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독하면 신촌으로 권력의 ‘건강 경호실’
이승만·전두환·YS·DJ도 S·O·S
얼마나 심각합니까? 좋아질 가능성이 있습니까?”
7월13일 폐렴으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첫날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호흡기내과 주치의인 장준 교수에게 건넨 말이다. 이날 DJ는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앉아 “희망이 있느냐”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물었다. 장 교수는 “치료를 잘 받으면 회복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변했지만 안심할 수준은 아니었다.
이날 바로 입원한 DJ는 몇 차례의 고비를 넘겼으나 결국 36일 만에 이 병원에서 서거했다. 김 전 대통령이 세브란스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97년 대선 후보 시절이었다. DJ의 건강문제가 쟁점이 됐던 당시 어느 병원에서도 선뜻 건강진단서를 끊어주려 하지 않을 때 세브란스는 진단서를 발부해 건강이상설을 잠재웠다.
이때 주치의가 국내 최고 권위의 당뇨병 전문의 허갑범 박사였다. DJ는 이 일을 계기로 서거할 때까지 12년간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심혈관질환과 폐렴으로 총 6회 입원했고, 허 박사에 이어 정남식(심장내과)·장준(호흡기내과)·최규헌(신장내과) 교수 등 각 분야의 대가로 소문난 의사들을 주치의로 두며 정기 진료를 받았다.
이들은 “김 전 대통령은 진료받은 이후 항상 ‘감사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집이 신촌과 가까운 동교동이었던 데다 부인 이희호 여사와 세브란스 간 인연도 DJ가 세브란스를 꾸준히 찾는 이유가 됐다. 이 여사의 부친 이용기 씨는 세브란스의전 출신으로, 전북 남원 도립병원장과 경기도 포천 도립병원장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 말고도 많은 전직 대통령이 이 병원을 찾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얼마 전 피부과를 찾아 진료받고 갔다. 병원 측에 따르면 예전보다 한층 밝아진 피부 톤에 본인도 대만족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 전 대통령 부부도 세브란스병원의 고객이다. 원래 다른 병원에 다니던 전 전 대통령은 부인 이순자 여사의 권유로 세브란스병원을 찾았고, 이후 가족들까지 꾸준히 세브란스를 찾고 있다.
백내장 치료를 위해 적합한 병원을 찾던 이 여사가 지인의 소개로 현재 연세대 명예교수로 있는 권오웅 교수(안과)를 찾아온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여사의 백내장 수술을 성공리에 끝낸 권 교수는 이후 외래진료를 온 이 여사로부터 “오래 전부터 다리 통증이 있어왔다”고 말한 것을 우연히 들었다.
권 교수는 통증의 원인이 혈관문제라는 것을 발견하고 2007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심장내과 진료를 받게 했다. 당시 심장내과의 하종원·최동훈 교수팀은 이 여사의 병명이 다리 부위의 정맥이 좁아지는 ‘하지대정맥폐색증’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병은 운동할 때 다리 부위에 있는 대정맥 혈관이 좁아져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통증·경련·피로감 등이 생기는 증상이다.
평소에는 혈관에 혈액이 충분히 공급되므로 별 이상이 나타나지 않는 병이었다. 최동훈 교수는 이때 수술 메스를 대지 않고 그물망만을 이용한 치료를 했는데, 이 시술방법에 전 전 대통령 부부가 크게 만족한 것으로 보인다.
전 전 대통령은 얼마 후 권 교수를 불러 “아내가 다리가 아픈 지 오래됐는데 다른 병원에서는 혈관에 문제가 있다고 찾아낸 의사가 없었다”며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발견해 좋은 시술을 하게 도와줘 고맙다. 앞으로 세브란스를 자주 이용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전 전 대통령 자신도 2008년 11월2일 심혈관질환으로 세브란스에 입원해 하종원·최동훈 교수팀으로부터 심혈관확장수술을 받은 후 나흘 만에 퇴원했다. 전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전립선 관련 수술을 받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뿐 아니라 대통령의 가족들도 세브란스를 찾았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의원도 세브란스와 인연이 깊다. 박 의원은 2006년 5월31일 지방선거 지원유세 중 신촌 로터리에서 괴한 두 명으로부터 흉기로 피습당해 오른쪽 턱 부분이 10여cm 가량 찢어져 세브란스병원 응급진료센터로 후송됐다.
세브란스병원은 사고가 난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했지만, 세브란스에는 미세수술 분야에서 손꼽히는 성형외과의 대가 탁관철 교수가 있었다. 박 의원은 탁 교수에게 3시간에 걸쳐 긴급 봉합수술을 받은 후 VIP룸인 200병동에 입원했다.
이전까지 다른 병원을 다녔던 박 의원은 탁 교수가 시술한 얼굴 상처 치료에 만족해 2006년 지방선거 때 유권자들과 악수를 너무 많이 해서 생긴 손관절 부상 치료까지 세브란스에서 받았다.
국내 코수술의 대가로 알려진 이정권 교수(이비인후과)는 1996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코골이수술을 한 것을 계기로 DJ 가족과 연연을 맺었다. 이후 DJ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청와대 주치의도 했던 그는 DJ의 큰아들 홍일 씨의 부러진 코를 수술해준 경험이 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이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시절에도 홍일 씨의 몸이 불편했는데, 어느 날 홍일 씨가 휠체어에서 혼자 일어서다 그대로 코를 땅에 박고 쓰러져 코뼈가 부러졌다”며 “내가 그때 응급수술을 해서 코뼈를 복원했는데, 수술한 그날 저녁 홍일 씨와 저녁을 함께했다”고 회상했다.
재계 거물들도 세브란스를 찾았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2005년 7월15일 검찰 조사 중 건강악화로 세브란스에 입원했다. 얼마 전 DJ가 묵었던 VIP룸보다 한 단계 낮은 방이었다. 해외 도피생활 약 5년 만인 2005년 6월14일 입국한 김 전 회장은 입국설이 나돌 때부터 건강에 문제가 있어 입국 후 어느 병원에 입원할지에 관심이 모였다.
특히 대우그룹이 세운 아주대병원이 될지, 과거에 진료받은 적이 있는 서울대병원이 될지를 놓고 예측이 난무했던 것. 그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은 세브란스병원이었다. 김 전 회장 본인이 세브란스를 선택한 이유로 연세대 경제학과 출신인 데다 동문회장을 맡은 경험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지만, 심장내과 전문의로 유명한 정남식 교수가 있었던 것도 큰 역할을 했다.
현대·기아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은 2006년 6월 심장 관련 질병으로 입원해 치료받고 퇴원했다. 정 회장은 다른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지만 가장 중요한 심장검사를 받지 못했다. 심장검사를 하려면 정맥 혈관을 찾아 바늘이 큰 주사를 놓아야 하는데, 손이 퉁퉁 부어 있어 그 병원에서 혈관을 못 찾았다. 이후 정 회장은 세브란스병원을 찾았는데 담당 간호사가 단번에 정맥 혈관에 주사를 놓아 심장 정밀검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