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모만으로 주목받는 농구선수 김연주(27, 178cm)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얘기다. 이제 그녀는 리그 최고의 식스맨으로 부상, 실력까지 인정받는 스타가 됐다. '얼짱'이라는 얘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예전과 달리 이를 즐기는 여유까지 생겼다. 김연주를 만나 농구인생 역전 스토리를 들어봤다.(※이 기사는 농구전문잡지 점프볼 5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다른 팀이라면 주전? 신한은행이기에 성장했죠
2007년부터 통합우승을 놓치지 않던 안산 신한은행이 모처럼 시즌을 조기에 마쳤다. 2012-2013시즌 정규리그 준우승에 그친 신한은행은 플레이오프에서도 용인 삼성생명에 덜미를 잡히며 연속 우승에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김연주의 존재감은 예년보다 돋보였다. 정규리그에서 35경기에 모두 출전, 데뷔 최다인 평균 22분 58초를 소화한 것. 고비마다 나서 3점슛과 끈기 넘치는 수비로 활기를 더한 그녀는 2011-2012시즌에 이어 또 한 번 식스맨상의 영예를 안았다.
Q.챔피언결정전에 오르지 못한 건 오랜만이죠? 플레이오프에서 삼성생명에 질 당시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실감이 안 났죠.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구단에서 우승을 못했는데도 하와이 여행을 보내주셔서 한편으로는 부담이 됐어요. 감사한 마음은 있었지만, 마냥 기쁘진 않았죠. 재밌게 놀긴 했는데 아무래도 다른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던 것 같아요. 사실 속상해서 챔피언결정전 1차전을 안 봤어요. 2차전은 가족들이 보고 있어서 함께 시청했는데 더 속상하더라고요. 그래서 3차전도 안 봤죠.
Q.계속해서 정상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은 덜어냈을 것 같은데?
‘시원섭섭하다’라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건가 봐요. 분명 아쉬움은 컸지만, 어깨에 얹고 있던 돌을 떨쳐낸 기분이었어요. 구단에서도 7시즌 연속 통합우승에 실패했는데 오히려 지원을 더 잘해줘서 분위기를 빨리 추스를 수 있었죠. 그런데 지원을 너무 잘해주셔서 요즘엔 다시 그 돌을 얹은 듯한 기분이에요. 하하.
Q.임달식 감독은 우승에 실패한 후 선수들에게 어떤 얘기를 했나요?
특히 안타까워하셨는데 그래도 선수들에겐 격려를 많이 해주셨어요. 저만 느낀 건지 모르겠는데 감독님도 연속우승에 대한 부담에선 어느 정도 벗어나신 것 같아요.
Q.시즌 도중 3대3 트레이드를 단행하는 등 연속우승을 이어가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습니다. 임달식 감독은 트레이드가 한편으로는 목표의식이 흐려진 선수들의 정신력을 강화시킬 것으로 기대했다고 하던데?
사실 처음에는 감독님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오랫동안 함께 뛴 선수들이 트레이드돼서 감독님께 섭섭했죠. 프로세계의 냉정함을 새삼 알게 됐어요. 그래도 애슐리 로빈슨이 가세하면서 내·외곽의 조화가 살아난 것 같아요. 특히 슈터인 저는 한결 편했어요. 리바운드를 잘하는 선수라서 부담을 덜었죠. 사실 이전까지는 리바운드가 워낙 약해 슛 던지는 게 무서웠거든요. 다른 건 차치하더라도 리바운드만큼은 확실히 해주니까 슛 밸런스를 찾는데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요.
Q.지난 시즌을 돌아봤을 때 가장 아쉬운 장면을 꼽자면?
구리 KDB생명과의 3라운드 맞대결이요. (한)채진 언니에게 버저비터를 허용하며 54-55로 졌죠. 그때 채진 언니를 수비한 게 저였거든요. 사실 반칙이 나올 것 같아서 골밑슛을 시도할 때 수비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어요. 버티기만 하면 된다고 판단했죠. 손가락이라도 뻗었으면 이렇게 아쉽지 않을 텐데…. 그때 이후로는 TV로 농구를 보다가 버저비터가 나오면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를 쳐다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그 경기를 이겼다면 저희 팀이 정규리그 우승을 했겠죠. 그러면 챔피언결정전에도 직행했고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경기예요.
