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역시 주무시는군요! 지금이 바로, 다이아 마마가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왼손이 그 모양인지, 알아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 키이- 키키키키키킥.
요상한 웃음을 흘리며 안으로 들어선 치프는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면장갑을 손에 끼고 있었다. 자신의 흔적을 남기지 않고 다이아 마마가 무엇을 하는 지 찾아낼 생각인 것이다.
어디? 어디? 어디에 있을까? 얼른 나오너라, 얼른! 어디에 숨겨져 있을까~~~ 요!
…완전 신났다.
책상 위, 옷장, 뒤질 만 한 곳은 다 뒤졌다. 1시간이 지나도 원인으로 떠오를 건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문 가까이로 다가온 치프는 오른손은 왼손의 팔꿈치 있는 곳에 대고, 왼손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졌다.
이상하다. 왜 아무 것도 안 보이지? 게다가 신기한 건, 애드리브 호의 의사는 나거든? 근데 다이아 마마는 진료실에 한 번도 안 왔었단 말이야. (대신 신이 다녀갔었다. 치프가 없을 때를 이용해서.)신기한 일일세. 천장에도 틈이 없는데? 서랍이 구비되어 있는 2인용 침대가 있는 곳은 진료실의 침대뿐이야. 정말 이상한 일인 걸, 이거.
치프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선실을 나왔다. 그가 문을 닫고 나간 뒤 신이 부관실로 들어왔다.
“다이아.”
신이 부르는 소리에 다이아는 눈을 뜨고 스르륵 일어났다.
“자는 척 하는 것도 힘드네요. 어쨌든 딱 맞게 떨어진 시간차였어요.”
“안 들켰어?”
“당연하죠, 제가 누군데요.”
다이아는 일어나서 이불을 걷고 시트도 걷었다. 그 속에서 그녀의 손가락에 피를 보게 했던 정체물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잠자코 그녀의 행동을 보던 신은 손뼉을 짝짝 쳤다.
“할 거지?”
“예. 망 좀 봐주세요.”
“알았어, 그럴게.”
나가다가 왼손에 찬 시계를 본 신은 다시 말했다.
“저녁 시간이야, 다이아.”
“아, 예.”
비밀은 원활하게 지켜지는 것 같았다.
* * *
일행에게는 스테이크, 베이컨샌드위치, 샐러드를 주고, 정작 자신은 죽을 먹은 카인. 그는 죽으로 영양을 챙긴 뒤 숙면에 들어갔고, 정확히 88시간을 잤다. 물론 그가 숙면을 취하는 동안, 일행이 식사를 제때 할 수 있게 여러 가지를 준비해왔다.
숙면에 들어간 지 정확히 나흘 만에 일어난 카인은 밤임을 알고 잤다. 그리고 다시 깼다. 야광이 되는 오른손의 손목시계는 오늘 날짜가 10월 27일이고 새벽 2시가 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갑판으로 올라온 그는 배가 정박 중임을 알아차렸다. 왜 서 있나 했더니 무풍(바람이 전혀 불지 않음)이다. 바람이 주동력이 되는 애드리브 호니까, 바람이 없으면 항해를 할 수가 없다. 1년에 2-3일은 찾아온다는 무풍이 지금 닥친 모양이다.
카인은 중앙돛대 위로 올라가 대 위에 앉았다. 깜깜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은 무수히 많고, 그 중에는 가늘게 빛을 발하는 달도 보인다. 여러 별이 뭉친 은하수도 살짝 보인다.
별을 보고 있자니 아쿠아리버가 넌지시 떠오른다.
아쿠아리버의 검 날에 새겨진 물병자리를 보려면 주변이 어두워야 한댔지. 꽉 막히지 않은, 지금처럼 순수하고 탁 트인 밤. 물은 바닷물이어도 상관없을까. ……. 저 별과 저 달처럼, 나도 다이아 마마도 길 잃지 않는 방법, 어디 없을까. 은하수라-.
어느 책에선가 본 적 있다. 달과 별은 자기 힘으로 빛을 내는 게 아니다. 태양이 주는 빛을 받아서 반사시킨 게 고작이고, 그 반사시키는 빛을 사람들은 자기 빛이라고 받아들이는 것뿐이다.
