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님의 60주년 결혼 기념일
엘에이 동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다음 주 토요일,누님네
집에서 결혼 60주년 기념 행사를 합니다 누님의 건강상태
가 별로 좋지않아 원래 기념일은 12월인데 당겨서 한다고
합니다.참석 여부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지난 봄에 엘에
이에 갔을 때 뵈었던 누님의 모습은 첫눈에도 몹시 지쳐보
였다.누님은 내가 찾아뵐 때마다 마치 어머니처럼 내게 밥
을 먹여 보내고 싶어 하셨다. '밥 먹고 가라.' '아니 괜찮다.'
승강이가 붙으면 지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누님이 지어주
신 따뜻한 밥에 얼큰한 김치찌개와 멸치 볶음을 반찬으로
포식 하곤했다. 저번에는 자신의 힘이 달리니까 도우미 아
줌마를 시켜 근처 일본식당에 주문을 해 놓으셨던 것이다.
누님은 나와 아버지는 같지만 어머니는 다른, 말하자면 이
복 누이다. 6.25 사변 때 누님은 열살을 몇년 넘긴 십대 소
녀였고 나는 너댓살난 어린애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누님은 고향 집을 지키고 있었고 내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명을 받들어 식솔들을 이끌고 남한 (인천)으로 또 다른 피
난 길에 올랐다. 나와 누님의 이야기 한가지만 간추린다면
총탄이 비오듯 쏟아지는데 내가 너를안고 고랑창 (개울)에
엎드려서 밤을 새우다시피 했던 적도 있었다"고 늘 말씀 하
셨다. 어찌된 영문인지 전쟁 중에 누님이 나를 책임지게 됐
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누님은 나의 생명의 은인인
셈이고 나는 그 것을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이런 끈끈한
인연으로 엮어져 있는 누님이었기에 그 분의 결혼 60 주년
기념 잔치라면 가보는 것이 마땅한 도리였다.나는서둘러 비
행기표를 마련했고 밤 늦게까지 사진첩을 들여다 보며 감회
에 젖어 있는데 전화기에 새로운 메시지가 들어왔다는 신호
음이 울린다. '이 밤중에 누구지?' 전화기를 열었다. 엊그제
잔치 소식을 알려왔던 동생이었다.누님의 건강상태가 더 나
빠져서 도저히 잔치를 치를 수 없을 것 같다고 잔치를 취소
했다니 오지 않아도 된다는 내용이었다.순간 가슴이 철렁했
다. 그러나 곧 침착해 지려고 애썼다. 나는 이미 비행기표도
사놨고 하니 잔치가 취소되도 엘에이로 내려가기로 했다.어
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단 불길한 예감이 스쳤기 때문이다.
만약 누님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밥먹고 가라는 말씀을
더이상 들을 수 없지않겠는가 밥 먹고가란 방금 지은 밥처
럼 따뜻한 누님의 말씀을 오래도록 듣고 싶은 밤이다.
부디 쾌차하소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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