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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대회 후기.
대회가 끝난지 벌써 2주가 지났지만, 개인적으로 처음 가보는 (아마 클럽에서도 처음일듯) 대회이기도 하고, 재미있는 추억들이 많아 몇 장의 사진과 함께 기록으로 남겨봅니다.^^
제18회 제주국제울트라마라톤 대회
대회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KUMF (대한 울트라 마라톤 연맹)에서 주관하는 100K 와 200K 울트라 마라톤이 이 대회 메인 행사(50K과 105K 코스도 있다)이며, 여기에 60K 와 80K 트레일러닝 대회를 함께 진행한다. 대회 게시판에 올라온, 이번 대회 총 참가자(참가비 납부 기준)는 330여명. "국제"라는 이름에 걸맞게, 해외 18개국에서 꽤 많은 외국인 선수들도 참가한다. 그 중 특이하게 말레이지아 선수들이 30여명 단체로 참가했다. 재미있는 건 해외 선수들 대부분은 트레일러닝 대회에, 한국 선수들은 울트라 대회를 주로 뛰는 것 같다. 대회 참가비는 10만원 (200K는 15만원)으로 저렴하며, 1일 숙박과 조식을 희망하면 2만원을 추가하면 되는데, 이게 "대박"이다. ^^ 이유는 아래에~ㅎㅎ
트레일러닝 80K 코스도 및 고저도 (총 거리 80km, 총 고도 3660m)
트레일러닝 80K는 울트라 100K 및 200K 주자들과 함께 제주시 탑동 공원 주차장에서 토요일 오전 6시 출발한다. (60K 선수들은 성판악에서 8시 출발) 바닷가에서 출발하니 말 그대로 해발 0m에서 시작, 성판악 코스로 한라산 정상 1950m까지 쭈~욱 올라간다. 이 구간만 대략 30km. 가장 가파르다는 관음사 코스로 내려와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다시 어리목, 윗세오름(해발 1700m)까지 30여키로. 그리고 돈내코 코스로 하산,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으로 골인하는 코스이다. 대략 제한 시간 15시간 내에 한라산을 두 번 올라갔다 내려와 하프를 한 번 뛴다고 보면 된다. 아이 쉰나~~^^
준비물
트레일러닝 종목의 경우 특이하게 아이젠과 경광봉이 필수 항목으로 되어 있다. 야간 대회 경광봉은 이해가 되지만, 꽃피는 춘삼월에 아이젠이 웬 말인가...^^;; 예전 대회 사진을 검색해 보니 수긍이 안되는 건 아니다. 한라산 계곡에는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곳이 있단다. 암튼, 매고 뛰어야 할 배낭이 1.5kg 정도 무거워졌다. ^^;; 막상 대회 전날, 물품 검사를 그리 까다롭게 하지 않아 아이젠은 뺄까 하다가 대회 규정이라니 그냥 챙겨 넣었는데.... 안 가져갔으면 정말 큰 일 날뻔 했다.^^ 트레일러닝의 필수 항목들인 램프나 비상약품, 은박지 블랑켓 등은 말그대로 비상 상황을 대비해 준비하는 것들이라 지금껏 대회중 쓸 일이 없었는데, 이번 제주 대회에서는 배낭에 담아간 거의 모든 물품들을 다 사용해야만 했다. ^^;;
대회 준비물. 평소보다 무거웠지만 정말 요긴하게 썼던 장비들.
대회 전날
대회가 토요일 오전 6시 출발이라, 할 수 없이 금요일 하루 휴가를 냈다.
목포에서 9시에 출발하는 페리를 타고 제주항에 도착하니 오후 2시경. 1주일 전인가, 제주도에 처음으로 미세먼지 경감조치가 내려졌을 정도로 미세먼지가 심각했는데, 오늘 페리 갑판에서 바라본 제주도의 모습은...
환상이다... 멀리 보이는 부드러운 한라산의 능선이 내일 경기를 기대케 한다.