Q.하지만 두 시즌 연속 식스맨상을 받으며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소감을 남긴다면?
시상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몇몇 분들이 "상 받으니까 예쁘게 입고 온 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옷이라도 튀어야죠"라고 답했어요. 그분들이 작년에 받았던 걸 착각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줄 알았어요. 전혀 욕심 없었는데 받게 되어서 좋았죠. 의미 깊은 상이잖아요.
Q.두 시즌 연속 식스맨상을 받은 선수는 강지숙, 신정자 등 2명뿐이었어요. 선배들은 이를 기점으로 주전으로 도약했습니다. 보다 큰 포부를 가질 법도 한데?
아무래도 선수라면 주전에 대한 욕심이 있죠. 지난 시즌에도 제가 해내야 할 역할을 모두 해내지 못했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팀의 사정에 맞춰가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게 팀이나 저를 위해 좋은 거죠. 다른 것보다 파울 트러블에 자주 걸리는 걸 보완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Q.식스맨은 투입 시점이 오락가락해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감독님도 많이 하시는 말씀인데 경기흐름을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특히 슈터라면 과감하게 슛을 던져야 할 때가 있고, 슛을 아껴야 하는 때도 있죠. 흐름을 못 읽으면 식스맨은 오히려 팀에 독이 될 수 있어요. 자신으로 인해 분위기가 상대팀에게 넘어갈 수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하죠.
Q.배짱 있는 3점슛이 돋보여요. 그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많이 듣는 질문인데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하하.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 있게 던지는 게 중요하다는 걸 항상 염두하고 있어요. 던질 때 제 자신을 믿는 것도 커요. 스스로 믿음을 가져야 동료들도 저를 믿을 수 있게 되거든요. 어릴 때 '24초 동안 한 번의 기회를 얻는 것도 힘든데 그것보다 더 좋은 기회를 얻으려고 슛을 아낀다면, 그 공격은 실패다'라고 배웠는데 늘 마음속에 새겨두고 있어요.
Q.데뷔 후 최다인 평균 5.3개의 3점슛을 시도했어요. 외국선수 도입이나 3초룰 폐지에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시즌 초반에 너무 많이 던져서 그랬던 것 같아요. 춘천 우리은행과의 2라운드 경기에서 16개(4개 성공)나 던졌거든요. 흐름을 못 읽었기 때문이죠. 우리은행이 쓰는 존 프레스는 하프라인만 잘 넘어오면 3점슛 기회가 많이 생기거든요. 여기서 3점슛 1~2개만 들어가면 우리은행은 존 프레스를 못 쓸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3점슛을 던졌어요. 그런데 자신감이 난사로 번져서 저 때문에 동료들이 힘들었을 거예요. 팀도 졌죠. 버스에서 기록지를 보며 알았는데 이후 이어폰 꽂고 조용히 노래만 들으면서 숙소로 돌아왔어요. 하하.
Q.사실 신예 시절에는 실력보다 외모로 조명을 받았습니다. '얼짱 슈터'로 불리기도 했고요. 심적으로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땐 정말 힘들었어요. 경기 못 뛰는 것만으로 열등감이 생기고 '나는 농구를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던 시기였거든요. 동료들이 "예쁜 걸로 주목받아서 좋겠다"라고 장난을 치는 것조차 상처가 됐죠. 운동선수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고, 인터뷰가 정말 하기 싫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랬나 싶어요. '내가 진짜 예쁘다고 생각했던 건가?' 싶어요. 하하. 어려서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에요. 선수가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관심을 받는 건 행복이죠.
Q.2009-2010시즌을 기점으로 핵심 식스맨으로 성장했습니다. 뚜렷한 계기가 있나요?
FA 취득이 걸린 시즌이었거든요. 'FA가 안되면 깔끔히 포기하자'라는 각오로 비시즌부터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게 감독님께 좋게 비춰졌던 것 같아요. 경기를 많이 뛰니까 기분 좋더라고요. 처음으로 '농구를 더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전까지는 은퇴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거든요.
