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 인문학술원의 ‘릴레이 인문학 강연’ 프로그램의 하나로 내가 실행한 강연제목이 <블랙리스트와 예술가>다. 주지하는 것처럼 지난 박 정권은 문화-예술계 인사 9,473명에게 불온한 좌파 예술가란 딱지를 붙이고 사갈시(蛇蝎視)하며 조직적으로 관리해왔다. 정권과 재벌에 순종하지 않고,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한 인사들에게 재정지원 중단이나 방송출연 금지 같은 불이익을 강제한 정권과 그 하수인들이 작성한 블랙리스트.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의 혐의(?)가 흥미롭다. 2016년 12월 26일 에스비에스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야당정치인을 지지한 사람,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항쟁을 다룬 사람, 국가보안법을 비판하거나, 박정희 부녀의 정권을 풍자한 사람, 비정규직 노동자 시위를 지지하거나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한 사람들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한 마디로 불온한 사상을 가진 진보좌파 진영 인사들을 겨냥한 것이 블랙리스트다.
4.19 이후 자신의 시세계를 급변침한 김수영 시인은 “모든 문화는 근본적으로 불온하다!”고 일갈했다. 문화-예술인들의 의식 저변에는 불온한 저항과 반역의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설파한 것이다. 현실의 정치 권력자들과 재벌들, 그들에게 기생하는 언론과 문화의 권력자들과 대형교회와 사찰의 부패한 관리자들을 겨냥하는 예술가의 영혼과 정신은 부패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분노와 저항으로 충만해야 한다.
2013년 9월 3일부터 15일까지 국립극단은 고전 그리스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개구리>, <구름>, <새>를 3부작 형식으로 묶어서 상연했다. 그 가운데 <개구리>를 2013년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삼아 그분(노무현)과 풍운(박정희)의 이념적-역사적 대결로 각색한 박근형 연출가가 블랙리스트에 등재돼 정부의 재정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더욱이 <개구리> 상연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문체부 예술정책국장이 승진에서 탈락하였다고 한다.
그분을 긍정적으로 그려내고, 풍운을 비판적으로 다룬 박근형 연출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현재권력을 가진 쪽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게 예술”이란 주장을 전개한다. 후임정권의 조직적인 모욕으로 죽음에 이른 노무현을 관대하게 다루고, 풍자의 날카롭고 쓴 웃음으로 당대정권을 매섭게 몰아친 연출가의 의도는 적중했다. 왜냐면 <개구리> 상연이 최고 권력자와 그 수하(手下)들의 심기를 거스름으로써 블랙리스트 작성의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주도한 블랙리스트 작성은 2016년 인터넷상에서 ‘설(說)’로만 돌아다니는 형국이었다. 그러다가 2016년 12월 26일 박영수 특검팀이 김기춘-조윤선 등의 집과 집무실, 문체부 예술정책국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언론에 보도된 권력자들의 편향되고 왜곡된 사유와 인식은 놀랍다. “문화-예술계의 공공성 강화 차원에서 진보 예술인들을 말려 죽여야 한다.”
‘좌파’와 ‘진보’를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고, 살기 넘치는 발언을 거리끼지 않았던 자들이 권력의 심장부에 포진하고 있었다. 새가 좌우의 두 날개로 나는 것처럼, 사람도 좌우의 두 다리로 걷는다. 한쪽 손이나 눈, 귀가 없으면 얼마나 불편한지 우리는 알고 있다. 좌우의 균형적인 발달과 대칭이 인간에게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 삼척동자도 이해한다. 우리의 사유와 인식도 좌우가 고르게 발달해야 온전하게 작동한다.
진보는 보수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꿈꾸고, 보수는 진보가 엄두내지 못할 사업도 구상한다. 좌와 우는 이항대립이 아니라, 상보적이고 협력하는 관계다. 그래야 나라의 백성이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 언제까지 ‘좌빨’과 ‘우꼴’ 타령을 할 것인가?! 21세기 시간과 공간이 광속으로 날아가고 급변하는 시점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냉전의 시각과 작별할 때 우리는 지구촌 일원으로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기획하게 되리라.
<경북매일신문>, 2017년 9월 15일자 칼럼 ‘파안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