장비 검사와 숙소가 있는 제주 팔레스 호텔까지는 걸어서 2키로 정도. 지난 Trans-Jeju 100K 대회때와 동일한 행사장이다. 제주항에서 팔레스 호텔까지 가는 길엔 맛있는 해장국집들과 제주 수협 어시장이 있어, 목포 갈때 회 떠갈 생선들을 미리 찜해 놓는다. 점심 먹을 중국집을 찾는데 실패, 제주도에서 유명하다는 고기 국수를 먹었는데 탁월한 선택이였다. ^^
대회장인 팔레스 호텔 로비
멋진 한라산 뷰를 가진 "2만원"짜리 숙소의 위용. 2인 1실이긴 하나 정말 편안하고 깨끗하다.
"2만원" 숙소 비용에 포함된 아침 식사. 심지어 뷔페~^^
배번과 기념품인 기모가 있는 겨울용 트레이닝 바지.
대회 당일
잠자리엔 일찍 들었는데, 긴장이 되었던지 새벽까지 뒤척이다 4시에 기상. 호텔 10층에 준비된 식당에서 아침을 맛있게 먹고 출발 지점인 탑동 공원 주차장으로. 오늘 제주도 기온이 17도까지 오른다고 해서 반팔에 반바지로 출발하기로. 혹시 몰라 가벼운 바람막이와 갈아입을 긴 팔도 배낭에 챙겨넣었다. 아침 공기가 차갑긴 한데, 춥다고 느껴지진 않을 정도. 달리기 정말 좋은 날씨이다.
출발 5분 전.
이 곳 탑동 공원에서는 트레일런 80K 주자들과 울트라 마라톤 100K, 200K 주자들이 한꺼번에 출발을 한다. 우리는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로, 로드 주자들은 일주도로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역시 서귀포로. 특히 200K 주자들은 제주도 반 바퀴를 더 돌아 이 곳으로 돌아와야 한다. 대단한 사람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200K도 함 도전해 보고 싶다. ^^ 주자들 면면을 보니 외국인과 한국인 비율이 1:3 정도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많다. 대부분 20대의 젊은 친구들로 특히 말레이시아와 중국에서 많이 온 듯. 6시 정각, 사회자가 출발을 알린다. 출발선을 나오자마자 로드 주자들은 직진, 트레일런 주자들은 한라산을 향해 바로 좌회전. 해발 0m에서 1947m인 한라산 정상까지 30km 업힐을 시작한다.
출발 ~ 성판악 입구(CP1) 20.7km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연결하는, 소위 516도로라고 알려진 1131번 지방도를 타고 끊임없이 오르막이다. 출발 이후 제주시를 관통할때는 중간 중간 신호등 때문에 멈춰서야 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도심을 벗어나면 쉴 틈이 없다. 설마 20키로 내내 오르막일까 싶었는데, 급하고 완만한 정도 차이만 있을뿐 진짜 계속 오르막이다.^^;; 다행인 것은 일반 도로를 뛰는 거라 다리에 부담이 없어 로드 울트라 뛰는 기분으로 6~7분 페이스를 유지하며 천천히 올라간다.
대략 10키로 지점. 먼 동이 터온다. 미세먼지 상태: 좋음!!!^^
현무암 돌담 너머로 보이는 한라산 정상. 꼭대기엔 아직 눈이 녹지 않은 듯 드문드문 흰색이다.
열심히 쫒아오고 있는 말레이시아 젊은 주자들.
