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되고 나서 시설물 관리하는 일에 종사한 지 어언 7~8년이 되었다.
막상 혼자 생활하려 하니 딱히 살 곳이 없는 형편이어서 할 수 없이 본가 옥탑방에
거처를 정할 수 밖에 없다.당시 이 못난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밟힌다.
"한푼도 허투로 쓰지 말고 이를 깨물고 살아라" 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와는 달리
"그깟 한달에 백여만원 벌어 다 모아봤자 전세살이도 힘들어.그리 살면 뭐하니.
야, 실컷 다 써.대신 한 십년 벌어 삼십년 먹고 살 생각해.그러려면 국민연금 한
백여만원 탈 수 있게끔 해봐.어떻게든 그건 해 놓아야 해..." 둘째 형님 말씀이다.
그래서 한 천여만원 집안 도움으로 한 십년 못낸 연금 한꺼번에 넣고 나니 추후 연금
타는 싯점에서 한 사십여만원 탈 수 있게 되었다.
집안에서는 어떻게든 내가 살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줄려고 한다.
대신 내가 택시를 한다 하면 서울 택시를 사주겠다 하고 뭔가 스스로 일하며 벌어 먹고
살게 하려는 것이지 그 돈을 직접 나한테 주려고는 하지 않는다.그건 소용이 없다는 뜻..
그간 번 돈은 그달그달 다 써버렸다.여건 되는대로 등산도 다니고 낚시도 갔으며 하여튼
놀 수 있는 곳은 다 쫓아다녔다.젊어서 부터 지금 까지 그래온 것 같다.
따라서 평생 학문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 왔다.
대학도 가지 않으려 했는 데 집안에서 하도 성화가 심해 어쩔 수 없이 가게 되었고
초딩시절 성적은 반에서 거의 꼴찌 수준이었으며 중학교 때는 우열반 편성 열반에서
29등 한 것이 최고의 성적이었다.그래서 성적표 받은 날 집에 손님이 오셨는 데 성적표를
보이며 자랑한 아주 못난이가 나다.
고등학교 진학은 당연히 똥통학교 조차 1,2차 모두 낙방하였으며 3차 모집하는 당시의
전수학교(고등학교 인정은 받으나 고등 자를 못붙이는 학교)에 들어가려 했으나 둘째형의
반대와 권유(학원비 대주고 용돈 주겠다 함)로 재수를 하게 되었다.
당시 광화문 학원가에 등록을 하고 학원교재로 공부를 하는 데 정말이지 학원 선생님들
실력이 출중하다.이건 학교 선생님들 하고는 완전히 차원이 틀리다 할까...
거의 모든 선생들은 최고의 대학 출신이요,조금만 학생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올라 치면
곧바로 교체다.그런 경쟁구도하에서 끊임없이 자기개발을 하는 것이 학원선생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꼴찌인 난 처음으로 공부다운 공부를 해봤다.도통 모르니 무조건 깡그리
외우는 수 밖에... 한 세달 그리 하니 차츰 공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다 박 대통령 아들 박지만 혜택으로 고입시험이 평준화로 돌변한다.
그래서 다시 공부에 손을 떼고 다시 룰루랄라... 추첨으로 똥통학교 진학.
고등학교 1,2학년은 종교에 빠져 매일 예배당에서 밤 늦게 까지 있다 밤 열시 경 집에 온다.
그제서야 늦은 저녁식사 하고 졸려서 공부고 뭐고 할 수가 없다.
또 3학년 때는 친구에 빠져 일년 중 반은 친구집에서 공부한다는 핑계로 세월만 보냈다.
그러니 학교 성적이라는 것이 젼교 사오백등 정도...성적표는 미 몇개에 거의가 양...
진학은 강원도로 하려 했다.집에서 벗어나 자취를 염두에 뒀었는 데 역시 집안 반대.
할 수 없어 서울의 대학 철학과 원서를 썼다가 음악 선생으로 있던 누이가 담임을 찾아가
수정하여 그나마 철학과 상통한다는 수학과를 가게 되었다.
재수좋게 합격하여 실컷 놀다 학점 빵구 여럿 맞고 머리도 식힐겸 2학년 마치고 군에
입대... 병장 말년에 여자에 빠져 탈영... 특수한 보직 덕에 영창신세 면하고 무사히 전역.