Q.그런데 FA 자격을 얻지 못했던 이유는 뭔가요?
저도 제가 FA가 된 줄 알았어요. 평균 출전시간이 10분(13분 32초)을 넘겨서 걱정을 안 하고 있었거든요. 알고 보니 40경기를 기준으로 평균 10분이 넘어야 FA가 되는 것이더라고요. FA 명단에서 제외된 것을 보고 한동안 예민했어요. 농구를 못하게 될 거란 불안감이 들었거든요.
Q.그래도 구단에선 5년 계약을 제시했습니다. 김연주 선수를 믿었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을까요?
사실 FA 형식으로 계약할 수 없다는 것에 속상했어요. 팀을 나가겠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권리를 누리며 평가를 받고 싶었거든요. FA 자격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얻고 싶어서 기간을 줄여줬으면 하는 바람은 있었지만, 농구를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하며 계약했죠. 데뷔 첫 FA까진 이제 2년 남았어요. 그때 되면 한국나이로 서른인데…. 지금 생각하니 막막하네요. 하하.
Q.다른 팀에서 뛴다면 더 많은 출전시간을 얻을 수 있는 선수라는 평이 많습니다.
겁이 많은 건지, 욕심이 없는 건지 모르겠는데 연장 계약한 것을 후회하진 않아요. 팀에서 그만큼 저를 신뢰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못하는 와중에도 기회를 많이 받기도 했고요. 신한은행에 있었기 때문에 실력에 비해 많은 사랑을 받았고, 얻은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다음 시즌에는 팀이 익숙한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더 열심히 뛰어야죠.
연예기획사에서 제의가?
김연주가 '얼짱'으로 조명을 받았던 건 신한은행에 입단하기 한참 전의 일이다. 김연주는 선일여고의 주전 슈터로 맹활약, 이미 실력으로 관계자들에게 인정받았다. '드래프트 2순위'라는 경력만으로도 그녀가 선수로서 지닌 가치는 설명이 충분하다. 그런데 외모로 인한 에피소드도 있었다. 기자는 김연주의 과거 기사를 검색하던 도중 연예기획사의 제의를 받았다는 소스를 얻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제부턴 김연주의 학창시절과 코트 밖 매력에 대해 알아보자.
Q.농구는 언제부터 하게 됐나요?
선일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요. 남동생도 함께 운동을 하려 했는데 여의치 않아서 저만 시작을 했죠. 고등학교 체육부장이신 아버지가 겨울방학 동안만 해보라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저는 싫다고 했는데 아버지는 아직도 제가 먼저 시작한 거라고 우기고 있으세요. 하하. 어머니랑 이모, 할아버지, 할머니 다 반대했는데 저와 아버지만 계속 하겠다고 우겼어요. 키가 작아서 처음엔 가드로 시작했어요.
Q.데뷔전이 기억나나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안 나네요. 서러워요. 하하. 등번호만 기억에 남아요. 22번을 달았죠. 체구가 작았는데 등을 다 채울 수 있는 번호여서 좋아했어요. 일본 초등학교와 친선전을 치른 정도만 기억나네요. 어리버리하게 뛰었던 것도요. 하하.
Q.그렇다면 학창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선일여고 2학년 때 치른 쌍용기 결승전이요. 농구를 시작한 후 처음 주전으로 뛴 대회였는데 전반을 20점 넘게 앞선 채 마쳤어요. 그런데 (이)경은이가 갑자기 코뼈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점수를 다 까먹었죠. 경기종료 직전 2점차로 뒤진 상태에서 코치님이 제가 3점슛을 시도할 수 있는 패턴을 지시하셨어요. '나를 믿어주시는구나, 내가 해결해야 하는구나'라는 기분이 처음으로 들었어요. 그리고 멋지게 3점슛을 성공시켰죠. 그런데 아직 경기종료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있는 상태였는데 저만 백코트를 했어요. 결국 종료 1.1초전 (신)혜인 언니에게 역전 골밑슛을 내줬죠. 경기가 끝난 후 아쉬움에 엄청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래도 선수로서 처음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경기였죠.