이번 대회 목표는 일단 12시간내 완주. 80km를 12시간에 뛸려면 시간당 6.7km를 가면 된다. 페이스로 환산하면 9분 페이스. 일반 마라톤에 비하면 엄청 늦은 속도지만, 높은 산길을 오르내리는 트레일런에선 엄청 빠른 기록이다. 코스를 보니 포장된 도로를 뛰는 구간이 거의 절반이며, 성판악-관음사 코스는 지난 Trans 제주 대회때 그리 어렵지 않게 - 그 땐 관음사->성판악 코스였는데 대략 3시간 30분 정도 소요 - 통과했던 터라, 어리목-돈내코 구간만 잘 버텨준다면 저녁 6시전엔 서귀포 결승점까지 도착할 수 있을거 같았다. 6시에 도착하면 일단 사우나부터 숸하게 하고.....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첫 셔틀(7시 출발)을 타고 제주시로 돌아와... 무슨 맛있는 안주에다 술을 한잔 할까....^^ 생각만 해도 즐거워 750 고지에 위치한 성판악 입구까지 힘든 줄 모르고 뛰었다. 성판악 도착. 2시간 19분. 평균 6:42 페이스
성판악 입구 ~ 관음사 (CP2) 18km
원래 성판악까진 2시간 정도 생각했었는데, 20분 정도 더 걸렸다. 하지만 트레일런 대회치곤 엄청 빨리 뛴 편. 날씨가 너무 좋아 물도 반 병만 담아왔는데, 충분했다. 두 번째 CP인 관음사까지는 18km로 꽤 긴 거리라 이 곳에서 양쪽 물병을 빵빵하게 채웠다. 한쪽 병엔 High5 에너스소스와 제로정을 섞어 넣고 출발. 한라산을 오른다. 예전 기억으로 이 곳 등산로가 완만해서 막 뛰어내려왔던 기억이 나는데, 역시나 천천히 뛰어 오를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하다. 한 한국인 80K 주자와 엎치락 뒤치락 하는 사이, 벌써 진달래밭 대피소. 정상까진 2키로 남았는데 앞 선 사람들이 갑자기 주저앉는다. 숲속 사이로 난 등산로를 엄청 미끄러워보이는 얼음이가득 덮고 있다. 아이젠 없이 가볼까 했는데, 한번 미끄러지고는 바로 착용.ㅎㅎ
아이젠을 평생 처음 신어 봤다. ^^;; 철인하는 정규 후배가 두 개를 빌려 주었고, 그 중 전면 아이젠은 무거워, 부분(?) 아이젠을 챙겨왔는데 와~ 그 성능이 신박하다.^^ 얼음 미끄럼틀처럼 생긴 산길을 잘도 올라간다. 다만 단점이 하나 있는데, 중간 중간 얼음이 없는 부분은 까치발로 걸어야해서 오히려 힘들다.ㅋㅋ 어느덧 사방이 뻥 뚫린 정상 아래 도착. 여기서부터는 오히려 얼음이 다 녹아서 아이젠을 벗어 손에 쥔다. 오늘 저녁 비소식이 있다고 했는데, 정상엔 벌써부터 두터운 구름이 오락가락 한다. 백록담 도착. 2시간 7분 소요. 빙판길 때문에 생각보다 조금 늦긴 했지만, 몸 상태는 괜찮다.
백록담에서 한 컷. 멀리서 큰 구름이 몰려온다.
사진 한 장 찍고 바로 하산. 이번엔 관음사로 내려간다. 성판악 코스보다 경사가 더 있는 대신, 짧다. 조금 속도를 내볼까 했는데, 다시 주로에 덮힌 얼음이 발목을 잡는다. 들고 있던 아이젠을 다시 장착. 까치발 자세로 불안불안 내려가고 있는데, 앞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이젠 없이 스틱에만 의존해 가던 인도에서 온 젊은 여성 주자 한 명이 크게 미끄러진다. 괜찮냐고 했더니 다친덴 없단다. 얼굴이 완전 이뻐서 그런건 아니고 도와줄꺼 없냐 했더니 괜찮단다. 하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아이젠을 벗어주는 것 말곤 없으니.. 내 코가 석자라 내 갈 길을 간다.ㅎㅎ 삼각봉을 지났는데도 여전히 군데군데 얼음이 남아 있어 아이젠을 벗을 수가 없다. 전면 아이젠을 착용한 선수들은 거리낌없이 달려 내려간다. 몇 명에게 추월당하고서야 관음사 도착. 성판악에서부터 총 3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역시 계획보다 20분 정도 늦은 기록.