달칵.
“!”
상념에 빠져 있는데 닫아놓은, 선실로 내려가는 작은 문이 열렸다.
“겨우 다 했다! 뭐야, 옷 한 벌 만드는데 10일이나 걸린 거야? 쳇. 손은 손대로 찔리고 실은 실대로 들어가고, 날짜는 날짜대로 잡아먹고. 내 다신 하나 봐라. 응차. 응차.”
쉴 새 없이 쫑알거리던 목소리의 정체는 다이아였고, 더욱이 중앙돛대를 타고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하필 카인이 앉아 있는 곳이다. 돛대는 보통 십자를 이룬다. 중심을 잡을 세로 기둥 하나, 돛을 잡아줄, 위로 바짝 붙은 가로 기둥 하나.
다행인 점은 카인이 오른쪽으로 당겨 앉았고, 다이아는 아직 그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자리 잡고 앉은 다이아는 반짝이는 별을 보며 탄성을 질렀다.
“아~ 좋다! 별 진짜 많다. 쏟아질 것 같아!”
“…….”
“별똥별은 없나? 한 번 보고 싶은데.”
카인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목 아픈 것도 까먹은 다이아는 밤하늘을 살펴보며 말했다.
“별님-! 제 소원 하나만 들어주세요. 카인이 기운 차릴 수 있게 도와주세요. 사실은요, 저 들었어요. 전에 4일에, 이스프림에서요. 카인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냈다는 거요.”
“-!”
카인의 가느다란 눈이 조금 크게 떠졌다.
“저 그 때 울었었어요. 카인이 그 여자 분들을 아직 잊지 못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절 거부하는 것을 느꼈거든요. 별님-. 지켜주세요. 카인이 아프지 않게 지켜주세요. 흐윽…. 저 아픈 거 괜찮아요. 참을 수 있어요. 전 아직 그런 상처가 없으니까요. 잘 모르니까요. 하지만 카인은 아니잖아요.”
다이아는 울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카인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듣기만 했다.
“절 사랑하는 마음이 아직 잇고, 그게 진심이더라도, 제가 다칠까봐, 저마저 잃을까봐…. 제 호위무사라는 녀석은 자신의 마음을 숨겨버렸어요.”
“…….”
“사랑하는 사람을 또 다시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마음을 그냥 묻을 생각입니다. 라고 했던 그 말, 이제는 이해할 것 같아요.”
다이아는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웃었다. 아주 다정한 미소였다. 카인은 그것을 볼 수 있었지만 여전히 별 말 하지 않았다. 그녀들처럼 그렇게.
“칼리프가 그랬어요. 저에게 고백한 건 진심이었지만, 저를 가지려고 하지는 않았대요. 스쿠버다이빙 했을 때 제가 빠져 죽을 뻔 했고, 카인이 절 구해줬잖아요. 칼리프 말로는 그게 호위무사로서의 자세만은 아니란 거예요.”
다이아는 내려갈 자세를 취하며 자신의 소원을 마무리 지었다.
“달님, 그리고 별님. 지켜주세요. 카인이 또 다시 아프지 않게요. 그 슬픔, 제가 다 안을게요. 부탁해요. 제 소원, 작지는 않지만 꼭 이루어주세요.”
털썩. 다이아는 내려가기 위해 엉덩이를 왼쪽으로 뺐다. 돛대에서 전해져오는 그 느낌을 알아차린 카인은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억, 뭐야!”
돛대 위에서 위험한 행동을 과감하게도 행하는 그였다. 중심 잡는 게 전부였던 다이아는 당겨지는 대로 끌려갔고, 이윽고 입술이 누군가에게 부딪침을 느꼈다. 곧 입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왔다.
“-!”
다이아는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밤하늘의 별과 달이 반짝였지만, 카인의 적색 머리카락을 비추는 데는 무리였다.
다이아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지금의 느낌, 어딘가 익숙했다. 그것은 스쿠버다이빙 하다가 기절했을 때다. 그 때랑 똑같이 부드러웠고, 감미로웠으며, 사랑스러웠다.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부딪힌 두 입술은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10월 28일 해가 떠오름과 동시에 바람이 불었다. 제일 먼저 느낀 사람이 바로 신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어? 바람 분다.”