복학하여 술집에서 애인이랑 술 마시다 주인이 싸우다 끓는 물이 엎어져 하체 2도 화상
입고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한달간 학교에 못나가 17학점 빵구,학사 경고...
4학년 때 여학생들의 압도적 지지로 과대표에 선출됐으나 학점이 B학점이 안돼 탈락...
졸업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집안에서 힘써준 좋은 직장도 못나가고 한 학기 딜레이...
가까스로(조교로 있던 후배 도움으로) 코스모스 졸업.대기업 최종 면접에서 낙방,낙담...
취업이 안돼 외판원 생활하던 중 겨우 선배 추천으로 사립학교 수학선생으로 취업.
동료선생의 중매로 모학교 여선생과 나이 서른에 결혼.서른 여덟에 타학교로 이직.
마흔 무렵 사직.다시 외판원 및 음양오행 연구서 설립.다시 사업 그리고 망함.
재기하여 한 이년 남짓 돈도 실컷 벌고 하다 주식투자 하여 또 쪽박신세.
집 두채 공중분해.그리고 48세 되던 해에 이혼.
제가 살아온 인생길이랍니다^^
딸아이는 연말에 문자를 보내왔는데...
아빠~!
저물어가는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 다가오는 2013년도 힘차고 건강하게 보내세요!
딸로서 자랑스러운 삶을 보내겠습니다~^^ 하트표시.
세계 굴지의 기업 비서실에 근무하는 제 딸은 아주 좋은 조건으로 들어가 몇개월 채
되지도 않았는 데 외국출장(영어 능통,일어 수준급 및 어느정도의 스페인어 구사) 다니며
항상 이 못난 애비의 자식임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휴~~~
학원 한번 제대로 다니지 못했고 학비 조차 제대로 대 주지도 못했는 데...
혼자 다 벌어서 학교 다녔고 외국으로 배낭여행 갔다 오고...
용돈 한번 제대로 준 적 없었으며 백화점에서 옷 한번 사준 적 없었지요.
그 아이 회사 CEO 연봉(2011년)이 우리 돈으로 얼추 6천억원이라 하는군요.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지사 사장으로 까지 갔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그 아이는
결혼과 함께 직장생활을 접는다 하는군요.하기사 중 2 때 장편소설로 문단에 등단한
경력도 있고 하니 결혼 후 짬짬이 논술지도를 해도 되겠고 토익(거의 만점 받았음)이나
영어회화지도로 나서도 되겠지요.
아들넘은 저를 닮아 놀기 좋아하고 사람사귀기를 즐겨해 공부는 뒷전이요 태권도,유도,
복싱,격투기 등등에 관심을 가졌습니다.중학교 2학년 때 유도 배운지 3개월 만에 경기도
전체 대회에 나가 동매달을 따기도 했고 공고 3학년 때는 복싱관장이 신인왕 전에 출전하
라는 권유에 싫다며 한동안 잠수타기도 했답니다.어찌어찌해 전문대에 진학하더니 이번에
졸업인 데 실습갔다가 권유로 조그마한 기업에 유통과 기술을 배우겠다며 취직을 했답니다.
딸 아이는 서른 넘어 결혼하겠다 하고 아들넘은 결혼 안하고 못난 애비와 살면 안되겠냐
하는군요.딸 아이는 여지껏 알아서 한 애니까 달리 할 말이 없지만서도 아들넘은 그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절대 안된다고 했지요.그러면서 가급적 일찍 결혼해라 했답니다.
왜냐하면 가장 왕성한 시기에 결혼을 해야 그만큼 건강한 후손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랬더니 이제 직장생활 시작했는 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결혼하냐 하는군요^^
오빠 하며 따라다니는 여자들이 좀 있기는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저는 "반지하 단칸 방에서 부터 시작하여 알뜰하게 저축하며 살림살이 하나씩 장만
하는 재미가 참 쏠쏠하단다.그게 진짜야" 했더니 아무 말이 없습니다.
제 모친은 애가 진중하여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고 덮어나가는군요.
