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물었다.”
사두가이들이 부활이 없다고 주장했다는 글을 읽으면서
그들은 왜 굳이 주장까지 할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의 저는 제가 주장하는 것도 싫어졌지만
남이 주장하는 것은 당연히 더 싫어졌습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옛날에는 저도 주장을 많이 했다는 얘기이고,
요즘 그것이 싫어진 것이 나이 먹어 철이 든 때문인 것 같아서
이 점에 대해서는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저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내용의 주장일지라도 좋지 않다고 저는 생각하고,
주장해서는 얻는 것도 별로 없다고 또는 역효과라고 생각합니다.
주장(主張)이란 내가 주장(主將)이 돼서 주장하는 것이고,
그러니 다른 사람들을 객으로 만드는 것이며,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기가 주장이 되어 주장해대면
좋아할 사람 어디 있고 누가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리고 주장은 이런 것이기도 합니다.
곧 주장하지 않아도 받아들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주장하지 않습니다.
주장해야지 받아들일 수 있다고 착각하는 미성숙한 사람이 주장합니다.
설득력이 있는 사람은 설득하지 주장하지 않습니다.
행동으로 설득하는 사람은 더욱 주장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사랑하게 하는 사람은 더더욱 주장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나 좋은 사람이 못 되고,
교만하거나 공동체의 일치와 성장을 저해하는 분열주의자일 가능성이 큰데
그런데 이들은 왜 굳이 부활이 없다고 주장해야만 할까요?
이왕이면 부활이 있다고 믿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부활을 믿고 싶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부활이 없다는 믿음이 진리에 기반한 것이기에 그러는 걸까요?
저라고 부활이 있는지 어떻게 알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죽었다가 살아나지 않았으니 본 사람처럼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사실 봤기에 믿는 것이 아니고 눈으로 본 사람은 믿을 필요가 없지요.
봤기에 믿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믿기에 부활도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으신 분이시며 영원히 살아계시는 분이시니
하느님 안에 있으면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고,
죽었어도 죽은 것이 아닐 것이며 그러니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부활도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는 하느님께서 저를 이 세상에서만 살다 죽으라고
창조하지는 않으셨다고 믿기로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