관음사-어리목 휴게소 (CP3)-윗세오름-돈내코(CP4) 25.5km
관음사 CP에서 주는 맛있는 주먹밥 몇 개를 집어 먹고 바로 출발. 어리목 휴게소까지는 일반 도로를 달려 12km. 초반에는 오르내리막을 번갈아 나오더니 제주시 공설 묘지 이후로는 계속 오르막이다. 스틱을 마치 검객처럼 등에 매고 달리는 여성 주자가 초반부터 500m 전방에 보이는 데 도무지 간격이 좁혀지지 않다가 공설 묘지 입구에서 따라 잡았다. 사실 그 무렵 가민에 담아간 지도랑 진행 요원이 안내한 길이 달라지길래 궁금하던 차였다.(나중에 알고 보니 가민에 담아간 지도가 잘못 그려짐) 말레이시아에서 온 Tahira. 얼굴은 무척 애띠어 보이는데, 4명 아이의 엄마란다. 풀 기록 3시간 18분, 마라톤과 트레일러닝을 주제로 한 SNS 계정에 만 명 이상의 팔로워를 가진 나름 유명 인사라고..^^ 무엇보다 올 해 몽블랑 TDS (140km, 내가 뛰는 CCC랑 난이도는 거의 비슷한데 좀 더 긴 대회)에 참가한단다. 난 운 좋게 추첨되서 가는데, 그 친군 말레이시아 여자부 엘리트 자격으로 자동 출전이란다. 나중에 샤머니에서 다시 보자 하고, 먼저 어리목 휴게소에 도착했다.
어리목 휴게소 입구. 비가 한두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관음사에서 어리목 휴게소까지는 대략 12km. 도로라 뛰기는 좋은데 후반 오르막이 조금 빡세다. 어리목에 도착해 간이 CP에서 두번째 에너지소스와 제로정을 섞어 물을 채운다. 날씨가 심상치 않아 배낭에서 버프랑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다음 CP 돈내코까지는 14km. 더욱이 1700m 윗세오름까지 올라야 한다. 사실 이 코스는 조금 쉬울 줄 알았다. "윗세오름"으로 검색을 해보면 다음과 같은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길~^^
어리목~윗세오름 코스. 윗세오름 대피소를 지나 남벽 분기점으로 넘어가야 한다.
모든 길이 이런 평탄한 길인줄 알았다. 그런데 왠 걸~ 관음사 코스만큼이나 가파르다. 한 2키로를 죽을동 살동 올라가니 이제서야 "그림같은" 길이 나온다. 그런데... 어리목 출발때부터 내리던 비가 굵어지더니 1400고지를 넘어가니 진눈깨비로 바뀐다. 설마 춘삼월에 눈이야 오겠나 싶었는데, 오르는 계단 켠켠에 하얗게 쌓이기 시작한다. 더욱이 사제비동산 이후 사방이 뻥 둘린 허허벌판이라 세차게 불어오는 눈보라를 온 몸으로 맞이한다. 아차 싶었다. ;;;
반팔에 반바지. 위에는 얇은 바람막이를 걸쳐 입었는데 이마저 눈에 젖어 보온 효과가 전혀 없다. 다행히 챙겨왔던 버프로 얼굴과 귀를 덮었지만, 문제는 스틱을 쥐고 있는 손가락의 감각이 점점 없어진다. 스틱을 접어 넣고 손을 비벼 보지만 효과는 그다지.... 아까 올라올때, 하산하던 등산객 가족이 정상에 올라가면 내 옷차림으론 엄청 추울꺼라며 우비 하나 드릴까요 했던 걸 사양했던 게 엄청 후회된다. 그 와중에도 쉬지 않고 움직여주는 두 다리가 신기하고 감사할 뿐이다. 다행히 경사가 급하지 않고 나무 데크가 잘 정비되어 있어 뛸 수 있는 구간이 많다. 그렇게 2키로를 가니 산장처럼 보이는 "윗세오름 대피소"가 눈 앞에 딱 나타난다.