미국 월가에서 한 일년 반 생활(부동산 전문회사 취업.마켓팅과 매니지먼트 담당)하다 온
딸 아이는 세계적인 수입 스포츠 카를 사고 싶어하더니 갑자기 보류선언을 합니다.
뭔가 생각이 있겠지... 하고 모친께 말씀을 드렸더니 "걔가 능력이 되니까 사겠다 한거고
자기 앞가림 하는 애니 신경쓰지 말아라" 합니다.
제 아이들과 전 어쩌면 그리 판이한 삶을 사는 지...
除 夜 ... 尹 集
제 야 윤 집
半 壁 殘 燈 照 不 眠
반 벽 잔 등 조 불 면 반쪽 벽의 잦아든 등불 비치는 데 잠못 이루어
夜 深 虛 館 思 凄 然
야 심 허 관 사 처 연 밤이 깊은 텅빈 여관에서 생각이 처량해지네.
萱 堂 定 省 今 安 否
훤 당 정 성 금 안 부 어머님 혼정신성 지금 평안하신지요?
鶴 髮 明 照 又 一 年
학 발 명 조 우 일 년 흰머리 내일 아침엔 또 한살 잡수시겠네.
*萱堂(훤당):남의 어머니에 대한 높임말.
定省(정성):혼정신성(昏定晨省)의 약자로 밤에는 잠자리를 깔아 편안히 쉬게 하고
아침에는 안부를 물어 살핀다는 뜻으로 '자식이 조석으로 부모를 잘 섬김'을
이르는 말.
*이 詩는 병자호란 당시 끝까지 척화(斥和.오랑캐와 화친하는 것을 반대)를 주장하다 중국
심양에 끌려가 참형을 당한 삼학사(三學士) 윤집의 작품입니다.
먼저 올려드린 고적의 제야와 동일운(同一韻)에 같은 시어(詩語)가 그대로 인용됨을
볼 수 있습니다.
*세계정세가 어지럽게 돌아가고 동북아는 일본의 제국주의 망념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며
G2의 여세를 몰아 으뜸으로 돋움하려는 중국의 중화제일주의 양상을 보이고 있지요.
이럴 때일 수록 우리국민은 일치단결하여 안으로는 튼튼한 안보의식을 바탕으로 보다
넓은 안목으로 눈을 돌려 세계무대에서 뒤지지 않는 대한의 웅지를 펴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첫댓글 님에 글을보니 파란 만장한 삶을 사셨네요~다행이 따님이 잘되어서 한시름
놓으셨겠네요~
아드님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하고 있으니 앞으로 잘 해나가리라
봅니다.
좋은 글도 많이 올려주시고 특히 세계정세가 돌아가는 것을보니
우리나라도 안보를 튼튼히 하고 세계무대에서 뒤지지 않는
대한민국의 긍지를 펼쳐 나아야 합니다..
님의 좋은 글에 마음담아 갑니다..
그냥 일상을 올린다고 한 것이 번접스럽게 주절거린 듯 싶습니다.
휴일 잘 보내시십니요.감사합니다^^
세상살이는 얼마나 많은 경험으로 다져졌느냐가 중요합니다. 그 것이 진정으로 삶을 이루면서 필요한 자양분이 됩니다.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본 사람이 그 만큼 시야가 넓습니다. 많은 경험으로 다져진 행할 수 있는 지식 많이 나누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자신의 치부만 드러냈지 않았나 싶습니다.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네,,좀 특별난분인거라고는 느겻답니다,,다들살아온인생이 틀리니까요~
세상사 내맘대로 할수 잇는게 몇가지나 돼나요~자식을 맘대로 할수 있을까요~
부부생활을 내맘대로 할수 잇을까요~
그래도 지금것,도와주는 가족분들이 잇으셨던것 그것도 큰복이십니다,,아무리 힘들어도 도와주는 가족 없는 사람들도 많은데~~
네...건강하게 하고 싶은일 하시고 사세요~~원없이~~
맞아요^^
전 복이 많은 사람이지요.
어려운 사람들도 많은데 좀 미안한 생각이 드는군요.감사합니다.
총천연색 자유분방한 삶을 사셨네여~
완고하면서도 지적이신 노행자님이 어릴 적 공부하는 맛을 모르셨던 까닭 같습니다.