Q.드래프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실제 박세미에 이어 2순위로 선발되기도 했고요.
쌍용기에 앞서 한 번 더 계기가 있었죠. 춘계대회 결승전이 '1년에 하루 잘 터진다'는 그 경기였어요. 이 경기를 기점으로 조금씩 기회를 늘려갔죠. 농구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어요. 이전까지는 스스로 농구를 못한다고 판단했고, 프로는 꿈도 못 꿨거든요. 고등학교까지만 농구를 하고 대학에 가려고 했어요. 선수로 성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해서 공부도 틈틈이 했었거든요. 심리학을 배우고 싶었는데 지금도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예요. 나중에 은퇴하게 되면 대학에서 심리학을 배울 계획이에요.
Q.여고생들은 특히 예쁘게 꾸미는 걸 좋아하잖아요. 또래들이 부러웠을 것 같아요.
머리 기르는 게 부러웠어요. 이외에는 딱히 부러웠던 건 없는 것 같아요. 이성에 대한 관심도 또래들에 비해 덜했고요. 어릴 땐 숫기도 없었고, 집이랑 학교밖에 모르는 학생이었어요. 얌전했죠. 지금이요? '불량학생'이죠. 하하.
Q.혹시 롤 모델이 있나요?
(박)정은 언니가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특히 2000 시드니올림픽이 기억에 남아요. 슛, 패스, 경기운영, 포스트 업 수비까지 못하는 게 없었거든요. 농구를 중간에 그만뒀다 해도 계속해서 정은 언니의 팬으로 남았을 거예요.
Q.등번호 5번은 어떻게 달게 됐나요?
선일여고에서 잘할 당시 등번호였어요. 그래서 애착이 있죠. 처음 신한은행에 왔을 땐 (김)분좌 언니가 쓰고 있어서 못 달았는데 은퇴하시면서 기회가 생겼어요. (최)윤아 언니도 노리는 번호였는데 "그냥 너 써라"라면서 쿨하게 양보하시더라고요. 귀걸이도 'NO.5'라고 새겨진 걸 쓸 정도로 5번을 좋아해요. 그런데 최근에 '5'가 떨어지는 바람에 잃어버렸어요. 'NO.5'가 'NO'로 바뀌어서 속상해요. 하하.
Q.선일여고에 재학 중일 당시 연예인 제의를 받았다는 기사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와전된 기사예요. 저를 통해 스포츠마케팅을 하고 싶다는 제의였어요. 요즘의 김연아 선수나 손연재 선수처럼요. 부모님이 아직 선수로 인정을 못 받았는데 에이전트가 있으면 부담스러울 거라면서 거절하라고 하셨죠. 저 역시 그런 쪽은 관심도 없었고요. 피부를 고쳐주겠다는 제안에 조금 솔깃하긴 했지만 말이에요. 하하.
Q.이렇게 외모가 출중한데 남자 친구가 없다고 들었어요.
남자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다보니 오랫동안 솔로로 지내고 있어요. 외박을 받더라도 집에 가서 쉬거나 친구들을 만나니 말이에요. 나이가 나이다 보니 요새 급하긴 해요. 소개팅을 주선해준다면 다 나갈 생각이에요. 하하. 이상형은 조인성이에요. 예전부터 광팬이었죠. ("남자 친구 없는 이유가 따로 있었네요"라고 하자)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요. 하하. 그래도 연예인은 연예인일 뿐이니까요. 저 눈 되게 낮아요. 다정다감하고 기댈 수 있는 남자면 OK죠.
Q.최근 생일(4월 18일)이었는데 어떻게 보냈나요?
우승을 차지한 지난 6년간 휴가기간에 생일이어서 늘 친구들과 재밌게 놀았어요. 올해는 시즌을 빨리 마쳐 휴가가 일찍 끝났어요. 그래서 생일에 꼼짝없이 운동만 할 뻔했죠. 그런데 전 참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전날 팀이 회식을 해서 갑자기 휴식을 갖게 됐거든요. 낮엔 친구들이랑 놀고 저녁엔 부모님과 미역국을 먹었어요. 숙소에 돌아오니 팬들이 보내준 케이크와 꽃이 많더라고요. 전 꽃을 굉장히 좋아해요.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저희 팀의 모 선수는 팔찌를 선물로 줬는데 굉장히 생색내고 있어요. 실명은 공개하지 않을게요. 그 선수는 생일이 지나서 다행이에요. 하하.
