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장난 (1952, Jeux Interdits)
감독 : 르네 끌레망 출연 : 조르주 푸줄리(뽈레트) / 브리지트 포세이(미셀) 원작 : 프랑스와 브와이에 각본 : 장 오랑수/피에르 보스트 제작 : 로버트 도프만 음악 : 나르시소 예페스 촬영 : 로베르트 줄리아르 국가 : 프랑스 상영시간 : 102 분 수상 : 아카데미 외국영화상 수상. 깐느 그랑프리 수상. 베니스 금사자상 수상. 뉴욕 영화 비평가협회 외국영화상 수상
나르시소 예페스가 연주한 가슴 저미는 주제곡인 "로망스"의 기타 선율과 함께 국내 영화팬들의 가슴 속에 깊은 감명을 심어 준 명화, 영원한 영화의 고전인 "금지된 장난 " 전쟁의 참상을 가장 극적으로 표현한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뽈레트와 미셸 두 아역 배우의 명연기가 빛나는 세계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화이다. 전쟁의 참상도, 부모의 죽음조차도 아무 것도 모르는 전쟁 고아인 뽈레트와 미셸의 순수한 사랑과 전쟁으로 인해 짓밟히는 동심에 연민을 느끼게 하는, 비인간화된 전쟁의 참화속에서도 피어나는 따스한 인간의 정과 어린이의 순수함을 영화로 승화시킨, 동심을 통해 전쟁의 비참함과 성인들의 에고이즘을 고발한 작품으로 르네 끌레망의 반전영화이다.
이 영화의 대부분은 알프스 지방의 가난한 농가에서 찍었고 출연진들도 전형적인 농부 타입의 인물들을 기용해서 사실감을 주었으며, 주인공인 소년과 소녀는 전혀 영화 출연 경험이 없는 꼬마들이었다고 한다. 뽈레트와 미셀역의 이 꼬마들이 르네 끌레망 감독의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게 역을 소화해냄으로써 이 영화를 빛내는 밑거름 역활을 한 것이다.
"금지된 장난"이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대를 이어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게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두 어린 주인공 뽈레트와 미셀,그 중에서도 특히 뽈레트역의 브리지트 포세이의 천진함과 기타곡으로 유명한 주제곡 때문일 것이다.
영화의 첫부분에서 끌레망 감독은 자신의 다큐멘터리 연출 수법을 적절히 사용했다. 피난민들 행렬이 수차례 폭격을 맞는 동안 그는 배경 음악 없이 사격 소음, 폭탄이 터지는 굉음 등으로만 장면을 이끌어 나갔는데 이것은 극영화라기보다 다큐멘터리의 리얼리즘으로 전쟁의 참화를 한층 더 진하게 느끼게 하고 있다. 카메라는 전쟁에 대한 직접적인 사실묘사는 피한 채 미셀과 뽈레트의 놀이, 의식의 변화 등을 줄곧 따라잡고 있다. 거기에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풍자적으로 가미됨으로써 어른들의 싸움과 유리(遊離)된 아이들의 세계가 더운 애잔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현대판처럼 앙숙인 두 청춘 남녀가 헛간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 등이 삽화처럼 들어가 있어 전쟁과 아랑곳 없이 살아가는 선량한 사람들의 모습이 오히려 뽈레트의 비극을 더욱 강렬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금지된 장난" 즉, 죽은 곤충이나 작은 동물들의 무덤에 세울 십자가를 훔치는 어린 소년 소녀의 놀이는 그 어떤 연설보다 강한 전쟁 고발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 이것은 후에 끌레망 감독 자신이 이 작품의 중심 테마가 전쟁이었다는 것을 구태여 들지 않더라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끌레망 감독은 전쟁 자체를 어른들의 잔인한 게임으로 보고 그 책임을 묻고 있다. 거의 마지막 부분에, 적십자에서 조사 나온 조사반에게 미셀의 아버지가 약속을 어기고 뽈레트가 있는 곳을 가르쳐 주자 미셀은 사납게 아버지에게 대든다. 어른에 대해, 무책임한 게임과 배신에 대해 열 한 살 소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항거를 한 것이다.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 관객들의 시선을 자극하는 끌레망 감독의 섬세한 연출로, 애타게 미셀을 부르며 찾는 뽈레트의 맑은 눈동자에 가득 고이는 두려움과 그리움, 거기에 나르시소 예페스의 기타 연주가 흐르는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잊지 못할 명장면으로 남게 된다. 영화 전편을 통해서 유일하게 음악이 흐르는 마지막 신에서의 기타 연주는 베토벤이 말한 "기타는 작은 교향악단"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의 감동을 불러 일으킨다.
