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은 이슬람세계의 무슬림 여성을 다른 문화권의 여성과 구별시키는 주된 요인이다. 그렇다면 무슬림 여성들은 왜 ‘히잡’을 쓰는 것일까.
역사적으로 히잡 착용의 관습은 이슬람 이전시대부터 존재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명시된 것은 꾸란에 의해서였다.
‘밖으로 나타내는 것 이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되니라. 즉, 가슴을 가리는 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의 부모, 자기 부모, 자기 자식, 자기의 형제, 형제의 자식, 소유하고 있는 하녀, 성욕을 갖지 못하는 하인, 그리고 성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이외의 자에게는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되니라.’(24:31)
이 구절을 보면 ‘유혹하는 것’과 가슴이라고 언급되었을 뿐 무슬림 여성이 가려야 할 신체 부위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이슬람 법학자들의 해석에 따라 가려야 할 부위가 결정되었다.
수세기 동안 이슬람세계에서 이러한 관습은 다양한 문화와 인종집단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되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성의 온몸을 덮는 것이 요구되었고, 다른 지역에서는 얼굴 전체를 가리는 것이 적절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또 어떤 지역이나 특정 시대에는 얼굴의 아랫 부분만 가리도록 하였고, 얼굴은 완전히 노출한 채 머리카락만 가리도록 하는 지역도 있었다.
그럼 무슬림 여성들은 왜 ‘히잡’을 착용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우선 꾸란에서의 여성관, 즉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호관과 현대 이슬람국가의 전통적 페미니즘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슬람은 종교적 임무와 수행에서 남녀의 평등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혼인, 이혼, 상속권 및 재산권 문제에서도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은 기능과 업무에서 남성과 여성의 유별을 강조하고 있다. 즉, 남성에게는 경제적 부양 의무가, 여성에게는 자녀 교육과 가정을 보존하는 의무가 주어져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권리는 동등하나 각각의 역할과 일의 영역은 다르다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또 이슬람은 여성을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보고 있다. 따라서 ‘히잡’ 역시 여성 보호라는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히잡’과 순결성의 관계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18세기 무렵부터 히잡은 경제와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표시였으며, 순결과 처녀성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사용되었다.
이슬람교의 해석에 따르면 남성과 여성은 똑같이 성적 존재로서 성욕은 사회적으로 인정된 결혼에서는 향유될 만한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곡해되어 여성은 특히 성욕이 강하고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으며, 남성의 성적 탈선은 여성이 지니거나 보여주는 유혹에 기인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슬람의 보수적 시각에서 가정 밖에 있는 여성은 유혹이며 사회적 혼란의 원천으로 간주된 것이다. 이로써 ‘히잡’을 쓰지 않는 여성은 그녀와 교제하게 되는 모든 남자들을 타락하게 하는 죄를 짓는 것이며, 그 여성은 제어하기 어려운 남성의 성적 욕구를 자극하게 되는 것이다. 즉, 격리와 히잡 쓰기는 여성의 처녀성을 보장하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방어조치로 사용되었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혁명은 이슬람운동이 확산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문화적 정체성과 정통성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았던 이슬람주의자들은 무슬림 여성을 이슬람문화의 가치와 전통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이슬람운동 확산후, 이슬람세계의 여성들은 자신들을 이슬람적 가치의 상징으로 삼으려는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전통적 페미니즘 운동을 촉발시켰다.
전통적 페미니즘은 이슬람적 가치에 근거하여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보호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의 상징이 바로 여성들의 ‘히잡’ 착용이었다. ‘히잡’ 착용은 전통적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많은 여성들이 따랐으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이러한 규제를 거부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 이슬람운동에 따른 여성들의 ‘히잡’ 착용은 국가와 사회 계층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엘리트 여성들의 착용이 늘고 있다. 그것은 무슬림 여성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이 되고 있다.
‘히잡’ 착용은 서구적 시각에서 볼 때 여성의 권리와 자유의 제약으로 비쳤다. 그러나 이것은 이슬람의 종교적 가치관을 이해하지 못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히잡’은 여성을 속박하는 개념이 아니라 여성을 보호하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란의 여성은 ‘히잡’을 정치·경제적 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여성운동의 도구로 활용하였다. 이집트에서는 ‘히잡’이 여성의 사회·경제적 혜택을 가져다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히잡’의 자발적 착용이 확대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히잡’ 착용은 여성의 이동의 자유는 물론 사회활동의 많은 영역을 확보해 주고 있다.
따라서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이 여성에 대한 속박이라든지 혹은 자유를 박탈하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한 그것은 이슬람문화의 독특한 특성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서구적 시각에서 탈피해 상대주의 원리에 입각해 무슬림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 예컨대 ‘히잡’은 이슬람적 가치에 근거하는 무슬림 여성들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적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