주위에 도움주시는 분 많으실 적에 다시 한번 허리띠 졸라매시고
일단사 일표음 하는 모습으로 자식들에게 희망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한 사람들도 집 사고 차 사고 잘 살고 있는 것처럼
지금 잠깐 없는 것은 그리 무섭지 않음이나, 늙어서 처연해지면 누구의 짐이 되겠습니까?
현명하신 노행자님의 또 다른 변신을 고대해보렵니다~~~~^^*
어이구~~~
가장 취약한 부분을 집어주시니...
어떡하든 제 한몸 잘 건사해내어 자식들 짐이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노행자님 참으로 수고 하셨읍니다,노행자님 발자취를 보니 많은 도움이 되고 우리삶방에 첫번째 로 올리신글보니 대단한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본인도 한번은 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하는데 맞추법과 띄어쓰기가 부족해서 망설여 지네요,노행자님 과 조금은 반대로 삶을 살아 왔다는 생각을 지울수는 없네요,본인도 공부는 노행자님 마냥 중간에서 미. 양쪽에 가깝고 다만 열정과 집념이 남보다 강한편에 속합니다,제별명이 ,싸움닭,독사,쵼뇸,조금 이해가 가실는지 ㅎㅎ~~
검사기로 다 걸러질까요?
ㅎ~
(무료 교정봐줌 ㅋㅋ)
진솔함이 담겨있으면 그 어떤 문장보다도 돗보이는 법이지요.
과거 춘추전국시대 세객들의 번드르르한 말에 속아 나라를 망친 군주들이 많았지요.
진솔한 말 한마디는 이를 다 물리칠 수 있는 진정 힘이 있는 글이 되지요.
그리 쓰시면 된답니다.감사합니다^^
노행자님 따님은 참으로 교육 잘시켜다고 자랑해도 이의 달사람 아무도 없고 며느리 삼고 싶는마음이 앞섭니다,앞으로는 좀더 적극적으로 살아가는것이 좋을것으로 생각하고 지금 나이에도 한푼두푼 모은다는 습관을 기르시는 것이 참다운 삶이 아니겠나 하는 마음이 앞서요,노행자님 글 감명받고 여러 생각 해준데 대해서 감사 합니다,
네~ 그리 살도록 노력 또 노력해 보겠습니다.감사합니다^^
노행자님의 삶을 보노라니 참 자유인으로 살았다는걸 알게되네요
똑소리 나는 따님은 엄마를 닮았나보죠?ㅎㅎㅎ
두 분 자녀들 다 잘키우신것 같아요 아드님도 좋은 배우자 만나 행복한 가정 꾸릴것 같아요
하지만 지하 단칸방에서 하나 하나 장만하며 사는건 우리시대 얘기죠~ㅎ
이제부터 알뜰해지셔서
노행자님의 앞으로의 멋진 삶을 기대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엄마 닮았다에 한표!
그런 성격은 엄마를 닮았다고들 하는군요.대신 그만큼 피곤한 여정이겠지요^^
알뜰함에 있어서는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라고 저 어려서 칭찬이 자자했었는데...
굳이 그리해야 할 필요성을 못느껴 이리 살고 있답니다.그러다 문득 느낌이 오면 다시
어렸을 적 그 모습으로 돌아가겠지요.감사합니다^^
오늘 노행자 형님 오셔서 지금 제 카페에 계십니다...음악과 함께
사진방에 사진 올렸으니 시간 되시면 댕겨 가셔유~!!
다른분들 댓글 못달아 드려 죄송 합니다....바뻐서....*^^*
추운데 둘레길 안내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건 되는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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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들 만나면 '다 거기서 거기야'라고들 하지요.그런데 그 벗들 대체로 중산층 이상으로 다들 잘 살거든요.
제가 '다 거기서 거기야'라고 하면 맞장구 치는 넘들이랍니다^^ 진짜 다 거기서 거기일 따름인데...
감사합니다^^
진짜 놀랍네요,,제멋대로 살아온 인생을 보게 되어서요,,,안타깝기도 합니다,,,부모님께 걱정 많이 끼치셨을거 같아요,,,교사생활 쭉 하셨으면 좋았을걸 싶네요.