르네 끌레망 감독의 다큐멘터리 터치 리얼리즘과 농촌을 무대로 한 그로테스크한 코미디, 그리고 천진난만하고 서정적인 어린 아이들의 세계가 복합적으로 만들어낸 전쟁에 대한 강렬한 메세지는 어느 전쟁 영화보다도 사람들에게 인류상잔의 비인간성에 대해 일깨우는 점이 많았던 영화였다.
영화는 독일군의 폭격에 쫓기다 피난민 대열에서 부모를 잃고, 농촌에 이른 뽈레트(포세이)가 미셸(푸줄리)의 집에 있게 되면서부터 고아원에 갈 때까지의 과정을 그렸는데, 뽈레트가 미셸과 함께 묘지의 십자가를 훔쳐내 죽은 동물들의 장례식 장난을 하는 장면과, 혼잡한 역 구석에 앉아 있던 뽈레트가 미셸을 부르며 달려가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1940년 6월, 5살배기 뽈레트는 남프랑스의 농촌 마을에 파리에서 피난오다 공습으로 부모를 잃고 죽은 강아지를 안고 헤매던 소녀 뽈레트는 근처 어느 농가에 들어선다. 그곳은 전쟁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평화롭고 한적한 곳이었다.그 농가의 아들 미셀(10살)은 고아가 된 뽈레트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자기 집으로 데려 간다.
미셸네 집에서 머무르게 된 뽈레트는 부모가 죽은 줄도 모르고 미셀과 함께 죽은 강아지를 묻어 준 뒤 무덤에 십자가를 세워 준다 살아있는 것이 죽었을 때는 이렇게 묻어주는 것이라고 알게 된 뽈레트는 새든, 벌레든 죽은 동물을 모아 무덤을 만들고 십자가를 세워 준다.
나중에는 살아 있는 벌레와 작은 동물을 죽여서 무덤을 만들고 십자가를 세우는 놀이를 하는 동안 무덤은 점점 늘어가고 십자가가 더욱 많이 필요해지자 미셀은 교회 제단에 놓여진 십자가를 훔쳐 오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형의 묘지에서도 십자가를 뽑아 온다.
그러던 어느날, 고아들을 고아수용소로 데려가기 위해 적십자의 조사반이 파견나온다. 이때 미셀의 아버지는 미셀에게 십자가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면 뽈레트를 그들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지만 결국 뽈레트는 수녀들과 함께 피난민 수용소로 떠나게 된다.
부모와 헤어지고 미셸과도 헤어지게 된 어린 뽈레트는 그제서야 가짜 무덤이 아닌, 그리고 자신이 죽여서 만든 벌레의 무덤이 아닌, 진짜 영영 헤어지는 것에 대한 슬픔을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기차역에서 미셸을 애타게 부르던 여린 목소리가 점차 엄마를 찾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변해갈 때 그 참혹함에 눈시울이 젖어들며 가슴이 메이는 마지막 장면에 아름다운 기타 선율 "로망스(Romance)가 흐른다.
한국에서는 1958년 개봉되었다.
"제 이름을 기억 못하시는 분이라도 지금 제가 무대로 나올 때 울려 퍼진 곡이 "아, "금지된 장난"의 "로망스"구나" 하고 알아차리실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51년에 발표한 "금지된 장난"이 세계 영화팬들에게 전쟁의 참혹함을 일깨워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적절한 영화음악의 활용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제 작품 몇 편을 중심으로 영화에 사용되는 음악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우선 "금지된 장난"하면 곧 여주인공인 소녀 뽈레뜨의 애처로운 모습을 연상하실 겁니다. 티없이 귀엽고 애처로운 고아소녀 뽈레뜨와 친구 미셀. 뽈레뜨가 피난민 수용소로 끌려가느라 역구내에 도착했을 때 혼잡한 군중 틈을 헤집고 미셀을 부르며 달려나가는 라스트 신에서 여러분들은 뽈레뜨를 동정하고 전쟁의 참혹함에 분노를 느끼셨을 겁니다.
