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의 사라진 역(폐역)들<원주지역>
1. 비가 제법 많이 내린다. 본격적인 가을을 시작하는 빗줄기이다. ‘화요답사’는 역답사로 대신하기로 하였다. 지난번에 중앙선 양평 <대곡역>까지 방문했다. 이번에는 양평 <양정역>에서 시작하여 제천 <봉양역>까지 답사하기로 계획했다. ‘봉양역’은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왕복하고 활동할 수 있는 심리적, 물리적 마지노선이다. 봉양역의 장점은 작지만 우리나라 여러 곳으로 떠날 수 있는 여러 기차 노선이 모여 있는 뜻밖의 중심 지역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오늘의 이슈는 ‘봉양역’이 아니다. 이번 답사에서는 얼마 전까지 운행되었지만 이제는 사라진 역들과 만난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애틋함’이 주제다. 이제 대한민국의 무궁화호가 서는 작은 역들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2. 기차 현대화 사업을 통해 기차는 KTX. STX 중심의 급행 노선을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다. 새로운 변화는 항상 과거의 낡은 비효율성을 제거시킨다. 하지만 그런 과정은 경제성이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소중한 ‘작은 것’들이 지닌 아름다움의 상실이다. 작년(2021) 양평에서 제천 구간 사이에서 몇 개의 역이 사라졌다. 강원도 <원주역>은 새로운 KTX 원주역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낡은 건물만이 남아있다. 도심의 역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다지 안타깝지 않다. 하지만 외곽 지역의 역들은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다. 원주 혁신도시의 지나친 새로움과 균형을 맞추어 주었던 <반곡역>과 강원도와 충북의 중간에서 특별한 기억을 담고 있는 <신림역>의 폐역은 그렇기 때문에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3. <반곡역>은 작년 혁신도시를 방문했을 때까지만 해서도 운행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기차를 이용하기 위해 방문하였고 역이 지닌 독특한 아름다움은 거대한 건물 군단을 이룬 ‘혁신도시’의 생경한 인상을 누그러뜨려 주었다. 특히 이 역은 혁신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장소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전망이 좋았다. 작고 아름다운 역은 이제 ‘예술센터’로 변모 중인 듯 싶었다. 역 주변에 잘 가꾸어진 나무들이 보기 좋다.
<신림역>은 많은 추억과 기억을 담고 있는 나에게는 가장 의미있는 역이다. 어린 시절 외갓집이 있던 제천시 봉양면 ‘학산리’에 가기 위해서는 이 곳에서 내려 1시간 정도 걸어가야 했다. 먼지가 날리는 국도를 걷던 시간은 마냥 즐겁지만 않았다. 외숙모가 건네준 ‘메주’가 든 가방을 어깨에 메고 낑낑거리며 걸었던 시간은 당시에는 엄청나게 힘든 시간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지나간 모든 기억은 아름답게 기억될 것이다. 그 추억의 함께 역이 사라진 것이다. ‘신림역’은 1983년 임권택 감독의 <안개마을> 촬영지이기도 하였다. 시골에서 근무하던 정윤희가 주말에 방문하는 남편을 기다리던 역 플랫폼이 바로 이 곳이었다. 하지만 낭만적인 플랫폼은 사라졌다. 다른 폐역과는 다르게 철길도 모두 철거 중이었다. 어쩌면 <반곡역>과 다르게 건물도 사라질지 모르겠다. 주변 어떤 상업적인 활용도 없는 상황에서 신림역은 사라질 운명인 것이다.
<신림역>의 한자는 <神林역>이다. 그만큼 주변의 풍경이 신비롭다는 뜻일 것이다. 역으로 들어오는 입구도 빽빽한 나무로 멋지게 장식되어 있고 역 바로 옆에도 신비스러운 나무가 서있다. 과거에는 주의 깊게 보지 않았는데 신림역에서 주변 산으로 이동하는 등산 코스가 많이 있었다. 비가 오기 때문에 불편했지만 그냥 스쳐지나가기에는 아쉬웠다. <봉양역>을 방문하고 간식과 커피를 구입해서 다시 돌아왔다. 역 입구에서 비를 피하면서 커피와 찐빵을 먹었다. 오래된 건물, 내리는 비, 신비스러운 나무, 그 속에서 가을의 시작을 체험한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긴 의자를 꺼내놓고 오랫동안 누워 휴식하고 싶었다. 역 주변의 풍경이 아름답다. 이제 사라져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에 더해 무너져가는 건물의 특별한 색채가 발광하고 있다. 마치 ‘환상적인 장소’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이곳은 이제 나만의 방문 장소가 될 것 이라는 예감을 갖는다. 건물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아니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공간이 남는다면...
<원주역-폐역>
<원주-반곡역>
<원주 - 신림역>
첫댓글 - 초고속 시대에 사라져 가는 흔적들.... 시공간 뿐만아니라 소중한 정겨움이 더욱 그러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