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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초등학교 시절의 체벌
시골에 자란 덕분에 나는 6년간 같은 학교에서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1학년을 제외하고는 모든 담임선생님은 남자였다. 2학년 담임은 시골 아저씨 타입이었고 친절했다. 3학년 때 담임은 군에서 갓 제대한 분으로 젊고 세련되었다. 나는 이 분이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 3학년 때 아버지의 목회지가 다른 곳으로 정해져 어머니가 없는 틈을 타서 할머니와 누님과 함께 살던 나는 마음껏 놀았다. 당연히 성적은 좋지 않았다. 반면에 엉뚱하게도 평소에 별로이던 친구가 1등을 차지했다.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여 4학년 때는 열심히 공부했다. 만일 나의 성적이 엉망인데도 다른 이유 때문에 성적을 올려주었더라면 나는 오만하여 패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나로 하여금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4학년이 되면서 나는 처음부터 공부하는 일에 열중했다. 4학년 담임은 매우 악명이 높은 무서운 Y 선생님이었다. 학생들이 실수하다가 한번 걸리면, 주먹으로 손바닥으로 그리고 매로 반 죽였다. 그런데 이 선생님은 학생들을 강하게 키우고 싶었던 것 같았다. 겁을 먹은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조용했고 숙제하는 일에 철저를 기했다. 돌이켜보면 나 같은 개구쟁이를 길들이는 데는 매우 적절했던 것 같다. 요즘 학생들에 대한 체벌을 금지하는 풍토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것은 참 교육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서양 속담에 ‘말로 안 되면 피부로 느끼게 해야 된다’라는 것이 있다. 부모들이 패역한 자녀를 원치 않는다면, 이들이 잘못하면 어릴 때 피부로 느끼게 할 필요가 있음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물론 교사들은 감정을 섞어 체벌하는 일은 지양(止揚)해야 할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싸우거나 장난치면서 여학생들을 놀리거나 고무줄을 끊거나 하다가 여러 선생님들에게 수없이 얻어맞았다. 그 큰 손바닥으로 뺨을 맞으면 얼굴이 화끈하고 제정신이 들었는데, 나는 지금 그것에 대해 감사한다.
4학년 담임인 Y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교과 내용을 가르치면서 질문을 자주했고 학생들이 대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런 교수법은 학생들로 하여금 먼저 자료를 찾아보고 연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사실 이것은 선진국의 교수법과 통한다. 나는 이를 통해 처음부터 과외 선생을 필요로 하지 않고 혼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내공이 쌓인 것이다.
그런데 학생 수에 비해 우리 학급의 교실이 너무 작아서 큰 교실을 사용한 학급으로 몇 명 보낼 때 나는 자원해서 그 반으로 갔다. 그 반에는 같은 동네 친구들이 많았다.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에 매우 친절하고 온화한 분이었으나 수업 시간은 학생들로 하여금 능동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지는 않았다. 이 분은 얼마 안 있다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그 대신에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맞았는데 그림을 잘 그려 미술시간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 분은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 그림을 그려 교실에 붙여 놓았는데 다른 선생님들도 탄복할 정도였다. 4학년을 마치면서 나는 다시 우등상을 탔고, 노력하여 우등상을 탔다고 ‘노력상’까지 받았다. 돌이켜 보면 4학년은 나의 생각의 패러다임이 피동적인 데서 능동적인 데로 바꾸는 시기였는데 선생님들의 힘이 컸다고 본다.
5학년 6학년의 담임은 같은 분이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단촌 초등학교에 있다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가 다시 오신 분으로 내 눈에도 익었다. 김 선생님은 학생들의 기를 살려주며 능동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김 선생님은 6학년 담임을 피하려고 했지만 다시 우리 반(班)을 맡았다. 선생님은 더러 학생들로 하여금 집에서 들은 옛날이야기를 앞에 나와서 하도록 만들었다. 이 훈련은 사실상 학생들로 하여금 공중 앞에서 나와 일하는데 수줍음을 타지 않도록 하는 훈련이었다. 나는 집에서 누님이 밖에서 들은 옛날이야기를 하는 내용을 듣고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 했다. 김 선생님은 우리에게 논리적으로 말하는 능력을 배양하신 것이다. 이 분은 우리가 졸업하고 난 얼마 후에 대구로 전근 가셨다.
돌이켜 보면, 비록 가난한 초등학교 시절이었지만 자연 속에서 뛰놀며 거기서 창의력을 키우는 동시에 좋은 선생님들을 통해 진솔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갖은 것 같아서 난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보낸 것을 감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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