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소매 드레스셔츠를 입는 남성들이 꼽는 장점은 이렇다. '재킷을 겉에 입더라도 긴소매 셔츠를 입었을 때보다 부담이 덜하다',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춘 느낌을 주면서도 덜 덥다', ….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소매 드레스셔츠는 격식에 어긋나는 옷이다. 좀 더 강조하자면, 반소매 드레스셔츠는 '남성들이 가급적 피해야 할 옷'이라고 말하고 싶다.
해외에서도 최근 반소매 셔츠가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모양이다. 지난 7월 말 파이낸셜타임스(FT)의 'Take the long view'라는 기사를 보면, 남성 셔츠의 소매 길이는 '현재 패션계의 가장 뜨거운 이슈'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답도 비교적 명쾌하게 나와있다. 이 기사에 나온 여러 의견을 보자. 유명 패션지 보그(Vogue) 이탈리아판의 에디터 카를로 두치(Ducci)는 "반소매 셔츠는 오로지 해변에서 하와이안 스타일을 연출할 때,
그리고 체육관에서 운동할 때나 입는 옷"이라고 했고, 영국 태생의 수제(手製) 셔츠 디자이너인 루퍼스 앨브멀(Albemarle)은 "오직 칼라(collar)가 없는 티셔츠나 피케셔츠(Pique Shirts·흔히 폴로셔츠라 부름)만이 반소매가 허용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유명 디자이너 엠마누엘 웅가로(Ungaro)는 "반소매 셔츠는 내가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옷"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반소매 셔츠는 왜 격식에 어긋나는 것일까? 서양의 의복 양식에 따르면, 드레스 셔츠 안에는 속옷을 따로 입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수트를 입을 때는 드레스셔츠가 곧 속옷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이나 미국의 남성들은 식사 중이나 업무 중에도 웬만해선 재킷을 잘 벗지 않는다. 재킷을 벗는 것은 곧 '속옷만 입고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속옷의 1차적인 목적은 피부를 보호하고 맨몸을 가리는 것이다. 그런데 반소매 셔츠는 맨살을 상당 부분 드러내므로 속옷의 본연의 기능 측면에서 본다면 낙제점이다.
더구나 재킷도 입지 않은 반소매 셔츠 차림이라면 속옷, 그것도 맨살을 훤히 드러낸 속옷만 입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셔츠 안에 러닝 셔츠를 입는데 왜 셔츠가 속옷이냐고 반문하는 남성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러닝 셔츠는 절대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는 옷이고, 셔츠는 '속옷의 역할을 하는 겉옷'이라는 점에서 엄연히 다르다.
그렇다면 남성은 어떤 무더위 속에서도 격식을 위해 긴소매 셔츠의 고행(苦行)을 무작정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긴소매 셔츠를 입되 더위를 피하는 방법을 제안해 본다. 긴소매를 입되 소매를 걷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긴소매 셔츠를 입고, 소매 끝단의 단추를 푼 뒤, 소매를 자연스럽게 2~3번 정도 접어 올려 보자. 반드시 접는 간격을 정확히 맞출 필요도 없다.
무성의해 보이고 단정치 못해 보이는 것은 아닌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많은 여성들은 드레스 셔츠 소매를 걷어 올리고 자기 일에 열중하는 남성의 모습에 매력을 느낀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액세서리도 활용해 보자. 소매 단추를 푼 뒤 팔꿈치 부분을 잡고 소매를 위로 당겨 올린 다음, 금속 소재의 암 밴드(armbands)를 팔에 차면 소매가 걷어 올라간 상태에서 고정된다.
신축성이 좋은 밴드라면 팔을 지나치게 압박하지 않으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날씨가 무덥고 에너지 절감이라는 국가적 이슈도 있지만, 올바른 옷차림이 주는 문화적 가치도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긴소매 셔츠를 입는데 따른 이미지의 고양(高揚)은 여러 가지 불편을 상쇄하는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긴소매 셔츠는 남성을 더욱 빈틈없고 세련되어 보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토즈(Tod's) 그룹의 디에고 델라 발레(Diego Della Valle) 회장은 "긴소매 셔츠는 사람을 더욱 명민해 보이게 해준다"라고 말했다.
특히 비즈니스 미팅이나 경조사 등 격식을 갖춰야 하는 상황에선 반드시 긴소매 셔츠를 입어야 한다.
끝으로 파이낸셜타임스에 실린 익명의 15살 소년의 말을 들어보자. "반소매 셔츠는 어딘지 이상해 보여요. 저녁 만찬 장소에 가는 옷차림이 아니라 군인 같아 보이죠."
15살 소년도 이런 생각을 한다. 아무리 덥더라도 이제 반소매 셔츠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