Q.부모님과 좋은 시간을 보냈네요. 평소 부모님께 연락을 자주 하나요?
그럼요. 하루에 한 번씩은 아니지만…. 하하.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먼저 전화를 많이 하시는 편이에요. 경기장도 자주 찾아오시고요. 가족들이 항상 큰 힘이 되죠. 1살 터울의 남동생이랑도 친구처럼 지내요. 생일에 궁중떡볶이도 만들어주더라고요.
Q.맛은 어땠나요?
정말 맛있어요. 요리를 저보다 잘하거든요. ("라면 물도 못 맞추는 건 아니죠?"라 묻자)라면은 잘 끓여요! 하하. 요새 부쩍 요리에 대한 관심이 늘었어요. 계란말이와 어묵볶음을 마스터했죠. 가족들이 남김없이 먹은 걸 보며 '요리가 잘 됐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했죠.
Q.여가시간은 어떻게 보내나요?
외출을 많이 해요. 특히 혼자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곤 하죠. 친구들과 한강에서 바람을 쐬는 것도 좋아해요. 아, 바다도 많이 가는 편이에요. 남해가 제일 좋은데 너무 멀어서 동해를 자주 가죠. 최근에는 대천도 다녀왔고요.
Q.재밌는 인터뷰였어요. 학창시절 숫기 없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했는데 전혀 아닌 걸요?
프로 입단 후 성격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초창기에는 고집 세고 먼저 다가가는 걸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지금은 제가 다가가는 게 오히려 편해요. 모든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고집은 아직도 남아있어요. 하하.
Q.마지막 질문입니다. 농구만의 가장 큰 매력은 뭘까요?
제가 한때 정말 많이 고민했던 거예요. 지금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처음 프로에 왔을 땐 제가 농구를 정말 못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다른 걸 농구만큼 했으면 성공했을 거야'라 여길 정도였죠. '농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해 자주 고민을 하면서도 왜 못 놓는 걸까?'라 스스로에게 물었는데 그만큼 제가 농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전 농구가 너무 좋아요. 동료들과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운동하는 게 행복해요. 어렵게 기회를 잡아 계속해서 비중을 늘려가는 것도 즐겁기만 해요.
| SIDE STORY | 박정은은 훼이크! 롤 모델 따로 있다?
박정은을 동경한다고 했지만, 사실 김연주의 마음을 사로잡은 선수는 따로 있었다. 바로 안양 KGC인삼공사의 '훈남' 양희종이다. 연세대 재학시절 양희종을 처음 봤다는 김연주는 "이 선수를 왜 고등학교 때 못 봤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태웅을 실물로 보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라며 웃었다. "좋아하는 남자선수는 많아요. 그런데 다른 선수들은 실력만으로 좋아하는 거예요"라며 얼굴을 붉힌 김연주였지만, 단순히 외모만으로 양희종을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1-3-1 수비에서 밑으로 내려와 있는 포워드는 수비가 굉장히 힘들거든요. 그걸 멋지게 소화하더라고요." 김연주의 말이다. 하지만 개인적인 친분은 없다고. 그녀는 이어 "이번 플레이오프 때 안양에 경기를 보러 갔어요. '눈 마주친 것 같다'라며 혼자 좋아하기도 했죠. 쑥스럽네요"라며 미소 지었다. 양희종의 안티 팬이 늘어나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신발
조금 무겁긴 한데 줌플라이트5를 애용하고 있어요. 저희끼린 '외계인 눈'이라고 부르는 농구화죠. 하하. 원래 가벼운 걸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아킬레스건에 통증이 느껴지면서 쿠션이 좋은 농구화를 우선으로 삼게 되더라고요. 줌플라이트5는 발목을 접질리지 않게 잘 잡아주는 것 같아요. 당분간은 농구화를 바꾸지 않을 생각이에요.
#사진_문복주 기자, WKBL 제공
2013-06-03 최창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