일단 눈을 좀 피할 겸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더니, 조그만 전기 난로 하나에 몸을 녹이고 있는 선수 2명과 대회 진행 요원 2명으로 1 평도 채 안되어 보이는 대피소 안이 빡빡하다. 간신히 한 구석에 자리를 잡으니, 진행 요원이 뜨거운 물 한 잔을 건넨다. 고마운 맘에 종이컵을 받아 드는데, 몸이 떨려 물이 계속 흘러 넘친다. 밖에서 달릴땐 못 느꼈는데, 가만히 서있으니 더 오한이 나고 머리와 어깨에 쌓였던 눈들이 녹아 내리며 저체온증 증상까지 나는 듯 하다. 일단 흠뻑 젖은 반팔을 벗어버리고, 예비용으로 가져왔던 긴 팔로 갈아입었다. 조금 나아지나 했더니 그것도 잠깐 몸이 더 심하게 떨린다. 혹시나 대회가 중단되지 않나 물어봤더니 중단되더라도 어차피 걸어내려가야 한다고 한다 ㅠㅜ.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사이, 빨갛게 얼어버린 주자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Tahira도 대피소 안으로 들어온다. 그 중 한 명이 배낭에서 은박 블랑켓을 꺼내더니 다리를 덮는다. 아, 나도 챙겨왔지!!! 언 손가락으로 간신히 은박지를 꺼내니, 친절하게도 진행 요원이 수퍼맨 망토처럼 묶어준다. 체온이 더 떨어지기 전에... 가보자!!!
이 와중에 사진이라니...ㅋ 윗세오름 대피소를 나서기 직전. 얼굴이 안나와서 다행...ㅎㅎ
평생 다시 있을까 싶은 경험인지라 출발 직전 사진 한 장을 남긴다. 다시 눈보라 속으로.
여기서 남벽 분기점까지는 2km, 돈내코 안내소까지는 다시 7km를 내려가야 한다. 일단 돈내코 표시판을 보고 길을 들어서는데, 세상이 온통 하얗고 보니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난 누구~ 여긴 어디~" 분위기...^^;; 유일한 희망이 눈길에 금방 찍힌 듯한 앞선 이들의 발자국이였다. 더욱이 이 은박 블랑켓이 대박이다.^^ 정말 얇디 얇은 비닐 한장인데, 은박지로 덮은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마치 천국과 지옥이다. 외부 바람을 막아주고 내부 체온이 고스란이 은박지 안쪽으로 남아 심지어 따뜻하다는 느낌을 준다. 문제는 노출된 부분. 특히 손가락. 동상이 걱정될 정도로 땡땡 얼었다. 안되겠다 싶어 두 손을 교대로 입에다 넣고(살려고 별 짓을...ㅋㅋ) 녹여본다. 어느 정도 감각이 돌아오면 은박지 안쪽으로. 어느덧 남벽 분기점을 지나 본격적인 돈내코 하산길을 접어드는데... 하얀 눈밭에 뽀쪽한 검은 돌들이 불규칙하게 머리를 내밀고 있는... 화대종주때 그렇게 고생했던 유평리 계곡길이 딱 떠오른다. 그것도 "눈오는 유평리..." ㅠㅜ 안경은 눈과 습기로 뿌였고 두 손은 은박지 안에 묶여 있어 균형을 잡을 수가 없고, 불규칙한 바닥에서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기록이고 뭐고 최대한 조심해서 내려오는데, 다행히 중간쯤 내려오니 눈이 비로 바뀌고 길도 덜 미끄럽다. 그렇게 7km를 내려와 마침내 돈내코 안내소 CP4 도착. 관음사에서부터 25.5km를 5시간 25분. 출발지부터는 11시간 50분 걸렸다.
돈내코 안내소 직전. 무사 하산 기념 감동의 사진 한 컷. 멀리 서귀포 시가 보인다.
