓰며, 광활한 우주로 인류문명을 뻗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2024년 5월 4일 새벽 광덕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