바로 이런 감정을 더욱 고조시킨 것이 바로 스페인 민요인 "로망스"의 멜로디였습니다. 나르시소 예페스라는 스페인 기타 연주자의 곡을 제가 차용해 썼습니다만 원래 로망스는 16세기부터 전래 되어 온 스페인 민요로서 원제는 "작자 미상의 로망스( Romance Anonimo)"라고 합니다. 이 곡은 제 작품이 발표되기 훨씬 전인 1939년, 타이론 파워 주연의 투우 영화인 "피와 모래( Blood and Sand)"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그 뒤 69년 윌리암 홀덴 주연의 "애수의 크리스마스( The Christmas Tree)"등에도 인용됐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왜 유독 "금지된 장난"의 "로망스"만을 떠올리실까요? 그것은 바로 어린 소녀의 티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지켜주기 위한 신의 배려가 아니었을까요? 같은 곡이 여러 영화에 사용됐지만 제 작품은 영상과 음악이 가장 적절히 조화를 이루었기에 지금껏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됩니다.이렇듯 영화에서 적절한 영화음악의 사용이 얼마만큼 중요한지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르네 끌레망 Rene Clement (1913~1996)
프랑스 지롱드현 볼드 태생인 르네 끄레망은 소년시절부터 영화에 흥미를 가지고 파리에 나가 미술학교에서 건축학을 배운다. 31년부터 16밀리로 아방 가드로적인 단편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고 이어 35밀리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에도 흥미를 가지고 육군영화반에 들어가 튀니지아를 무대로 한 기록영화 을 만들었다.
37년부터 43년에 걸처 7편의 단편영화를 감독했다. 제2차 대전 직후인 45년에, 단편영화 제작에서 함께 일을 했던 감독 앙리 아르깡의 협력을 얻어 제2차 대전 하의 프랑스 철도 종업원 조합의 레지스탕스를 묘사, 세미 다큐멘터리 장편 영화"철로의 싸움"(46,깐느 영화제 그랑프리)을 감독 해 일약 주목을 받는다. 이 작품은 끌레망이 실제로 대전 중에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한 경험을 토대로, 국철 노동자가 펼치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기록적으로 했던 국철 노동자가 출연,올로케이션으로 제작되었다. 모두 아마추어 배우로만 짜여진 영화였지만, 사실을 체험한 노동자들인 만큼 연기를 뛰어넘어 박력을 느끼게 했다.
45년 장 꼭또가 감독한 "미녀와 야수" 46년에는 노엘=노엘이 감독한 의 기술 고문을 맡았다. 그리고 패전에 돌아가야 할 항구를 잃은 나치 독일의 잠수함이라는 한계상황에 갇힌 사람들- 승무원들, 군인,나치요원, 그 협력자-이 모두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는 드라마를,다큐멘터리 수법의 리얼한 필치로 묘사한 수작 을 연출해 47년 깐느 영화제 모험탐정영화상을 수상. 티없는 전쟁고아 여자 아이 포레트와 그 놀이상대 남자 미셀 두명의 어린이의 세계를 통해서 전쟁탄핵을 간접적으로 통렬함과 동시에 서정풍의의 명작 "금지된 장난"("52)을 감독해 52년 베니스 영화제금사자상을 , 52년 미국 아카데미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러 세계적인 일류 감독의 반열에 들어선다.
이어 에밀 졸라의 "선술집" 에서 소재를 찾아, 19세기 후반 나폴레옹 3세 치하의 혼란했던 경제상황 아래서, 극도로 가난에 좇기는 생활의 비참함을 잊기 위해 술과 태만의 세계에 빠져들어간 파리 노동자의 생태를 리얼하게 묘사한 "선술집"은 자연주의 문학의 완벽한 영화화로까지 높이 평가 받고, 끌레망 감독의 거장으로서의 성가를 부동의 것으로 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후의 "태양은 가득히"("59)나 "빗속의 방문자"("69), "이리는 천사의 냄새"("72) 등에서 볼수 있듯이 그 연출에 엄격함이 사라지고 스릴러가 중심이어서 예전의 빛을 잃은게 아쉬움으로 남기도 했다.
대표작 : "철격자의 저편 LE MURA DI MALAPAGA " ("48, "49깐느영화제 감독상, 50년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 "금지된 장난 Jeux interdits"("52), "밀회 Monsieur Ripois"("54), "바다의 벽 Barrage contre le pacifique"("58), "삶의 환희 Che gioia vivere"("60), "태양은가득히 Les Felins"("64) ,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 Paris brule-t-il?"("66), "위험한 만남 Jeune fille libre le soir "("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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