딸아이가 대학 들어가자 제 형제들이 하나같이 교직 이수하여 선생의 길을 가라고 충고들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여자가 선생이면 최고지 뭘 더 바라느냐고들 합니다.그래서 딸아이한테 넌즈시 그 얘기를 했더니
"아빠 저 보고 선생 하라구요? 어휴~~~" 합니다.집안에 교편생활 하는 사람들이 많은 탓에 딸아이는
별로였던 것 같더군요.저 역시 어찌하다 보니 교편생활을 했던 거랍니다.물론 지금껏 선생의 길을 갔더라면
생활은 보다 안정적이고 좀 편한 생활을 했겠지요.허나 다양한 생활과는 거리가 좀 멀지 않았나 생각을
해 본답니다.전 지금 이 생활에 만족하고 있지요.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한번 주어진 인생 나름 다양하게 살아왔다고 생각을 합니다.그런 삶이 저에게는 의미가 있었구요.
한가지 직장에서 정년을 맞이하고 연금 수혜자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만 제 경우 좀 더
다양성있고 변화있는 삶을 추구하는 타입이지요.그래서 또 다른 변신을 항상 꿈꾸는 앞으로의
미래를 열어가며 새 희망의 돛을 올릴 수 있는 기대감이라 할까... 저는 이런 삶이 좋답니다.
감사합니다 초록 비타민 님~!
노행자님께서 학창시절 공부안했다는 말씀이
도무지 믿겨지지 않지만
아..울 아들 에게도 희망이 있겠구나 싶어 안심(?)합니다
님 의 따님이 잘되는것이 제 자식일처럼 기분좋고
님의 호탕한 마음씨를 보는게 즐겁습니다
형제간에 우애로 밀린연금을 납입하셨다는 부분도
감동 입니다
저도 제 작은오빠에게 그렇게 해주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래 저래 님의 생활에서 배울게 많습니다
딸아이와는 대조적으로 많은 면에서 뒤졌던 아들...
그러나 처음 가르칠 때는 모든 부분에서 월등히 재능이 있었고 소질을 보인 아이는 아들이었지요.
음악이면 음악 미술이면 미술 스포츠며 심지어 학문에 있어서 까지 늘 앞서갔고 번득이는 재능과
독창성으로 귀여움을 독차지하다시피 한 아들... 그러다 보니 다소 안타까운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본인이 나름 깨치고 나면 또 다른 한편으론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여겨 지금껏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중이랍니다.늘 점검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가끔씩 통화하는 가운데 넌즈시 물어보기 때문에
아이들은 매사에 허투루 보낼 생각은 못하지요.
우리는 어쩌면 많은 부분에서 자식들을 키움에 있어 잃고 있는 것이 적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저 명품에 눈이 팔리듯 학원이다 뭐다 해서 돈 쏟아 붓고 자신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 무조건 시키고
보자는 그리하여 또 대학 진학하고 나서는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고 그리고 나면 다시 유명 직장 다시
결혼사킬 때 가서는 좋은 집안 능력있고 멋진 배우자... 끝이 없지요.제가 아이들 키울 때는 내가 가르칠 수
없는 음악,미술,운동(승마 포함) 등에 최고의 선생님들을 물색하여 교육시켰답니다.아마도 그러한 것들이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게 한 동기가 아니었나 합니다.지나고 나서는 제 아이들은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부심...
겉치레의 의복이나 신발 등등은 길거리 싸구려로 대신했으되 집안 벽이란 벽은 전부 책장을 따로 맞춰
빽빽히 책을 채워두었지요.그러다 좀 지나고 나면 다시 그 책들을 다 친지나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다시
새로운 책들로 그득그득 채워 놓았답니다.그리하여 백과사전만 해도 세계 유명 브리테니커며 하여 두 질이나
사 주었지요.그러다 딸 아이의 경우 중 2 때가 되니 스스로 알아서 국내에 없는 책들의 경우 아마존 닷 컴에
들어가 원서(반지의 제왕 등 환타지 소설을 비롯하여 여러 장르의 책)를 주문하여 사서 읽었으며 일본 작가와
넷상으로 교류하고 나름 스펙쌓기를 하더군요.그것이 진짜 자산이 된 것이구요.관심 가져주심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