옷 갈아입고 문 열고 선실을 나온 신은 화장실에서 대충 씻고, 뒤이어 같은 층의 오스카가 자고 있는 선실부터 두드렸다. 틈이 살짝 열려 있지만 그녀는 예의를 차렸다.
“오스카. 오스카? 일어났어?”
“아, 전하. 예, 일어났어요. 무슨 일 있어요?”
“바람 불어. 얼른 일어나, 항해해야지.”
“아, 예!”
오스카의 대답을 들은 신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타고 2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칼리프의 선실과 치프의 선실에 차례로 노크했다.
“칼리프, 치프. 일어났어?”
“일어났어요, 전하.”
두 사내의 대답을 들은 신은 선실 문을 확 열어젖혔다.
“바람 불거든? 무풍이 끝난 것 같으니까 서둘러야 해. 일단 항해부터 하고 밥 먹자.”
“어, 알았어요.”
둘은 옷 갈아입는 속도를 빨리 하고 선실을 나왔다. 그리고 신처럼 부랴부랴 세면을 마치고 갑판으로 올라왔다. 준비 끝난 신은 측량실에 들어가 있다.
“바람 방향 남동에서 북동으로. 돛 펼쳤으면 북동 방향으로 돛 돌려.”
오스카와 칼리프, 치프가 돛대 위에서 돛을 펼치고 내려오자, 신은 선수로 다다다 뛰어와서 닻을 끌어올렸다. 닻이 올라와 배 난간에 걸리자, 배는 바람 타고 속도를 내며 빠른 속도로 달렸다.
갑판으로 내려선 칼리프가 뒤쪽 돛대를 맡았던 치프에게 물었다.
“치프, 카인은 아직 자냐?”
“어. 자. 다이아 마마는 일어나셨는데? 올라오셔.”
달칵.
치프의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선실 문이 열렸다.
“좋은 아침! 혹시 레몬 봤어요?”
다이아의 말에 갑판의 세 남자와 신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껌벅였다.
마마는 일어나자마자 왜 레몬부터 찾아?
“몰라요. 사냥 갔는지 안 보이네요.”
“카인 선실 가봤어요?”
오스카의 말에 이어 치프가 물었다. 머리카락을 바짝 묶어 올린 다이아는 뒤통수를 긁적이고는 다시 선실로 내려갔다. 오스카와 칼리프, 치프는 동시에 신을 바라보았다. 뭐 아느냐는 눈치지만 신은 고개를 저으며 짐짓 모르는 채했다.
“다이아가 말한다고 했거든? 조금만 참아, 세 명.”
말 남기고 쌩하니 측량실로 들어가는 신이었다. 셋은 다시 서로를 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곧이어 레몬이 선실 문을 나와 어디론가 날아갔다. 레몬의 발목에 묶여 있는 조금 커다란 봉투를, 세 남자는 똑똑히 봤다.
저거다! 저것이 과연 무엇인가! 비밀을 밝혀라!
눈이 반짝이던 오스카가 레몬을 불렀다.
“어어어어어이! 레에에에에에몬! 돌아와 봐아아아아아아아!”
…흥.
힐끔 고개를 돌려 오스카를 본 레몬은 다시 앞만 보고 날아갔다.
“저 녀석이 정말. 아, 다이아 마마가 말한다고 했지요?”
“그랬지. 얼른 내려가자.”
“그러자, 형.”
셋은 우르르르 선실로 내려갔다. 다이아의 선실인 부관실로 갔지만 없었다. 셋은 다시 서로를 바라봤다.
부관실에 계신 거 아니었나?
셋의 시선이 다시 움직였다. 카인의 선실이다.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본 세 남자의 눈빛이 다시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하나, 둘, 셋!
문을 열고 안으로 고개를 들이민 셋은 기겁할 뻔 했다. 떡 하니 보이는 침대 위에선 카인과 다이아가 같이 자고 있었다. 잠시 경악에 빠져 있던 셋은 결국 참지 못 하고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