돈내코 안내소 ~ 서귀포 월드컵 경기장(골인) 16km
돈내코 안내소에 막 도착하니, 기다리시던 자봉 요원들이 컵라면을 하나 끓여주시겠단다. 대박!!!! 안그래도 하루 종일 파워젤, 초코바 등 달고 차가운 것만 먹었더니 매콤하고 따끈한 국물이 많~이 생각나 혹시 이번 CP에 없으면 중간에 편의점이라도 들러 사먹을 생각이였는데... 세상에서 젤 맛있는 컵라면 한 그릇을 마시듯 먹고 나니 꽁꽁 얼었던 몸이 다 녹는 듯하다. 목표 시간인 12시간은 이미 넘어 버렸지만, 남은 16km를 가능한 쉬지 말고 달려 보자~ 배낭 뒤 경광봉을 켜고 (비가 여전히 오는 관계로) 은박지는 그대로 뒤집어 쓴 채로 다시 516 도로를 달린다. 돈내코에 나보다 조금 늦게 도착한 철인 한 분이 추월해 가고, 제주도 도민이시라는 60k 주자 한 분과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얘기했는데도 계속 중국말로 말을 걸었던 (왜 그랬을까나? ㅋㅋ) 중국인, 이렇게 3명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동반주를 한다. 비석사거리에서 우회전,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하는데, 오르막이 꽤 있다. 마지막 오르막을 넘어가니 멀리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건널목 신호등에서 잠시 대기하다 길을 건너 골인. 끝날 것 같지 않던 80km주가 끝이 났다. 마지막 16km는 두 시간, 총 13시간 57분.
결승점 아치가 강풍에 날아가 버릴 정도로 비바람이 심했고, 골인했던 저녁 8시 무렵에도 계속 진행중이였다. 그 와중에 200km 주자들은 밤새 계속 뛰어 30명 정도가 완주를 했다고 하니 정말 대단들 하다. 골인하면 경기장 옆 사우나와 저녁을 무료로 제공하는데, 배도 고팠지만 무엇보다 따뜻한 샤워가 필요했기에 저녁은 생략하고 사우나에서 1시간 정도 몸을 녹인 후에 9시 30분, 역시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무료 셔틀을 타고 제주시로 돌아왔다. 참가비로 10만원, 1박 숙소 비용으로 2만원을 냈을 뿐인데, 1박 2일 동안 주최측이 과분할 정도로 선수들을 위해 준비를 많이 해주었고 덕분에 무사히 그리고 즐겁게 완주할 수 있었다. 무척 고생하셨을 주최측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요즘 국제 트레일런 대회에서 중국 선수들이 급부상 중. 잠깐 동반주 했던 Tahira는 여자 1위.^^
대회 후 기록을 보니, 80k 부문에서 한국인 8명을 포함 총 26명이 완주하였다. 나보다 앞 선 주자들이 훨씬 많았었는데, 윗세오름에서 영실로 빠져 대회를 포기하셨다고 한다. 만약 나도 영실로 내려오는 코스가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고민을 많이 했을 듯.ㅎㅎ 하지만, 완주한 덕분에 갑작스런 추위에 대비하는 법도 배웠고, 한라산을 두 번을 오르는 동안 비록 걸었을 지언정 한번도 멈추지 않았음에 나름 훈련을 제대로 한 것 같아 뿌듯하다. 한 가지 정말 아쉬웠던 건...
대회 끝나고 제주시로 복귀한 토요일 저녁, 이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 할 이가 없었다는 게 젤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
울트라던 트레일런이든... 내년엔 꼭 한 명이라도 꼬셔서 함께... ㅎㅎ
다음은 지리산 60k? ^^
첫댓글 1빠ㅎ~다음후기에는 드디어 한라산 엄동설한에서 찍은 엄청난 사진들이 올라오겠네요ㅋㅋㅋ~기대됩니다~저는 이미봤지만 안본회원님들은 크게 놀라실것같아요ㅎ
1빠 감사~
콧물 줄줄 흘리는 엄동설한 사진을 올릴까 하다가 괜히 회원님들 눈 버리실꺼 같아...
자(체)삭(제) 했습니다~ㅋㅋ 여수 갔다와서 양꼬치 먹으러 갑시당~^^
아주.참. 대단해요. 특수요원보다. 강한
남자로. 인정. 👎👎